우순자 글

작성자박래|작성시간09.01.31|조회수40 목록 댓글 1

이 선생님께>

커피 한 잔을 들고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동산으로 올라가야 한 눈에 내려다보이던 마을이 이젠 2층 거실에서도 방안에서도 훤히 내려다보입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은 힘을 모아 어둠을 밀어 올리고, 가끔씩 짖어대는 개 소리로 인해 고요함이 흔들립니다. 


일주일 내내 바쁘게 보낸 이들과 비교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돋보기를 쓰고 밀쳐둔 원고를 정리하느라 하루를 보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날 일은 아니지만 밀린 숙제를 하고 난 뒤의 홀가분함 마음 바로 그 느낌입니다.

멀리 동구 밖 신호등의 불빛이 좌회전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 바쁘게 직진으로 달리던 차들은 정차를 통해 잠시 숨을 돌려야 합니다. 하루 동안 글밭을 돌아다니느라 긴장을 한 눈은 경련으로 인해 정차가 아니라 주차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산 체신청에서의 편지가족 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 얽매여 지금껏 한 번도 참석을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시간을 내어 참석하려고 합니다. 쓸만한 글감 하나 낚고 싶었고,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안팎을 넘나드는 개구리로 살기 위해서는 눈요기도, 경험도 필요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가족들에게 미리 귀 뜸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눈치를 보고 있는데 어머님이 먼저 제 발목을 잡습니다. 계단 하나가 남았는데도 다 내려왔다고 생각을 했나 봅니다. 넘어졌습니다. 손을 다쳐 붕대를 칭칭 감고 병원을 나왔습니다. 밀려온 파도가 모래 틈으로 맥없이 사라지듯이 부풀었던 마음도 그렇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속상합니다.

선생님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답답하다고 하셨지요.

가족도 가족이지만 이제는 자신을 생각하며 살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셨지요. 지구가 도는 것처럼 하루쯤 자리를 비워도 가정은 원만하게 돌아갈 거라고 하셨지요. 내 몸이 건강하고, 내 마음이 밝아야만 가정도 그리 되는 것 아니냐고 하셨지요.

네. 맞습니다.

전후사정을 따지다보니 지금껏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두 눈 질끈 감고 참석하렵니다.

이번만큼은 저만 생각하렵니다. 어머님이 다친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과 아이들이 어설프게나마 주방으로 들락거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알고도 남겠지요.


새해가 밝았다고 연거푸 문자 메시지가 날아옵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같지만 매일 매일이 새날입니다. 사람들은 가슴에 소망 하나 담고 동으로 동으로 높은 산으로 산으로 길을 떠납니다.

아버님의 기제사로 6남매뿐만 아니라 사촌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십 여 명이나 되는 손님들을 두고 그들처럼 길을 떠날 수는 없지만 동해의 푸른 물살을 가르고 불쑥 솟아오르는 붉은 햇덩이를 온 가슴으로 받아 안아 꿈 하나 잉태하고 싶습니다.

흥부의 박에서처럼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오길 바라지 않습니다. 먼 훗날,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고이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선생님을 만난지 강산이 한 번 변했습니다. 흐린 판단 앞에서는 가차 없이 죽비로 내리치고, 그렇지 않으면 웃음 한 덩이 툭, 던져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늘 그렇게 저를 이끌어주시고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한 해 동안 많이 고마웠고,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해오름달에

                           옥포에서  파란꿈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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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정희 | 작성시간 09.02.03 우순자씨 글은 와이리 많은겨~^^* 본인과 상의해서 똑~같은 글은 삭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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