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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ites 이야기

내가 만든 하나님

작성자강경균|작성시간26.06.07|조회수6 목록 댓글 0

오늘날 하나님은 대체로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부드럽고, 이해하기 쉽고, 언제나 받아주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물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인간의 감정 언어로만 축소될 때,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분으로만 남고 변화시키시는 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위로는 되지만 결코 나를 흔들지 않는 하나님. 그것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하나님이다.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고후 5:11) 그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 곧 '두려우심'을 알았다. 이것은 벌을 받을까 떠는 공포가 아니다.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이 경험하는 경외심,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생겨나는 존재의 떨림이다.

요한은 예수의 품에 기대어 눕던 제자, 사랑받은 자였다. 그러나 밧모 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는 달랐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계 1:17).

지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제자가, 영광 중에 나타나신 주님 앞에서 죽은 자처럼 쓰러졌다. 친밀함이 경외를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깊이 사랑받은 자가 가장 깊이 떨었다.

사랑과 경외는 서로 반대가 아니다. 존경 없는 사랑은 쉽게 가벼워지고, 경외 없는 친밀함은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십자가는 이 둘이 가장 선명하게 만나는 자리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셨기에 아들을 내어주셨고, 동시에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기에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히 12:29). 가장 가까이 오시는 분이 동시에 가장 거룩하신 분이다.

놀랍게도 그 경외는 하나님에게서 도망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사랑으로 이끈다. 그 두려우신 사랑은 나의 교만을 무너뜨리고, 거짓된 자아를 해체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세운다.

성숙한 신앙은 사랑과 경외 사이에서 자란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함부로 서지 않는다. 그 사랑 안에서 위로를 얻고, 그 경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주의 두려우심은 복음을 무겁게 만드는 짐이 아니라, 복음을 진실하게 만드는 토대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두려우심이 함께 있는 곳에서 사람은 비로소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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