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해지기를 원한다. 상황을 통제하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싶어한다. 그런데 삶은 집요하게 우리를 무력한 자리로 데려간다. 되지 않는 자녀의 문제, 오래가는 질병, 회복되지 않는 관계, 쌓이는 실패감. 이 자리에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묻는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성경은 대답한다. 바로 거기 계신다고.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라."(사 43: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 23:4) 두 본문 모두 두렵게 하는 환경을 제거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그 환경 속으로 함께 걸어가겠다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동행은 물 밖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자꾸 두려움을 없애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그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경험하라고 응답하신다. 연약함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그 연약함이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는 통로가 된다.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후 12:10) 바울의 이 말은 위로의 수사가 아니다. 실제 경험에서 나온 고백이다. 무력감은 저주가 아니다. 은혜의 입구다.
담대한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두려움 없이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저한 무너짐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신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능력이 다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역설적으로 담대해진다. 더 잃을 것도, 증명할 것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을 믿는 사람은 그 능력이 흔들릴 때 무너진다. 그러나 이미 능력이 다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역설적으로 이상할 만큼 담대해진다. 더 잃을 것도, 더 증명할 것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 구조를 반복한다. 모세는 광야 40년 후에 쓰임받았다. 베드로는 실패 이후에 강해졌다. 바울은 가시를 제거받지 못한 채 사역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라는 극한의 무력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세상은 강함으로 올라가려 하지만, 하나님은 약함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지금 무력감 속에 있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오시는 자리다."
인생의 핵심 질문은 "두려움이 없는가?"가 아니다. "두려움 속에서 누구와 함께 걷는가?"다. 무력감은 숨겨야 할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자리다.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 덜 흔들리고, 자기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이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된다. 그것이 믿음의 걸음이고, 그 걸음이 모여 삶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