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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가 쓴 노년의 연애, "정욕 없는 사랑은 겉멋일 뿐"

작성자이일배|작성시간26.06.08|조회수62 목록 댓글 0

김민철의 꽃이야기

박완서가 쓴 노년의 연애, "정욕 없는 사랑은 겉멋일 뿐"

김민철 기자

입력 2026.06.06. 03:00

 

소설 '마른 꽃'에 담은 '정열 또는 정욕'
'짐승스러운 시간' 같이 해야 노년 견뎌
노년에 노년 시선으로 노년 문제 다뤄

 

며칠 전 ‘노년의 성수동’인 서울 제기동을 중심으로 황혼 로맨스가 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자 박완서의 단편 ‘마른 꽃’이 떠올랐다. 이 소설이 황혼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마른 꽃’의 주인공은 남편과 사별한 환갑을 앞둔 여성이다. 주인공은 대구에서 열린 친정 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고 상경하는 버스 안에서 ‘아쿠아마린’ 반지를 낀 노년 신사, 조 박사를 만났다. 조 박사는 3년 전 아내와 사별했고 1년 전 대학 교수에서 정년 퇴직한 점잖은 신사였다.

주인공은 노년 신사의 따뜻한 눈빛을 보자 ‘가슴이 소리 내어 울렁거렸다’. 두 사람은 상경한 이후 고급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서울 근교로 드라이브를 다니는 사이로 발전했다. 주인공은 ‘곳곳이 새로워 함부로 탄성을 지르’거나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총거리’며 ‘내 안에서도 뭔가가 핑퐁알처럼 경박하고 예민한 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왠지 ‘현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환갑 여인의 설렘 그리고 반전

이런 사이를 눈치챈 조 박사의 며느리와 주인공의 딸은 두 사람이 결혼할 것을 권한다. 특히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며느리가 적극적이었다. 딸은 조 박사의 좋은 조건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즈음 주인공은 욕실에서 나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처진 아랫배와 하반신을 보고 ‘아니 저 할망구가 누구야!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딸은 엄마가 ‘왕년의 정열’을 갖고 있으면 결혼해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그 대목은 다음과 같다.

그 시절 내 눈을 가리고 오로지 한 남자만 보이게 한 그 맹목의 힘을 딸은 정열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정열이라 해도 좋고 정욕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조 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 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 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한 모든 것이 보였다. (중략)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 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주인공은 연애 감정 외에 육체적 교감도 충족이 돼야 진짜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분명하다. ‘겉멋’과 ‘정욕’을 대비시키면서 ‘짐승스러운 시간’을 예찬한 이 대목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물론 한 세대 전에 나온 소설이므로 요즘 사람들 생각과 다를 수 있겠다.

 

노년에 어떤 ‘경지’에 이른 글쓰기 보여줘

박완서 소설은 크게 △한국전쟁 증언(‘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중산층 허위의식 비판(‘아주 오래된 농담’ 등) △여성의 삶(‘서 있는 여자’ 등) △노년의 삶(‘친절한 복희씨’ 등)이라는 네 부류로 나눈다.

작가는 노년기에도 왕성하게 글을 쓰면서 자신이 속한 세대의 인물을 적극적으로 소설에 담았다. 특히 70대인 2000년대에 장편 ‘그 남자네 집’,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 같은 주옥 같은 작품을 내놓아 글쓰기에서 어떤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마른 꽃’은 1995년 박완서가 64세 때 발표한 소설로, 노년의 작가가 노년의 인물을 등장시켜 노년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노년 소설이다.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에 담긴 단편들과 함께 대표적인 박완서의 노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엔 노년기에만 가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시선, 감수성, 지혜 같은 것들이 담겨 있는데, 한 세대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문장이나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정이 좀 다르지만, 이 ‘정욕’ 또는 ‘짐승스러운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이 작가의 다른 단편 ‘대범한 밥상’에 나온다. 작가가 75세인 2006년 내놓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 할머니는 딸과 사위가 비행기 사고로 죽자 손주 양육을 위해 사돈 영감과 같이 산 친구를 찾아간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사돈 영감과 한방에서 잔다는 소문의 진상을 묻는다. 친구는 아이들이 쇠사슬처럼 영감과 자신을 묶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네가 궁금한 게 그거였다는 거 알아. 한 방에서 잠만 잤을까, 딴짓은 안 했을까. 잠만 잤어. 그렇지만 영감님이 딴짓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해도 거절하지 않았을 거야. 그 짓이라도 그 영감님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말야. 그까짓 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못내 주느냐 못 내주길.”

필자는 몇 년 전 박완서 소설에 나오는 꽃 이야기를 엮은 책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를 낸 적이 있다. 그 책에서 꼭 다루고 싶었으나 꽃이 나오지 않거나 의미가 약해서 넣지 못한 소설이 적지 않다. ‘엄마의 말뚝’ ‘흑과부’ ‘도둑맞은 가난’ 등과 함께 ‘마른 꽃’도 그중 하나였다. 좀 무리해서라도 넣고 싶었으나 주요 소재나 상징으로 쓰인 꽃이 나오지 않는다. 정작 소설 본문에는 ‘마른 꽃’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때 아쉬움을 이번 글로나마 달래본다. ‘마른 꽃’은 노년의 몸을 이를 것이다.

요즘엔 마른 꽃 대신 드라이플라워라는 말도 쓰고 있다. 필자가 잘 아는 내용은 아니지만, 꽃은 신선하고 예쁠 때 건조해야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고 한다. 꽃을 화병에 꽂아두고 시들고 나면 너무 늦고, 싱싱할 때 말려야 꽃에서 냄새도 나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통풍이 잘되고 그늘진 곳에서 말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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