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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헌 일기

난병 일기(3)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작성자이일배|작성시간26.06.13|조회수62 목록 댓글 0

난병 일기(3)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

 

  치료 스케줄은 병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병원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는 것 같다. 두어 주 전에 전신 골 스캔을 했다. 방사성 의약품을 몸에 주사한 뒤, 전신의 뼈를 촬영하는 핵의학 검사라며 뼈에 뭐가 옮아져 있는지 어떤지를 본다고 했다. 페트 시티는 오늘로 날짜가 잡혀 먼 길을 달려가서 검사하고 왔다. 한 주일 후에 결과가 나온다 했다.

  페트 시티는 몸속 세포의 대사 상태를 보여주는 PET와 몸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CT를 결합한 최첨단 영상 검사라 한다. 먼저 무슨 약물 주사를 먼저 놓았다. 그러고는 방을 하나 주면서 한 시간쯤 자라 했다. 자고 있으니 나오라 하여 좁다란 자리에 눕히더니 염하듯 몸을 묶고, 둥근 굴속으로 집어넣었다. 기계 도는 소리를 들으며 20분쯤 눈을 감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맞은 주사에는 다른 곳은 제쳐두고 오직 내 병인病因 세포가 있는 곳으로만 찾아가 결합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고 했다. 다른 기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아주 미세한 병인 세포까지 몸 전체에서 정확하게 찾아내기 위해서라 했다. 찾아내어서 그 특성을 분석하고, 거기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길 것이라 한다.

  그 이치를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하다. 내가 이해하고 못 하고에 상관없이 병원에서 하자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병에 침노 당한 내 몸은 나의 몸이 아니고, 병원의 몸이고, 아이들의 몸이었다. 병원이 처방하는 대로 내 몸을 끌고 가야 하고, 아이들이 뜻하는 대로 내 몸을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몸을 두고 병원이나 아이들이 심각하게 여기는 것만큼, 나는 그리 큰 절박감이 들지 않았다. 병이 착해서 그런지 내 몸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별한 증상이 있다기보다는 병처病處가 있다고 하니 몸이 좀 찌뿌듯하게 느껴질 뿐이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내 세상의 끝이 온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병원이나 아이들이 그렇게 여겨주지를 않는 걸 나처럼 여겨 달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여겨 달라 해본들 또 하나의 걱정거리밖에 더해주는 일이 될까 싶어 내 몸의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하기야 내 몸이라 하지만, 내 뜻을 따라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뿐이랴, 세상에 무엇이 나의 것인가.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 영원히 변치 않고 나의 것이 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무엇을 두고 오직 나의 것이라 여기며 집착을 두었다가 오히려 그것에 지배를 당하여, 그것의 노예로 나락에 빠지고 마는 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불가의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세상에서 ‘이것은 내 것이다’ 하고 집착하는 것,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한 것은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변해 버리는 것들을 보고, 집착 없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라고 했다. 깨달음은 얻지 못할지언정 병도 내 몸도 거저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페트 시티를 찍고 나니, 다시 병원 스케줄에 따라 일주일 뒤에 오라고 했다. 그때 가면 전신 골 스캔이며 페트 시티에서 결과를 얻어 치료 방법이 결정될 것이다. 병원을 드나들며 치료하든, 병실에 들어 치료하든 그것도 병원과 아이들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집을 떠나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일을 대비하여 주변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수년을 두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수필 공부를 함께해오던 사람들에게 언제일지 모를 먼 날을 기약해야 한다. 나에게 원기를 주던 즐거운 나의 일이지만, 좋은 날 다시 보자고 하려니 말끝이 시려질 것 같다. 가끔씩 만나 환담으로 담소하던 주붕들은 또 어이할까.

  평소에도 내 한 몸을 홀로 가누기 어렵던 터라 따뜻한 사회 제도를 따라 나에게로 와서 내 생존을 도와주는 분이 있다. 그 제도는 내 입원 생활에까지 손을 뻗쳐 주지는 않는다. 내 얼굴에 화색을 돌려 오는 날 다시 보자 해야 할까. 내가 없어도 내 처소를 보살펴 주다가 내가 돌아오면 그 연緣을 다시 이어가자 하고 싶다.

  거저 난병일 뿐, 아직은 세상의 끝에 닿아 있는 게 아니기에 그 인연들과 결별할 수는 없다. 삶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는 아직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장삼이사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지 병이 나를 침노했을 뿐, 달라진 건 없지 않은가. 병원과 아이들이 내 몸을 가져가 고장 난 곳을 잘 고쳐 돌려준다면, 내가 돌아온다면 그 인연들 없이 어찌 살까.

  병원아, 그리고 아이들아, 내 몸을 잘 가져가거라. 너무 무리하게 애쓰지는 말고, 검사 결과 나오는 것 봐서 너희들도 나도 편안을 누릴 수 있게끔만 기술과 마음을 써다오, 순리대로만 해달라는 말이다. 그것 말고는 더 바랄 게 없다.

밤이 깊다. 이제 자야겠다. ♣(2026.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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