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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헌 일기

난병 일기(4) -내 삶이 남다른 건 아니다

작성자이일배|작성시간26.06.19|조회수58 목록 댓글 0

난병 일기(4)

-내 삶이 남다른 건 아니다

 

  마중 나온 아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런데 아들의 손은 운전대에 얹혀 있지 않다. 핸들은 저절로 돌아가고, 달리고 멈추는 것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제가 알아서 척척 다 해낸다. 첨단 기술을 가진 차를 새로 마련했단다. 첨단 의료기기 개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은 ‘첨단’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병원에 이르렀다. 병원에 어찌 그리 사람들이 많은가. 규모가 아주 큰 상급 병원인데도 불구하고 복도에는 오가는 사람들, 의자에는 대기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세상 모든 사람이 환자들인 것 같고, 모든 환자가 이 병원에 다 모이는 것 같다.

  차례를 한참 기다려서야 의사 옆에 앉을 수 있었다. 의사 앞에는 두 대의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한 대에는 인체의 골격을 담은 흑백 영상이 보이고, 다른 한 대에는 흰 바탕에 잔잔한 글이 빽빽이 적힌 화면이 보였다.

  “……수치가 이 정도면 고위험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세가 좀 되셔도 수술은 가능합니다만,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고위험군’이라 하면서도, 의사는 그런 증상을 흔히 대하기 때문인지 특별히 억양을 주어 말하지 않았다. 나도 가볍게 물었다.

  “지난번 검사한 전신 골 스캔이나 페트시티에 전이 정도가 어떠해 보입니까?”

  “아, 예. 다행히 전이 현상은 보이지 않는군요.” 다시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린다.

  “……주사와 약물 치료, 양성자 치료를 병행하면 좋을 것 같군요,”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호르몬 주사로 먹이 공급을 차단해서 세포를 굶겨 죽이거나 자라지 못하게 해놓고, 양성자를 쏘아 태워버리는 것이지요. 주사와 약은 3개월 단위로 해보고요, 효과가 있으면 6개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약을 처방해 줄 것이니 처방전을 받고, 일반치료실로 가서 주사를 맞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방사선과 예약은 따로 해야 할 것이라 했다.

  예약접수대에 접수하고 차례를 기다리니 이름을 불렀다. 주사와 약물 관계는 오늘 치료 후 제일 가까운 진료 가능 일자가 3개월 후쯤의 어느 날 아무 시라며, 그때는 좀 일찍 와서 혈액 검사를 받으라 했다. 호전 정도를 알아보려 하는 것 같았다. 방사선 치료 관계는 일주일 후 아무 시에 치료 센터로 가서 담당 의사와 치료 일정을 논의하라 했다.

  예약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도 많은 사람이 오가거나 의자에 앉아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나도, 나를 따라온 아이들도 이 많은 사람 중 한 사람들이다. 내가 진료받은 곳이 큰 병원 안에 있는 내 병 전문 병원이기 때문에 모두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이거나 그 보호자들일 것이다.

  내 병이 유별난 것도, 내 삶이 남다른 것도 아닌 것 같다. 주사를 맞으러 간 일반치료실에도 많은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이 사람들도 다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고, 이 사람들도 다 앓으며 사는 것 같다. 이 사람들과 같은 치유 소망을 품고 있다 보면 몸이 제 자리로 돌아올 것도 같았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이에 딸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지어왔다. 3개월 치였다. 3개월 후에 다시 진료를 받으면, 치유 정도를 보고 또 어떠어떠한 처방을 해 줄 것이다. 그 처방을 따라가다 보면 병은 나를 떠나지 않을까. 어차피 내 몸은 병원과 아이들에게 맡긴 처지 아닌가.

  3개월짜리 주사를 맞고 병원을 나오면서 아들은 앞으로도 최첨단 치료가 이어질 것이라며 걱정하지 마시라 한다. 양성자 치료는 몸속의 다른 기관을 교묘하게 비켜 가서 해당 병인病因 세포 덩어리만 정밀 타격하는 치료라 했다. 물론 그 치료는 나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치료 널리 잘 받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병원에 더 올 일이 없으면 좋겠다.

  혁신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는 아들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만 진정한 혁신이라 믿고 있다며, 누구라도 쉽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 했다. 그런 목표로 이루어낸 기기 중 하나가 시중 병·의원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첨단 치료만 믿지 마시고, 술은 절대 드시지 마십시오. 간 기능이 저하되고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단백질과 칼슘을 많이 섭취하시고요. 적절한 영양제 보내드릴게요.”

  의료기기를 연구하다 보니 아들에게는 의학 지식도 많이 쌓여 있다. 그 지식으로 아비에게 타이르듯 말한다. 저의 진심 어린 걱정의 말일 것이다.

  일주일 뒤 다시 올 일을 상기하며 귀로에 든다. 병과 함께 홀로 지내야 할 집으로 돌아가는 아비 모습을 저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아들 차의 첨단 핸들은 저절로 잘 돌아간다.

  “가만히 두어도 잘 가는 이런 차, 나한테도 한 대 사 다오. 하하”

  사 준들 내 한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운 내가 무얼 어찌할 수 있으랴만. 아들은 넙죽 ‘네!’ 한다. 한바탕 웃는 사이에 집으로 가는 터미널에 이른다. ♣ (2026.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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