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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보여준 시간 / 신동선

작성자이일배|작성시간26.06.07|조회수19 목록 댓글 0

딸이 보여준 시간

-뉴욕에서

신 동 선

 

  큰딸은 코로나가 한창 퍼지던 2020년 5월에 어렵게 출국하여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그 딸의 초대로 2025년 11월 뉴욕을 찾았다. 여행이라기보다는 방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일정이었다. 관광객으로서의 설렘보다 딸의 삶 한가운데를 잠시 들여다보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공항에서 딸을 처음 마주쳤을 때,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언제 이렇게 성인이 되었나 싶었다. 한국에서도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기숙사 생활을 하였으니 내 품 안에서 지낸 시간보다 혼자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릴 때, 내 발등 위에서 놀이하며 걸음마를 배우고, 오동통한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고 걸었고, 자전거 뒤 안장에 앉아 함께 다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가격 오른 비행기 푯값이라도 더 벌겠다며 출국 직전까지 꽃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뉴욕 관광을 시켜주려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다니!

  온몸으로 와락 껴안고는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숨 좀 돌리고 나들이 시작하자.”라며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으로 나를 안심시키는 성인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이 고맙고 대견해서 행복하게 웃어야 했는데, 마음 한쪽이 살포시 저려왔다.

  이십여 년 전,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 적이 있었다. 대강의 사과 내용은 이랬다.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이 서투르다 보니 많은 실수가 있었고,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영유아 보살피기 관련 책을 무작정 따라 하느라 이유식 양과 수면에 혼란만 오고, 있을 수 있는 작은 실수에도 심하게 다그치고 야단쳤어. 너는 맏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감정 어린 회초리도 겪어야 했지. 돌아보면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야. 엄마라는 이름은 언제나 따뜻한 보호자여야 했는데 그때 엄마는 너무 부족했어. 미안해…….”

  딸에게 몇 번을 사과했지만, 아직도 마음 아프게 생각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딸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매 끝에 효자 난다는 옛말처럼 엄마가 더 호되게 하셔야 했는데, 많이 참고 기다리고 돌봐 주셨어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맏이라고 동생들보다 받은 혜택이 더 많았어요.”라고 말한다.

  뉴욕에 있는 동안에 아이의 배려와 관심에 기대어 나는 온전히 딸에게 보호받는 쪽이 되었다. 뉴욕의 거리는 빠르고 눈부시고 컸다. 소음도 사람도 끝이 없어 보였지만, 딸의 걸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회사 이야기, 동료 이야기, 출퇴근길의 소소한 불평까지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딸의 ‘일상’을 실감했다. 사진으로 보던 성취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걷는 그 꾸준함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낯선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대견하게 느껴졌다.

  타임스퀘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저마다 뽐내는 화려한 간판과 인파에 혼란하고 어지러워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전광판의 빛과 사람들의 발걸음, 언어와 음악이 뒤섞여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그 한가운데에서 딸은 편안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이 도시의 밤을 이미 자신의 일부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화려함 속에 서 있으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든든했다.

  야간 버스 투어는 뉴욕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해주었다. 높은 지대를 달리는 버스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불빛들은 하나의 거대한 별자리 같았다. 다리 위를 지날 때마다 강 위로 부서지는 빛이 흘렀고, 낮에 보았던 거리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딸이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빛과 어둠을 모두 견디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일 것이리라.

  다음날 방문한 UN 본부는 뉴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텔레비전과 뉴스 속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걷는 경험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각국 국기가 나란히 서 있는 광장을 바라보며, 뭔가 지금의 나보다는 좀 더 의미 있는 생각을 하고 삶을 채워가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UN 본부 내부에 전시된 다양한 사연을 가진 작품 설명을 듣고, 국제 회의장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자식을 키우며 쌓아온 수많은 걱정과 불안, 놓아주지 못했던 마음들이 그 순간 조용히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딸이 이 도시에서 일하며 매일 마주하는 세계는, 내가 살아온 세계보다 훨씬 넓고 복잡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자기 몫의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UN 본부의 높은 천장 아래서 더욱 또렷해졌다.

  딸에게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부모는 늘 해준 것만 떠올리고, 자식은 늘 부족했던 것만 기억한다던데, 나는 그렇지 않다. 나의 딸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딸은 나에게 여행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잠시 나누어 주었다. 시간을 쪼개 함께 걸어주고,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준 모든 순간이 마음에 남았다.

  타임스퀘어의 어지럽게 눈 부신 빛과 야간 버스 위에서 내려다본 고요한 강, 그리고 UN 본부의 묵직한 공기가 차례로 떠올랐다. 화려함과 사유, 개인의 삶과 세계의 질서가 한 도시 안에서 겹쳐졌던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모든 것을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딸을 믿기로 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앞길을 대신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 잘 걸어가고 있음을 믿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 여행에서 배웠다.

  2025년 11월의 뉴욕은 그렇게 내 마음에 남았다. 딸의 성장과 나의 내려놓음이 나란히 있었던 계절로. 낮과 밤, 빛과 사유가 겹쳐진 도시 한복판에서, 나는 비로소 한 사람의 성인으로 자란 딸을 만났고, 동시에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부모가 되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충분히 오래 기억될 것이다.

  딸아, 이렇게 자라주어 고맙다. 나를 걱정해 주고, 지켜 주어 고맙다. 그리고 엄마로서 살아온 시간에 대한 따뜻한 보답이 고맙다. 너의 엄마로 함께한 모든 시간이 축복이 되게 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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