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강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 26.05.29(금)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16절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09조회수34 목록 댓글 0빌립보서 3강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
26.05.29(금)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16절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지난번에 이어서 빌립보서 1강 2강했고 오늘은 제 3강을 하고자 합니다.
제 3강은 핵심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삶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다른 내용들이 있지만 그 모든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또 자랑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이걸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구요.
오늘 제가 드리고자 하는 강의를 몇 가지 요점을 드린다면 제일 먼저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기쁨을 지키기 위해서 피하고 조심할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내용이 시작하는 부분과 끝 부분에 나와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기 전에 뭘 자랑하고 살았는지 그 부분하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새롭게 어떤 자랑을 하며 살았는지 그리고 무슨 권면을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하는지 생각해 볼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제 천상시민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으로 세상의 자랑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된다는 사실로 모든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요
이제 말씀을 3장 1절에서 시작을 하면서 바울이 굉장히 좀 신중하게 내가 중요한 부분을 지금 얘기를 하는데 이미 기뻐하라고 얘기했는데 또 기뻐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게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하면서 이제 2절에 이런 내용이 등장하는 건데요. 조심해라 삼가라 또 삼가라 삼가라 개들을 그 다음에 행악하는 자들 몸을 상해하는 자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동일한 사람들을 약간씩 다른 표현으로 설명한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런 내용이 사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3장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렇게 쭉 나오는데 이들을 가르쳐서 십자가의 원수라고 설명을 하면서 그들의 마지막에 대해서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고 그들의 신은 배요 배를 섬긴다는 뜻이고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이제 구체적으로 설명을 함으로써 어떻게 우리가 이들을 경계를 해야 되는지 이들을 경계하지 않으면 결국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기쁨을 가지고 살아야 될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특별히 이와 관련된 내용이 로마서 16장 부분에도 나와 있는데요. 여기도 보면 이런 자들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배만 섬긴다 불신자처럼 의식주 먹고 입고 마시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뜻인데 그들이 자기들만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럴싸한 말을 가지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세상에서 만들어 간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근데 그럼 조심해야 될 사람들이 누구냐 그 정체를 이제 사도바울이 밝히는 가운데 개들 흔히 한국사회에서 개하면 굉장히 안 좋은 이미지 그 다음에 행악자들 특별히 몸을 절단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거는 할레를 경멸적으로 표현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 믿는 것으로 필요하지도 않고 그 위에 뭔가 더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고 피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가지고 살 수가 없다. 그러면 왜 이러한 자들을 피하고 조심해야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느냐라는 것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내용이 3절입니다.
요걸 제가 좀 풀어서 번역을 했는데요.
왜냐하면 조심해야 될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가 할례 곧 하나님의 성령으로 섬기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며 육신을 신뢰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의 정체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사람을 피해야 되고 그렇게 피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바른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 설명이
1절에는 주안에서 기뻐해야 되는 이유
2절은 조심해야 될 사람들
이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는 게 바로
3절의 신자의 정체성입니다.
신자가 누구냐 우리는 진짜 할례 받은 사람이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마음에 할례 받은 것 이거는 이제 복음의 말씀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 생명을 가진 자로 중생시킨 사건을 이 할례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고요.
그 결과 신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죠 그 다음에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육신을 자랑하거나 세상을 자랑하지 않고 정반대의 삶을 산다는 것이죠.
이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체성에 비추어서 볼 때 피해야 될 사람들을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할수록 신자의 복된 정체성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그렇게 살다 보면 이제 기쁨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자의 삶을 정의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으로 말미암아 여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라고 그랬는데 실제적으로 헬라어 원문에는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너희 자랑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기를 원한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자랑했거든요. 감옥에 있어서도 최악의 상황에서도 바울을 보면 아 예수 자랑이 이런 거구나 인생이 어떤 상황도 극복하고 이기게 하는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거죠.
이와 관련된 구절들이 바울 서신에 몇 군데 나오는데요.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할 때 이 주 안에서라고 번역했는데 원래 헬라어 본문의 뜻은 주님을 자랑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구절이 고린도후서 10장 17절에도 나오는데 역시 거기에도 주안에서 자랑하라 이렇게 돼 있는데, 주안에서 자랑하라가 아니고 주님을 자랑하라 요것을 잘 이해하는 어떤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분들이 아 나는 주안에서 자식도 자랑하고 주안에서 좋은 학교 다니는 것도 자랑하고 주안에서 돈 많이 번 것도 자랑한다.
이렇게 하는 이야기를 제가 옛날에 듣고 사실 사도 바울이 우리 본문에서 의도했던 것은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돼야 된다는 것을 말씀했다는 것이죠.
바로 이 연장선상에서 바울 이제 갈라디아 6장 14절 상반절에서 얘기한 것도 똑같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십자가 자랑이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자랑하는 거죠. 예수님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부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고 그 혜택을 부활로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자 그렇습니다.
3~2강
자 그러면 이제 바울이 이제 자기의 과거를 얘기합니다. 과연 바울은 옛날에도 예수님을 자랑했던 사람인가라고 물어보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과거에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인데 특별히 4절부터 6절까지 쭉 자랑하는 내용을 보면 대략 7가지 정도가 나옵니다.
아 이것이 태어나면서부터 그가 가지는 4가지 자랑하고 또 후천적으로 노력을 통해서 얻은 3가지 자랑해서 이제 7가지 자랑이 되는데요.
유대인에게서 가장 큰 자랑이 난 지 8일 만에 할례 받았다는 거죠. 나는 할례 받았고 너 이방인들은 할례 안 받았으니까 종자가 달라 이렇게 됐던 것이죠.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베냐민 지파라는 것 특별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이제 베냐민 지파에서 나왔죠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네 번째 선천적인 자랑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다. 뭐 한국 사람 중에 한국 사람 혹은 최고의 히브리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렇게 선천적인 자랑 네 가지에다가 후천적인 자랑 세 가지가 나오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있지 않은 자기에게만 탁월하게 주어진 그가 랍비 교육을 받아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깨달은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율법에 대해서는 바리세인이다.
결국 바리세인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한 4천명 정도 되는데 그 4천명 중에 거의 탑에 올라가는 사람이 바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그 부분하고 연결되는 게 에이 다시에 해당되는 내용인데요. 율법에 의해 대해서는 흠이 없었다 이런 뜻이 뭐냐하면요
나는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자이기 때문에 나만큼 나사렛 사람들이 얘기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거기서 나오는 결론이 이제 비에 해당되는 그 이러한 신앙적 열심의 결과로 교회를 핍박하는 자가 됐다는 거죠.
그냥 감정적으로 핍박한 것이 아니고 바리세인 신앙이 철두철미하고 자기가 살아보니까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있는데 왜 저들이 노력을 자기들이 노력하라면서 나사렛 예수가 구원자라 그래 그런 사람들은 없어야 되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나사렛 예수는 이 땅에 그래서 지워져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일을 했던 것이 바울의 과거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바울이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다메섹이라는 외국에 있는 도시로 가다가 그 도시 입구쯤에 가서 갑작스럽게 영광 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바울의 이 7가지 자랑이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인생으로 바뀌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굉장히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데요.
여기 말씀을 가만히 보면 자 그러나 내게 있는 무슨 유익이든지 앞에서 얘기하는 7가지 자랑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손해로 여겨졌다
진정 내가 모든 것을 손해로 여기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럽게 일곱 가지를 생각하고 일곱 가지를 연결해서 얘기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알기 시작한 순간 이거 해로운 거야.
내 영혼에 해롭고 정신세계에 해롭고 인생 전체에 해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 내용이 바로 이렇게 해로 여기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것의 위대함 때문이다.
나는 그분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배설물로 간주하게 됐는데 아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는 또 믿는 자에게 주는 하나님의 의에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이제 이제 자기가 알기 시작한 예수를 더 알고 더 얻고 예수 안에서 자기가 발견되기 위해서 자기는 어떡하든지 예수를 더 체험하는데 예술을 더 경험하는데 신경을 쓰고 목숨을 걸겠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자 이와 관련해서 이제 우리가 생각할 부분들이 요 바로 요 관련된 부분에 거의 비슷한 표현들이 다른 모양으로 반복적으로 등장을 하는데요.
이 8절 상반절에 예수 그리스도 내 주를 아는 것이 그 하반절부터는 좀 더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아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싶은 거 있죠.
예수 그리스도가 가치가 없다면 소유하고 싶지 않겠죠.
옛날에 가지고 싶은 것은 이거는 버려야 될 것이야 됐고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분은 내가 무슨 노력을 하든지 애를 쓰든지 소유해야 될 분이야 영원한 가치를 얻어야 될 뿐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그렇게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 발견되려고 이제 거기에 방해되는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 막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고요.
그 결과 이제 죽은 자로부터 부활에 도달하는 그런즉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 안에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걸 위해서 예수님을 체험하는데 예수 체험은 부활의 능력 체험이고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고. 그 결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자랑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어진다 것을 바울은 확인하고 확신했다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다 뒤로 하고 앞에 있는 것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신 예수님이 부르신 부름의 삶 천상적인 부름의 푯대를 향하여 한 걸음 달려가고 한 걸음 달려가는 그런 것으로 이제 표현을 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중요한 부분이 그럼 그 예수를 어떻게 체험하냐? 이거죠.
육신적인 예수를 다시 만나느냐 그게 아니고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부활의 능력과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서 결국 이제 예수를 깊이 체험하고 반복적으로 체험해서 마침내 그 결과 자기 자신속에 그가 자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자 이거를 좀 더 제가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 몇 가지를 잠깐 말씀드리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보면 사람들은 뭐 예를 들어서 돈 같은 경우는 뭐 5천원짜리보다 1만원을 택하죠. 1만원짜리보다 10만 원을 택하죠. 또 10만원 보다는 뭐 100만원을 택하죠. 근데 이거는 돈의 경험이 있는 자들에게 그렇습니다.
제가 딸이 둘인데 그중에 이제 둘째 딸한테 얘가 한동안 그 5천원짜리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하루는 5천원짜리 하나하고 만원짜리 하나를 딱 놓고 너 이5천 원을 택할래 만 원 택할래 그러니까 얘가 5천원을 택한다고 5천원을 잡았어요.
그래서 만원은 5천원짜리의 두 배야 너 뭘 택할래 하니까 우리 아이는 5천원을 택했습니다. 자기가 볼 때는 그게 전부이고 최고죠 왜 자기의 경험 세계에서는 그것보다 가치 있는 게 없는 거죠.
사실 이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제가 신앙의 선택의 신앙적인 원리라고 얘기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가치를 알면 알수록 그 앎 때문에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고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고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위해서 목숨 바친 게 너무나 인생이 아깝고 참 불쌍한 거예요.
좋은 것 앞에서 살았는데 더 좋은 분을 만나고 더 위대한 분을 만나니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내가 다른 곳에서 가치를 찾았다는 게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깝다는 거죠.
그와 관련해서 등장하는 게 이전에 자랑하던 그런 것들을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던져버렸다 이 사실 이 표현이 뭐 생명 상실 목숨 잃는 것 이런 것으로 표현이 되는데 이게 명사로 얘기할 때는 배설물 사실 배설물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이 고린도전서 4장 13절에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 그 다음에 만물의 찌끼 좀 잘 쓰지 않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더러운해것에 해당되는 게 몸에 달라붙은 쓰레기 그런 뜻이고요. 그 다음에 만물의 찌끼에 해당되는 게 몸 또는 물체에서 벗겨낸 떼와 같은 거죠.
그런데 바울이 여기서 말한 배설물은 이 두 가지보다 더럽고 혐오스러운 거예요. 아니 그렇게 자랑하던 7가지 내용들이 그렇다는 거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자랑하고 내세웠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만나줘서 예수님을 알기 시작하는 순간 내 인생 헛되었구나 이걸 깨달았다는 점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인데요.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할 때 내가 내 삶의 중심에 있고 내가 세상에 얻고 싶은 것들이 내 앞에 많이 있는데 나 혼자는 못 얻으니까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의 것을 얻으려고 내가 예수 믿고 있는 게 아닌가 혹은 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분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좀 생각이 됩니다.
그것보다는 약간 좀 다르게 두 가지 모습이 서로 비슷한데 누가 가장 좋으니 세상이 좋지만 예수님도 좋아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요.
또 밑에 나온 내용대로 예수님이 1순위지만 세상은 2순위다 그러나 둘 중에 어느 것 하나 택할래 하면 나한테 그런 질문하지 마세요. 하는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사실 이 경우는 이게 신앙이 성숙하지 못할 때 신앙이 어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체험하고 더 깊이 경험하고 누릴 때 일어나는 건 바로 이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죠.
그분이 나의 주인이면서 나의 주권자이면서 내 인생을 이끌어가고 그분이 나의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고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거룩함이 되는 이 모든 것
그러면 예수님이 그 모든 영광과 위엄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세상의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예수님 앞에서 점점 낮아지고 낮아지는 그런 결과가 일어나는 것은 뻔한 일이겠습니다.
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세상에 대한 미련 세상의 것들이 우리를 잡아당기고 끌어당기는 것으로부터 우리가 엄청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예수님을 닮아간다고 그럴 때 어떻게 되느냐라고 보면 제일 먼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해야 된다고 얘기해요.
부활의 능력 체험 그의 고난의 체험 그 결과 이제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이 미스테리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공식은 예수님의 경우 항상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 앞에 십자가가 있죠.
십자가 전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3년간의 사역 3년간의 사역을 정리하는 십자가 고난 그 다음에 제3위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활의 영광을 입혀준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게 우리가 예수 체험한다고 그랬을 때 예수 체험은 육신의 예수를 체험한 게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거거든요.
이거는 바울이 육신의 예수를 만난 게 아니라 부활하셔서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부활의 영광 중에 계신 예수님 나타났잖아요.
바울이 그 체험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체험하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부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고난을 체험하게 되고 고난에 참여함으로 죽어야 될 나쁜 것들에 대해서는 죽고 살아나야 될 좋은 것들에 대해서는 살아나는 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거죠.
여기 뭐 도식이 좀 복잡하게 된 것 같은데요. 어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체험 예수님은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가진 자로 탄생하는 순간 예수 체험이 시작이 된 거예요.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속에 이 역동을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이렇게 나아가는데 이게 이 우리 속에 있는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십자가 고난의 현장으로 밀어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다음에 이제 부활 생명의 능력을 체험하고 이게 반복적으로 반복적으로 진행되면서 마침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이 부활의 영광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고요.
바로 바울은 이것 때문에 이 이러한 삶을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데 성도들이 자기가 살아가는 이 삶에 동참해 주기를 마지막으로 권고하고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노력하고 애를 쓰지만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다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끝까지 가고 가고 또 가고 또 간다 나는 쉬지 않고 갈 거다 빌립보 성도들이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십시오라고 이런 것을 권면하면서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부분이 여러분들이 다 예수님 많이 닮아갔다고 할지라도 더 계속 이 방향으로 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만일 여러분들이 제 생각하고 다르다면 저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도록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끝까지 가자라고 권면하면서 이 말씀을 하고 우리가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서 있을 때 3장 앞 부분에 조심해야 될 사람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어떻게 될 건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의 영광을 잇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된다는 것이죠.
자 그런 의미에서 바로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서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삶을 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 정도 정리한다면 과연 나는 지금도 세상 것을 자랑하고 좋아하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기뻐하는가? 이 자랑이 깊어지고 있는가 이거는 끊임없이 날마다 물어야 된다고 보구요.
또 하나는 예수 체험을 얼마나 하고 있느냐 한 두번으로 끝나는 게 그냥 예수님을 알고 체험하고 누리고 말 그래서 저는 이걸 알체 누나라고 합니다. 알고 체험하고 누리고 나누고 이게 오늘도 어느 정도 됐느냐 아 이런 것을 생각해 나갈 때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나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고요.
다음 주는 빌립보서 4장 4강이 되는데요.
주 예소 안에서 굳게 서는 삶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