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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강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 자의 새로운 삶 26.06.03(수)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17절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8|조회수35 목록 댓글 0

골로새서 4강 예수님과 함께 살아간 자의 새로운 삶

26.06.03(수)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 17절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마지막 강의 오늘 골로새서 강의 백미에 해당되는 그런 부분이고요. 

 

앞에서 얘기했던 부분들이 총 정리돼서 나오는 그런 내용이 마지막 4강이기 때문에 앞에서 바울이 얘기한 부분들은 바로 이것을 얘기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했다고 보면 아마 정확한 이해가 될 것 같고요.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3장 그 다음에 4장 앞 부분까지 그러면 마지막 부분은 전부 인사말이기 때문에 논의 안 해도 되는데요. 

 

특별히 3장에 와서 사도 바울은 비로소 명령어를 많이 씁니다. 그 가운데 모든 전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단어가 찾으라 추구하라 생각하라 죽이라 여기 죽이라는 것과 관련해서 벗는 것이 나와 있고요. 벗으라 죽이라 벗으라 같은 개념이고요. 

 

그 다음에 입으라 이 단어가 굉장히 전체를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고요. 그럼 신자가 새로운 삶을 산다고 했을 때 그 삶의 내용이 뭐냐 두 가지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옛 사람 벗는 것 또 하나는 새 사람 입는 것 근데 이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그래서 벗는 게 먼저 있고 다음에 입는 게 있고 아 그리고 나서 이제 맨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제 여러 가지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자기의 신분에 맞는 행위를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그 다음에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지겠습니다. 

 

특별히 3장을 시작하면서 바울이 시작하는 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을 염두에 봐야 될 텐데요. 

 

내용을 개괄적으로 보면 특별히 아까 그랬잖아요. 죽여라 이 앞부분이 찾으라 죽이라 입어라 그 다음에 각 신분에 합당한 처신 그 다음에 마지막은 기도 관련 권고로 이렇게 내용이 전개되는데요. 

 

특별히 위에 것을 찾으라 이 위는 그냥 뭐 하늘 그게 아니구요. 여기만 쳐다보면 땅에 속한 삶을 살겠지만, 위에를 보면 땅에서 위의 삶을 살아야 될 게 나온다라는 그림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계셔서 역사하고 이끌어가고 바로 거기에 우리 생명이 갖춰져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땅에 있지만 예수님 때문에 위에 올라가서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지게 됐으니 이 땅의 것을 멀리하는 이게 벗는 거겠죠.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의 모습으로 입는 이게 이제 새로운 삶이 되겠죠. 

 

그래서 이제 벗어야 될 것 죽여야 될 것 10가지 

어 죽는 것과 관련해서 5가지 

벗는 것과 5가지 등등 나오는데 뭐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뭐 핵심은 똑같습니다. 

 

벗는 게 먼저 나오고 나중에 입는 게 나온다는 게 벗지 않는다면 입을 수가 없죠 그거는 뭐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내용인데요. 

 

첫 번째 시작하면서 이제 그러므로 3장 1절에 그러므로, 3장 1절에 그러므로 이렇게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것이 사실이라면 여러분 이렇게 살아야 됩니다. 

 

또 이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 이렇게 나가는 건데요. 2천 년 전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죠. 

 

이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함께 죽고 부활할 때 우리가 함께 살아난 거죠. 역사적인 사건이죠.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의 개인적 경험으로 체험합니다. 

 

예수를 믿을 때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는 개인적 체험이 죠. 그리고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어떻게 됩니까? 성례적으로 이것을 우리가 체험하는 거죠. 

 

하나님이 인쳐주는 건데 너 죽었어 이게 장례식 그 다음에 너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났어 새 사람의 탄생 이게 우리가 가지는 세례 의미입니다. 

 

이러한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자의 삶인데 그 다음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함께 하나님 안에 갖춰져 있다. 너희 부활 생명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신 여기 계신 게 아니라 저 위에 계신데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같이 거기 있는데 우리가 가진 부활 생명의 가치는 감춰져 있죠. 

 

예수님은 다 가지고 왜 육체적으로 부활했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부활 아직 안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살아가야 되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이 가진 영광을 우리가 가지고 부활한다는 거죠. 

 

그럼 다 실현되니까 이걸 생각해보면 왜 우리가 땅의 것들에 대해서 멀리 해야 되고 그 하늘의 것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진 거기에 목숨을 걸고 추구하고 살아야 되는지 사실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세요. 부활 생명을 실현하는 이미 우리에게 부활생명이 주어졌는데 이게 성장해야 돼요. 성장해야 돼요. 

 

그래서 마지막 날에 어떻게 됩니까? 우리의 몸도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가지게 되므로 모든 게 다 이제 절정에 도달하는 거죠.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에게는 시작됐으나 아직 몸에는 나타나지 않았죠 그러니까 그 사이에 살아가는 삶이 신자의 삶인데 이것은 한마디로 얘기하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이에요. 

 

12절 이하에 해당되는 부분이 바로 그 내용이 되겠고요. 예수님이 재림할 때 우리에게 임할 영광의 합당한 삶이 벗는 것과 입는 것 죽이는 것과 살리는 것 그 삶이 신자에 합당한 삶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4~2강

자 그러면 여기에 이제 삶 먼저 죽여야 될 지체 이 지체라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지체는 몸에 막 기구 뭐 손 발 귀 코 감정 뭐 등등 이런 것을 지체라고 얘기하는데요. 

 

이런 지체들이 죄의 도구로 쓰이잖아요. 

이런 지체들이 죄의 도구가 아니라 의의 도구 생명의 도구로 사용되라고 이렇게 말씀하는데 특별히 인간의 죄 가운데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바울이 얘기하고 있는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 이 로마 사회 로마 식민지 사회에 가장 지배적으로 나타났던 근본적 문제를 얘기를 한 것이라는 것을 좀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뭐 음란 성 범죄와 관련된 모든 내용이 다 총괄적으로 들어있고요. 부정함이라는 것은 더러운 거죠. 온갖 더러움 부도덕한 것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우리는 바로 그 개념이죠. 

 

그 다음에 부정한 열정 욕망 탐욕 이런 것들이 되어 있고 악한 욕망이라는 것은 욕망이 약한 게 아니라 강렬하게 악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욕망 앞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그리고 탐심 탐심은 뭐 모든 죄악의 동기이면서 우상숭배 뿌리는데 10계명 중에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이 탐하지 말라였죠. 

 

사실 탐하는 데서 모든 게 다 모든 죄가 다 출발하죠. 거기서 이제 우상숭배라는 이 열매가 맺어지고요.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지금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고요. 

 

그리고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예수 부활해서 태어나기 전에 과거에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니까 이 삶을 정리하라 이게 이제 죽이는 부분 또 벗는 부분과 관련된 그런 내용이 되는데요. 

 

자 제일 중요한 부분은 이 벗어야 될 것을 먼저 얘기한다면, 죽이는 것하고 벗는 것은 벗는 것보다 더 강한 이미지가 죽이는 거죠. 

 

근데 실제적으로 단어는 죽인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지금 현재 단 하나의 죄라도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 손발의 행동에서 죽일 수 있는 죄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거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만 가능한 그러니까 죄의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죽이는 거고요. 

 

그게 이제 또 다른 표현으로 사용하면 이제 벗어버리는 것 벗으면 우리에게서 떠나는 거잖아요. 

 

그런 것과 관련해서 다섯 가지를 얘기하는데 특별히 대인관계와 관련된 죄를 얘기하는데 전부 다 말과 관련돼 있습니다. 

 

여기에 분노 원래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할 때 그 진노라는 단어하고 똑같은 것입입니다

잘못된 판단 욕심에서 나오는 이 진노죠 하나님은 합당한 진노라 하시는데 우리는 부당한 판단이 잘못돼서 잘못 듣고 이렇게 하는 거 이거 

 

그 다음에 노여움 이성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격분 악의 사람을 해하려는 생각 의도 태도 겉으로는 번드런한데 안에는 좀 이렇게 골탕 먹이려는 이런 것들이 이제 악의에 해당되겠구요. 

 

비방은 뭐 근거가 없는 거죠. 모독 모욕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이 부끄러운 말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언어로 표현된 것이죠. 

 

그러면서 참 놀라운 게 이걸 다 거짓의 범주에 포함을 시켜요 그러면서 왜 거짓말을 거짓을 멈춰야 되느냐 옛 사람을 벗었고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어요 

 

이미 벗었는데 왜 이렇게 사냐 이미 벗었는데 왜 이걸 입은 것처럼 사냐 벗었으니까 벗어라 

또 보세요. 입었으니까 입어라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 이 부분이 너무나 중요하냐면요 사실 요 부분의 내용이 이 새 사람 옛사람과 관련된 내용이 에베소서 4장에도 나오고 오늘 본문 3장 9절 10절에도 나오는데 에베소서 서에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럴 때 아직 옛 사람을 벗지 못하고 새 사람을 입지 못한 상태를 얘기해요. 

 

그런데 오늘 여기 골로새서 본문에서는 이미 옛사람을 벗었고 이미 사람을 입었다 

 

어떤 게 더 이해하기가 쉽습니까? 이미 벗었으니까 벗어라 이미 입었으니까 입어라 했을 때 우리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은 바로 골로새서의 말씀이죠. 

 

그럼 에베소서 4장의 말씀하고 모순되는 건 아니구요. 골로새서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바로 그겁니다. 신분 쪽으로 우리가 옛사람 벗었죠. 신분 쪽으로 새 사람 입었죠. 

 

이 옛사람의 신분이라는 것은 아담 아래에서 우리가 죄인이 된 죄인의 신분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입은 세 사람의 신분은 새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이 우리의 신분이죠. 그걸 입었잖아요. 

 

그러니까 신분적으로 우리는 예수 안에 있고 예수님의 풍성함이 우리 것이 됐으니까 거기에 근거해서 아담에 관련된 부분은 벗어버리고 윤리적으로 행동적으로 삶으로 그 다음에 예수님과 관련된 새 사람의 모습은 계속 입어가라는 기초가 다 됐다. 이제 신분에 걸맞는 행동을 하면 된다라는 건데요. 

 

이 새 사람을 10절 11절에서 묘사하면서요 굉장히 중요한 창조라는 단어 형상이라는 단어 지식이라는 단어 새롭게 되고 있다. 갱신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거예요. 

 

이게 새 사람 우리가 입은 새 사람의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이게 지식을 위해서 지금 새롭게 되고 있다. 변화되는데 지식이 새롭게 되면 새롭게 될수록 어떻게 됩니까? 

 

아 이거는 아담에게서 온 죄악된 모습들 땅에 속한 죄악된 것들 우리가 벗어버려야 될 것들 이렇게 되겠고 아 이거는 예수님의 것이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는 건데 예수님의 부활 생명에 속하는 건데 이거를 입어야 돼 뭐 이렇게 구분이 되겠죠. 

 

그러나 이 분별력 지식이 없다면 벗어야 될 것을 입고 입어야 될 것을 입지 않는 불상사가 생길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것은 어느 인종에게나 아니면 어느 계층에게 구별이 있지 않다는 예수믿는 한국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되고 예수믿는 인도 사람이 이게 아니고 어느 나라에서 어느 인종에 속하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원리적으로 원칙적으로 옛 사람 벗고 새 사람을 입어야 되는 입었으니까 입고 벗었으니까 벗고 이렇게 돼야 된다. 라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전부가 되고 전부 안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나타난다는 거죠. 

 

바울이 골로새서에서 말씀하는 내용은 사실 로마서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몇 구절을 제가 읽어드리면, 

로마서 8장에서는 13절에 

우리가 잘하는 말씀인데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죽여야 산다는 거예요. 

 

여기 어떻게 죽입니까? 노력해서 기도 많이 해서 성령만이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성령으로서는 영으로서는 성령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이 인도받아 그렇게 하라는 거죠. 이게 이렇게 연결된 부분인데요. 사도 바울은 벗어야 될 것을 먼저 얘기한 다음에 입어야 될 것을 얘기했다는 거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벗어야 되고 무엇을 입어야 되는지는 다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오죠 그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별과 이해력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깊어질 때 아 이거는 벗어야 될 거구나 이거는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될 거구나 아 이거는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받아야 될 새로운 모습이구나 이 그림이 그려지는 거죠. 

 

그래서 이 중요한 부분에 벗어야 입을 수 있다는 겁니다. 죽여야 살릴 수 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이 표현 방식을 사용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 아무도 없어요. 아이들한테 물어봐요. 옷을 입으려면 먼저 뭘 해야 되니 라고 물어보면 벗어요. 그러는 얘기예요. 

 

단 아이 하나도 그냥 입으면 돼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른 사람에 가서 물어봐도 똑같습니다. 근데 우리 크리스찬의 삶에 있어서는 이 사람들이 벗어야 될 것을 얘기를 안 해주고 그냥 입어야 될 것만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는 뭐 벗어야 될 건 부끄러우니까 그냥 감춰두고 그냥 거기 갖다 계속 덧입는 거죠. 덧입는 거죠. 한번 옷을 그렇게 입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근데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너무나 어리석게 예수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앞 부분에 이 벗어야 될 것들 땅에 속한 것들 예수 생명과 반대되는 것들을 이야기를 쭉 하고 입어야 될 것을 5가지 12절에서 말씀하고 

 

이 두가지 13절 14절에서 우리가 추구할 것을 말씀을 하는데 여기에 쭉 내용을 보면 극휼 자비 온유 겸손 오래 참음 불만 대신에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 뭐 용서의 기준은 예수님이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모든 것을 사랑을 더하라 이게 됐는데 이걸 어떻게 보든지 핵심이 뭐냐 하면요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성품이에요. 

 

단 하나도 여기 예수님에게 없는 것이 없고 단 하나도 예수님에게 있긴 있는데 조금 있는 것이 없어요. 모든 것이 다 완전한 형태로 있다는 거죠. 

 

이게 새사람의 모습이거든요. 

새사람의 표준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진 성품 예수님이 가진 인격 예수님이 가진 행위 이런 모든 모습들이 우리가 단계적으로 입어가고 입어가고 입어가는데 이것은 입는 것만 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입으려면 이것들에 반대되는 것을 벗어야 된다는 거죠. 

 

특별히 오래 참는 것을 제가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 사실 이게 오래 참는 거다 이게 오래 참는 게 아니구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는 상태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는 걸 그러니까 사랑을 계속하는 것 이게 오래 참음 인내를 계속하는 이게 오래 참음이죠. 

 

고 다음에 자비를 했다. 말았다. 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는 거 이게 오래 참음의 해당되는 그런 내용이고요. 

 

이 모든 것은 사랑으로 통합되고 사랑의 줄로 다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래서 입음과 관련해서 이렇게 쭉 얘기하는 게 세 구절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으로 육신을 도모하지 말라 여기 예수님을 옷 입으라고 그래요. 여기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돼 있는데요. 예수님이라는 옷 입으라 그런 뜻이에요. 

 

옷을 입으리 이건 여기에 예수님의 옷을 입으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 인격을 우리의 성품과 인격으로 삼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근거가 뭐냐하면요 

갈라디아 3장 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 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그리스도를 옷 입었느냐 

 

옷을 입어라 입었다 이 세례받을 때 입었잖아요. 

신분 그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신분을 딱 입었으니까 하나님 앞에 설 때 예수님을 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 보듯이 보는 거예요. 

 

예수님이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아들이죠. 그런데 신분만 그렇지 이 내용 성품은 안 그렇잖아요. 행위는 안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을 거기에 걸맞는 신분에 걸맞는 예수님이라는 옷을 입어야 되지요 아 그런 그래서 바로 그 각도에서 에베소서에서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에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게 성품과 관련해서 아 이런 부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3~3강

아 그리고 이제 3장 15절 17절에 가서 이것도 다 입어야 될 것과 관련된 내용인데 앞에 부분은 우리의 의무적인 측면을 얘기한다면, 이것도 의무를 얘기하는데 굉장히 기분 좋은 의무입니다. 

 

왜 굉장히 기분 좋은 의무냐하면 그리스도의 평강 평화가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이루신 것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게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켰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우리들이 서로 관계가 회복됐죠 그게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게 하는 것 이거는 의무지만 노래하면서 할 수 있는 어 의무에 해당되구요. 

 

그 다음에 세 번째 두 번째는 각자에게 감사하는 자가 돼야 된다는 거예요. 

부모와 자식 또 형제와 형제 선생과 학생 나이 많은 분과 서로에게 하나님에게만 감사하는 하나님에게는 감사 잘하는데 사람들에게는 감사 안 하는데 이게 이 모습이 우리 크리스찬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얘기고요. 

 

그 다음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마음의 주인으로 풍성하게 거하게하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우리의 주인으로 머물게 하라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주인이 되면 말씀이 명령하겠죠. 말씀을 이끌어가겠죠. 그 방법은 모든 지혜를 동원해서 말씀을 가르치고요. 서로 권면합니다. 

 

어른만 권면받고 젊은이는 권면받고 어르신들을 권면하고 그게 아니고 서로 이렇게 권면하고 그 다음에 시와 찬성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감사의 그릇에 담아서 찬양하는 이런 모습이 되어질 때 말씀이 풍성하게 거하게 되고요.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도 행하고 행위도 하라는 겁니다. 보세요. 그리스도의 평강 평화 그리스도의 말씀 주 예수의 이름 전부 다 예수님 들어가요 

 

이거는 누구나 다 해야 될 부분인데 바로 이러한 대 전제 하에 나오는 것이 우리가 신분에 따라서 관계의 역할에 따라서 해야 될 행동입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도 바로 이 네 가지 원리 그 다음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네 가지 원리에 의해서 그 다음에 주인과 종의 관계도 그렇게 이어지는데요. 

 

여기서 주목을 할 부분은 제가 세부적으로는 말씀을 못 드리겠는데요. 중요한 부분이 뭐냐하면요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도 예수님 얘기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예수님 얘기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리고 종와 주인의 관계에서도 예수님 얘기가 나온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무슨 얘기냐 하면 예수님의 모습을 입으면 예수님의 평화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서 주인으로 풍성히 거하고 서로 감사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이런 부분은 할 수밖에 없죠 이런 부분은 되어질 수밖에 없죠 

이제 요 부분을 좀 보시면 좋겠고요. 

 

또 하나는 이 부부의 관계를 얘기하고 부모 자식의 관계를 얘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이미 다 알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을 하나 말씀드리면 부부의 관계가 부모 자식의 관계에 우선한다는 겁니다. 

 

집으로 말하면 기초입니다. 이 기초가 딱 돼 있어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바로 된다는 거죠. 

이 기초가 없어진 상태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바로 설 수 없다는 겁니다. 

 

보세요 아내가 남편에게 주안에서 복종해야 되지요 근데 자식에게 뭘 얘기합니까? 모든 면에서 복종을 하라고하엤죠. 

 

그러죠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복종을 보고 자식이 엄마도 아빠의 말을 듣고 그러는데 내가 엄마의 말을 아빠의 말을 안 들으면 안 되지 모든 게 다 부모에게서 나오는 거죠. 

 

그렇게 연결되는 걸 보면 또 하나 또 하나는 자 아내를 괴롭히지 말아야 되듯이 자식을 노엽게 하죠. 이게 똑같은 단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똑같은 거예요. 

 

아내를 괴롭혔을 때 아내는 상처를 덜 받지만 자식은 어리기 때문에 엄청난 상처를 받죠. 그러니까 아내에게 잘하면 자식이 잘 할 수 있다. 기초가 바로 부부관계의 기초 위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세워져서 나간다는 것이고. 

 

주종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면에 순종하라 그러니까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거죠. 

 

그 다음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결국 예수님을 경외하면서 한결같은 말 이게 서로 반대가 되는 개념입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 중심으로 행하라 이게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죠. 그리스도의 평광 평화 그리스도의 말씀이 지배하고 서로 감사하고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이게 다 돼 있으면 그러니까 우리가 이거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배를 받는 거죠. 

 

평화의 다스림을 받고 말씀이 우리 인생 속에서 마음속에서 엄마 아빠 부모 자식 그 다음에 주인과 종 속에서 주인 노릇할 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일의 성격에 관한 부분을 쭉 설명했는데 이거는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제가 설명을 더 이상 안 드리고 오늘의 강의를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3장 4장 앞부분에 걸쳐진 내용을 보면서 가장 우리가 심도 있게 물어야 될 질문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서 그분의 영광이 나의 영광이 될 것을 확신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여기만 보면 영광이 없어요. 

 

위에를 봐야 돼요. 위에 예수님이 하나는요 보좌 우편에 계신데 바로 그 옆에 내가 영광 중에 숨겨져 있다는 걸 봐야 그 영광에 걸맞은 삶을 이 땅에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초점을 여기다 두고 생각하고 추구하면 아 이거는 버려야 돼 이거는 입어야 돼 이게 나온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두 번째 생각해야 될 부분은 나는 매일 옛사람을 보고 새 사람을 입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걸 위해서 지각이 열려야 되겠죠. 

 

벗어야 될 것 십자가에 내려놓을 것이고. 입어야 될 것 예수님에게서 받아야 될 이런 부분인데 이게 반복적으로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오는 그날까지 되어 지는것입니다. 

 

이로써 골로세서를 강의를 정리하게 되는데요. 

이 모든 것을 다 한마디로 총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한 삶을 위한 모든 은혜 구원의 선물들이 다 있다는 겁니다. 

 

이걸 누리라는 거예요. 이것을 알고 깊이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우리의 모든 초점을 예수님에게 두고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쪽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강의를 통해서 이런 확신이 있고 또 이런 깨달음이 있으면서 이것저것 한눈 파면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또 위에 세워지고 예수님의 모습으로 또 입기 위해서 벗고 또 입기 위해서 벗고 이렇게 나아가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내 삶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이런 감격과 기쁨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강의 또 골로새서 강의를 오늘 4강으로 총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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