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2강 전서 1장 믿음의 역사 ~ 교회 칭찬 26.06.05(금)데살로니가 전서 1장 2절에서 7절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29 목록 댓글 0데살로니가 2강 전서 1장 믿음의 역사 ~ 교회 칭찬
26.06.05(금)
데살로니가 전서 1장 2절에서 7절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2016년도에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신학생들 10명 중 5명이 앞으로 10년 뒤에 한국 교회에 큰 쇠퇴가 올 것이라고 그렇게 전망을 했습니다.
주일학교 숫자가 감소되고 제일 큰 문제는 교회의 영성과 말씀의 쇠퇴가 결국 한국 교회를 무너뜨릴 것으로 전망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크게 신뢰를 잃어버렸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목회자들의 자질이 점점 더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한국교회 쇠퇴 시기에 나침반 바이블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같이 공부하고자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 제목을 믿음의 역사로 잡았습니다.
1장에서 저희는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어떤 사람인가 제자의 영성 세개의 기둥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큰 주제가 세개의 기둥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했습니다.
오늘 그 세개의 기둥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복음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가? 그래서 복음이 일하는 세 단계를 하나님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1장에서 교회의 세 기둥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인사말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를 설명하고 있어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바울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교회
그리고 또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교회라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묘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교회라고 평가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주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신학자 플루먼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공동체가 데살로니가 교회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고 항상 감사한다. 그랬습니다.
감사가 멈추지 않았고 기도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에 가끔 이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정말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고 또 만날 때마다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랬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항상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 가지 이게 그리스도 제자도의 영성 세 기둥입니다. 첫째가 믿음의 역사
두 번째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세 번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감사한다. 기도한다. 기억한다.
불과 3주 성경 각론을 통해서 태어난 교회가 지금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어떤 교회가 되고 있나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진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의 공동체가 됩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에서도 이 믿음 사랑 소망 3개의 기둥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서 항상 기독교 영성을 말할 때 바울은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를 가지고 기독교를 설명을 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칼빈이 그랬습니다.
칼뱅이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기둥 제자도의 세 기둥은 참된 기독교에 대한 간략한 정의다
그러니까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복음의 모든 교리를 다 요약하고 요약한다면, 이 세 단어 믿음 소망 사랑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복음을 의와 절제와 심판 세 개의 단어로 요약을 했어요. 그리고 기독교 영성에 대해서는 믿음 사랑 소망이라는 단어로 정의를 한 겁니다.
신학자 뱅겔은 말하기를 믿음 사랑 소망 안에 기독교 전체가 이 단어 속에 다 담아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전서는 전후서는 이 믿음 사랑 소망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겁니다.
1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
그다음에 2장과 3장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
그리고 4장과 5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을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 후서에서도
1장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은 서로에 대한 사랑
3장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의 윤리 거룩의 윤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제자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반드시 그 영성 안에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갖추어져야 그 사람을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 소망 사랑은 추상적 단어가 아닙니다.
이건 생산적 단어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생산의 열매를 맺고 사랑은 수고하고 여기서 수고한다는 것은 마치 산모가 아이를 잉태할 때 그 힘쓰는 것 같은 그런 온 힘을 다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이 천국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종말에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사랑 소망은 기독교 영성일 뿐 아니라 믿음 사랑 소망은 생산적이여요. 지금도 우리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
열매로 그 사람을 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교회를 핍박하러 다메섹 언덕을 넘어가다가 빛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순식간에 교회 박해자였던 사울이 거꾸러지고 하나님이 그걸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셔서 그는 가는 곳마다 지금 목숨을 바쳐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리고 우리 안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의 소망은 이렇게 우리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바치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2~2강
1장으로 들어가서 믿음의 역사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1장 4절에 하나님의 선택 받은 사람들은 이마에 뭐 별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얀 세마포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아닙니다. 겉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안다고 분명히 말해요. 너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택하심을 받은 사람인 걸 내가 안다 그랬어요.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 하나님의 선택이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했는데 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목적이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 교회의 목적이 되고 또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거예요.
세계가 다 내게 속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시며 그리고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을 바치면 하나님이 세 가지 그들에게 선택의 목적을 설명하셨어요.
모든 민족 중에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너희의 택하심을 안다고 말했을 때 그들 안에 이미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그들 안에 역사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삶의 증거 제사장 나라가 된 그들의 삶에 열매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라는 삶의 역동성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나는 안다고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도 세 가지 정체성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그리고 거룩한 백성이 오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정체성이 돼야만 합니다.
이제 두 번째로 살펴볼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 우리 안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어떻게 일하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 초청을 합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원하시는 분들은 앞자리에 나와라 아니 그 자리에 일어서라 그리고 이 영접 기도를 따라 하며 오늘 영접 기도를 진심으로 따라 하신 분들은 오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오늘이 여러분들의 두 번째 버스데이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영적으로 중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축하해주고 파티까지 합니다. 구원받았을까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냥 정지돼 있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액자에 걸려있는 글자가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우리 안에서 일해요.
그리고 생산해냅니다. 역사라는 말은 생산한다는 뜻입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어떠한 일이 진행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어야 돼요. 그럼 어떤 역사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게 복음의 세 단계로 오늘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해서 증거가 된 겁니다.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내가 영접 기도했으니까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자기를 착각하면 안 됩니다.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영접 기도했으니까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여전히 사는 건 예전하고 똑같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구원받았답니다. 구원 받았나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믿음이 우리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그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참된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 5절에 그 첫 번째 단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에 이 복음이 우리 안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 그 첫 번째 단계가 오늘 1장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불과 세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그들에게 변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이심을 그들에게 증거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으니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다.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가 너희 가운데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확신으로 되었다. 어떤 사람이 되었다.
믿음은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유대인 회당 안에서 불과 3주 만에 놀랄 만한 말씀의 권능이 드러납니다. 이게 전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를 믿었을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속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요.
우리 빌립보의 하나님께서 성령께서 바울과 일행을 빌립보로 보내셨을 때 이미 성령이 어떤 일을 하셨나요? 바울이 성령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루디아가 성령으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자기 집에 바울과 일행을 머물게 하고 빌립보 교회가 시작이 된 거예요.
나침반 바이블이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차례대로 강론하고 한국에서 신실한 목회자들의 목회자들이 오셔서 하나님 말씀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드리고 또 말씀을 같이 공부합니다.
여기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 안에 성령이 역사해야 돼요.
성령이 어떻게 역사 하셨나요?
세 가지 첫째는 말로 증거가 됐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를 통해서 로마가 지배하기 전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배하셨고 그로 인해서 헬라어가 통용어가 됐어요.
그리고 이미 구약성경은 70인역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해 놓은 상황이었어요.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기에 아주 적당한 수단이 이미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거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선교에서 제일 큰 문제가 그 벽과 협곡의 문제입니다.
벽은 언어의 장애예요. 협곡은 문화적 차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럴 때 두 번째가 성령이 하시는 일이 능력으로 바울의 말을 성령께서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 확증시켜 주신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가 큰 확신입니다.
그러면 성령은 말과 능력과 큰 확신으로 복음을 듣는 사람들 속에 역사하셨어요.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에 경건한 헬라의 큰 무리가 주님께로 돌아오고 귀부인들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갑니다.
6절과 7절에 보시면 이렇게 하나님 말씀이 성령으로 증거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었나요?
첫째가 많은 환란 가운데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다. 박해가 있었습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재산의 손실 가족과 친척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마을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생존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면서도 그들이 그리스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그들의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르고 그리고 말씀에 헌신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런 일들이 우리 안에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됐어요. 자 성령으로 하나님 말씀이 그들 속에 살아서 역사했습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말씀이 그들을 변화시킨 거예요.
어떻게 변화시켰나요?
사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으로 그들의 삶 전체가 전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거예요.
이제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이 의로워지기 시작한 겁니다. 성령의 기쁨이 우리에게 다시 회복이 되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기쁨이 있을 때에 환란 중에서도 그들은 말씀을 끝까지 따라가는 추종자들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오픈 도걸스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기독교의 가장 적대적 국가가 73개 나라입니다.
이 73개 나라에 2억 4500만명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말씀으로 인해서 그들은 빼앗기고 그리고 손해를 보고 삶이 유린을 당하고 삶의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의 기쁨이 있는 하나님께서 나침반 바이블 위에 기름 부어주실 때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같이 나누는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기쁨이 넘칠 때 말씀이 우리 속에서 변화를 일으켜서 사도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게 해주실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마게도니아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것
레온 모리스 박사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도를 본받은 자들이 이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다른 사람의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고 그랬어요.
이렇게 삶의 역동성이 일어나고 그들의 삶에 복음이 하나님 나라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뭐가 있어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거여요
우리가 다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서 성령의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됐을 때 우리 안에 주님을 본받는 제자들이 늘어나고 주님을 본받는 자들로 인해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주님을 본받는 복음의 영향력이 증가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무엇입니까?
1장 8절에 보시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니가에 들릴 뿐 아니라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니가에 들렸다
무엇이요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들의 그들의 자랑이 아니라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은혜가 있었는가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그들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하나님의 거룩한 그리스도의 제단 앞에 바치게 만들었고 그들을 주님의 제자로 변화시킨 주의 말씀이 마게도니가 아가야에 들렸다 그랬어요.
여기에 들렸다는 말이 그 헬라어의 엑세케오라는 단어입니다. 이거는 천둥소리처럼 그리고 아주 거친 바람 소리처럼 아무도 이 천둥소리를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마게도니가 아가야에서 동쪽으로 이 천둥소리가 로마까지 퍼지고 아시아 서쪽으로는 에베소 소아시아 터키 지역까지 복음의 천둥소리 하나님 말씀에 대한 소문이 로마제국 전체를 뒤엎은 겁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소문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믿음의 역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어떤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다시 9절과 10절에서 한 번 더 간략하게 우리에게 요약을 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누가 시킨 게 아니에요. 그들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변화를 보면서 그들이 스스로 소문을 만들어내고 그 소문이 마게도니가 아가야 전 지역에 퍼진 겁니다.
마치 거대한 천둥소리처럼 이 소문이 막힘없이 산과 골짜기를 지나가서 마을마다 도시마다 이 복음이 퍼져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이 만났을 때 그곳에 이런 데살로니가 교회가 완전히 송두리째 그들의 삶의 모든 게 변화된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3단계는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첫 번째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는가?
그들의 회심의 첫 번째 현상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거죠. 어두움의 자녀였다가 이제는 빛의 자녀였습니다. 죄인이었다가 이제 하나님 앞에 의롭다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80km 떨어진 곳에 올림프스 산이 있습니다. 올림프스는요 그리스 신들의 거주지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 신화가 마게도니아 모든 도시마다 이 신화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에 그들은요, 그들이 섬겼던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오늘 현대인들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돈이나 섹스나 쾌락이나 사회적 성공 이런 것들이 우리 마음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게 믿음의 역사의 첫 번째 얼굴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겁니다.
두 번째 얼굴은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오. 그리스도라 그들은 그리스도로 사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 일에 온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고 그리고 평생 하나님과 믿음으로 동행하는 사람들 그들이 누굽니까 믿음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로 회심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다 부활할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야 하나님의 구속사가 완성이 되고 끝나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장에서 믿음의 역사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그리고 간결하게 보여준 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를 믿는 사람인가요?
정말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이 내 삶에 어떤 역사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니요?
믿음의 역사라는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1장을 통해서 우리가 이 1장의 믿음의 역사에 대해서 몇 가지 적용점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로, 나에게 세 가지 기독교 영성이 있는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그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결정적 증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그들 안에 주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하나님 말씀이 주는 성령의 기쁨이 우리 안에 넘치는가를 살펴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어느 순간에서부터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이 전파되지만 더 이상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 속에 성령의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의 기쁨을 잃어버린 곳에 말씀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만들어낸 건 하나님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의 인간의 말로 전파됐지만 그러나 성령의 능력과 큰 확신으로 전파됐을 때 그들은요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었습니까? 사도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니아 아가야까지 계속해서 확산되고 퍼져나간 거예요. 그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성령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하심을 풀어주셔서 나침반 바이블 시청하시는 분들 속에 성령이시는 말씀에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기쁨이 넘쳐야만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일하고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거예요.
세 번째는 나에게 매일 회심의 증거가 나타나고 있는가를 우리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회심의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내가 어쩌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기를 속이고 살고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컵에 맑은 물을 한 잔 떠놓고 거기에 파란색 잉크 한 방울만 떨어뜨려 보십시오. 순식간에 파래집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데, 어떻게 내 삶에 회심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한 겁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면 반드시 회심이 일어납니다.
미국의 크리스천 포스트지에서 중국 허난성에서 중국 교회 지도자 22명을 훈련하고 돌아오신 미국 목사님이 거기에 칼럼을 하나 쓰셨습니다.
강의가 다 끝나고 났을 때에 중국 교회 지도자들이 이 미국 목사에게 요청했습니다. 이 중국 교회가 미국 교회처럼 신앙의 자유를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미국 목사가 기도 안 한다. 그랬어요.
미국 교회는 하나님 말씀을 배우려고 13시간 기차 타고 오는 사람이 없다. 1시간 차를 타고 가는 것도 귀찮아서 안 간다 에어컨 시설이 돼 있고 편안한 의자에서 하나님 말씀을 가리켜도 한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꿈틀거리고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데 싫증을 느낀다
미국 교회가 당신들을 닮았으면 좋겠다.
그들 안에는요 이미 믿음의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어요 오늘 시청하신 여러분들 속에 믿음의 역사가 다시 되살아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데살로니가 전세 2장 사랑의 수고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