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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선교회2026

데살로니가 3강 전서 2장 사랑의 수고 1 ~ 밤낮 자기 변호 26.06.07(일)데살로니가 전서 2장 5절에서 10절 5 너희도 알거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36 목록 댓글 0

데살로니가 3강 전서 2장 사랑의 수고 1 ~ 밤낮 자기 변호

26.06.07(일)

 

데살로니가 전서 2장 5절에서 10절 

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오늘은 세 번째 데살로니가 전서 강의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강의 제목은 사랑의 수고라는 2장 1절에서 16절까지의 본문을 함께 공부하고자 합니다. 

 

영국의 한 교회에서 담임 목사님이 은퇴하셨습니다. 그래서 청빙 위원들이 스폴전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런 목사님이 계시면 소개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평판이 좋고 탁월한 용모를 갖고 있으며 인자하고 친절하고 폭넓은 사교력 그리고 비즈니스 마인드 그리고 교인들을 하나님 말씀을 잘 가리키는 훌륭한 설교자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찰 스폴전 목사님 뭐라고 대답을 했을까요? 

그런 목사는 세상에 없다고 그랬습니다. 

아마 필요하다면 천사를 데려오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오늘 많은 한국 교회가 목사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고 참된 설교자 좋은 목사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습니다. 

 

오늘 2장 1절의 16절까지 3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저희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의 심장은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의 수고 교인들의 수고가 아니라 목사 설교자의 사랑의 수고가 교회에 살아있어야 그래야 교회 심장이 건강하고 활발하게 심장이 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 가지 기둥 위에 세워졌다 그랬습니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 

 

믿음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이 그들의 삶 속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어떻게 우상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했는지 복음의 능력이 믿음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위에 소문이 일어나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두 번째 기둥 사랑의 수고에 기둥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 사랑의 수고는 참된 목회자상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장 1절에 16절까지 바울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어서 목회자가 해야 할 말씀 사역 그리고 목회자가 가져야 할 교인에 대한 올바른 목회적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가 그가 자신의 사역과 유대인들의 공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해서 아주 집요하게 공격을 했습니다. 

 

바울의 평판과 바울의 권위를 깎아내리려고 했어요. 

왜 유대 거짓 교사들 유대주의자들이 바울에 대해서 이러한 좋지 않은 소문을 내고 악의에 찬 루머를 퍼트려서 바울의 권위를 손상시키려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바울의 권위가 무너지면 바울이 전한 복음도 같이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이 악의에 찬 조직적 중상모략으로 바울을 공격을 했습니다. 

 

바울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요? 

바울이 이렇게 급하게 떠난 것은 그가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이미 얻었기 때문에 돈을 원했던 엉터리 교사였기 때문에 너에게 돌아오지 않는 거다 그는 사기꾼이고 비겁한 가짜 사도라고 그렇게 바울에 대한 끊임없는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데살로니가 교회도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이런 악의에 찬 소문 거짓된 그 목회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서 교회가 점차 휘청거려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침체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18세기에 가장 뛰어난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던 조나단 에드워드도 이런 비난과 소문에 크게 흔들렸습니다. 

 

조직적으로 사람들이 조나단 에드워드에 대해서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어요. 

그리고 에드워드로 인해서 크게 재산을 잃어버리고 사업을 잃어버리고 술집 주인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의 네트워크를 결성을 해서 조나단 에드워드에 대해서 아주 나쁜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때 조나단 에드워드가 염려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내가 나를 스스로 변명할 수 있지만 나는 변명하지 않겠다. 

 

나를 신원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신원하시는가를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바울을 공격했던 유대인들의 공격 패턴이 교회 시대마다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원해 주시도록 한국 교회를 신원해 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만 할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과 고난의 영성에 대해서 2장 1절 2절에서 제일 먼저 바울이 자기가 어떻게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됐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안다 그랬어요. 데살로니가 교회가 증인으로 초대됐습니다. 

 

그리고 2절에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많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우연히 간 게 아닙니다. 

여행 중에 들린 게 아닙니다. 

많은 복음을 전하는 많은 고난 중에 빌립보에서 그는 이미 완전히 벌거벗긴 채 그 고난을 당한 그 상처받은 몸을 가지고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한 거였어요. 

 

그는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도 없이 공개 재판을 통해서 그가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채찍질을 당했다는 것은 그가 완전히 벌거벗긴 채 사람들 앞에서 살점이 뜯겨나가는 그런 고난을 고문을 당하고 처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당한 그 억울함 그 심각한 고난 그리고 부끄러운 치욕스러운 고난 중에서도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힘입어 내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목회자들이 이런 많은 싸움 중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새드백 교회 릭 워렌 목사님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포르노 중독자입니다. 그 사모님이 그래서 사모님이 최근에 나는 포르노 중독자였다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것처럼 아들이 결국 우울증에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 자신도

그 뇌 기종 그 뇌부종 부전증 환자입니다. 

 

그래서 뭔가 흥분되는 일이 있으면 급격하게 그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서 갑자기 쓰러지고 그리고 의식을 잃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지금도 주일날 설교할 때 부목사가 항상 옆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쓰러질지 몰라서 이런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바울도 많은 싸움 중에 빌립보에서 능욕을 당했지만 하나님을 힘입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에 참 목자상이 있습니다. 

 

3~2강

바울은 2장에서 4가지 참 목자상을 우리에게 비유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두 가지 청지기와 하나님의 사자 그리고 하나님 백성을 돌보는 두 가지 유모와 아버지의 그 상을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었어요. 

 

먼저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복음을 맡겼습니다. 로마 시대 청지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주인이 재산을 맡기는 청지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자녀 교육을 맡기는 청지기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을 맡기신 하나님의 청지기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청지기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복음에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다했을까요? 

 

제일 먼저 2장 3절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라 또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다. 

 

세 가지가 아니다 라고 선언했어요. 

유대주의 교사들이 끊임없이 바울이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사도가 아니면서도 사도라고 너희를 속이고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은 그가 너희에게 너희 호주머니를 터는 그런 사기꾼이라고 계속 헛소문을 퍼트렸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간사함도 아니고 부정해서 탐욕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리고 너희에게 속임수로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청지기의 두 번째 사상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4절에 바울이 청지기로서의 올바른 태도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청지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맡기셨어요. 위탁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설교자들도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맡긴 자들이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받아서 하나님이 바울을 테스트하셔서 적합한 사람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그에게 청지기로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와 바울의 이런 청지기에 충성된 책임감을 가지고 그는 빌립보에서 그런 비참 다만 처참한 능욕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처받은 몸뚱이를 이끌고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이유가 청지기로서의 그의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유모의 마음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정말 좋은 목사인가 교인들에 대해서 유모의 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목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교회가 필요로 하고 우리가 존경할 만한 목회자입니다. 

 

유모에 대해서도 세 가지 사실을 말했는데 

첫 번째 2장 5절과 6절에 보시면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그리고 6절에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한다. 

 

세 가지 바울이 사도로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아첨하는 말 그들의 비웃음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탐심의 탈 그들에게 뭔가 자기가 원하는 걸 얻으려고 위선적 가면을 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사람의 칭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실망하는 목회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교인들에게 계속 뭔가 그들의 충성을 이끌어내고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서 끊임없이 설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고 그리고 자기의 위선을 감추고 사람들의 칭찬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바울은 스스로 자기를 경계하고 그리고 유모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두 번째 사실 2장 7절에 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했다. 그랬습니다.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도리어 유순한 자가 되어서 유머처럼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의 마음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게 목사의 권위주의입니다. 

권위주의를 너무 강요하다 보니까 교인들이 권위주의에 질식하고 있는 근데 바울은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유순한 자가 되어서 정말 갓난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사랑으로 돌보았던 목회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목회자들이 이런 권위 주의에 주의를 강조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도리어 유모의 마음을 가지고 유순한 그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목회자들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2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 

 

저도 이 말씀 앞에서는 숨이 막힙니다. 

저도 이 말씀 앞에서는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어느 정도까지요 하나님 복음뿐 아니라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거워했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됨이라 

이 가슴을 쏟아 놓을 수 있는 목회자가 한국 교회에 필요하고 이렇게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됨이라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기를 즐거워하는 그런 목회자들이 강단에 세워질 수만 있다면 교회에 세워질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크게 변화시켜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2천명이 넘습니다. 그중에 최초의 양화진 선교사 무덤에 장례 치르신 분이 잔 헤론 의료선교사입니다. 

 

이분이 테네시 주립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께서 너는 땅끝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선교사 잡지에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던 이수정 씨가 암흑의 땅 조선으로 선교사를 보내주십시오라는 이수정 편지를 읽고 그분이 1885년 6월 21일 날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제중원 2대 원장이 됩니다. 그렇게 5년 동안 고통당하고 질병에 신음하는 조선 사람 사람들을 돕다가 그분이 5년 만에 전염병 환자를 돕다가 전염병에 감염이 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1870년 7월 26일 날짜예요. 마지막 죽어가면서 잔 헤론이 남긴 유언의 말이 무엇입니까?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더 뜨겁게 사랑해 주십시오. 

 

나는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마지막 죽어가면서 잔 헤론이 고백한 말이 더 뜨겁게 사랑해 주십시오. 

 

아내가 남편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살아야 그들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호흡이 점점 멎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대한민국은 그렇게 사랑했던 잔 헤론 선교사가 그가 묻힐 땅 한 평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집에 묘지를 만들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정동에 있는 미국 영사관의 묘지를 만들려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시체는 냄새가 나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가 양화진 묘지가 허락이 됐습니다. 

 

그래서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선교사가 된 거예요. 

그는 자신의 모든 걸 다 대한민국 이 암흑에 있던 조선 사람들을 위해서 다 내어주고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희생과 사랑 위에 오늘 한국 기독교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에도 유모와 같은 그런 목회자들이 더 많아지도록 우리가 기도해야만 합니다. 

 

자 세 번째 비유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는 아버지로서 바울은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옳고 그리고 의롭게 살 수 있도록 책망하고 경계하고 교훈하는 목회자의 책임을 우리에게 강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2장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폐를 끼친다는 게 무엇입니까? 

 

예 마땅히 일꾼이 자기 삵을 받아야 되는데 바울은 의도적으로 그가 사도가 아닌데 사도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것은 교회의 사례비를 받기 위함이라는 유대 교사들의 거짓말 때문에 그는 자기가 사도가 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성을 증거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2장 10절에 보시면 이렇게 밤낮 일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었어요.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이 그러하시도다 

 

눈에 보이는 삶의 본보기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어요. 바울은 눈으로 보고 배우는 복음의 산 증거였었습니다. 

 

우리가 교육학에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그랬어요. 

잔소리한다고 자식의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 뒤에서 자녀들이 부모를 닮아가는 거예요. 그런 것처럼 바울은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그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떻게 옳고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거룩하고 옳고 사람들에 대해서 의롭게 행동하고 흠없이 그는 사람들에게 사도로서 거룩한 평판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11절 12절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교훈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칠뿐 아니라 책망하고 그리고 그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었어요. 

그렇게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너희를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어머니로서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고 싶다. 아버지로서 삶의 모범을 보이고 그리고 중노동을 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아버지께 합당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는 권면과 위로와 책망을 멈추지 않았던 진정한 사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설교자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2장 13절에 우리가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바울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성령께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기름 부으신 말씀의 사역자였습니다. 

 

1장에서 이미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기억합니다. 

1장 5절에 바울이 복음을 전했을 때 성령께서 어떻게 하셨나요?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큰 확신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어요. 

 

그리고 1장 6절에 그들이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게 하셨어요.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큰 믿음의 소문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씀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는가 어떻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상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가운 기다릴 수 있는 복음의 능력이 드러난 교회가 될 수 있었는가 여기에 삼중적인 관계성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들을 때 하나님 말씀으로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들음으로 인하여 그 말씀이 그들 속의 역사였다는 거예요. 

 

오늘 이 시대에도 그런 설교자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복음을 전했을 때 이미 성령이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놓으셨어요. 

 

그리고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게 했습니다. 그리고 루디아가 자기 집을 내놓아서 빌립보 교회가 되게 했습니다. 

 

마치 노이드 존스가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이 기름 부으시는 함께 동역하시는 설교자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야 동시에 성령이 듣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고 그랬어요. 바울은 성령이 동역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받았어요. 그러자 말씀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장에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에 하나님이 바울을 이 시대에 말씀의 사역자로 세우셨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장 14절에 설교자의 두 번째 사실을 우리가 설명합니다. 그들이 이 말씀이 역사함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어요 

 

1장의 내용이 다시 그대로 재반복되는 겁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본받는 자가 되었어요. 심지어 그들의 복음의 능력이 열매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유대에 있는 교회들의 고난을 본받은 교회가 됐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살아있는 곳에 반드시 핍박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곳에 고난도 같이 역사입니다. 

 

드디어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제 정상적인 성령의 역사 가운데 서게 된 거예요. 그들 안에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핍박을 받은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도 박해와 핍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15절 16절에 유대인의 죄에 대해서 5가지 죄를 바울이 지적하고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핍박과 박해를 일으켰던 유대 교사들 바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바울을 막아 막았을 뿐 아니라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회들을 이 고난 가운데에 그 힘겨운 믿음의 싸움을 싸우게 만든 유대주의자들에 대해서 바울이 정면으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가운데 퍼부어질 것을 바울이 경고를 한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주의자들의 이런 박해가 오늘 한국교회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유대주의자들이 저지른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주 예수를 죽이고 선지자를 죽이고 사도들을 쫓아냈어요.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씀 사역을 중단시키고 하나님 말씀 사역을 함정에 빠트리고 하나님 말씀 사역에 거대한 장벽을 세워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한국 교회에 왜 이렇게 한국 교회가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나요? 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전할 책임을 맡은 청지기로서의 하나님 말씀의 설교자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하나님이 세우신 말씀의 사역자 이 사람들을 흔들어 놓으면 결국 한국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막혀버리고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교회로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 끊임없는 분열과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되찾아야 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거예요. 

 

나침반 바이블이 바이블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 가장 중요한 일도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때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적용점들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우리가 주를 본 받은 교회였어요. 우리가 주님을 본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제자도입니다. 주님을 본받으려면 반드시 우리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존경할 만한 목사가 없으면 주님을 본받는 제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참 목자상 진짜 목사가 누구인가에 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에서 바울은 참된 목자가 누구인가를 보여주었어요. 

디모데 전후서에서는 목사가 어떤 목회를 해야 되는가를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하나님 말씀이 살아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사역을 담당한 설교자들이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야 돼요.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되도록 그렇게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나침반 바이블 시청자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3장 사랑의 수고 두 번째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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