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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4강 전서 3장 사랑의 수고 2 ~ 디모데 교회 사랑 26.06.08(월)데살로니가 전서 3장 7절에서 13절 7 이러므로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34 목록 댓글 0

데살로니가 4강 전서 3장 사랑의 수고 2 ~ 디모데 교회 사랑

26.06.08(월)

 

데살로니가 전서 3장 7절에서 13절 

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1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오늘은 네 번째 사랑의 수고에 대해서 말씀을 계속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에 유럽 교회 쇠퇴에 대한 보고서와 책자가 출간이 됐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유럽 교회는 빠르게 교회가 문을 닫고 교인 수가 줄어들고 젊은이들이 떠나고 더 이상 교회 건물을 유지할 능력이 없어서 교회는 술집으로 팔리거나 도서관이 되거나 카페가 되거나 레스토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2010년 로잔 대회에서 선언했습니다. 

유럽은 다시 재 복음화 복음이 필요한 대륙이 되었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직업화된 목사로 인해서 교회가 점점 생명력을 잃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오늘 사랑의 수고 두 번째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7절에서 3장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의 핵심 포인트도 여전히 똑같습니다. 

교회에 강하고 튼튼한 심장은 사랑의 수고에 있습니다. 누구의 사랑의 수고인가요? 교인들이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게 아니라 목사가 교회를 위해서 중노동과 삶의 모범과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교회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2장 17절에서 3장 13절까지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얼마나 애를 쓰고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그 목회 현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데살로니가 전서를 잘 안 읽습니다. 

특히 2장과 3장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목사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너무 커요 그리고 읽을 때마다 죄 의식이 우리 마음을 차오르고 나는 가짜가 아닌가라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래서 데살로가전서 2장 3장은 잘 안 읽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66권 가운데 하필이면 저한테 이 본문을 맡겨주신 게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참 많이 고민스럽게 기도하면서 오늘 강의를 준비를 했습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불과 세 안식일에 말씀을 전했던 데살로니가 교회 너무나 짧은 만남 그리고 두려운 이별이 그들 가운데 있었는데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지 

 

2장 17절에서 바울이 20절까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그의 솔직한 애정 그의 두려움 없는 고백 그리고 데살로니가에 대한 그의 감정을 아낌없이 다 쏟아놓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2장 17절에 바울은 먼저 자기를 변명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이 아니라 그랬어요. 

 

얼굴과 마음 이야기를 하면서 너희의 얼굴 보기를 열정적으로 더욱 힘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바울은 소크라테스 옛날 국민 윤리 때 소크라테스 사진 보셨습니까? 정말 흉하게 생겼습니다. 험상굳게 생겼습니다. 

 

근데 바울에 대한 초상화가 공개가 됐는데 바울은 그보다 더 험악하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거칠고 험악하게 생긴 바울의 입에서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적으로 힘썼노라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아낌없이 거듭해서 마음을 다해서 그들에게 쏟아놓고 있어요. 여기서 잠시 너희를 떠났다는 것은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어느 날 갑자기 데살로니가 교회를 갑자기 잃어버렸어요. 강제적으로 마치 아이가 유괴범에게 납치당한 것처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강제적으로 잃어버리고 고통스럽고 힘든 분리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열정적으로 더욱 힘을 썼을까요? 

그는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다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윌리엄 랜즈 박사가 그들이 사탄이 바울이 다시 데살로니가로 돌아올 수 없도록 아마 야손이 보석금을 받고 풀려났었는데 그 보석금을 받고 석방시킨 조건이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그들이 다시 감옥에 체포를 당하고 모든 재산을 잃어버리는 막대한 손실을 겪을 것을 재판정에서 경고했을 거라고 추정을 합니다. 

 

그게 맞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돌아가고 싶어도 자기가 돌아가면 자기를 도왔던 사람들이 큰 손해를 봐야 하고 법정에 다시 세워져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돌아갈 수가 없었을 거예요. 

 

바울은 자기가 왜 돌아갈 수 없는가를 솔직하게 데살로니가 교회에 설명을 하고 그리고 너무나 놀랍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19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오늘 목사님들이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그래야 됩니다. 목사의 학위가 어떤 학위를 가졌느냐 얼마나 명성을 가졌느냐 얼마나 유명한 목사냐 교회 크기가 얼마나 크냐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교인들에 대해서 목사가 가지고 있는 자세가 우리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이 누구냐 너희가 아니냐라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는 부끄러움 없이 고백할 수 있는 목사가 진짜 목사입니다. 

 

바울은 잠시 떠났습니다. 다시 돌아가고자 했지만 사단이 길을 끊어버렸습니다.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바울은 뜨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이 너희라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쏟아놓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런 목자를 만나는 게 진정한 행복한 교인이 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목사를 만날 때 교회는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가 살아있는 교회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자기는 이제 갈 수 없습니다. 포기해야 되나요? 체념해야 되나요? 아니요. 바울은 디모데를 보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면서 

 

3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그래서 바울은 자기만 아덴에 남고 디모데와 실라를 각각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로 보낸 거예요. 

 

그리고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 가서 데살로니가 상황을 살펴보고 고린도로 가 있는 바울에게 찾아가서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떤 상황이 있는가를 보고를 한 겁니다. 

 

2절에서 5절까지 디모데를 보낸 세 가지 목적을 바울이 3장 2절과 5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디모데는 어떤 사람인가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형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 디모데는 바울처럼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바울처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처럼 하나님의 복음과 말씀에 헌신된 진정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첫 번째 목적이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싶다. 

 

굳건한다는 말은 새로 믿은 그 새 신자를 성숙한 신자로 만드는 전문 용어입니다. 디모데가 간 목적은 그냥 상황을 살피러 간 게 아니라 그들을 가르치러 간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막 회심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성숙한 신자가 되게 하는 게 첫 번째 목적입니다. 

 

두 번째 목적은 무엇입니까?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해주고 싶다. 그랬어요. 

그들은 갑자기 부모 잃은 자식처럼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유대주의 교사들은 끊임없이 와서 바울에 대해서 좋지 못한 악소문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도 흔들렸을 겁니다. 

 

그러므로 너희 믿음을 위로해 주고 싶다. 

위로가 있을 때 여러 환란 중에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사이노라는 헬라어 단어 방황하지 않는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방황하지 않도록 그들의 믿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왜 있어야 되는가 고난의 그 필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따라가려면 고난은 필수 과목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시고 광야 40년 동안 방황하게 하시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어요. 

 

그러면 바로 출애굽 광야 가나안은 하나님의 구원의 공식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광야를 지나가야 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고난을 위해서 세운 받았다는 사실을 그들의 고난에 대한 의무를 3장 4절에서 상기시키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위하여 세움을 받았다.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이 광야를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3장 5절에서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장차 받을 환란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알게 됐다는 거예요. 

 

3장 5절에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나니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할까 두려워하느라 

 

사단은요 정말 우는 사자입니다. 우는 사자는 배고픈 사자입니다.그가 먹이를 찾을 때까지는 이 우는 사자는 쉬지를 않습니다. 

 

이제는요 아예 바울의 사역 자체를 헛 수고로 만들기 위해서 사탄을 계속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공격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헛되게 한다는 것은요, 낭비시킨다는 겁니다. 바울이 그 상처받은 몸뚱이 비참한 몸뚱어리를 가지고 대살로니가에 와서 복음을 전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운 모든 일을 다 바울의 낭비된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한국 교회가 80년대 90년대 2천년대 급성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낭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부흥의 시대가 한낱 박물관에 걸려있는 조각품이 돼버리고 마는 거예요.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어쩌면 다 낭비 낭비되는 시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 거예요. 

 

바울은 그걸 두려워서 그래서 내가 참다 못하여 너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냈노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4~2강

디모데가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 이 빌립보 교회에 대한 소식은 실라가 가져오고 그리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식은 디모데가 가져왔어요

 

디모데가 가져온 놀라운 소식에 대해서 바울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식을 가져왔을까요? 

제일 먼저 3장6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 

 

칼빈이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정체성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실한 두 가지가 믿음과 사랑이라 그랬어요. 

 

그런데 디모데가 확인하고 가져온 굿 뉴스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기쁜 소식을 가져왔어요. 

 

그들은 믿음의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사탄이 그들을 넘어뜨리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헛 수고가 아니었어요. 바울의 시간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잘 중요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온갖 바울에 대한 악소문 그 가짜다 사기꾼이다. 약장사다 너희의 호주머니를 털러 온 종교 사기꾼이다. 길거리 엉터리 교사다 그가 전한 복음은 순 거짓말이다. 무식한 소리다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이런 율법주의에 거짓된 소문과 율법주의의 교리를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는 잘 생각했다. 그랬어요. 

 

그들은 바울에 대한 그들의 처음 이미지 바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는 바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절히 보고자 함같이 너희도 간절히 보고자하고 사도도 교회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고 교회도 사도 바울을 간절히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정말 오늘 교회가 되찾아야 할 교회의 진실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에 대해서 점점 마음이 멀어져 가고 목사님은 교인들에 대해서 점점 열정이 식어져 간다면 그 교회는 죽어가고 있는 교회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디모데가 전한 기쁜 소식 그래서 믿음과 사랑의 소식일 뿐 아니라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그대로 전했어요. 

 

그리고 3장 7절에 바울이 디모데가 전한 기쁜 소식으로 인해서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에서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얻었노라 그랬어요. 

 

바울이 지금 고린도에서 어떤 상황에 있었습니까? 

모든 궁핍과 환란 가운데에서 그는 어떤 사역의 위기 가운데 있었을지 모릅니다. 

 

사역의 정말 어려운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의 믿음으로 말미아아 그들이 준 후원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어떤 아첨의 말이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히 서 있는 그들의 믿음 때문에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목사에게 가장 큰 위로가 무엇일까요? 

교인들의 믿음이 아닐까 

 

그리고 3장8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희가 주안에 굳게 선즉 이제는 우리가 살리라 

산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숨을 쉴 수 있다는 겁니다. 바울은 그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숨이 막혔습니다. 어쩌면 한숨만 쉬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통해서 그들이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 나는 다시 숨 쉴 수가 있다. 

내 생명의 날이 더 늘어났다고 기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도 교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교인들도 목사로 인하여 위로가 되는 교회가 돼야만 합니다. 그 일을 회복시키려면 우리가 다시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침반 바이블을 통해서 모든 교회가 다시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챕터별로 우리가 체계적으로 차례대로 공부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서로 위로가 되는 교회로 회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9절과 10절에서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 마지막 소식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제 바울이 염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교회가 아니라 바울로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주었어요. 

 

그리고 살고 싶은 거룩한 욕망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교회가 됐어요. 

 

그 감사를 어떻게 보답해야 될까 그래서 바울이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마지막으로 이 데살로니가 3장 11절에서 13절까지 데살로니가 교회 마음을 기쁘게 해준 교회 하나님 앞에 감사한 교회 그들을 가슴에 끌어안고 바울은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0장에 가서야 비로소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법적으로 완전히 차단돼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안타까움으로 그 마음을 가지고 바울이 기도하는 겁니다. 

3가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3장 11절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옵시고 다시 하나님 사탄이 막아놓은 길을 하나님이 열어주시길 원했어요. 

 

사탄이 끊어놓은 길을 다시 열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방해하고 있는 그 길을 하나님이 다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열어주시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에 바울은 그토록 열망했던 보고 싶어 했던 데살로니가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도가 12절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그대로 사랑이 바울의 사랑이 그대로 데살로니가의 전염이 된 거예요. 

 

우리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피차간에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넘친다는 것은 사랑이 과잉 생산되고 있다는 것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또 인류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교회였습니다. 

 

3장 13절에 

하나님이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주예수께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 강림하실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세우시는 게 구원의 목적입니다. 

 

바울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굳건하다는 스테라자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흔들리지 않는 누구도 뽑아낼 수 없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렇게 그들의 마음이 견고해져서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주 앞에 서기를 구했어요. 

 

이보다 더 큰 교회의 영광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최대 기쁨과 자랑이 있다면 우리가 마지막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로 발견되는 것일 것입니다. 

 

성화는 점진적이고 성화는 이런 중복 기도가 필요하고 성화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진정한 성화를 이루려면 마음이 굳건해진 견고해진 사람들만이 성화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앤드류 머레이가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책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의무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거라 그랬어요. 

 

바울은 지금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끌어안고 그는 하나님과 깊이 기도의 자리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대로 하나님 앞에 산 제물로 바치고 있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것 이상으로 하나님과의 교재 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는 더 이상 말씀으로 그들을 지도할 수 없는 목회자지만 그러나 기도를 통해서 여전히 데살로니가 교회를 양육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훈련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성숙시키는 참된 목회자가 바울입니다. 

 

강단에서만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도 바울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회를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앤드류 머레이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장 우선시돼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장하고 하나님 하나님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새 생명이 활발해지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통해서만 분명히 자라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하다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를 받지 않으면 누구도 그리스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고 아버지로 어머니로 청지기로 하나님의 사역자로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갔을 뿐 아니라 그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길이 끊어진 이 상황에서는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데살로니와 교회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없는 자로 세우기를 기도하고 있는 거여요. 

 

데살로니가 전서 2장과 3장은 정말 두렵습니다. 

목사도 힘들고 교인들도 읽기가 힘든 성경 장중에 우리의 마음을 정말 슬프게 하는 본문이 2장과 3장입니다. 

 

사랑의 수고 오늘 교회 안에 이런 목사의 진정한 사랑의 수고가 살아있는지 우리가 자신에게 질문해야만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내 주께 굴복하라는 책에서 자기 교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 교회 교인 한 사람이 시장에서 잘 아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 친구를 아주 오랜만에 만나서 친구가 안부를 물으면서 너 아직도 스펄전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냐? 아 그럼 그 교회 출석하고 목사님 설교 들은 지 25년이나 됐는데 나는 너무나 기쁘다고 대답을 하자 그러자 그럼 너는 지금쯤 주님의 제자가 돼 있겠구나 그 친구가 대답을 못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요 스마트폰 들고 일주일 내내 한국에 유명하다는 설교자들의 설교는 다 듣습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셨나요?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가를 우리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목회자 주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참 목자 하나님의 참 목자 어떤 사람일까요? 이중적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첫째가 에베소 4장 15절에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의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그랬어요. 

 

교인이 얼마나 많이 모이냐 교인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교회 안에 교인들이 날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을까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할 때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수 있다고 했습니다. 

 

2장과 3장에서 바울은 자기 가슴을 다 열어놓았습니다. 어쩌면 자기 심장을 꺼내놨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서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의 심장으로 어떻게 너희 무리를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증인이시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더 이상 교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숫자를 끌어 모으려고 이런저런 어느 교회에서 어떤 무슨 프로그램을 했더니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어디서 더 나은 프로그램 남들이 하지 않는 좋은 프로그램을 할까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요 바울이 그리스의 심장으로 그 교인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인들을 사랑할 때에 거기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거기서 성화가 일어나고 거기서 교회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교회의 내적 성장이 이루어질 때 교회 외형적 성장도 가능할것입니다 

 

바울은 마치 자기 눈 하나를 빼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회심할 수만 있다면 자기 눈 두 개가 아니라 자기 온몸을 다 뜯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바치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에 서기를 구했던 사도가 바울이라는 것이어요. 

 

그런 목사를 만나야 하고 교회는 그런 목사를 만날 때 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용해야 될 것은요, 

 

다시 2장하고 똑같은 적용점을 찾습니다. 

나는 존경할 만한 목회자가 있는가 

우리와 주 우리를 건너뛰고 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이렇게 많은 부흥회가 있고 세미나가 있고 제자 훈련이 있는데도 주님을 본받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빠져있어서 그렇습니다. 

존경할 만한 목사들이 회복되어져야 하고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사랑의 수고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2장과 3장에서 철저하게 교회도 배우고 목사도 배우고 교인들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나침반 바이블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통해서 다시 한국 교회가 목사와 성도가 올바른 인격적 관계 하나님의 은혜의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셔서 한국 교회에 놀라운 부흥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소망의 인내에 대해서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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