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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장선교회2026

데살로니가 5강 전서 4장 소망의 인내 1 ~ 종말 자세 죽음 26.06.09(화)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에서 9절 3 하나님의 뜻은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23 목록 댓글 0

데살로니가 5강 전서 4장 소망의 인내 1 ~ 종말 자세 죽음

26.06.09(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에서 9절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오늘은 4장에서 소망의 인내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4장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배워야 할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의 인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교회가 복음을 따라서 어떻게 윤리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바울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 종말론이 교회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세 가지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어려움이 기독교 윤리의 실종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윤리를 회복할 것인가가 저희들의 최근에 큰 관심사 이기도 합니다. 

 

에드가 프랭크라는 분이 그분이 크리스찬 센추리 잡지에다가 글을 하나 썼습니다. 제단이라는 글을 썼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일상생활이 전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제단이 돼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상점의 계산대 그리고 일하는 작업대 그리고 아내들이 일하는 조리대 이런 모든 일상에 서 있는 공간이 길가에 성전이 돼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기서 일상의 예배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4장의 첫 번째 주제는 4장 1절과 2절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는 거여요. 

4장 1절 2절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기독교적 신앙에 열심을 가진 사람과 기독교 윤리를 가질 가진 사람을 비교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윤리적인 사람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윤리라는 게 무엇입니까?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인간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복음의 윤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고 복음의 빛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윤리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의 존엄성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인간답게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가정생활 그리고 상식적인 사람으로 사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해 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과 인격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사람이라면 그의 삶의 모든 행위도 하나님 말씀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4장 1절 2절에서 

내가 끝으로 종말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4장 5장의 말씀이 많이 남아 있어요. 여기서 끝으로라는 말은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은 첫 번째 부분이 지식에 대한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이 윤리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 거예요.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던 교회였었습니다. 

 

바울은 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너희가 이미 행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더 많이 실천하기를 원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2절에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에게 무슨 명령을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그들은 마땅히 어떻게 행할 것을 알았고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준 명령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 시대에 필요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이 이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고 복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삶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1장 5절에서 7절까지도 

그들이 이미 처음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에 하나님의 복음이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겁니다. 

 

오늘도 복음은 어떤 사람이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복음이 변화시킨 사람들만이 기독교 윤리의 삶을 살 수 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라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6절에서 

그들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다.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도들을 본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말씀이 그들에게 이런 놀라운 삶의 변화를 일으킨 거예요. 

 

그래서 7절에 

그들은 주를 본받는 자로 멈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영향력과 변화가 어디까지 이르렀습니까?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그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래서 바울은 윤리에 대해서 4장에서 계속 반복해서 명령했습니다. 

4장 1절에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배웠다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윤리를 가르치는 일에 교회가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4장 2절에 

무슨 명령을 준 것을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명령을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윤리적 명령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공동체여야 합니다. 

 

4장 6절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 같이 

바울은 충분히 그들에게 가르쳤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인하여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데살로니가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4장 11절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가 행하는 자가 되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바울이 4장과 5장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4장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살 수 있는가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 말과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된다는 데 있다면 거룩은 과연 무엇인가 세 가지 측면의 거룩을 4장에서 가르칩니다. 

 

4장 3절에서 8절까지 

성 윤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성이 혼동된 시대에 살고 있는데, 이런 젠더 트러블 시대에 성 윤리는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그다음에 9절에 12절까지 노동에 대한 윤리 

그리고 13절에 18절까지 죽음에 대한 윤리를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켜서 기독교 윤리의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김영길 총장님이 교회를 다니시면서도 그분이 술을 못 끊으셨습니다. 

 

항상 김영애 사모님이 남편이 술을 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그 기도하는 걸 알고 김영길 전 총장님이 굉장히 화를 냈어요. 

 

내가 술 먹고 실수한 적 있냐 절대로 그 기도하지 마라 그러다 어느 날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듣고 그 집안에 벽장 하나가 아주 비싼 양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총장님이 그걸 다 싱크대에다 부어버리기 시작했어요. 양주 새 것도 있고 비싼 것도 있으니까 김영애 사모님이 그 비싼 건 놔두라고 그랬는데 김영길 총장님이 내 마음에 꺼린 걸 누구에게 주겠느냐 다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이게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그 사람이 복음의 사람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 

 

자 첫 번째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당시에 헬라와 로마 사회는 아주 성적 방종의 시대였었어요. 

 

대표적인 두 도시가 고린도와 데살로니가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에베소 도시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에베소에는 아데미 숭배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한번 아데미를 검색해 보시면 그 아데미 숭배가 어떤 상징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는 미의 여신 성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고린도 신전 고린도의 신전을 세우고 그 아프로디테 신전에 있는 수많은 여자 사제들이 밤이면 창녀로 변했어요. 

 

아프로디테 이 신이 로마에서는 비너스라고 불리워집니다. 그래서 여 사제들과 매춘을 하는 게 이 아프로디테 신을 섬기는 숭배 행위가 되는 거예요. 

 

신에 대한 예배가 이 여 사제하고의 매춘 행위가 된 겁니다. 데살로니가에도 그 카비리라라는 여신을 섬겼는데 이 카비리라는 여신은 아주 성적 방종의 그 여신이었어요. 

 

우상 숭배는 성에 대한 환락의 숭배입니다. 

그리고 이 성에 대한 환락의 숭배가 최근에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동성애 코드가 된 거예요. 

 

동성애 합법화가 가져온 놀랄 만한 인식 변화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더 이상 성적 죄에 대한 죄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그 현대인의 우상은 또 하나의 이런 성적 쾌락의 또 다른 사회 현실을 만들어 낸 거예요. 

 

그래서 4장 3절에서 4절까지 성에 대한 거룩함을 가르치셨습니다. 

4장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기우스 우리가 이렇게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진정한 거룩함의 첫걸음이 무엇입니까? 음란을 버리라는 거예요. 

 

음란은 모든 성적 부도덕함을 다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이 성의 질서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를 다 음란이라고 그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음란을 버려라 버린다는 말은 크린 컷 완전히 잘라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은 무엇입니까? 

 

4절에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대하라 

그래서 우리의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적 관계의 유일한 대상은 남편과 아내여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제외한 모든 관계를 하나님께서 다 거절하신 거예요. 

5절과 6절에서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됐다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하고 다르게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5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색욕을 쫓지 말라 성적 어떤 쾌락 성적 탐욕 이런 것들을 따르지 말라 그리고 일의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당시에 로마 사회 헬라 사회에서는 색욕을 쫓다가 칼부림이 일어나고 사람을 살해하고 사기를 치고 이러한 사회적 범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도 2017년도에 범죄 보고서에 의하면 살인 도둑 그 여러 사회 범죄 건수는 줄어들어가는데 2016년도에 비해서 2017년도에 성범죄는 오히려 8.6%가 늘었어요. 

 

결국 성적인 추구 어떤 성적인 쾌락의 추구가 있는 곳에 살인이 있고 폭력이 있고 온갖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색욕을 따르지 말고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경고하신 게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신다는 겁니다. 

 

주님이 신원하신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침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성적 타락의 시대에서 성에 대한 거룩함을 회복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돼야 합니다. 

 

4장 7절과 8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바울은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권면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오. 거룩하게 하심이라 그랬어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룩해지는 겁니다. 

 

근데 여전히 세상 사람처럼 이방인처럼 색욕을 쫓고 이방인처럼 음란하게 행하고 이방인처럼 부정한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4장 8절에 저버리는 사람 만일에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사람을 저버린 것이 아니라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날마다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말과 행실에 거룩한 자를 만드시는 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그러므로 이방인처럼 색욕을 따르고 음란에 빠진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저버린 사람이고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하나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중심적인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자로 살아가야 돼요. 

 

무엇보다도 당시 헬라 로마 사회가 성적 부도덕의 시대였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성적 부정함 속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게 하나님 뜻이고 그렇게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자로 살도록 부르셨고 또 거룩한 자가 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2강

자 이제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주제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4장 9절에서 12절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첫째가 성에 대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두 번째 주제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제입니다.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바울의 종말론의 가르침을 오해하고 모든 노동을 중단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곧 오실 줄 알고 직장을 그만두고 다니던 사업을 다 문을 닫아버리고 그리고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이러한 사람들로 인해서 교회가 큰 혼란을 겪어야 했습니다. 

 

9절과 10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형제 사랑에 대해서 어떤 교회였는가를 설명해 주었어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 놀라운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있던 교회였고 형제 사랑에 대해서도 바울은 쓸 것이 없다. 그랬어요.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사랑하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침반 바이블을 시청하시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 같았으면 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교회 그래서 4장 10절에 마게도니아와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는 도다 그들은 이미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 많이 힘쓰라 

4장 1절 2절에서도 너희가 이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다. 더 많이 힘쓰라 

형제 사랑에 대해서도 너희가 이미 그것을 행하고 있다. 더 많이 힘쓰라 

 

그런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 형제 사랑을 이용하는 교회에 기생식물 같은 사람들이 늘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형제 사랑을 이용해서 종말을 핑게대고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그만두고 모든 노동을 멈추고 교회에서 자기의 생계를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4장 11절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바울은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노동에 대한 거룩의 의무는 다하라는 거예요. 

 

당시에 사람들이 손으로 일하는 육체노동을 굉장히 경시했습니다. 그건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노동에 대한 새로운 하나님의 관점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조용히 해라 첫 번째 권고가 뭐예요? 조용히 해라 조용히 하라는 건 무슨 뜻입니까? 

 

어떤 자기 야망이나 출세를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따라서 자기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거예요. 

 

두 번째는 자기 일을 하라는 겁니다. 

자기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두루 다니며 남의 일에 간섭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교회에 모든 소문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라 

육체 노동은 천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장 값지고 존귀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친 겁니다.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왜 그러면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가? 

첫째는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사람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돼야 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만한 인격적인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종말을 핑게 대고 직장도 안 다니고 종말을 핑게 대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고 놀고 먹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정말 한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 한국 교회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쳤습니다. 다미 선교회가 그때 똑같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한국 사회에 정말 큰 비난의 대상이 됐어요. 

 

그런 것처럼 그런 일들이 또 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단정히 행하라 그리고 또 일해야 될 중요한 이유가 어딨어요. 궁핍함이 없게 하랴 함이라 

 

교회에 가서 모든 생계를 다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거예요. 형제 사랑이라는 거룩한 사명을 오히려 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이용해서 자기들의 개인을 책임지라고 교회에 요구를 하고있는겁니다. 

 

에이 더블유 토저가 교회는 영적 미숙아들의 보호시설 같다 그랬어요. 

몸만 커졌지 정신은 어린아이인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요, 몸만 커졌지 정신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교회를 크게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난받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일해서 남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자기 인생 하나 책임지지 못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 돼서는 안 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재림에 대해서 4장 13절에서 18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종말에 대한 얘기를 잘못 오해해서 예수님이 재림하기 전에 죽은 것에 대해서 굉장히 크게 사람들을 상심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곧 오실 줄 알고 어떻게 하시든지 그들은 살아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먼저 죽은 것에 대해서 큰 슬픔을 느낀 거여요. 

 

그래서 먼저 죽은 자들에 대해서 바울이 올바른 종말론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장 13절에 자는 자들에 대해서 죽은 자가 아니라 자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면 다 우리가 깨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진대 인간의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은 새로운 창조를 기다리는 잠든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휴식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알지 못함을 원하지 아니하노니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 무엇입니까?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어요. 첫째로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죄와 사망을 정복하시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새 창조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으셨어요. 

 

두 번째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죽은 자들이 먼저 살아나게 돼요. 

 

그래서 15절에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들이 먼저 앞선다는 겁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면 먼저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게 되고 예수님은 이 죽은 자들이 부활한 후에 그들과 함께 강림하신다는 거예요. 

 

16절에서 3가지 거룩한 소리와 함께 웅장한 소리와 함께 주님이 강림하시게 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세 번째 일어나는 현상이 뭐예요?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끌어올리게 돼요. 

랩쳐 강한 회오리 바람이 휩싸이듯이 우리를 휩싸여서 우리가 공중에 끌어올려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중요한 사실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 

첫째는요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의 몸을 갖게 됩니다. 

세 번째 주님이 그들과 함께 그들을 데리고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공중에 우리를 끌어올리셔서 공중에서 우리가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우리가 재결합해서 완전히 그리스도와 먼저 죽은 자들과 함께 연합해서 그리스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4장 18절에 

그러므로 이 여러 가지 일로 너희가 서로 위로하라고 우리에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울이 전한 종말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죽은 자들로 인하여 슬퍼하고 또 그들이 먼저 죽은 것으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받을 은혜와 복을 받지 못할 것을 상심하고 있었을 때에 바울은 그들의 잘못된 지식을 올바르게 교정해주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바른 지식을 가질 때에 비로소 바른 윤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4장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렇다 그렇다면 오늘 4장의 이 가르침을 소망의 인내 첫 번째 교훈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 신앙의 형식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이 신앙의 형식적 행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큼 중요한 게 거룩의 윤리입니다. 

 

우리는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할 뿐 아니라 거룩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적 삶을 회복하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두 번째로 가정과 성 윤리가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지금 또 다른 아프로 디태가 우리 앞에 있고 또 다른 아데미 신상이 우리 사회에 서 있습니다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 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양성평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겁니다. 

 

성 평등은 하나님이 남자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리고 동성애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말이돼요. 

 

그래서 성평등은 오늘 젊은이들에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어넣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가정과 성 윤리를 회복하는 데 교회가 더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지식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어떤 어려움을 가져왔는가를 알고 한쪽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쪽에서는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었다고 슬퍼하고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은 복음에 대한 잘못된 지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도 데이비드 위커슨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우리의 모든 생애를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5장에서 소망의 인내 두 번째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날마다 거룩한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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