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6강 전서 5장 소망의 인내 2 ~ 종말 자세 강림 26.06.10(수)데살로니가 전서 5장 10절에서 15절 10 예수께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34 목록 댓글 0데살로니가 6강 전서 5장 소망의 인내 2 ~ 종말 자세 강림
26.06.10(수)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0절에서 15절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유진 피터슨은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우리의 삶에 동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섯 번째 강의 데살로니가 전서 5장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5장은 소망에 있네 두 번째 말씀입니다.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해서 슬퍼하는 사람들 또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죽으면 안 되는데 죽은 자들이 재림 때에 받을 영광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해서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5장에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문제였다면
5장에서는 최후의 심판에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될 것인가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세상 끝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우리가 시대적 현상을 설명을 하고 그러면 그때까지 교회 공동체는 어떤 윤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그래서 교회 공동체의 윤리 4장이 개인의 윤리 성의 윤리 노동의 윤리 그리고 죽음에 대한 윤리였다면 5장에서는 교회는 어떤 거룩의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면 어떤 교회가 돼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5장 1절에서 11절까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 때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바울은 5장 1절의 3절까지 잘못된 해결책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게 5장 1절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 그랬습니다.
4장에서는 형제 사랑에 대해서 너에게 쓸 것이 없다.
여기 때는 크로노스 시기는 카이로스라는 단어입니다. 크로노스는 어떤 기간입니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9주 동안 합니다. 이게 크로노스입니다.
때와 시기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언제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가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집착적으로 언제 오실 건가에 대해서 매달려 있어요.
이게 이단들이 이단들의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자를 발표하고 수정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때와 시기에 대해서 왜 쓸 것이 없다고 그랬나요? 이 때와 시기는 아버지만 아시고 너희는 알 필요가 없다고 이미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나도 이 재림의 때 하나님의 심판의 나를 알지 못한다고 대답을 하셨기 때문에 바울이 이 일에 대해서 나는 쓸 것이 없다. 이건 아버지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2절과 3절입니다.
밤에 도둑같이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에 이른 같이 멸망이 갑자기 이른다 그랬습니다.
대충 어느 정도의 그 해산이 있다는 걸 임산부는 압니다. 그런데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면 이 진통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됩니다. 언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두 시대가 서로 중복되어져 걸쳐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옛 시대와 새 시대 현세와 내세의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고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둠의 지배자 사탄의 왕국과 그리고 빛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두 나라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그 첫째가 5장 4절 6절에 도둑의 비유입니다.
5장 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함에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라 어둠에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낯에 속한 사람이고 빛에 속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운서 2장 9절에 말씀했습니다.
어두움에서 건져내셔서 그에 기이한 빛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 게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 받으셨나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셨을 거듭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둠에 있지 않습니다. 어둠에 있는 자들에게만 도둑이 도둑처럼 주의 심판의 날이 임하는 거지 어둠에 있지 않다면 주의 날이 도둑같이 우리에게 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5절에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낯의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다 빛의 아들입니다.
어두움의 자녀였다가 에베소 5장에 있는 것처럼 빛의 자녀가 된 거예요. 그리고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낯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언제냐 언제 주님이 오시냐 때와 시기에 대한 궁금증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우리가 빛의 아들이고 낯의 아들답게 5장 3절에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깨요 정신을 차리라 그랬어요.
종말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가 항상 깨어 있고 정신 차리고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돼야 합니다. 언제 오시는가에 대한 날짜에 대한 궁금증은 이건 인간의 그냥 기본적인 호기심입니다.
종말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소망을 가진 사람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거룩한 소망의 사람이라면 그 소망에 맞는 인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어떤 삶입니까?
세상과 완전히 구별되어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의 윤리를 갖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깨어 근신하여 정신 차리고 사는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두 번째 낮에 아들들처럼 살라는 거예요.
7절과 8절에서 도둑의 비유 그리고 낯의 아들들의 비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7절에
자는 자들은 밤에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그리스도인이 그날이 덧과 같이 임하는 가장 큰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세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둠 밤 그리고 술 취함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어둠과 밤과 술 취함이라는 이 영역에서 벗어나서 우리 어떤 사람이 돼야 되나요?
5장 8절에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신경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에 투구를 쓰자고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이런 종말에 대한 가벼운 호기심에서 떠나서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그리스도의 종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들은 깨어 정신을 차리는 사람들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그리스도에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되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원의 목적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심판자로 오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구원의 완성자로 오시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재림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에 대한 심판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고 또 한쪽에서는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에 대한 완전한 구원의 성취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구원받는 사람들이 그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5장 10절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중요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이로 하여금 깨어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산으로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을 기억하시나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데리고 와서 그리고 너희와 함께 영원히 있으리라고 주님이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게 바로 그리스의 재림의 날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잘못된 지식으로 혼란에 빠지거나 자기가 혹시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까 그 막연한 공포심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시는 목적을 우리가 이해하고 우리가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낯에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에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에 투구를 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이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돼야 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사랑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뭐예요?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는 것 우리가 함께 서로의 손을 붙잡아주고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종말에 대한 이 어린아이 유아적 호기심을 버리고 좀 더 진지하게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돼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말과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명백한 증거가 무엇인가 그들이 모든 일에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안에 정말 그리스도가 계시다면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리고 우리 안에 그리스의 새 생명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종말과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유화적 질문과 호기심을 버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종들이 되는데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6~2강
4장에서는 개인의 거룩의 윤리 세 가지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성에 대해서 그리고 노동에 대해서 그리고 죽은 자들에 대해서
이제 5장에서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누가 깨어 정신 차린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어떤 사람이 거룩의 윤리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5장 12절에 28절까지 교회 공동체의 윤리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굉장히 높은 이상주의자였었어요. 교회는 무엇입니까?
복음으로 태어나서 복음의 말씀으로 유지되고 복음의 정신이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입니다.
적어도 오늘의 교회가 복음으로 인하여 태어나고 복음에 의해서 유지되고 복음으로 발전하는 교회라면 공동체 바울이 말한 공동체 윤리가 우리 안에 반드시 살아 있어야만 합니다.
잔 스타트는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사랑하신 택하신 공동체다 사람이 선택하고 사람이 창조하고 사람이 고안해 낸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공동체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았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기본적 기독교 윤리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세상에 나타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오늘 교회가 이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최근에도 여전히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고 또 세상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생물학적 공동체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세개 기둥 위에 하나님 은혜 위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심을 세상에 증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의 윤리를 가진 그리스도의 종들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교회 안에 반드시 가져야 할 윤리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목회자에 대한 바른 윤리를 가져야 합니다. 사단이 이 목사에 대한 윤리를 깨트리고 있어요.
그리고 상당 부분 한국 교회는 이 목회자에 대한 거룩의 윤리가 깨져버렸습니다. 항아리가 깨져버렸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주셔도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져 버리고 있는 거예요.
목사에 대해서 한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에 거대한 하나의 흐름이 있는데, 그게 교권주의 반교권주의의 교차와 반복과 혼란이라는 겁니다.
교권주의는 무엇입니까? 목사의 독재입니다.
목사의 전제주의입니다. 목사가 왕입니다.
반교권주의는 뭔가요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지체기 때문에 목사는 필요 없다. 목사 없이도 얼마든지 우리가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반교권주의자들입니다.
모든 게 다 잘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목회자를 세워서 그분의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의 공동체를 맡기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의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분명히 누가 세우셨습니까?
성령님이 누구를 여러분을 누구로 감독자로 삼았습니다. 왜 목회자를 세웠나요?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목회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겁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의 몸에 지체인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교권주의가 잘못됐다고 그래서 반교권주의로 빠지는 것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감독자로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 피값 주고 사신 그분의 교회를 누구에게 맡기셨습니까? 감독자에게 그 교회 목양을 맡기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목사의 대한 거룩의 윤리를 지켜야만 합니다. 목사는 어떤 사람이어야 되나요?
우리는 데살로니가서 2장과 3장에서 목사가 어떤 사람이어야 되는가를 보았습니다.
오늘 다시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5장 12절
그래 우리가 너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 수고하고 목사는 어떤 사람이에요. 수고하는 사람입니다.
무얼 위해서 수고해야 되나요?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에 온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설교 하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가 흔히 설교학자들이 말하기를 설교 1분이 1시간을 준비해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언젠가 미국 코스타에서 옥한음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커피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여러 가지 힘든 얘기를 하시다가 그분이 나에게 정말 힘든 것은 설교 준비하는 게 제일 힘들다고 그러셨어요.
가장 기쁘지만 가장 힘든 시간이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자기의 전부 자기가 가진 전부를 쏟아 놓아야만 그 사람이 하나님이 피값 주고 사신 교회를 돌볼 수 있는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고한다는 말은요 분투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우는 거예요.
두 번째로 너희를 다스리는 자라고 얘기했습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아래에 있는 겁니다. 섬기는 종으로 있는 겁니다.
목사는 철저하게 섬기는 종으로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 무리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돌보고 책임져야 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들이 이 시대의 목사들입니다.
세 번째로 그들은 권하는 자여야 합니다.
권한다는 이 누테 누테테오라는 단어의 뜻은 상담한다. 그리고 권면해 준다. 잘 다독거려 준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망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이 감독자로 세운 사람입니까? 수고하는 자 그리고 다스리는 자 권하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먼저 목사의 거룩한 윤리를 다해야 돼요.
목사로서의 윤리를 다하면 교회는요
5장 13절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그들의 역사가 중요한 거예요.
이 다스리고 가르치고 권면하는 그들의 역사가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정말 존경해야 될 목회자는 누굽니까?
이 수고하고 다스리고 권하는 목사가 먼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목양에 대한 목회자로서의 거룩의 윤리를 다했을 때 거기에 가장 귀히 여기며 존경하고 너희끼리 화목하라 여기에 진정한 목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목회자인 우리는 무엇을 유산으로 남기고 있는가? 바울은 말씀을 가르치는 데 수고하고 다스리고 권하는 일에 역사 그 목회자의 사역이 살아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에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고 최고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끼리 화목하라 교회가 비로소 화목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이렇게 진실한 목사들이 공격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목회자의 윤리를 지킬 때 목사가 먼저 자기 윤리를 지키면 교인들도 목사에 대한 윤리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 교제의 윤리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에 공동체가 되려면 반드시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한 지체들을 더 귀하게 만드신 것이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세 부류의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가요?
게으른 사람들 우리가 4장에서 이미 보았습니다.
종말을 핑계 대고 직장 다니지 않는 사람들 마음이 약한 사람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죽음 이후에 구원받을 수 있을까? 끊임없이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릭 힘이 없는 사람들 성적 충동을 절제하지 못해서 계속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권계하고 격려하고 오래 참으라
이런 사람들을 붙들어주고 그리고 가르쳐주고 그리고 함께 길을 걸어가 주는 게 진정한 그리스어 안에서 교회 안에서의 코이노니아 우리가 나누어야 할 진정한 사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5장 12절에 또 하나 중요한 인간관계 교회 안의 인간관계에서 또 하나 중요한 복음의 행위가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보복하지 말라는 겁니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현상이 무엇입니까?
이 복수심 보복의 인간관계 목사와 장로가 서로 보복의 인간관계를 합니다.
장로와 장로들끼리 보복의 인간관계에 빠집니다. 교인과 교인들끼리 사소한 이유 때문에 보복하고 복수합니다. 이게 교회를 무너뜨리는 거예요.
그래서 원수 갚는 건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그리스도인의 코이노니아 교제안에서 누구에게든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을 조심하기만 하면 교회는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배 윤리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개인의 윤리에 적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를 낸 랄프 미틴 신학자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랄프 마틴은 이거는 마치 예배 순서와 같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 거룩한 예배는 이 순서에 따라서 드려야 된다는 거예요. 기쁨으로 예배 드리고 기도로 예배 드리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예배 드리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19절에 22절까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거룩해야 합니다. 결국 예배의 가장 중심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어디로 마지막으로 가야 합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공동체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몇 가지 교훈을 바울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왜요 예배는 성령님이 예배의 지배자십니다. 예배 주인이십니다. 예배 기획자이십니다. 성령님이 예배의 전부를 책임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예언을 소멸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설교를 예언이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설교는 예언입니다. 예언의 은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울은 설교를 포함해서 예언의 은사를 얘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설교를 과소평가하거나 설교를 자기가 스스로 좋다. 나쁘다 말하거나 설교에 대해서 개인 감정을 듣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히 듣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범사에 좋은 것을 취하라 그랬습니다. 모든 이단들은 거짓된 교사들 너무나 많은 설교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어떤 설교가 진짜고 어떤 게 가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뭘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좋은 것을 취하라 열매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를 취하고 거짓을 버릴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버리라고 우리에게 권면을 했습니다. 이러한 예배가 살아있고 목사에 대한 윤리가 살아있고 교제에 대한 윤리가 살아 있고 그리고 예배에 대한 윤리가 살아 있으면 우리는 이제 세 가지만 하면 소망의 인내를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5장 23절에 하나님 앞에 거룩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영과 혼과 몸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이 기도를 우리도 매일 드려야만 합니다.
핀들리 신학자는 이분법자와 삼분법자가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랬습니다.
이분법이냐 삼분법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성화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두 번째로 성화를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이 일을 시작하셨고 그 분이 이 일을 이루실 것을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해야 될 중요한 일은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우리는 서로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그리스도어의 종들이 되면 됩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든 사람에게 읽어주라 하나님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해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끝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 전서를 통해서 세 가지 중요한 것을 적용시키고자 합니다.
첫째는 재림의 날자보다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낯에 속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낯에 속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에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에 투구를 써야 합니다.
두 번째로 그리스의 재림은 심판과 함께 구원의 최종 완성이라는 걸 알고 우리가 그리스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보여준 세 가지 기동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그 소망의 인내 가운데 교회는 목사에 대한 윤리를 지키고 서로에 대한 윤리를 지키고 예배에 대한 윤리를 지키고 그리고 거룩해지기를 기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그대로 다 복원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나침반 바이블을 시청하시는 모든 교인들이 또 교회가 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그대로 다시 이 시대에 회복하고 복원해 내시는 저희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오늘로서 데살로니가 전서 강의가 끝나고 다음 주부터는 데살로니가 후서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