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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9강 후서 3장 하나님의 공의 3 ~ 종말의 삶 26.06.13(토)데살로니가 후서 3장 13절에서 18절 13 형제들아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30 목록 댓글 0

데살로니가 9강 후서 3장 하나님의 공의 3 ~ 종말의 삶

26.06.13(토)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3절에서 18절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17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시로서 이렇게 쓰노라,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데살로니가 전후서 마지막 아홉 번째 강의 데살로니가  후서 3장 말씀을 같이 나누겠습니다. 

 

미국의 덴버 신학 대학원의 정성욱 조직 신학 교수께서 한국인의 종말론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어둡고 그리고 두려운 종말론이 아니라 행복하고 즐거운 종말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인의 결혼의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그의 신부가 된 교회가 신랑이 된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 그리스도 재림의 날 그리고 최후의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은 심판의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디도서 2장 13절에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 주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복스러운 소망 행복한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서 모두 세 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 후서는 하나님의 공의에 세 가지 기둥이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세 가지 기둥 위에 세워졌다며 후서는 하나님의 공의의 세 가지 기둥

 

첫 번째는 박해자와 박해받는 자 

그리고 두 번째는 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그리고 오늘 세 번째 하나님의 공의는 선과 악에 대한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선에 대해서 칭찬하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어떤 악이 존재하는지 교회 내에 악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그것은 교회의 징계를 의미합니다. 

 

오늘 교회는 징계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상실된 겁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다면 교회는 용서는 사랑이라면 징계는 하나님의 공의를 뜻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말의 시대에 어떻게 교회가 다시 공의를 회복해야 되는가를 보여주고 그리고 종말의 시대는 잔 스타트가 하나님 말씀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데살로니가 후서 3장을 크게 하나님 말씀의 시대 두 가지 측면을 보여주었어요. 

잔 스타트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전에 교회의 시대는 말씀의 시대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 두 가지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주의 말씀이 전파돼야 된다고 했고 

그리고 3장 6절에서 사도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중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 세계 선교 하나님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 것 그래서 말씀의 외적인 성장은 복음을 전파하는 세계 선교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말씀의 내적 성장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모든 교회가 사도적 가르침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적합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 말씀의 사람들이 돼야만 합니다. 

 

3장 1절에서 3절까지 복음전파의 사명을 먼저 우리에게 설명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 가진 가장 거룩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일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아직까지 복음을 듣지 못한 많은 민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하나님의 복음의 청지기적 사명을 가진 교회에 있는 교회가 이 땅에서 해야 할 말씀에 대한 거룩한 책임은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 1절에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끝으로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데살로니와 교회가 바울과 실라 디모데 누가 이 바울의 선교팀을 위해서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요? 

주의 말씀이 너윗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달음질하기를 기도해라 어떻게요 너희의 가운데서 퍼져나간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그 교회를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로 만들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복음은 살아 있어서 주의 말씀이 그들을 사로잡아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굴복시켰어요. 복음의 말씀의 능력이 그들을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사도의 가르침에 그들이 순종함으로 믿음이 더욱 자라고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어떤 박해 속에서도 그들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들의 그 강력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낸 것이 주의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모델로 해서 데살로니가 교회 너희처럼 됐으면 좋겠다. 

 

너희에서 일어난 복음의 능력이  전 세계에 하나님 말씀이 퍼져나가 하나님 말씀이 달음질했으면 좋겠다. 좀 더 빠른 속도로 능력 있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복음이 땅끝까지 증거되어서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크게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속도가 떨어지고 이 사람들 때문에 복음의 문이 닫히고 이 사람들 때문에 복음이 멈췄습니다. 

 

그래서 이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하라고 요청하고 있는 거예요. 

부당한 사람들 아토포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심성이 꼬여있는 그리고 완악한 그리고 무례한 그런 뜻을 갖고 있어요. 

 

유대주의자들은 그들은 정말 바울에 대해서 바울과 사도들에 대해서 그래서 그들은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었어요.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고 예수 그리스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 있는 이방인들을 다시 모세의 율법으로 돌이키고 그들의 믿음을 식어버리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지금도 영광스럽게 돼야 합니다. 복음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을 가로막는 대적자들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에서는 그들은 복음을 박해하는 사람들이었고 

3장에서는 그들은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되어서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크게 거부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는 미쁘사 너위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너희를 건져내어 주시길 원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도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덤벼들었어요.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악한 자들이 덤벼들어서 사나운 짐승 떼처럼 그들을 먹잇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라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시고 복음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라 그리고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시기를 원하노라 지금도 하나님의 복음이 대한민국 땅에서는 굉장히 약화되고 복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복음의 능력은 소멸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음은 여전히 영광스럽게 되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팔로우미를 책을 쓰신 데이비 플랜 목사님이 그분이 기독교 인구가 가장 작은 섬나라의 한 무슬림에 대한 이야기를 그 책에 쓰셨습니다. 

 

아바드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무슬림 청년은 공부를 하던 중에 선교사를 만나게 되고 선교사에게 복음을 들었어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는데 가족들이 그를 온몸으로 밧줄로 묶고 몽둥이로 쳤습니다. 그리고 그가 학교를 다니는 모든 걸 다 중지시켰어요.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도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는 모든 걸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가 모든 걸 잃어버렸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올해가 지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1천 명의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은 놀랍게 그 아바드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1천 명이 아니라 그가 4천 명의 무슬림 형제들에게 그리고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복음은 이 부당하고 악한 자들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악한 자들이 복음의 길을 가로막고 있고 그 길을 끊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9~2강

하나님 말씀이 세상 속에서 빠른 속도로 영광을 받게 되는 세계 선교의 사명 말씀에 대한 사명과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을 영광스럽게 해야 될 또 다른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바울은 3장 4절과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아마 많은 목사님들이 3장 4절을 읽으면서 좌절감을 느낄 겁니다. 우리는 왜 안 될까 또 어쩌면 교인들도 마음속에 씁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겁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안다고 했는데 왜 우리는 확신이 없을까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민망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3장 5절에 다시 데살로니가를 향해서 바울은 기도의 무릎을 꿇고 그들을 그들의 품에 안고 기도의 자리에서 다시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데려가요 

 

너희 마음을 주께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서 중보했습니다.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 교회가 바울이 기도했던 기도의 자리에 서 있기를 우리가 기도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가장 큰 세 번째 문제의 사람이 있었는데, 

1장에서는 박해자가 있었고, 

2장에서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는데, 

3장에서는 게으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데살로니가 전서 4장과 5장에서 이 게으른 자들에 대해서 바올이 1차 권면을 했어요.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시한부 종말론에 완전히 마음이 흔들린 사람 유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거짓 것에 자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실 것으로 착각하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종말론을 핑계대고 직업을 포기하고 그리고 빈둥거리고 노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바울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런 형제들에게서 너희는 떠나라 그들의 교제를 차단시킬 것을 명했어요.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이미 모범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 바울은 삶으로 보여주었어요. 하나님 말씀만 가르친 게 아니라 강단에서만 가르친 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 이미 보여주었어요. 

 

3장 7절에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않았다는 거여요. 

 

바울이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누구에게든지 음식을 값 없이 먹지 않았어요. 사도는 사람들에게 값 없이 그 생계를 교회가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의 생계를 교회에 의탁하지 않았어요. 페이스 미션을 했습니다. 페이스 미션이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본을 보여주었어요. 왜 바울은 이 페이스 미션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해야 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고 그는 또 천막 맞는 노동 일을 해야 중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자기 생계를 자기가 책임져야 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나요? 

 

그래서 잘못 이걸 해석을 해서 목사들은 교회에 월급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특별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열두 사도 중에 예수님이 친히 임명하신 사도가 아니었어요. 유대주의자들이 집요하게 바울의 사도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주님이 다메섹에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를 세우신 것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의 사도의 자격증에 대한 논란이 있는 거예요. 

 

누구도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해 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사도직이 거부가 되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거부가 되니까. 그래서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고 복음을 전한 거예요. 

 

그 문제 때문에 자신이 전한 복음이 손상을 입을 것을 바울이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을 보였어요.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여 바울은 생계를 교회에 위임할 책임 그리고 바울이 모든 교회를 다 거부한 게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바울이 받고 빌립보 교회 후원을 받고 마게도니아 사역을 했어요. 1번 2번 쓸 것을 그들에게서 받았습니다. 

 

1번 2번이라는 것은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쓸 것을 공급해 주었던 교회였습니다.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권리를 포기하고 그들에게 본을 보여준 거예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삶으로 그들에게 증거해 준 겁니다. 

 

바울이 3장 10절에 이미 삶으로 본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가르침에 대해서도 바울은 철저하게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어떻게 종말의 때를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친 거예요. 

 

종말의 때일수록 우리는 오히려 더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진리에 충성된 그리스의 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래서 10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를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 잠언에 있는 말씀이잖아요.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그런데 그중에 아직도 데살로니와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세력 악의 세력이 있었어요. 

 

11절에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들은 즉 너희 가운데에서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드는 자 일을 안 하니까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요 돌아다니면서 두루 다니며 험담하고 이 사람 얘기 저쪽에 옮기고 저 사람 얘기 이쪽에 옮기고 있지도 않은 헛소문을 만들어서 그야말로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교회를 함정에 빠트린 사람들이 게으른 사람들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어디를 가나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서 그들이 퍼트리는 악한 소문으로 인하여 교회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이들에게 다시 명령합니다. 

여러분 군대에서 장교가 내린 명령을 사병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그건 군대가 아니잖아요. 

 

군대에는 질서를 다 잃어버리는 것 바울이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명령한 걸 지키지 않으면 더 이상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하고 예수 그리스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고 자기 양식을 먹어라 조용히 일하고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겁니다. 

 

자기 인생에 좀 진실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해서 빈둥거리면서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내 손으로 일해서 내 양식을 먹어라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지지 말라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이웃 사랑을 핑계 대고 이 집 가서 얻어먹고 저 집 가서 얻어먹고 그리고 만일 자기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형제 사랑이 없다고 소리 질렀던 사람들이 이 게으른 사람들이어요 

 

형제 사랑을 악용해서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고 얹혀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여요. 

어떻게 해야 되나요? 교회의 징계가 살아있어야 돼요. 

그래서 14절에 이 편지의 한 우리말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불순종한 사람들 지목해라 누군지 명단 리스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라 그리고 사귀지 말라 부끄럽게 하라 교제에 단절을 시키는 겁니다. 

 

아까 6절에서는 뭐라 그랬어요 떠나라 떠난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추방하라는 건가요? 다른 동네로 이사시키라는 건가요? 데살로니가 살지 못하게 거주권을 박탈하는 건가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친밀한 교제를 끊어버려라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부끄럽게 만들어라 부끄럽게 만들면 자기의 죄를 돌아보게 되고 자기를 수치스럽게 여기며 회계 자리로 나가기 때문에 그 사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장 최선의 사회적 방법이 관계를 끊어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있는 교회는 어떤  교회의 모습을 가졌습니까? 이 징계가 살아 있는 교회여요. 

 

사귀지 말고 순종하지 않는 불순종하는 사람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목적은 무엇 때문입니까? 부끄럽게 만드는 거예요. 

 

 

왜 부끄러워해야 되나요? 부끄러워야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회개해야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바울이 어떻게 권면하고 있어요. 원수처럼 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교회의 징계는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들만 이 하나님의 공의의 징계를 할 수 있어요. 교회가 한국 교회가 이 징계를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가 어디에 있어요. 

 

징계할 만한 교회의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함을 가지지 못한 거예요. 적어도 바울이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를 가진 교회여야 바울이 그걸 위해서 기도했잖아요. 

 

데살로니가 교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의 인내에 그 정체성 그리스도의 인내의 인격성 그리스도의 인내 그 거룩한 성품을 가진 교회만이 할 수 있는 게 사귀지 마라 부끄럽게 만들어라 

 

그래서 하나님이 회복하게 하라 교회 징계권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요 불순종한 사람들이 불순종한 사람을 징계하려고 하니까 교회는 분열되고 갈라지고 다투고 싸우고 망가져 버리는 거죠. 

 

원수같이 생각하지 마라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모든 징계가 다 원수같이 생각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교회는 더 분노에 쌓이는 교회가 징계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여요

 

그러니까 교회 안에 온갖 부도덕한 일이 일어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종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속적 불순종에 대해서 교회는 다시 징계해야 합니다. 징계는 내쫓으라 추방할 하라는 게 아니라 교재를 중단하는 기본적 예의만 갖추고 아주 기본적 예의만 갖추고 친밀한 교제를 단절하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되나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교회는 삼중적 축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축복이 무엇입니까? 

3장 16절에 

평강해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너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는 교회 가는 게 평안하십니까? 어떤 분은 저한테 가끔 그런 문자를 보내십니다. 

 

목사님 교회에 가는 게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교회를 가야 된다는 게 너무 힘이 듭니다. 평강을 잃어버린 교회들이 왜 그렇게 됐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살려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팀 켈러가 내가 만든 신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좋아하는 건 전부 우상이 된다고 그랬어요. 

 

사도행전은 거대한 이 여신들이 지배를 했습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다산과 부의 여신 아르테미스 이 여신들을 숭배하면서 집단 섹스와 그리고 사람들은 쾌락과 부를 추구했어요. 

 

오늘 현대인들도 이 아르테미스 그리고 아프로디테 여신 앞에 원시인들처럼 만들어 놓은 우상 앞에 절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속에 우상이 있는 거예요. 

 

부와 성공을 추구하고 여인들은 다이어트 몸매 아름다운 몸매를 추구합니다. 교회의 우상은 뭔가요 교외우상은요, 그냥 적당한 관대주의입니다. 

 

괜찮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요 불순종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애써 못 본 척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 앞에 경건한 척하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는 평강을 잃어버렸어요. 

 

두 번째는 하나님 모든 사람과 너희와 함께 하시길 원하노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했어요.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예배 기쁨이 없고 예배에 만족이 없고 예배 희열이 없는 겁니다. 

 

세 번째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왜 친필이라고 그랬습니까? 가짜 편지가 너무 많으니까 바울이 친필로 내 이 편지는 진짜다 하고 친필로 편지를 자기가 진짜 편지라는 표시를 남기고 

 

마지막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축복하는 게 뭐예요? 너희 은혜가 너희에게 넘치기를 원하노라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났습니다. 

 

우리가 3장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첫째로 종말의 교회는 말씀에 대한 이중적 책임이 있습니다. 세계 선교와 말씀에 대한 순종의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만 강조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공의는 거절한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될 수 없어요. 

 

우리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잔 스타트는 정원사 같은 설교를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경고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리니까 죄에 오염이 되고 죄에 빠져버리고 그리고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거기에 가장 큰 원인은 정원사 같은 설교자들 때문에 그렇다고 잔 스타트는 지적을 합니다. 정원사 같은 설교가 무슨 뜻입니까? 

 

성경 66권 가운데 정원사가 잡풀을 뽑듯이 여기 와서 한 무대기 뽑고 저기 가서 또 풀 뽑고 여기 와서 풀 뽑고 성경을 여기서 한번 설교하고 저기서 한번 설교하고 여기서 한번 설교하는 이 정원사가 풀 뽑듯이 설교하는 설교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그 교회 안에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차레로 강론하는 예수님도 차레대로 강론하셨고 바울도 안식일에 성경을 차레로 강론했습니다. 

 

나침반 바이블은 성경을 차레로 강론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님들 모임에서 이 나침반 바이블을 얘기하고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 나침반 바이블을 최대한 활용하면 교회 구역 모임이나 셀 모임에서 이 하나님 말씀으로 성도들을 교육하는 성경 학교 겸해서 제자 훈련을 겸해서 이 셀 모임을 만들어가는데 최상의 최적화된 교재가 나침반 바이블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이렇게 피디님들하고 카메라 감독님들 작가님들이 만들어낸 이 나침반 바이블이 그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침반을 주셨잖아요.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나침반 두 가지가 뭡니까? 

성경과 성령님이시잖아요. 이걸 가지고 우리가 얼마든지 교회가 하나님 말씀에 세워질 수 있는 성경 대학 성경 학교 제자 훈련 프로그램으로 활용을 할 수 있는

 

데살로니가 후서를 마치면서 아쉬움이 큽니다. 

여름에 이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녹화를 했는데 정말 바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습니다. 

 

좀 더 충실하게 준비해서 하나님 말씀을 나누지 못한 게 제 마음의 아쉬움으로 남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매일 저녁 다시 성경을 공부하신다면 

 

하나님이 데살로니가 전서의 세개의 기둥 데살로니가 후서의 세개의 기둥이 우리에게 세워지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함께 정말 아름다운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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