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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후서 5강 후서 2장 11절에서 15절 리더의 헌신 26.06.18(목)디모데 후서 2장 11절에서 15절 11 미쁘다 이 말

작성자시냇가에심은나무교회 01030072188|작성시간26.06.19|조회수33 목록 댓글 0

디모데전후서 5강 후서 2장 11절에서 15절 리더의 헌신

26.06.18(목)

 

디모데 후서 2장 11절에서 15절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4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지난번에는 리더가 훈련을 받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훈련이라는 건 힘들고 어렵지만 강하게 훈련을 해야 리더로 설 수 있게 되고 그 리더가 사람들에게 본을 보일 수 있고 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이제 다섯 번째 강의로 리더의 헌신에 대해서 같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리더의 헌신에서 포인트가 될 부분은 네 가지입니다. 

하나는 충성된 사람으로 헌신해야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온유한 사역자가 되므로 공동체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리더는 헌신하는 사람이어야만 됩니다. 

충성되게 헌신해야 리더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사역을 할 때 언제나 편안한 환경은 없습니다. 

고난의 환경 속에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헌신하지 않고는 교회 리더가 사역할 수가 없습니다. 헌신이라는 말은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자아 자기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고집 이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우리 주님께 다 드리는 것 그게 헌신이죠. 

 

교회 리더만 헌신하는 건 아닙니다. 

일반적인 사람들 가운데서도 헌신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 거기에 자기를 드리는 사람들이 세상 속에서도 언제나 많이 있죠. 그래서 디모데 후서 1장 3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은 거기 군인 또 운동선수 농부 이 사람들이 헌신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군인이야말로 정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한국의 남자들이 다 군대에 갔다 옵니다마는 군대에는 자기 사생활이 없습니다. 

 

자기 삶을 전체를 다 드려야 군인으로서 복무를 할 수가 있죠. 군인은 여러 가지 일을 해 나갈 때 굉장히 험악한 환경 가운데서 굉장히 힘든 환경 가운데서 그 복무를 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는 그 군 복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군인은 최종적으로 자기 생명까지도 내놓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내놓는 환경 속에서도 그것을 버리고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군인이죠. 

 

군인이야말로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버리고 헌신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그런 헌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예수님도 헌신한 분이시고 이 디모데 전후서를 쓴 사도 바울도 헌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리더들은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서 또 사도바울을 모델로 삼아서 헌신하는 사람이 바로 교회 리더들입니다. 

 

교회 리더들이 사역할 때 여러 가지 고난을 많이 당하지마는 그 고난을 당할 때마다 참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마다 소망을 가져야 되는 것이죠. 

 

오늘 성경 10절 이하의 말씀에는 소망을 가지는 것을 자세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당하는데 소망이 없으면 그 고난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보답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소망을 가질 때 그럴 때 이제 그 고난을 이겨내면서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다가 죽지마는 우리 주님과 함께 부활하고 주님과 함께 영광을 거두며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소망을 가질 때 고난을 이겨내면서 헌신적으로 사역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고난을 당할 때마다 인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시인해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시다 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이 쓰여지던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면 혹은 죽을 수도 있고 혹은 감옥에 갈 수도 있고 말할 수 없는 불이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 그래서 순교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들이죠.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세상 가운데 삶을 살아갈 때 혹은 말로 우리 신앙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초보적인 헌신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교회 리더들은 이렇게 헌신자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돼야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으로서 인정받아야 되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 주님께 인정을 받을 때 귀히 쓰임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디모데 후서 2장 14절 이하의 말씀에는 두 가지 면에서 우리 주님께 인정을 받아야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해서 부끄러움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아야 된다 라고 15절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 성경이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성경이 진리다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교회 리더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자기 지식에 따라서 자기 이성대로 성경을 교묘하게 왜곡해서 자기가 구세주다 자기가 어린 양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이단들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 성경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 꼭 맞도록 잘 확신하고 해석하고 그 말씀대로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그런 일꾼이 되는 것이죠. 또 한 가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 거룩한 주님께 귀의 쓰임을 받아야 된다고 21절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릇을 비유로 들으면서 말씀을 하고 있죠. 그릇 가운데는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 다양한 그릇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그릇들은 굉장히 비싸고 좋은 것이지만 찬장 속에 진열하고 장식품으로 쓰여지는 그릇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그렇게 좋은 재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정주부들이 늘 것을 잘 사용하는 그런 쓸모 있는 그릇이 있습니다. 쓰임받는 그릇이 있죠.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재질이 어떤 재질의 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깨끗하고 거룩해서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냐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리더들이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냐 가난하냐? 

많이 배웠느냐? 적게 배웠느냐? 그 사회적인 신분이 높으냐 낮으냐 젊으냐 뭐 나이가 많으냐 이런 것들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런 말씀이죠. 

 

늘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잘 준비가 되어 있어야 주님의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깨끗하게 정결하게 잘 준비하지 않으면서 그러면서 교회 직분을 탐하는 그런 이들도 얼마든지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리더로 세움받는데 아직 적절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준비가 안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더의 자리를 탐하는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죠. 

 

자기가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기 때문에 많은 것을 소유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역시 리더가 돼야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깨끗하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자기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교회 리더로 합당하고 우리 주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때 깨끗하게 자기를 준비할 때 우리 주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인정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5~2강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공동체를 화평케 하기 위해서 온유한 사역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을 디모데 후서 2장 22절 이하는 쭉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역을 하다보니까 고난 속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다 보면은 사역하는 사람도 자꾸 거칠어집니다. 좀 과격해지고요. 

 

이 강경한 게 항상 어 바른 것 같이 보이고 힘 있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점점 강경해지는 그런 경향을 가지게 됩니다. 

 

거짓 교사들이 거짓말로 교활한 음모를 꾸미면서 일을 할 때 그 사람들과 대응해서 여러 가지 진리를 지키고자 하다 보며는 교회 리더들도 자꾸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점점 과격해지고, 그런 일들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교회 리더는 환경에 좌우되면 안 됩니다. 교회의 리더는 다른 사람에게 지배되면 안 됩니다. 교회 리더는 항상 주님께 좌우가 돼야 되고 주님의 지배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인이 누구십니까? 우리 주님이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누가 나를 일꾼으로 삼고 누가 나를 리더로 세웠습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나를 일꾼으로 세우시고 리더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는지 예수님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는지 환경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게 좌우되지 않고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가야 되는 것이 바로 교회 리더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을까요? 우리 예수님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용서입니다. 화해입니다. 화평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죠. 우리가 사역하다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항상 우리가 염두에 둬야 될 것은 이런 경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는 것을 늘 다시 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뜻을 우리가 다시 한번 성찰하고 우리 주님의 방법을 따라가야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방법이 과연 어떤 방법인가를 다시 돌아보면서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 사역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참고 인내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방법에 순종하며 사역을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리더인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제 저희 교회에서도 사역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굉장히 집착을 하다 보니까 점점 이렇게 잘못된 방법으로 가게 됐는데 늘 의논하고 같이 기도하던 한 분이 목사님 이런 방법이 우리 예수님의 방법이 되겠습니까?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방법을 같이 따라가고 있다. 그런 것을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이켜서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 참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고 용서도 하고 품기도 하는 그런 방법으로 다시 나아간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저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저는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경우에든지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때도 혹은 또 거짓 교사들이 교활하는 방법을 사용할 때도 그 사람들에게 좌우되고 지배돼선 안 되고 언제든지 우리 예수님께 지배가 돼야 되고 우리 예수님의 뜻을 따라가야 되고 예수님의 방법을 순종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 리더입니다. 

 

그 다음에 또 교회의 리더는 자기 개인적으로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디모데 전서 6장 3절 이하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려서 헌신하는 사람은 욕심을 버려야됩니다. 

 

탐욕을 버리고 자신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헌신해서 자기를 다 들였는데 그러면서도 또 자기가 자기 욕심을 차린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교회 리더가 사역을 감당하면서 물질적인 욕심 권력의 욕심 혹은 명예의 욕심 혹은 성적인 욕심 이런 욕심들 때문에 무너지는 교회 리더들을 우리가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할 때는 교회가 핍박을 당할 때 부패하고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소유가 없어서 쩔쩔매고 그럴 때 부패하고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할 때는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다든지 기독교를 가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것이 그 사회 속에서 출세하는 길이 된다든지 교회에 굉장히 많은 헌금이나 또 기부하는 물질이 들어와서 부유해진다든지 그럴 때 이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성전을 화려하게 짓기 시작할때 그럴 때 이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죠. 성직자들이 사치하게 될 때 그럴 때 이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한 것입니다. 

 

성직자들이 정치적인 권력이나 혹은 돈의 권력과 같이 합쳐서 삶을 살아가고 같이 다닐 때 그럴 때 이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그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 절정에 이를 때 그럴 때 이제 종교 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 내버리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자 그것이 바로 종교 개혁입니다. 

 

교회 전체적인 삶에 있어서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교회 리더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자족하는 삶 금욕하고 절제하는 삶으로 갈 때 그럴 때 이제 교회가 정결하게 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6장 10절 말씀에는 탐욕이 모든 악의 뿌리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리더들을 병들게 하고 교회를 병들게 뿌리가 바로 탐욕이죠. 

 

그래서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을 자족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떤 환경에서든지 마음이 평안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늘 거룩하고 정결하게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 때문에 더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야 경건의 연습도 경건의 훈련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있으면 훈련이 안 됩니다. 운동선수든지 군인이든지 훈련할 때는 다 내버리고 아주 간편하게 간소하게 있어야 훈련이 가능한 것이죠. 

 

디모데 전서 6장 17절 이하의 말씀에는 그 자족의 실재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인제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자가 탐욕을 가지면은 그러면 이제 부자가 점점 부패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나 부자든지 뭐 많이 가지도 못한 사람이든지 누구든지 탐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병들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는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하나님 나라에서 어떻게 우리가 영생을 누리고 또 상금을 받으며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이죠. 땅에 있는 것을 붙잡으려고 움켜쥐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손을 펴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이죠. 

 

재물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은 재물을 나누는 것이 사실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잘 나누느냐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종교개혁이후에 기독교의 여러 가지 흐름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리에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강조를 하면서 교리 정통주의 율법주의에 빠지는 그런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이렇게 교리에만 빠져서는 안 되겠다. 해서 각성하기 시작해서 여러 곳곳에서 신앙생활을 더 잘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청교도들의 경건주의가 일어났고 또 유럽 대륙에서는 개혁주의 경건주의 또 루터 교회 경건주의 이런 경건주의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청교도 주의를 시작하고 그 청교도 정신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영국에서 신앙적으로 핍박을 당하니까 그러니까 이제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서 청교도가 꽃을 펴서 미국 사람들이 청교도 정신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점점 많이 쇠퇴해 가고는 있습니다마는 미국 사회가 처음 시작한 것이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이 됐습니다. 

 

청교도 정신은 근면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삶을 살아가고 그리고는 그 얻어진 것을 축적하고 그 축적된 것을 하나님이 일을 위해서 사용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청교도 정신입니다. 

 

막스 웨버가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 그 자본주의는 오늘날 같은 천민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 재화가 축적되면은 그것을 다시 재생산하고 그리고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하는 것이 자본주의 기본적인 정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모으기만 하고 나눌 줄 모르는 천민 자본주의를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마는 본래 자본주의는 출발할 때 이런 부지런히 일하지만 나누는 정신을 가지고 자본주의가 출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의 부자들 가운데 자기 재산을 굉장히 많이 기부하는 사람들 좋은 미담을 우리가 듣습니다. 

 

자기가 일생동안 일해서 굉장히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 그 재산을 자녀들한테 다 나눠주는 게 아니고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를 잘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재단을 만들고 거기에 기부하는 그런 아름다운 정신들을 우리가 보게 되죠. 

 

기부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 리더들은 자기 삶에 있어서는 자족하는 삶을 살고 그리고는 다른 사람 어려운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교회의 리더들입니다. 

 

오늘 리더의 헌신을 같이 말씀을 할 때에 리더는 헌신하는 사람이어야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헌신할 때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온유하게 사역을 감당할 때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공동체를 화평하기 세울 수 있는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삶을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는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 편한 대로 내 이익을 위해서만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았어요. 자기 생각 자기 이익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자기를 온전히 드리는 사람입니다. 

 

또 헌신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께 헌신해서 주님께 인정받지만 동시에 세상 사람들에게 화평하게 온유하게 사역을 감당함으로 나는 자족하고 사람들에게 나눔으로 인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칭찬받고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헌신된 리더입니다. 

 

사랑 여러분 우리 주님께 인정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헌신된 사람들로 소개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리더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할 텐데 먼저 기도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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