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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아빠 옛날 고향 장날을 추상하며

작성자쌍둥아빠|작성시간26.06.13|조회수98 목록 댓글 5

장 날

 

한국의 속담으로 가는 날이 장날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뜻하지 않은 일이 공교롭게 발생함을 비유한 긍정적 친숙한 말이다.

나의 고향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예전엔 전라북도)은 닷새마다 돌아 오는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시골에서의 장날은 삶의 리듬이며 활력소이고 꼭 필요한 일상이며 일정이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팔기도 하는 장날 장터를 풍경을 도시에서 살면서 생각 해 보았다.

도시생활의 공휴일과 같은 아니 꿀맛 같은 기다림의 날이다.

50년대, 내가 살던 고향은 주위가 산과 들만 보이는 작은 읍 소재지 농촌 마을이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생활 조사를 하면 부모님의 직업은90%이상이 농업이며 재봉틀 자전가가 있으면 부자집이다..

도로는 자갈밭 이였으며 도시와는 좀 먼 곳에 위치하여 문화생활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때 나는 기차도 구경하지 못했고 짜장면도 몰랐다.

외식이란 시장 통 국밥, 국수 밖에 몰랐다.

장날에는 인근 산촌 마을에서 이른 새벽부터 십리 이십리 그이상의 거리를 동네 사람들 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신작로 길을 따라 읍내 시장으로 쪽진 머리 모습으로 하얀 광목옷을 입고 모여들던 아낙네 아저씨 모습들만 눈에 선하다.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짊어지고 우마차로 또 잊어버릴만하면 한번씩 통과하는 덜덜거리는 만원 버스에 장 봇다리와 함께 모여든다.

여름엔 바지 끝과 치마 자락이 새벽 이슬에 젖고, 겨울엔 토끼털로 만든 귀마게와 목도리로 추위를 막아내며 발걸음을 부지런히 읍내 장으로 재촉한다.

어머니 혹 할머니를 따라 눈깔사탕이나 신발을 사 달라고 따라 나서는 아이들도 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자녀 학비나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농산물, , 염소, 돼지등의 가축들이 주인 손에 소가 이끄는 마차 소 또는 소 멍애 등에 실려오는 풍경도 있었습니다.

장 짐차, 짐바리 자전거에 봇짐를 실고 이장 저장 장날만 등장하는 장 똘배기 장사꾼,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원 어린이,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 또 정부에서 보호 받지 못했던 6.25 참전 상의용사 아저씨들 물건을 강매 또는 구걸하는 모습들도 많았습니다.

장터는 소전, 싸전, 어물전, 옹기전, 나무전, 포목전, 대장간, 인삼전등 장이 서면서 돌연 소란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시장으로 향하는 골목마다 손저울 됫박을 든 장사꾼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가격을 정당하게 흥정하는 것이 아니고 농축산물을 강제로 빼앗는것 같았습니다.

장사꾼들도 좌판을 펴고 장사가 시작되면 어느덧 드세고 험하게 생긴 지역 건달 수금원이 나타나 자릿세 요구에 거치른 말싸움이 오고간다.

이렇게 시작되는 장날 하루는 만병통치 약장사 스피커소리, 호객

흥정 하는 소리, 왁작 지껄 장터뿐만 아니라 읍 전체가 장날 분위기로 휩싸인다.

팔고 살 물건, 먹고 싶은 음식, 영화나 써커스 구경등을 5일 동안 생각했다 장날을 기해 해소를 한다.

무샛날(평일)은 가격 결정이 안되고 거래가 없어 시장은 무척 한산하다.

연중 제일 큰 대목장은 역시 우리 고유명절인 설과 추석이다.

아무리 가난한해도 조상님 제사상에 올릴 조기새끼 한마리라도 사러 읍내 시장에 나온다.

그때는 군 전체가 너, 나 없이 들뜬 마음과 분위기로 명절 준비로 절정을 이룬다.

할 일 없는 사람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읍내장터로 모여든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아이들도 업히고 걸리고 하여 장터에 모여들고 그 외의 군 전체 집은 텅 텅 비어 있다.

나는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바지저고리를 입고 흑백영화에 나오는 꾀죄죄한 촌놈 그 데로였다.

그러나 명절 전 대목장에 어머니께서는 번쩍거리는 단추가 달리고 비밀스런 안주머니가 있는 양복을 사주셨다.

안주머니에 세배 돈도 넣고 귀한 종이로 만든 딱지, 구술을 넣을 생각에 좋아했던 기억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장날은 목적이 있는 사람만 모이는 날이 아니었다.

장마다 꼴뚜기 란 말처럼 아무 일이 없어도 동내사람들을 따라 장에 오는 사람들도 있다.

장날 농사일을 하루 쉬면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 막걸리 한잔에 농사 이야기 자식이야기 하며 웃음꽃을 피워본다.

장날은 만남의 날이며 장터는 만남의 장소이다.

또 이별을 준비하는 슬픈 날 이기도하다.

모두들 인근에 실기 때문 시집간 딸도 만나고 사돈도 만나고 고모, 이모, 작은 아버지, 큰 아버지, 빗쟁이, 노름꾼, 소매치기등도 만난다.

전화도 없던 시절 이웃 동내에 사는 아는 사람에게 딸 안부도 묻고 다음 장날 만나자고 전하기도 한다

이웃집 형은 장날 돈을 준비하여 고향을 뒤로하고 객지로 떠난 후 아직 소식이 없고, 아래 마을 가난하게 살던 순이 누나는 약장사를 따라갔다는 소문도 있고 부잣집 식모로 갔다는 말도 장날에야 소식을 듣는다.

빌린 돈 과 이자는 언제 줄거야, 이자는 장변(5일 적용하는 이자)으로 하고 다음 다음 장보고 줄게 하는 약속도 장날 약정이 된다.

논 밭 산을 사고 파는 일들도 건간군(지금의 중게사)을 통해 장날 계약이 체결된다.

선생님 말씀, 너 월싸금 언제 낼 거야, 아버지께서 다음 장 보고 주신데요.

장가가는 아들 퇴방 몸체 뒤편에 언제 달아 줄 거야, 목수 토수는 다음 장보고 시간이 있어요 하는 약속도 장날이 기점이다.

그때 시골 전문직은 목수(목재 다루는 일) 토수(벽바르록 구둘 놓는일) 밖에 없었다.

이 모든 시 시 콜콜한 일들이 장날에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파장이 임박하면 막차 버스는 초만원 콩나물시루를 만들어 당시고장이 잦은 버스는 우직하고 힘이 쎈 조수, 오라이 소리와 함께 먼지는 신작로를 뒤 덥는다.

대부분의 장 봇다리와 함께 해가 지기 전 부지런히 집으로 향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밥에 막걸리 몇 대접 먹고 흔들리는 달과 함께흥얼 흥얼 거리며 갈지자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누런 횟푸대(씨멘트)종이에 지푸라기 끈으로 묶은 생선 몇 마리(내륙엔 소금에 절인 해산물)로 푸짐한 저녁상을 마련 노부모님과 함께 가족모두 즐거운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아쉬운지 발길을 떼지 못한 사람들은 선술집에 묵삭거리며 하루 셈과 더불어 희희낙낙 하다가 12시 통금 싸이렌과 함께 여인숙이나 연고가 있는 곳으로 슬금슬금 자취를 감춘다.

소란이 끝난 파장에는 그렇게 적막만이 까맣게 내려앉는다.

그때 주위엔 반디불, 밤하늘 별, 은하수가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먼 훗날 유년의 기억 한가운데 우뚝이 자리 잡고 있는 장날을 추상하며 나는 도시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밤이 깊어야 별빛이 빛나듯 세월이 더할수록 유년의 추억이 새로워지는 것이라면 아마도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그때 정경들을 영원히 그리워하리라~~~

고향 장날이 향수의 근원임을 믿으며~~~

 

쌍둥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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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강바람 | 작성시간 26.06.13 한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합니다.
    저희 어린 시절 시골 풍경은 어디나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쌍둥아빠님께서는 문단에 등단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 작성자리따 | 작성시간 26.06.13 장날은 지금도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장소같아요.
    쌍둥아빠님의 글을
    읽으니,그 시대의 생활상이 드라마처럼
    떠 올려지네요.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현재의 한국도
    좋지만 예전의 아름다운 민속풍경이
    사라진 현대의 도시화 된 풍경이 새삼 아쉽게
    느껴집니다.
  • 작성자별이 | 작성시간 26.06.13 쌍둥아빠님 !
    저도 코 흘리며 할머니 따라가던
    시골 장터 풍경
    그 시절 ~
    추억 합니다.
    단편 소설 읽듯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
  • 작성자지금부터 | 작성시간 26.06.13 옛날^^그 시절 그때가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쌍둥아빠님
  • 작성자사라봉 | 작성시간 26.06.13 쌍둥아빠님은 정말로 움직이는 고전이십니다.
    누에가 실을 뽑듯이 기억의 실꾸리에서
    끝없이 풀려나는 이야기들은 우리모두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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