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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그리스도인(지도자)의 근본 자질

작성자태민|작성시간26.06.08|조회수23 목록 댓글 0

 

성숙한 그리스도인(지도자)의 근본 자질

 

 

 

느헤미야 5:14-19

 

14 또한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부터 제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들이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느5: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느5:16 도리어 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내 모든 종자들도 모여서 일을 하였으며

 

느5:17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백오십 명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느5:18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이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느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오늘 본문은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의 근본 자질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또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바라보고 노력해야 할 목표를 제시합니다. 현재의  영적 상태에 안주하고 더 이상 영적 성장을 보이지 않는 신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 문제아가 되면서 주 예수님께 큰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

 

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1-3).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여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신자 및 영적 지도자의 특징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첫째, 14절을 보니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의 황제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 유다 땅 총독으로 파송 받은 때부터 12년 동안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 2장 1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 제 이십년 니산월”이 나오고 그때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슬픔과 사정을 알게 되면서 느헤미야를 유다 땅의 총독으로 임명하여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 14절은 느헤미야가 유다 땅에 총독으로 온 이후로부터 12년 동안에 있었던 자신의 삶에 대해 언급한 것입니다. 그는 유다 땅 총독으로 지내면서 다른 총독들과는 달리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편, 15절을 보면 유다 땅에서 느헤미야 이전에 있던 바사 제국의 총독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의 총독들과는 달리 포로 해방 이전부터 그 땅에 있던 사마리아 백성을 다스리던 총독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양식과 포도주와 은 사십 세겔을 빼앗았고, 총독과 함께 일하던 종자들 역시 그 땅의 백성을 압제하였습니다. 압제라는 것은 과거 우리 나라의 악독 사또들처럼 자기들의 힘을 쌓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 및 필요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느헤미야 이전의 총독들은 유다 땅의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징수하였고 강압적으로 고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사십 세겔의 세금 외에도 양식과 포도주를 별도로 징수하였습니다. 여기서 양식은 쌀이나 밀가루 등의 식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8절이 암시하는 것처럼 총독의 녹을 위하여 세금으로 거두었던 소와 양 등의 동물들도 포함하였습니다.

 

 

 

한편, 그 당시 노동자의 품삯은 ¼ 세겔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은 40 세겔은 대략 노동자의 160일치 노동에 해당합니다. 즉, 매번 적은 품삯의 50% 정도를 세금으로 떼어갔습니다. 이에 유다 땅의 백성들은 매우 고달프고 억울하고 비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총독으로서 총독의 녹을 먹을 수 있는 합당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관할지인 유다 땅에서 세금을 거두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개인의 욕심을 채우지는 않더라도 양심적이며 합법적인 차원에서 얼마든지 백성들로부터 세금과 양식과 포도주를 징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거 총독들의 관례를 따라 은 40세겔의 세금을 거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바사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가 직접 세운 유다 땅의 총독이었며 심지어 아닥사스다 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인 술관원장이었습니다.

 

 

 

하지만, 19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이나 영광이나 배를 불리지 않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이 점이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땅의 목사들 중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목사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최고 넓은 저택에서 살면서 한없이 많은 재정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헌금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립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도자들은 성경이 말하는 지도자가 전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10장은 성도들의 자유함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성숙한 성도들의 특권과 자유는 연약한 성도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제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 자신이 사도로서의 특권과 자유를 어떻게 제약하는지 그 실천의 예를 언급합니다. 그 내용은 매우 단순합니다. 즉, 사도로서 바울은 얼마든지 성도들에게 짐을 씌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합법적이며 성경적입니다. 심지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을 전해 받는 자들의 지원으로 살아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마땅히 성도들로부터 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돈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성도들의 녹을 거절하고 스스로 수고하며 살아갑니다.  

 

[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전 9:11-12, 18-19).

 

 

 

데살로니가후서 3장 8절에서도 바울의 마음과 정신 자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8-9).

 

바울은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천막을 지으며 자기 먹을 것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행동합니까? 그 이유는 혼자 잘 먹고 잘 살며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주의 백성들을 착취하거나 이용해 먹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자격이 전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지도자는 친히 그리스도의 본을 닮는 자로서 주의 모든 백성들을 참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의 자질입니다. 곧, 복음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넉넉히 체험함으로서 주의 백성들에게 부담을 주지 아니하려는 진정한 사랑이 넘쳐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느헤미야의 정신과 바울의 정신은 정확하게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땅 총독으로서 세금을 징수하고 백성들에게 양식과 포도주를 요구할 권한이 있었지만 그 권한과 자유를 내려놓았습니다. 즉, 권한이 있더라도 복음과 사랑을 위해 그 특권을 사용하지 않고 양보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교회 예산을 목사가 사용할 권리가 있어도 양들의 수고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정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1-15).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것은 느헤미야의 정신과 바울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입니다. 즉, 주의 양떼를 위해 자신을 비우고 희생하는 정신입니다.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지도자의 근본 자질입니다.

 

 

 

두 번째로, 느헤미야는 자비와 관용을 베풀며 영적 재건에 힘썼습니다. 16절에서 18절을 보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녹을 먹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도리어 성벽 재건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종들에게도 백성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힘을 다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원어로 16절을 의역하면 이러합니다.  

 

“나는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곳에 모인 나의 동역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전 총독들과는 철저하게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루살렘 성벽 쌓는 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였습니다(스 4:17-20). 또한 유다 백성의 귀족들이 성벽 재건 역사에 참여하지 아니한 것(3:5)과도 크게 대조됩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해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술관원이라는 편안하고 영화로운 자리(2:1)를 내려놓았고, 그 먼 예루살렘까지 왔으며, 성벽 재건 사역을 진행하는 동안 옷도 못 갈아입고 감독과 경비를 보는 힘든 수고를 감당하였습니다(4:23). 심지어 그는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산발랏 및 도비야, 게셈 등의 무리로부터 욕설과 조롱 및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6:2). 이처럼 수많은 대적들이 있는 가운데 느헤미야는 비록 힘들고 지친 상황이지만 계속 영적 재건에 온 마음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되려면 영적 재건에 온 힘과 뜻을 다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영적 지도자의 자질입니다. 그와 함께 동역하는 자들 역시 영적 재건에 온 힘을 다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다른 백성들보다 더 많이 성경보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연구하며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섬겨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땅을 사지 아니하였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그가 고리 대금으로 약자들의 땅을 빼앗지 않았다는 뜻입니다(10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기업인데 그 땅을 사서 빼앗는다는 것은 약자들을 착취하여 토지 몰수를 하였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고리대금 사업을 하던 귀족들과 민장들처럼 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의 계명을 어기면서 자기 개인의 영달이나 세력을 구축한 적도 없었고 재물을 쌓은 적도 없었습니다.

 

 

 

17절 이하를 보면, 느헤미야는 주의 백성들에게 관용하며 풍성하게 베푼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이 150명이 함께 참여하여 음식을 먹었고, 심지어 주변 이방 족속들 중에서도 수많이 사람들이 느헤미야의 상에 와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주변 외교 정책에 있어서도 크게 활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18절의 내용에 의하면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 수많은 닭으로 음식을 장만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약 4, 5 백명을 먹일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는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준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대접하였습니다.  

 

 

 

지금 이 내용은 느헤미야가 총독으로서의 사역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으며 나아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그 비용을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충당하지 않고 자기 개인 비용으로 충당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느헤미야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빚을 지는 상태가 아니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혜택으로 그보다 못한 상황에 있는 주의 백성들에게 맘껏 베풀었습니다. 기존의 총독들은 자신의 영광과 배와 세력을 위해 철저하게 세금을 거두고 더 많이 착취하였으나, 느헤미야는 총독으로서 공식적인 일을 하면서도 사재를 털 뿐만 아니라 힘 닿는대로 풍성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18절 끝 부분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 백성이 부역이 중함이었더라.”

 

즉, 유다 백성들은 이미 바사 제국에 내야 하는 세금 때문에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었고 나아가 성벽 재건을 위한 수고 때문에 여러가지로 힘들고 무거웠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의 이러한 상황을 배려하여 자비와 사랑을 맘껏 베푸는 느헤미야의 모습!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의 특징이며 영적 지도자의 자질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힘 닿는대로 풍성하게 나눌 것을 권면합니다. [

 

17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7-19).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이방에 펼쳐지는 최초의 역사의 주인공으로 고넬료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처음으로 성령을 받게 되는 영광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엄청난 영광을 누리게 된 이유는 경건과 풍성한 나눔과 기도였습니다.

 

[

 

1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라.

 

](행 10:1-2).

 

즉, 하나님께서는 풍성하게 나누며 구제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을 보면, 바울은 성도들이 연보를 풍성하게 하여 어려운 자들을 도우라고 권면합니다.

 

[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고후 9:7-11).

 

 

 

이처럼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하나님께 바치기를 즐겨하며 또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베풀기를 즐겨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영적 지도자는 자신의 가진 것 중에서 궁핍한 자들에게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는 이 시대에 있어서 물질을 주는 것만이 베푸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정신적인 면과 영적인 면에서 더욱 궁핍하기 때문에 따스한 마음으로 복음을 나누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물질을 나누어주는 것을 배제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란 하나님과 주님의 교회에, 나아가 사회에서 유익을 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영적인 유익, 정신적인 유익, 심지어 더 없이 가난한 자들을 향해 물질적인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영적 재건의 지도자의 자질입니다.

 

 

 

빌레몬서를 보면 노예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언급이 나옵니다. 오네시모는 과거에는 무익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의해 거듭난 후 그는 사람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게 되었도다”(빌 1:11).

 

 

 

영적으로 성숙한 자는 누구입니까? 주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자입니다. 덕을 끼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요긴하며 꼭 필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모든 선한 것들을 베푸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을 보면, 느헤미야는 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하는 가운데 비록 지치고 힘들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확신과 기쁨과 위로를 누립니다. 지금 19절의 고백은 구원 얻은 주의 종이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즉, 자기 의를 말하며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언약에 따라 바르게 행하였으니 주의 약속대로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는 계속 선행과 자비를 멈추지 않고 주의 백성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주의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간구의 기도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던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요 15:12-17).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란 자기 목숨을 버리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면 많은 과실을 맺고 또한 이를 위해 간구하는 것은 다 응답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느헤미야처럼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자들은 그들 마음 속에 기쁨과 확신이 넘치면서 그 사랑을 계속 실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헤를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그리스도께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가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십자가의 사랑을 행하려는 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구하든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도록 기도응답이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느니라”.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에 따라 우리가 주의 백성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하나님께서 왜 그 기도를 거절하시겠습니까?

 

 

 

이에 사도 요한은 선포합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은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뿌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영적 성숙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 비밀을 말합니다. 그것은 15절과 19절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하나님을 경외함”입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을 섬길 힘이 있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야 합니다. 만일 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도 없으며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근본 자질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그분으로부터 오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및 그분으로부터의 은혜를 바라는 것은 늘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코람데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을 실제로 느끼면서 그의 존전 앞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 앞에 계시는 것을 느끼며 사는 것입니다. 코람데오의 삶에 어찌 죄가 끼어 들 수 있으며, 어찌 불쌍한 영혼들을 보며 자비와 사랑을 베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코람데오의 마음 자세가 없는 사람은 영적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마음이 없이는 결코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영적 지도자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것이요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코람데오! 즉,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분의 은혜를 사모하는 바탕은 성경 전체에서 볼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 나타나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그럼에도 아들을 통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함과 하나님의 은혜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담당하셨고 그분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에게 나타나니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주관하고 인도하는 모든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3-14).

 

즉, 지금의 십자가의 은혜의 시대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느헤미야에게 나타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사랑에 강권함을 받는 신자들이 늘 기도합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주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의지합니다. 여기 제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주의 백성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원합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오셔서 저를 주관하소서. 오, 하나님! 그리스도를 통해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그들은 느헤미야처럼 영적 재건을 위해 온 힘을 다하다가 힘들고 지칠 때도 주께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이 필요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이신 생명과 권능의 성령께서 역사하기 시작합니다.

 

 

 

이 세상을 이길 힘을 어디서 얻습니까? 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우리가 주의 사랑의 계명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네, 믿음으로 감당합니다.

 

[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요일 5:3-5).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며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의지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라고 당부하십니다.

 

[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14).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교리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교양도 아닙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실제로 살아계시며 우리와 친히 함께 하시며 친히 돌보십니다. 이에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고 맘껏 베풀면서 영적 재건을 진행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영적 성장의 노선에 바로 서서 이 시대의 귀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위엄과 존귀함을 느끼면서, 또한 그분의 무한한 은혜를 날마다 힘입어 죄를 멀리하면서도 늘 주의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성령으로 충만한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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