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보는 눈과 듣는 귀
성 경 : 마 13:10-17(사 6:9-10)
사람은 누구나 눈과 귀가 있습니다.
눈과 귀는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중요한 지체로서 시각과 청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눈으로는 모든 사물을 보고 분별하며 귀로는 모든 소리를 듣고 판단합니다.
눈이 사물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귀가 소리를 잘 분별할 수 없다면 살아가는데 많은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눈이나 귀보다 더 중요한 기관이 없을 것입니다.
(마 6:22-23)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
우리의 주변에는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들이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잘 볼 수 있는 눈과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특히 영적인 눈과 귀를 소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두 종류의 눈과 두 종류의 귀에 대하여 언급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육의 눈과 귀로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영의 눈과 귀를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눈과 귀에는?
1) 육신의 눈과 귀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육신의 눈과 귀를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고 상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귀가 어두우면 눈먼 장님과 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육의 눈과 귀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눈과 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년간 방영한 것이 “한국인 무병장수 밥상의 비밀”이란 책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햇볕은 몸에 유익하지만 지나치면 눈에 좋지 않습니다. 태양광선에는 자외선이 있어 눈의 시신경을 파괴합니다.
자외선이 나오는 것으로 햇볕, TV, 컴퓨터, 휴대폰을 많이 사용하면 눈에 좋지 않습니다.
눈과 피부의 노화를 막아주는 것으로 시금치와 브로콜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시금치 주산지인 경남 남해 오연심(72세)은 시금치 농사를 40년째하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시금치 즙을 마시고, 시금치 나물, 시금치 국을 즐겨 먹는데 신문의 작은 글씨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남해에서 시금치 농사짓는 마을 노인 53명(그들의 평균나이 76세)을 대상으로 시력, 노인성 안질환인 백내장, 황반변성 정도를 검사했는데 대부분이 일반인보다 눈이 좋은 것으로 나왔다.
시금치는 눈을 보호하고 눈과 피부 노화를 방지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시금치는 혈관을 맑게 하여 뇌혈관 질환을 방지한다.
교인들 가운데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시술이나 수술을 한 분들이 여러 명 있습니다.
무릎관절에는 무엇이 좋은가 책을 찾아보니 매실이 좋다고 합니다.
매실은 몸의 열을 내리고 피로를 이기게 한다.
매실은 해독작용이 탁월하여 독감, 종기, 소화불량, 설사에 특효약이라 할 수 있다.
{예화} 오랜 경력의 의사 선생님은 사고를 당한 남자 중환자가 들어오면 수술을 하기 전에 수술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들이나 여자 환자에 대해서는 미리 말을 하지 않는데, 유독 남자 중환자가 실려 오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미리 결과를 예측했고, 대부분 예견한 대로 결과가 나타났다.
함께 근무하는 후배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런 선생님의 능력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로 젊은 의사들이 보기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그 의사는 어렵겠다는 말을 하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면 젊은 의사들은 노의사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를 살려내기 위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노력해보지만 결과는 노의사의 짐작대로 나타난다.
젊은 의사들은 분명 환자의 상태를 봐서는 살 수 있는 사람 같은데 살지 못하는 것을 노의사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하였다.
젊은 의사들이 모여 노의사의 비결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잇을 때 그가 들어왔다.
의사들 중 한명이 그에게 환자의 수술 결과를 짐작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비결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였다.
“에이, 별것 아닌데! 뭐 그런걸 알려고 해?” “아닙니다. 선생님의 표정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력에서 우러나오는 의학적인 비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짜 별것 아니래도!” “그래도 꼭 알고 싶습니다!”
“정 그렇다면......, 중환자가 들어오면 예쁜 간호사를 들여보내는 거야. 환자 옆을 자꾸 왔다 갔다 하게 해서 환자의 눈동자가 간호사를 100% 따라다니면 100% 살 사람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은 어려운 사람이지!
내 경험으로 봐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살려는 사람인지 포기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네!”
노련한 의사는 환자의 눈을 보고 어디가 아픈지, 무슨 병이 있는지, 죽을 사람인지 살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교회 사택에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목사님과 상담 좀 하고 쉽다고 한다.
목사를 상담하려 찾아온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면 저 사람이 예수 믿기 위해 찾아왔는지, 문제가 있어 찾아왔는지, 돈 얻으러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 지성적인 눈과 귀가 있습니다.
육신의 눈과 귀는 밝지만 지성적인 눈과 귀가 어두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글을 배우지 않아서 글을 못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은 떴으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뉴턴은 과일 나무에서 과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습니다.
에디슨은 하늘에서 번개 치는 것을 보고 전기를 발명했습니다.
스티븐슨은 주전자의 끊는 물을 보고 증기기관을 발명해 냈습니다.
지성적인 눈이 밝으려면 지식을 많이 함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2. 성도들의 눈과 귀는?
1) 깨끗한 눈이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성도의 눈은 비둘기의 눈과 같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둘기의 눈에는 늘 눈물이 고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사랑이 가득한 눈물이 고여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눈물이 늘 고여 있었습니다.
(사 33:15 하)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와 같이 악을 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창 9:21-27)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고 누웠을 때에 그의 둘째 아들 함이 그것을 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보도록 소문을 내고 흉을 보았으나 큰아들 셈과 막내아들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남도 보지 못하도록 가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지만 허물을 보고서 흉보았던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감아 악을 보지 말아야 하고 악한 일을 생각지도 말아야 하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마 5:29)에서 예수님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눈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을 뵙기를 바랍니다.
2) 성도들의 눈은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라야 합니다.
(골 3:1 중)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스데반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을 향해 복음을 증거 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며 돌을 들어 치려고 했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항상 그늘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사 40:31)의 말씀과 같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성도는 믿음의 눈과 신령한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에 눈이 가려진 사람은 물질만이 보이고, 신령한 세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돈으로 눈이 가려져 있는 사람은 돈만 보일 뿐, 형제도, 부모도 보이지 않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끔 돈이 눈과 귀를 막게 됩니다.
{예화} 어느 날 아메리칸 인디언청년이 뉴욕시내 한 가운데에 살고 있는 백인 미국친구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이는 오랫동안 친한 사이였습니다.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시내의 시가를 둘이서 걷고 있었는데 이 인디언 친구가 느닷없이 발을 멈추더니 "이 시내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누먼" 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소음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은 겁니다. 그때에 미국친구는 말하기를 "야! 이 뉴욕 한가운데에 무슨 놈의 귀뚜라미 소리란 말인가" 라고 거부를 했더니 이리 와 보라고. 귀뚜라미 소리 나는 쪽으로 계속 둘이 걸어가 보니깐 길모퉁이에 넝쿨나무로 된 집에 벽 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미국 백인친구는 말하기를 "자네는 시골에서 살아서 청각이 아주 뛰어나게 좋은가 보구만"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메리칸 인디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50전짜리 동전 하나를 아스팔트 땅에다가 떨어뜨렸습니다. 데구루루 굴러가더니 저만큼 가서 던져졌는데 길 가던 사람이 모두 발을 멈추고 그걸 바라봅니다.
그 중에 꼬마하나가 빨리 가서 50전짜리를 손에 들고 돈 주웠다고 좋아하면서 돌아오는 겁니다.
그때에 아메리칸 인디언 친구가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귀가 밝은 게 아니라 당신들의 귀가 어두워진 거요. 문제는 관심사가 문제라고요." 귀뚜라미 소리는 안 들려도 돈 소리는 들리지 않느냐, 이렇게 비웃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바로 거기에 여러분의 사람됨에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이제는 우리의 눈에 우리의 귀에 영적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Butler(비틀러)는 말하기를 “눈을 감으라, 그리하면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안 요한 목사는 원래 목사의 아들이었지만 그가 육신의 눈이 좋아 잘 보이고 자신이 있다고 생각된 때에는 영계를 보지 못했습니다.
영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잘 안 보이기 시작하다가 완전히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세상의 물질세계가 안 보이게 되자 신령한 영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영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영안으로만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음성도 영적인 귀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육의 눈으로 볼 수 없고, 육의 귀로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영의 눈과 귀가 열려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승리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3) 영적인 추수의 밭을 바라 볼 줄 아는 눈과 지금도 와서 도와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들
을 줄 아는 귀가 되어야 합니다.
농부들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여 농사를 짓듯이 영적인 세계에도 추수가 있다는 것을 영의 눈을 떠서 바라 볼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들의 세계로 들어와 우리들에게 복음의 복된 소식을 전해 달라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들려 달라고 외치는 영혼들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신령한 귀들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저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하루는 밤에 환상가운데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말고 유럽으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전도지역을 옮기게 된다. 우리도 바울처럼 기도 중에 환상을 보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요즈음 우리의 눈과 귀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보이고 들려지고 있습니다.
TV, 라디오, 컴퓨터, 신문, 잡지 등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위하고 살찌게 하는 대중전달 매체는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고 또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려서 보고 가려서 들어야 하겠습니다.
대중 매체가 복음을 전하는 매체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현재 복음을 전하는 대중매체로서 몇 개의 방송국과 신문사가 있습니다만 TV가 광범위하게 선교 매체로서 사용되어 저야 합니다.
우리들은 지적인 눈과 귀도 소유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하늘나라의 비밀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성도들이 될 때 우리들의 눈과 귀는 복된 것이 될 것입니다.
눈과 귀에 이상이 있을 때 안과, 이비인후과를 찾아 정밀 진단을 받는 것처럼 우리들의 영적인 눈과 귀가 밝은지 한번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눈에 우리들의 눈을 맞추고 예수님의 귀에 우리들의 귀를 기울여서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는 복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