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시선]최승호의 ‘물 위에 물 아래’
입력2015.08.16. 오후 9:40
▲ 물 위에 물 아래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수부(水夫)는 시체를 건지려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호수 밑바닥에 소리 없이 점점 불어나는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버려진 태아와 애벌레와
더러는 고양이도 개도 반죽된
개흙투성이 흙탕물 속에
신발짝, 깨진 플라스틱통, 비닐조각 따위를
먹고 배때기가
뚱뚱해진 쓰레기들의 엄청난 무덤을,
갈수록 시체처럼 몸집이 불어나는 무덤을
본다 폐수의 독에 중독된 채
창자가 곪아가는 우울한 쇠우렁이를
물가에 발상했던 문명이
처리되지 않은 뒷구멍의 온갖 배설물과 함께
곪아가는 증거를
호수를 둘러싼 호텔과 산들의 경관에
취하면서 유원지를 향해
관광객들이 잔잔한 호수를 건너갈 때
△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계절이다. 아름답고 재미있는 휴양지를 찾느라 분주할 때다. 즐거운 휴식을 위해 정말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불편하게 썩은 내부를, 구역질나는 환부를 투시경으로 보듯 불편하게 까발려서 보여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자연과 사회는, 삶과 현실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보면,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기대를 배반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시는 고발이 아니라 질문이다. 왜 점점 아름다움이 많이 소비되는가. 왜 갈수록 디자인과 이미지가 중요해지는가. 왜 포장은 내용물에 비해 턱없이 커지고 화려해지는가. 왜 말은 그토록 매끄럽고 기름지며 많은 장식이 달리는가. 왜 갈수록 법은 정교해지고 제도는 복잡해지는가. 이 시는 이런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고 편안하고 좋은 것만 보려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는 몽둥이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