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딘 (James Byron Dean)
생년월일 : 1931. 2. 8 ~ 1955년 9. 30
신 장 : 173cm
출생지 : 미국 인디애나 마리온
학 력 : 산타 모니카 대학
데뷔작 : 픽시드 베이어니츠
치과의사를 아버지로 태어나 고교 때에는 스포츠에 열중했으나, 산타모니카의 주니어 칼리지 시절에 연극을 시작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캘리포니아대학 법대에 입학했으나 연극과로 옮겨버리고 말았다. 몇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으나 별로 알아주지 않자,
뉴욕으로 갔다. 몇편의 무대를 거쳐서 54년에 앙드레지드 원작의 <배덕자(The Immoralist)>로 그해 최우수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아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최고권위의 연기학교인 액터즈 스튜디오에 들어가 엘리아 카잔 감독의 연기지도를 받다가 <에덴의 동쪽>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 그는 생전에 피어 안젤리, 나탈리 우드, 어슈라 안드레스 등의 여배우들과 로맨스가 있었으나 모두 불발로
끝났다. 그는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가장 잘 표현한 개성과 연기력, 영화의 화면에 잘 어울리는(포토제닉) 외모로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을 받고 있으며, 죽은 지 4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은 생생하다.
그는 고등학생때 농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하고(L.A.Lakers Team) 방송국 시험에서 엄청난 경쟁을 물리치고 제작회사에도
들어갔었다. 코메디 프로에도 참여하다가 또 한번의 영화 오디션에서 수백대 1의 경쟁을 뚫고 2명이 합격하는데 성공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30년 만에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폴 뉴먼이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제임스 딘이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은
폴 뉴먼의 아내였다고 한다. 그가 3편의 영화 중 마지막으로 찍은 <자이언트>는 그가 죽고 난 후에 유명해지고 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서 말썽이 있던 록 허드슨과 함께 탈락하고 말았다. 그때의 남우주연상은 제임스에게 수여될 계획이었었다.
<자이언트>를 완성하고 몇 일 후인 1955년 9월 30일,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대회에 참가하려고 그의 애차 포르셰 스파이더
경주용차를 몰고 가다가 마주오던 대학생이 몰던 대형 승용차와 충돌해서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파란만장했던 24세의 일기였다.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의 불꽃같은 러브스토리
첫 영화 "에덴의 동쪽"에서 제임스 딘의 연기는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남자들은 그의 반항적인 우수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모습을, 여자들은 그의 고독한 모습에
감싸주고 싶은 모성애를 느꼈다. 당대의 명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조차 그에게 사랑을 느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에덴의 동쪽 촬영중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 당시 또 한명의 스타 폴 뉴는
"피어 안젤리"와 연기하면서 그녀의 순수함을 알게 되었고, 그의 지인 "제임스 딘"에게 소개한다.
제임스 딘은 피어 안젤리를 처음 봤을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천사를 본 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제임스는 피어로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버린
제임스 딘과 피어 안젤리...그후 안젤리와 딘은 정말 열렬할 정도로 사랑을 하게 되었지만,
종교 문제로 안젤리의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는 바람에 헤어지고 만다. 대신 어머니가 피어에게
추천한 사람은 가수 "빅 데이먼".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던 그녀는 빅 데이먼과 교제를 한다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보낸 제임스 딘.
상처받은 그는 2번째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서 어둡고 고독한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산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잃게 된 제임스 딘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주위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까지 권할 정도였다. 마침내 그녀의 결혼 소식을 접한 제임스 딘은 망연자실하기에 이르고,
피어 안젤리의 결혼식 날 제임스는 광적인 레이싱을 벌여 많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피어 안젤리 역시 제임스 딘에 대한 사랑을 감출 수 없었고, 피어의 남편인
빅 데이먼이 제임스 딘의 영화 촬영장을 찾기에 이른다. "피어는 내 아내이니 그녀를 잊어주시오.
그것이 그녀를 위하는 최선의 길이오" 하는 말을 건네자, 빅 데이먼에게 피어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부탁한 제임스 딘은 그 길로 차를 몰고 나가버렸다.
그 때가 오후 5시 39분..
잊어야 하는 사람인줄 알고 있었지만, 마음 속에 들어온 유일한 여자였던 그녀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 제임스 딘은 죽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엄청난 속력으로 달렸다. 유난히 노을이 붉었던 그날,
1955년 9월 30일. 저녁노을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제임스 딘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를 들이 받았다. 그 때가 오후 5시 59분.
영화 촬영장에서 뛰쳐나온지 정확히 20분 만에 벌어진 비극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의 죽음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일부 팬들은 그가 얼굴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어디론가 잠적했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추측을 끊임없이 내놓았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는 여자들이
제임스 딘의 죽음을 비관, 집단 가출해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여파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임스 딘의 죽음에 가장 큰 죄책감을 가진 사람은
피어 안젤리였다. 괴로워 하던 그녀는 빅 데이먼과 이혼했고, 39살의 나이로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죽기전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오직 제임스 딘이었다고 고백했다 한다>
제임스 딘의 무덤에는 아직도 그의 죽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짧았던 삶과 사랑은 어쩌면 그가 꿈꿔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남긴 말이 이를 증명한다.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 - 제임스 딘(1931~1955) -
"The grafitication comes in the doing, not in the result."
만족은 행동에 있는 것이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Dream as if you'll forever, lives as if you'll die today. "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Only the gentle are ever really strong."
부드러운 자만이 진실로 강한 자다.
"Being a good actor isn't easy. Being a man is even harder.
I want to be both before I'm done."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는 죽기 전까지 둘 다 이루고 싶다.
그가 생전에 아끼던 '포르쉐 550 스파이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고 현장. 1955년 9월 30일 오후 5시 25분 경에 그는 이 차를 몰고 가던 중 교통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참혹하게 부서져 버린 포르쉐의 모습.
제임스 딘 사망 이후 그의 포르쉐는 수리 작업을 거쳐 다시 중고차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하지만 이 차량은 판매될 때마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운전사를 사망시켰다. 결국 이 차는 폐차가 결정되었는데 그 후 이 차의 부품을 떼어다 붙인
다른 차량 역시 같은 교통사고로 운전자를 죽음으로 몰았다.
일명 포르쉐의 저주라고 불리운다.
제임스 딘이 살아 생전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배우
안나 마리아 피어안젤리 Anna Maria Pierangeli
(1932-1971)
제임스 딘과 연인이었던 피어 안젤리.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제임스 딘의 사고는 그로 인한 상실감과 절망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피어는 제임스 딘의 죽음
이후 남편과 이혼, 39세의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Jimmy(제임스 딘의 애칭) 한 사람 뿐이었어요,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 사람이 지미라면 얼마나 좋을까...?' "
"It lives quickly, it dies early, it leaves a like that most beautiful love..."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
-by James D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