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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구 문학상

작성자김두기|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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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아래

범어사 공양간에서는 새벽마다 물이 흘렀다.

배수로를 따라 쌀 씻은 물이 내려갔고, 부엌 쪽에서는 솥뚜껑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일했다. 공양간 뒤편에는 금이 간 파란 대야 하나가 있었는데, 비가 오면 빗물이 고였고 맑은 날에도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은 비어 있었다.

어느 날은 공사장 주변을 돌며 전선 토막을 주웠고, 어느 날은 그냥 운동장에 앉아 있었다. 기억은 뒤섞여 있다. 고철상 저울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고, 길 건너 세탁소 앞에 묶여 있던 누런 개가 먼저 생각날 때도 있다.

절에 들어간 뒤 채공간에서 설거지를 했다.

겨울이면 고무장갑 안으로 물이 스며들었다. 그릇은 계속 쌓였고 설거지통 물은 자꾸 식었다.

어느 날 마지막 대접을 헹구고 있었는데 창문 쪽이 밝아졌다.

누가 불을 켠 것도 아니었다.

설거지통 물결이 흔들렸고 스테인리스 그릇 바닥에 빛이 번졌다.

대숲에서는 바람이 지나갔다.

멀리 목탁 소리가 들렸다가 멎었다.

설거지통 가장자리에 붙어 있던 밥풀 하나가 물을 먹으며 풀어지고 있었다.

얼마 동안 서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날에도 설거지는 계속했다.

사미계를 받은 날보다

법당 아래에서 잠들어 있던 누런 개 한 마리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몇 해 뒤 절을 내려왔다.

주차장에는 트럭 한 대가 서 있었고, 흙바닥에는 타이어 자국이 겹쳐 있었다.

지금은 금정구 골목을 쓴다.

비에 젖은 전단지와 깨진 병 조각을 모으며 새벽을 지난다.

시장 뒤편에는 버려진 의자 하나가 오래 놓여 있었다.

등받이는 멀쩡했는데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지나가 보니 의자 옆에 녹색 슬리퍼 한 짝이 놓여 있었다. 그다음 주에도 그대로였다. 금정산 쪽 하늘은 이미 밝아지고 있었는데, 골목 끝 가로등 하나는 꺼져 있었고 그 옆 가로등은 아직 켜져 있었다.



2 공양간 뒤편

범어사 공양간 뒤 수도가에서는 물소리가 오래 났다.

어머니는 날이 밝기 전 집을 나섰다. 산에서 종소리가 내려오기 전에 이미 공양간 불은 켜져 있었다고 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집은 비어 있었다. 부엌에는 아침에 먹다 남은 보리차가 식어 있었고 창틀에는 파리 한 마리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배가 고프면 공사장 주변을 돌았다. 구부러진 철근 조각이나 전선 토막을 주워 자루에 넣었다. 고철상 저울 위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게보다 가게 안 라면 상자를 더 자주 보았다.

공양간 뒤편에는 파란 대야 하나가 있었다. 한쪽이 금 가 있었는데도 버리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에도 거기 있었고, 비가 그친 뒤에도 거기 있었다. 왜 치우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저녁이면 어머니가 돌아왔다.

월급봉투는 늘 앞치마 안쪽에서 나왔다. 봉투 모서리는 닳아 있었고 접힌 자리는 반들거렸다. 어머니는 봉투를 내려놓고도 바로 펼치지 않았다. 먼저 쌀독을 열어 보았고, 남은 반찬을 살폈다. 그 뒤에야 봉투를 만졌다.

방 안에는 작은 라디오가 있었다. 잡음이 섞인 목소리가 밤늦게까지 흘러나왔지만 무슨 말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몇십 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새벽 골목을 쓴다. 젖은 전단지와 깨진 병 조각, 밤새 쌓인 쓰레기를 모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며칠 전 시장 뒤편에서 버려진 의자 하나를 보았다. 등받이는 멀쩡했는데도 담장 쪽을 향한 채 놓여 있었다. 누가 내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의자 옆에는 종이봉투 하나가 젖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게로 집어 손수레에 올렸다.

그때 봉투 밑에서 달팽이 한 마리가 나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범어사 쪽 하늘은 이미 밝아졌는데

골목 끝 가로등 하나는 한참 뒤까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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