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서원
청계서원 마당에는 늦은 햇빛이 남아 있었다.
기둥 밑 그림자는 짧아졌다 길어지기를 반복하고, 계단 모서리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있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자 감나무 잎 몇 장이 뒤집혔다.
탁영 김일손의 이름은 현판에 남아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래 버틴 것들의 표정이었다.
돌담은 무너진 자리를 다시 쌓은 흔적을 품고 있었고, 나무는 굽은 채 자라면서도 끝내 산 쪽으로 가지를 내밀고 있었다.
계곡물 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물을 붙들어 두지 못하듯 사람도 오래 머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끝내 접지 않았던 생각 하나는 이 자리에 남아 계절마다 다시 바람을 맞고 있었다.
서원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마당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데도 허전하지 않았다.
햇빛이 떠난 자리와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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