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들 앞에서
물가에 선 부들은
서둘러 꽃 피우지 않는다
한 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몸을 조금씩 기울 뿐이다
젊은 날 나는
곧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비에 젖고도 웃었고
상처를 감춘 채 사람들 틈을 걸었다
그러나 세월은
곧은 것보다 버티는 것이 길다는 걸 가르쳤다
새벽에 점 되어
빗자루로 오늘도 하루를
다시 기록한다
부들 하나가 흔들릴 때
옆의 부들도 함께 흔들린다
혼자 서 있는 것 같아도
저마다 바람을 나누어 가진다
돌아보면 내 삶도 그랬다
가난이 지나간 자리와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
말 못 한 서러움들이
강물처럼 속을 흘러갔다
그래도 끝내 쓰러지지 않은 것은
뿌리가 물속 깊은 곳에서
어둠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부들은 아무 말이 없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늦게 배운 삶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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