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과 2학년 아이들이 요새 난리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녀석들에겐 애니멀에서 휴먼으로 거듭나는데 첫 신호를 알리는 카데바 실습이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들어 부쩍 카데바 실습과 관련하여 선배인 나에게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전에 해부학 교실이라는 영화로도 소개가 되어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카데바 실습에 대하여 소개하자면, 카데바 실습시간이라는 것은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해부학을 배우게 될 때 즈음 진도에 맞추어 인체를 해부하는 실습시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날은 평소 수업시간과는 다르게 가운 혹은 수술복을 입고 수술용 라텍스 장갑을 손에 끼며 포셉으로 이리저리 집어가며 날카로운 메스날로 인체를 직접 해부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마 인체를 처음 해부하는 그 순간은, 의학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잊지 못할 것이다. (영문은 Cadaver인데 카데바라고 읽는다.)
카데바와 관련하여 당시에 루머처럼 돌았던 이야기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실습 도중에 카데바가 살아나서 수술을 해서 살렸데.'와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루머부터 시작해서 '카데바를 보는 순간 여기저기서 구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라며 약간의 오버가 가미된 선배들의 후배 겁주기용 현장 르포 혹은 '카데바 실습실에서 누군가 귀신을 본 적이 있다.'라는 고전적인 공포괴담까지. 그렇게 실습 첫 날 강의실 분위기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카데바 관련 정보 및 소문을 공유하느라 찌라시화 되간다. 하지만 그 루머중 진실로 확인 된 것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혹은 '해부학 박 모 교수님은 맨손으로 카데바를 만지고 그 손에 침 묻혀서 해부학 책을 넘기시며 수업하신데.' 였다. 으-.
나 역시도 실습 첫 날 외로이 홀로 떨어져 있는 카데바 실습실을 향해 걸어가며 절반의 기대와 절반의 두려움 속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떠도는 소문 중에서 그럴싸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심하게 걱정도 해보고, 실제로 내가 메스를 잡고 인간의 배를 가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고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무서움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은데다가 카데바 실습실이 의과대학 건물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있었기에 바지에 오줌을 지릴만큼이나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대체로 카데바 실습실은 의과대학 건물과 동떨어진 외딴 곳에 있거나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실습실 안으로 처음 들어서는 순간 찐한 포름 알데히드 냄새가 우리를 맞이했다. 테이블 위에는 관모양의 덮개가 카데바를 덮고 있었는데 총 13구의 시체가 그 아래 놓여있었다. 한의대가 한구를 사용하고 나머진 우리에게 배정되었다. (1조 10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시체 한구가 해부용으로 제공된 셈이다.) 일단은 실습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서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에 대한 천도제를 지내고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사실 근래들어 해부용 시신 기증자가 줄어서 몇몇 의과대학은 카데바 실습을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정상적으로는 시체 한구당 4~5명 정도의 학생들이 해부 실습에 참여해야 하지만 현재 메이져 의대를 제외하고는 시신 기증이 원할하게 이루어 지지 않아, 시체 한 구당 비정상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배정되고 있어 실습 수업의 참여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해부용로 제공되는 카데바는 주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행려자나 노숙자의 시신이 대부분이며 일부 종립대학에서는 교역자나 교도들의 기증의사를 받아 아슬아슬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몇년 전부터 시신 기증자들의 가족을 초청하여 대대적인 추모행사와 함께 시신 기증 약속을 받는 서약식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신 기증에 참여자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매년 실습 해당학년에서 20명 가량을 뽑아서 반강제적으로 기증서를 쓰도록 장려하고 있다. 나 역시도 본과 2학년 겨울, 학생회였다는 이유로 시신 기증 서약에 참가한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지금에야 의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하여 나의 육신이 쓰여진다고 하니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꼬꼬마였던 당시엔 꽤나 억울한 기분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기증받은 시신들을 위해 천도제와 묵념을 지내고 난 후, 덮개를 열면 하얀 PVC 비닐로 덮여있는 카데바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카데바 구성도 다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그리고 때로는 20대 아가씨 카데바를 배정받는 조도 있다. (여기서 잠깐, 친한 후배가 '형 네이버 지식인에서 봤는데 카데바는 정말 목이 없어요?'라며 물은 적이 있는데 목이나 머릿 속 뇌까지 열어서 봐야하기 때문에 카데바는 사후 포름 알데히드에 절여서 부패하지 않도록 해놓은 것 이외엔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당시 우리 조는 굉장히 뚱뚱한 할머니를 배정 받았는데, 이렇게 뚱뚱한 시신에서는 지방이 녹아내리면서 알데히드 냄새와 섞여 굉장한 악취가 나기에 한 여름의 실습기간 내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사지의 피부를 절개하고 해부학 원서에 나온데로 근육을 갈라서 보는 것을 첫 시작으로 카데바 실습은 그렇게 진행 되었다. 폴리클 실습 당시의 기억을 회고해 본다면 실제 살아 숨쉬는 사람의 피부를 절개할 때의 느낌과는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꼬꼬마 당시엔 그것도 나름 굉장한 의학 행위(?)였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실습 테이블 위 카데바는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어 사지가 굴곡 되어있으면 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또한 실제 피부를 가르면 출혈이 생기지만 카데바의 경우엔 피가 대부분 혈관내에서 굳어 있기에 피가 흐르진 않는다. 그 후, 노란 지방조직을 벗겨내고 나면 근육을 만날 수 있다. 대개 교과과정 속의 혈관이나 신경, 근육등은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어 잇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동맥-빨강, 정맥-파랑, 신경-노랑, 근육-분홍) 실제 인체에선 다 비슷비슷한 색깔로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여담 하나 하자면, 대한민국 평균 식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카데바 첫 실습을 마치고 나와서 막지 못하는 음식이 몇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삼겹살, 곱창, 카레, 짜장면이다. 실습 시간을 몇차례 더 가지다 보면 어느정도 내성이 생겨 극복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곱창은 절대 못 먹는다 사료된다. 나 역시 카데바 실습 거의 막바지에 동기와 곱창볶음을 먹으로 간 적이있었는데 역한 냄새와 좋지않은 상상덕분에 한 젓가락도 못뜨고 둘다 음식점을 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아마 열거한 음식 외에도 몇가지 더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카데바 실습을 마친 후 먹지 못하는 것 설문조사를 해보면 순위권 안에 들 음식이 아닌가 싶다. (심한 경우는 몇끼니 식사를 하지 못하는 누님들도 있었다.)
그렇게 몇번의 카데바 수업을 거치고 나면 근육을 모두 박리해서 origin과 insertion을 확인하면, '그 근육이 저리 생겼기에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구나.'라는 대강의 틀을 잡을 수 있게된다. 그렇게 사지의 근육 및 신경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살펴보는데, 간부터 시작해서 심장, 위, 창자, 식도, 폐 등 그동안 책에서만 접했던 혹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장기들을 실제로 만져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각 장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난 후, 하나하나 박리하여 얼추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들어보기도 하고 그 크기를 가늠해 보기도 하며 메스로 갈라서 속을 들어다 보기도 하고 실질을 만져보기도 한다. 느낌은 뭐랄까, 우리가 흔히 순대를 구입하게 되면 딸려나오는 간, 허파, 내장 등과 비슷한 느낌이다. 창자를 갈라보면 실제 소화된 음식물이 나오기도 하고 담낭을 뜯어내 그 속을 갈라보면 아기자기한 담석들이 있는 경우도 많다. 해부학 원서와 이모저모 비교해 보며 누군가는 토론을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는 직접그려보기도 한다. 물론 이 때까지도 무서워서 메스를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채 멀리서 벌벌 떨며 지켜보는 동기들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 더 넓고 오묘한 의학의 세계가 있는지 모른채, 카데바 실습 후 꼬꼬마들은 흥분하며 내과가 적성에 맞구나 혹은 외과가 적성에 맞구나란 이야기들을 많이 하곤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은 그리 오래가진 못한다. 임상을 배우고 폴리클 실습을 돌면서 꿈은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절대 써젼은 하지 말하야 겠다던 당시 생각이 폴리클 실습을 돌며 180도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복부가 끝나면 생식기로 내려오게 된다. (개인적으론 생식기 해부 수업에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다.) 혹시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아랫도리를 열고 단단한 치골결합을 만져보길 바란다. 여성의 내부 생식기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 치골결합이라는 녀석을 끊어 놓아야 한다. 참고로 치골결합이라는게 출산시에 열리어 아이들이 밖으로 기어 나올수 있게끔 하는데, 출산의 시간 외에는 무척이나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건장한 청년 서너명이 완력으로 벌릴려고 해도 벌려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리없던 용감한 꼬꼬마들은 그날도 그 결합을 힘으로 제압해보겠다며 무척이나 용을 썼다. 후에 조교가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데 뭐하니라며 우리를 놀렸는데, 그 결합력이 가히 어떤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더불어 이 막강한 결합력 앞에 꼬꼬마들은 '어머니가 그 고통을 이기시고 나를 낳으셨구나.'라며 출산의 숭고함과 어머니의 대단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로 그 날 실습이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꼬꼬마들도 많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치골결합 외에도 할아버지 시신에서는 간혹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되고는 하는데 '구슬'이 바로 그것이다. 웬걸, 그날도 어디선가 야 여기 구슬이 있어라며 보여주는데 8개 정도되는 쇠구슬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자세한 부가 설명은 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리라 생각 되기에 긴 설명없이 넘어가도록 하겠다. 혹시나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궁금하다 하는 분들은 개원 비뇨기과 홈페이지에 가서 여쭈어 보시기를. 그렇게 생식기를 다보고 나면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우리의 모든 것을 제어하고 지시하는 브레인이다.
브레인 역시 단단한 머리뼈로 둘러 쌓여 있기에 전기톱을 이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선배들로 부터 내려오는 족보가 한가지 있는데, 절대 카데바의 눈을 마주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혹여나 눈을 마주치면 머릿 속에서 그 형상이 몇일 간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안면부 실습은 치대생들의 몫이며 개인적으론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해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전기톱으로 머리뼈를 가르고 나면 순두부 색깔의 뇌를 마주치게 된다. 촉감은 두부보다는 약간 단단하지만 세게 누르면 두부와 같이 으깨지는,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느낌이다. 뇌에는 량과 구라는 것이 있는데 주름진 모양처럼 보인다. 뇌를 실제로 본 것은 당여히 처음인지라 다들 감탄을 마지 않았고 구분이 되지도 않는 아나토미를 억지로 구분하며 여기는 해마, 여기는 히포캠푸스 라며 열의를 불태웠다. 이 때 옵쎄틱한 학생들은 그 경외함에 빠져들어 종종 신경외과 의사를 꿈꾸기도 한다.
이렇게 최종적인 카데바 해부실습 과정이 모두 끝나면 공포의 오랄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장기들이야 워낙에 특징적으로 생겨서 보면 바로바로 나오지만 근육이나 신경의 주행등은 꽤나 고난이도의 학습을 요하는 일이라 옹기종기 모여 어그레시브하게 카데바 해부에 참여했던 동기들의 강연을 듣는다. 오랄 테스트를 마치고 헤쳐서 널어 놓았던 장기들을 다시 원위치로 복구하고, 조심스레 근육과 피부를 덮어준 다음 마지막으로 감사의 묵념을 드린다. 그리곤 며칠 뒤 시신의 화장을 위해서 버스를 타고 화장터로 가서 추모를 드리는 것으로 모든 카데바 실습 과정이 끝나게 된다.

영화 해부학 교실의 한 장면, 카데바 해부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의대생들의 모습
카데바와 관련하여 당시에 루머처럼 돌았던 이야기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실습 도중에 카데바가 살아나서 수술을 해서 살렸데.'와 같은 지나치게 과장된 루머부터 시작해서 '카데바를 보는 순간 여기저기서 구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라며 약간의 오버가 가미된 선배들의 후배 겁주기용 현장 르포 혹은 '카데바 실습실에서 누군가 귀신을 본 적이 있다.'라는 고전적인 공포괴담까지. 그렇게 실습 첫 날 강의실 분위기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카데바 관련 정보 및 소문을 공유하느라 찌라시화 되간다. 하지만 그 루머중 진실로 확인 된 것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혹은 '해부학 박 모 교수님은 맨손으로 카데바를 만지고 그 손에 침 묻혀서 해부학 책을 넘기시며 수업하신데.' 였다. 으-.

카데바 괴담의 현실화, 해부학 교실. 그런데 대다수 의대생들은 의문을 풀기보다 도망갈 것 같은데 말이지.
나 역시도 실습 첫 날 외로이 홀로 떨어져 있는 카데바 실습실을 향해 걸어가며 절반의 기대와 절반의 두려움 속에 떨었던 기억이 있다. 떠도는 소문 중에서 그럴싸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심하게 걱정도 해보고, 실제로 내가 메스를 잡고 인간의 배를 가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고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어릴적부터 나는 무서움에 대한 역치가 매우 낮은데다가 카데바 실습실이 의과대학 건물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홀로 있었기에 바지에 오줌을 지릴만큼이나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대체로 카데바 실습실은 의과대학 건물과 동떨어진 외딴 곳에 있거나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실습실 안으로 처음 들어서는 순간 찐한 포름 알데히드 냄새가 우리를 맞이했다. 테이블 위에는 관모양의 덮개가 카데바를 덮고 있었는데 총 13구의 시체가 그 아래 놓여있었다. 한의대가 한구를 사용하고 나머진 우리에게 배정되었다. (1조 10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시체 한구가 해부용으로 제공된 셈이다.) 일단은 실습 수업에 들어가기 앞서서 시신을 기증해주신 분들에 대한 천도제를 지내고 감사의 묵념을 올렸다.
사실 근래들어 해부용 시신 기증자가 줄어서 몇몇 의과대학은 카데바 실습을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정상적으로는 시체 한구당 4~5명 정도의 학생들이 해부 실습에 참여해야 하지만 현재 메이져 의대를 제외하고는 시신 기증이 원할하게 이루어 지지 않아, 시체 한 구당 비정상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배정되고 있어 실습 수업의 참여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해부용로 제공되는 카데바는 주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행려자나 노숙자의 시신이 대부분이며 일부 종립대학에서는 교역자나 교도들의 기증의사를 받아 아슬아슬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는 몇년 전부터 시신 기증자들의 가족을 초청하여 대대적인 추모행사와 함께 시신 기증 약속을 받는 서약식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신 기증에 참여자의 숫자가 많지 않아서 매년 실습 해당학년에서 20명 가량을 뽑아서 반강제적으로 기증서를 쓰도록 장려하고 있다. 나 역시도 본과 2학년 겨울, 학생회였다는 이유로 시신 기증 서약에 참가한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지금에야 의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을 위하여 나의 육신이 쓰여진다고 하니 기분 좋은 일이겠지만 꼬꼬마였던 당시엔 꽤나 억울한 기분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기증받은 시신들을 위해 천도제와 묵념을 지내고 난 후, 덮개를 열면 하얀 PVC 비닐로 덮여있는 카데바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카데바 구성도 다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그리고 때로는 20대 아가씨 카데바를 배정받는 조도 있다. (여기서 잠깐, 친한 후배가 '형 네이버 지식인에서 봤는데 카데바는 정말 목이 없어요?'라며 물은 적이 있는데 목이나 머릿 속 뇌까지 열어서 봐야하기 때문에 카데바는 사후 포름 알데히드에 절여서 부패하지 않도록 해놓은 것 이외엔 사람의 형상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당시 우리 조는 굉장히 뚱뚱한 할머니를 배정 받았는데, 이렇게 뚱뚱한 시신에서는 지방이 녹아내리면서 알데히드 냄새와 섞여 굉장한 악취가 나기에 한 여름의 실습기간 내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개 카데바는 오랜시간 냉동보관 되어오기 때문에, 실습시 상태가 이렇게 좋은 경우는 드물다.(출처)
사지의 피부를 절개하고 해부학 원서에 나온데로 근육을 갈라서 보는 것을 첫 시작으로 카데바 실습은 그렇게 진행 되었다. 폴리클 실습 당시의 기억을 회고해 본다면 실제 살아 숨쉬는 사람의 피부를 절개할 때의 느낌과는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꼬꼬마 당시엔 그것도 나름 굉장한 의학 행위(?)였기에 긴장이 많이 되었다. 실습 테이블 위 카데바는 단단하게 경직되어 있어 사지가 굴곡 되어있으면 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또한 실제 피부를 가르면 출혈이 생기지만 카데바의 경우엔 피가 대부분 혈관내에서 굳어 있기에 피가 흐르진 않는다. 그 후, 노란 지방조직을 벗겨내고 나면 근육을 만날 수 있다. 대개 교과과정 속의 혈관이나 신경, 근육등은 다양한 색깔로 표현되어 잇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동맥-빨강, 정맥-파랑, 신경-노랑, 근육-분홍) 실제 인체에선 다 비슷비슷한 색깔로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여담 하나 하자면, 대한민국 평균 식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카데바 첫 실습을 마치고 나와서 막지 못하는 음식이 몇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삼겹살, 곱창, 카레, 짜장면이다. 실습 시간을 몇차례 더 가지다 보면 어느정도 내성이 생겨 극복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곱창은 절대 못 먹는다 사료된다. 나 역시 카데바 실습 거의 막바지에 동기와 곱창볶음을 먹으로 간 적이있었는데 역한 냄새와 좋지않은 상상덕분에 한 젓가락도 못뜨고 둘다 음식점을 나와야 했으니 말이다. 아마 열거한 음식 외에도 몇가지 더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카데바 실습을 마친 후 먹지 못하는 것 설문조사를 해보면 순위권 안에 들 음식이 아닌가 싶다. (심한 경우는 몇끼니 식사를 하지 못하는 누님들도 있었다.)

실제 인체도 이렇게 색깔별로 잘 구분되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렇게 몇번의 카데바 수업을 거치고 나면 근육을 모두 박리해서 origin과 insertion을 확인하면, '그 근육이 저리 생겼기에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구나.'라는 대강의 틀을 잡을 수 있게된다. 그렇게 사지의 근육 및 신경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살펴보는데, 간부터 시작해서 심장, 위, 창자, 식도, 폐 등 그동안 책에서만 접했던 혹은 상상 속에서만 그려왔던 장기들을 실제로 만져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각 장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난 후, 하나하나 박리하여 얼추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들어보기도 하고 그 크기를 가늠해 보기도 하며 메스로 갈라서 속을 들어다 보기도 하고 실질을 만져보기도 한다. 느낌은 뭐랄까, 우리가 흔히 순대를 구입하게 되면 딸려나오는 간, 허파, 내장 등과 비슷한 느낌이다. 창자를 갈라보면 실제 소화된 음식물이 나오기도 하고 담낭을 뜯어내 그 속을 갈라보면 아기자기한 담석들이 있는 경우도 많다. 해부학 원서와 이모저모 비교해 보며 누군가는 토론을 나누기도 하고 누군가는 직접그려보기도 한다. 물론 이 때까지도 무서워서 메스를 한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채 멀리서 벌벌 떨며 지켜보는 동기들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 더 넓고 오묘한 의학의 세계가 있는지 모른채, 카데바 실습 후 꼬꼬마들은 흥분하며 내과가 적성에 맞구나 혹은 외과가 적성에 맞구나란 이야기들을 많이 하곤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은 그리 오래가진 못한다. 임상을 배우고 폴리클 실습을 돌면서 꿈은 지속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나만 하더라도 절대 써젼은 하지 말하야 겠다던 당시 생각이 폴리클 실습을 돌며 180도 바뀌었으니 말이다.

치골결합의 단단함은 어머니의 숭고함을 느끼게 해준다. (빨간 동그라미)
그렇게 복부가 끝나면 생식기로 내려오게 된다. (개인적으론 생식기 해부 수업에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다.) 혹시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라면 아랫도리를 열고 단단한 치골결합을 만져보길 바란다. 여성의 내부 생식기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 치골결합이라는 녀석을 끊어 놓아야 한다. 참고로 치골결합이라는게 출산시에 열리어 아이들이 밖으로 기어 나올수 있게끔 하는데, 출산의 시간 외에는 무척이나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 건장한 청년 서너명이 완력으로 벌릴려고 해도 벌려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리없던 용감한 꼬꼬마들은 그날도 그 결합을 힘으로 제압해보겠다며 무척이나 용을 썼다. 후에 조교가 전기톱으로 잘라야 하는데 뭐하니라며 우리를 놀렸는데, 그 결합력이 가히 어떤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겠다. 더불어 이 막강한 결합력 앞에 꼬꼬마들은 '어머니가 그 고통을 이기시고 나를 낳으셨구나.'라며 출산의 숭고함과 어머니의 대단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로 그 날 실습이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꼬꼬마들도 많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치골결합 외에도 할아버지 시신에서는 간혹 재미있는 것들이 발견되고는 하는데 '구슬'이 바로 그것이다. 웬걸, 그날도 어디선가 야 여기 구슬이 있어라며 보여주는데 8개 정도되는 쇠구슬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자세한 부가 설명은 하지 않더라도 다들 알리라 생각 되기에 긴 설명없이 넘어가도록 하겠다. 혹시나 뭔지 도저히 모르겠다, 궁금하다 하는 분들은 개원 비뇨기과 홈페이지에 가서 여쭈어 보시기를. 그렇게 생식기를 다보고 나면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다. 바로 우리의 모든 것을 제어하고 지시하는 브레인이다.

소장을 보는 날엔 곱창을, 간을 보는 날엔 순대를, 뇌를 보는 날엔 순두부 먹기가 곤란했다.
브레인 역시 단단한 머리뼈로 둘러 쌓여 있기에 전기톱을 이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선배들로 부터 내려오는 족보가 한가지 있는데, 절대 카데바의 눈을 마주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혹여나 눈을 마주치면 머릿 속에서 그 형상이 몇일 간 떠나지 않아 잠을 이룰수가 없다고 한다. (어차피 안면부 실습은 치대생들의 몫이며 개인적으론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를 해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다.) 전기톱으로 머리뼈를 가르고 나면 순두부 색깔의 뇌를 마주치게 된다. 촉감은 두부보다는 약간 단단하지만 세게 누르면 두부와 같이 으깨지는, 설명하기 힘든 독특한 느낌이다. 뇌에는 량과 구라는 것이 있는데 주름진 모양처럼 보인다. 뇌를 실제로 본 것은 당여히 처음인지라 다들 감탄을 마지 않았고 구분이 되지도 않는 아나토미를 억지로 구분하며 여기는 해마, 여기는 히포캠푸스 라며 열의를 불태웠다. 이 때 옵쎄틱한 학생들은 그 경외함에 빠져들어 종종 신경외과 의사를 꿈꾸기도 한다.
이렇게 최종적인 카데바 해부실습 과정이 모두 끝나면 공포의 오랄 테스트가 기다리고 있다. 장기들이야 워낙에 특징적으로 생겨서 보면 바로바로 나오지만 근육이나 신경의 주행등은 꽤나 고난이도의 학습을 요하는 일이라 옹기종기 모여 어그레시브하게 카데바 해부에 참여했던 동기들의 강연을 듣는다. 오랄 테스트를 마치고 헤쳐서 널어 놓았던 장기들을 다시 원위치로 복구하고, 조심스레 근육과 피부를 덮어준 다음 마지막으로 감사의 묵념을 드린다. 그리곤 며칠 뒤 시신의 화장을 위해서 버스를 타고 화장터로 가서 추모를 드리는 것으로 모든 카데바 실습 과정이 끝나게 된다.
의대에 부친 시신 기증
김용성 원광대학교 의과대학 산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부친(故 김정명, 66, 남원 산성교회 목사)의 시신을 의대에 기증했다. 김 교수는 “오래전부터 아버님이 장기기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셔 사후 시신기증에 동의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고인의 뜻을 기려 의학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원광대학교 의과대학은 앞으로 고인의 숭고한 뜻을 기려 의대생들의 해부학 실습에 고인의 시신을 활용한 뒤 화장해 분골을 양도할 예정이며 의학발전과 의학도 양성을 위해 육체를 기증하신 고인의 넋을 기리겠다고 밝혔다.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출처)
다시금 카데바 실습을 추억해보니 재차 참여해서 확인해 보고 싶은 것들도 몇가지 있고 좀 더 적극성을 띄고 능동적으로 참여했더라면 좋았을껄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래서인지 작년부터 실습에 참여하게 되는 후배들에겐 '첫째는 직접해 보라는 것, 둘째는 갈라도 보고 찢어도 보고 만져보 보고 다양한 것들을 해보라는 것, 셋째는 항상 예습 후 참여할 것' 이 세가지는 꼭 당부한다. 인체는 무척이나 정교하고 신비롭기 때문에 지면을 통해서 배우는 지식 외에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에 해부학 카데바 실습은 의과대학의 그 어떤 교육 과정보다도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다. 더불어 누군가가 이 땅의 의학 발전을 위해 의료인을 양성하는 일에 본인의 소중한 육신을 희사했다면, 카데바 실습을 앞둔 의대생들은 그 육신과 함께하는 1분, 1초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신을 기증한 분의 숭고한 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진지한 배움의 자세는 물론이거니와 본인에게도 의학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카데바 실습을 앞둔 후배님들 꼭 열심히 참여하시길. (덧붙여 현재 의과대학 카데바 기증이 부족해 미래 의료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의 실습 수업 운영이 힘들다 하니, 뜻 있는 분의 많은 서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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