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오늘은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바르나바(‘위로의 아들’) 성인은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지파 출신의
디아스포라 유다인으로
본명은 요셉(사도 4,36)이고
성 마르코의 사촌(콜로 4,10)입니다.
디아스포라는
B.C 721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 멸망하면서부터 시작하여
B.C 587년 남 유다 왕국마저
바빌론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나라를 잃은 유다인들이
고향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요셉이었던 그가
바르나바로 불리운 까닭은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여
사도들이 붙여주었기 때문이며
그의 별명 “바르나바”는
단순한 애칭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요약한
영적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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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그를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이라고
증언하고 있으며
그는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공동체에 봉헌했고(사도 4,36-37)
사울이었던 바오로를
공동체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교회의 일치를 위해 다리를 놓았습니다.
바르나바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초대 교회가
성령의 인도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신약 성경과 바오로 서간들에 등장하는
바르나바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거의 매번
사도 바오로와 함께(1고린 9,6;
갈라 2,9.13; 골로 4,10)거명됩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12명의 사도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복음 선포에 앞장섰던 공을 인정하여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사도’(사도 14,4-6.14; 15,2)로
호칭하였습니다.
당시 사도 시대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파견하였고
그는 사울(바오로)을 안티오키아로 데려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는데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크리스찬)’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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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사도 13,2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는
단식하며 기도한 뒤
바르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이방인의 사도’로 파견합니다.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15,26
이때부터
바르나바 사도는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선교 여행(사도 13,4-14,28)에
함께 하며
바오로가 뿌린 복음의 씨를
훌륭하게 키우는 역할을 하였고
또한
초대 교회의 주춧돌로써
최초의 공의회였던 예루살렘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앞두고
요한 마르코와의 동행 문제로
두 사도는 심한 언쟁을 벌이고
헤어지게 되면서
바르나바 사도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나게 됩니다(사도 15,37-39).
그 후
바르나바 사도의 이름은
사도행전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지만
전승에 따르면
성 바르나바 사도는
알렉산드리아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키프로스 교회를 창설하였으며
61년경에 키프로스 섬의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위해
사도들을 파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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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7-8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미 실현된 하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하셨던 일들을
똑같이 수행해야 할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마태 10,9-12
복음 선포의 사명은
예수님께로부터 거저 받은 것으로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므로
사도들에게는
오로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겸손함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공짜)입니다.
그럼에도
신앙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거저 받은 선물을
나 혼자서 독차지하려는
탐욕에서 비롯된
질투심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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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마태 6,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