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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전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작성자김가브리엘|작성시간26.06.12|조회수13 목록 댓글 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30

오늘은
6월 예수 성심 성월의 절정인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사제들이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찾고자 애쓰시는
예수님의 성심을 닮은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성체성사는
예수성심의 가장 완벽하고 탁월한
사랑의 성사적 표현이며
우리의 성체성사의 참여는
예수성심 안에서
그 거룩한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공경하고
주님의 성심 안에 머물며
본받고자 합니다.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의 예수님의 심장과
‘가시관으로 둘러쌓인 심장’으로 표현된
예수 성심 성화는
주님의 심연에서 한없이 흘러나오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요한 4,16
      . . . ❣️ . . .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은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당신 아드님을 우리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심으로써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요한 19,33-34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어
몸소 자신을 제물로 바치시고
심장이 찔리시어 피와 물을 쏟으시니
거기서 교회의 성사들이 흘러나오고
모든 이가
구세주의 열린 성심께 달려가
끊임없이 구원의 샘물을
길어 올리게 하셨습니다.

교부들은
예수 성심을
사랑과 모든 초자연 은총의 샘으로 묵상하였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를
천상 보화의 창고에서 쏟아진
무수한 은혜에 비유했습니다.

심장에서 흘러내린 물은
영혼을 깨끗이 씻어
초자연적 생명을 부여하는  
‘세례성사’를 상징하며
   . . . ✝️ . . .
피는 파스카(과월절)의 어린 양처럼 
인류 구원을 위해 바쳐진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는
영혼의 양식인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 시작하여 점차 보편화되었는데
예수 성심을 교회가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보급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의 방문회 수녀였던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 성녀의
예수님 발현 체험에서 시작됩니다.

[“내 거룩한 마음은
   인간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성심은 사람들에게
   사랑의 홍수를 퍼부어
   성덕과 구원 은총으로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멸망의 구렁에서 건져내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1673년부터 1675년까지 2년간 70회나
성녀에게 발현하셨고
오늘 경축하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의
근거가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성체 성혈 대축일 후 금요일을
   내 성심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기를 원한다.
   그날 영성체하는 영혼들은
   내 성심에서 사랑의 은총을
   홍수처럼 풍부하게 얻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 성심의 핵심인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들려줍니다.
      . . . 🪔 . . .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마태 11,25-26

“철부지들”은
세속적으로 무력하지만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순명하는 자들로
하느님의 뜻을
가장 온전히 따른 이는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며
이제 그 사랑을 받아들인 이들은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될것입다.
          . . .🕯. . .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 11,28-30

예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해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죽음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않고
죽음을 초월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매일의 성찬례 안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써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의 성심을 닮아
세상에서 그분의 사랑을 증언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사랑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 . 🔥 . . .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요한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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