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9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동태복수법(탈리오법)을 뛰어 넘는
‘사랑의 법’을 가르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탈출기 21장(23절부터 25절)
레위기 24장(20절)
신명기 19장(21절)에 나오는 규정으로
모세가 십계명을 세부적으로 풀이한
상해에 관한 법규정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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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 레위 24,20
탈리오법(동태복수법)은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를 위해
잘못한 사람에게는
피해를 준 만큼의 벌을 부과함으로써
권력과 부와 힘에 의한
필요 이상의 과도한 ‘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도록 하려는 장치였습니다.
인간의 복수심은
내가 당한 것의 몇 곱절로
갚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은
탐욕에 눈먼
사마리아 임금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부당한 권력의 힘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들려줍니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1열왕 21,2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1열왕 21,3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나서서
나봇을 모함하고 죽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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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열왕 21,9-10
아합 왕가는 권력을 휘둘러
약자의 목숨을 빼앗는
악의 악순환을 선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악에 진정으로 맞서는 방법
‘사랑과 용서, 연민’의 선순환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맞서는 것은
악을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불을 불로 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은 불이 아니라 물로 꺼야하듯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선을 행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로마 12,20-21
예수님께서는
악으로부터 도피하는 길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의로움인
‘사랑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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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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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39-42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악행을 묵인하거나 앙갚음하거나
악에 굴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악 가운데서도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라는 말씀이며
악을 오히려
선의 통로가 되게 하여
악인을 사랑으로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라는 말씀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주어라.
그것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이다.
주님께서 너에게
그 일을 보상해 주시리라.”> 잠언 25,21-22
사랑은 악을 이겨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앙갚음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율법의 완성이자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이 사랑의 법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실천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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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악을 선으로 이기신 승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모욕과 폭력에 맞서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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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이
악에 맞서지 않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어떤 악보다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더 강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악을 선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완전한 선이신 주님 안에 머물 때
비로소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는 ‘이미’ 하느님께 용서 받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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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 시편 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