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 5,44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적인 사랑을 뛰어 넘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완전한 사랑’
‘아가페적 사랑(신적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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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마태 5,44-45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율법을 뛰어 넘어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는 까닭은
원수들도
하느님의 모상
(이마고 데이 Imago Dei)에 따라 창조된
한 형제ㆍ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자녀이면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로마 8,17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에서
하느님께서는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파견하십니다.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1열왕 21,19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1열왕 21,20
아합은 처음에는
주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 엘리야를
‘원수’라 부르며 적대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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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1열왕 21,21-22
그러나
선포된 말씀 앞에서
아합은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하며
자신의 죄를 철저히 뉘우쳤습니다.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1열왕 21,29
하느님께서는
가장 흉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할 때
자비를 미루지 않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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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마태 5,45
인간은 처음부터
악인과 선인의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회개하여
구원받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에제 18,21.23
원수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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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23,34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박해자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셨듯이
예수님을 꼭 닮은
스테파노 역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사도 7,60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길이며
우리 모두의 구원의 길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하느님 외에 완전한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자비를 통하여
완전함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일’과,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함께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함에 있으며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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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 13,3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