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혼시 정신시 기교시
김윤식 한국현대시론비판 -서정성의 본질-(p.313~316)
1.시를 논하는 방식
소월시를 논의하는 방식은 논리성이라든가 지적인 조작이 모자랐던 것이었다. 가령, 소월의 전기는 신빙성이 없으며, 원본에 대한 실증적 검토가 부족하며, 작품상 추고과정에 대한 검토에도 문제점이 있으며, 방언에 대한 해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소월시에 대한 실증적인 검토가 미미했다는 사실은 그것이 소월시를 이해하는데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음을 추론 가능하게 한다.
시집<<진달래꽃>>(1925) 안의 '고독' 이라고 묶은 5편- <열락><무덤><비난수 하는 말><찬저녁><초혼>은 일방적이고도 위험할 정도의 깊이와 어둠을 지닌 작품들이며 '넋' 또는 '혼' 에 관련된 시들이다.
2.혼과 형식
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이라든가 마음이라는 개념보다 일층 생명의 근원에 가까운 것이고, 형체를 갖추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육박해 간 그 무엇임을 추측할 수 있다. 혼에다 시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소월시는 우리 근대시사에 강요하고 있다.
혼을 다루는 일은 자칫 혼을 파괴하거나 다루는 이의 죽음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만큼 혼은 여러 겹의 형식 속에 감싸여져야 한다. 이러한 조절기관의 가장 안전한 단계가 마음이라면 그 다음 단계는 정신일 것이고 혼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따라서 혼에 형식을 부여하는 일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모험이다. 혼의 영역에서는 어떠한 지적 통제력도 무력하다. 그 무력함이 서정시의 본질일 것이다. 혼의 힘으로 충만한 것이 서정시라면 서정시는 우리를 위로할 수는 있되 도울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소월시는 영혼의 힘으로 충만되나 정신성의 결여행태, '심혼시'라고도 부를 수 있다. 반면, 영혼의 결여형태이되 정신성(지적 통제력, 혹은 의지로 단련된 그 무엇)이 충만한 시는 한국 시의 주류라고 평가받는 '비극적 황홀'의 계보에서 찾을 수 있다. 시와 시인의 비분리원칙 선상에서 벌어지는 시적 영위를 우리는 '정신시'라고 부르기로 한다.
3.근대시와 그것의 미달상태
근대시란 무엇일까. '심흔시'나 '정신시'는 이른바 '근대성'과는 다소 무관한 것으로, 시의 근대성을 언급할 때는 시(작품)과 시인의 분리에서 논의를 진행시킬 필요가 있다. 시는 선시적인 것도 아니고 후시적인 것도 아니고 현시적인 물건이다. 그 물건이 근대적 성격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일도 현시적인 자리에 설 때야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의 시를 '기교시'라 할 수 있다.
소월시를 심흔시라고 설명함으로 말미암아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심흔시와 서정시의 관계에 관련하여, 서정시란 궁극적으로는 심흔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것이다. 서정시는 정신성의 결여형태여서 어떤 사실의 증거물로 삼을 수 없다. 또, 심흔시와 우리 근대시의 관계에 관하여, 시와 시인의 비분리문제와 근대성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