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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안팎이야기

영화와 미술-<안달루시아의 개>

작성자르방|작성시간14.11.12|조회수173 목록 댓글 0

안달루시아 개(Un chien andalou) 1929

 

출연 : 시몬 마레유Simone Mareuil (젊은 여인), 삐에르 바셰프Pierre Batcheff (남자),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프롤로그의 면도하는 남자),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신학생), 로베르 오메Robert Hommet (젊은 남자), 마르발Marval (신학생) 파노 메상Fano Messan (자웅동체), 젬므 미라빌Jaime Miravilles (신학생). 15.

 

 

발코니 위에 한 남자가 면도기를 갈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옅은 구름이 보름달을 향해간다. 한 소녀가 눈을 크게 뜨고 있다. 구름이 달 위로 지나가고 면도날이 소녀의 눈을 가른다...

 

8년 후: 황량한 거리. 비가 내린다. 가슴 위에 비스듬히 줄무늬가 진 상자 하나를 든 자전거 선수가 나타난다. 2층 방 안에서 한 소녀가 책을 읽다가 던져버리고 창문 쪽으로 간다. 거리에서 자전거 선수가 넘어진다. 그녀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를 껴안는다. 손으로 상자를 열자 거기에서 줄무늬 넥타이, 반외투, 목 칼라가 나온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자전거 선수가 방에서 다시 발견된다. 그 손에는 개미들이 득실거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려진 손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쳐다본다. 경찰이 그것을 집어 상자 속에 다시 넣는다.

 

방으로 되돌아옴: 자전거 선수는 물러서는 소녀의 가슴을 애무한다. 그는 줄을 잡고 마개, 중산모자, 두 명의 신학생, 썩은 당나귀 시체가 실린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끌어당긴다. 소녀는 방을 나와서 자전거 선수의 손을 문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개미들이 다시 나타난다. 침대 위에 동일한 인물이 누워있다.

 

새벽 3시경: 새로운 인물이 문에 도착한다. 소녀는 문을 열어준다. 그는 자전거 선수에게 그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리고는 창문으로 반외투와 상자를 던진다. 새로 온 사람은 책상 위에서 두 권의 책을 집어 들고 자전거 선수에게 돌아간다. 그는 그에게 팔짱을 끼게 하고 손바닥 위에 책을 놓는다.

 

16년 전: 그러나 책은 발사하는 총이 된다. 부상자가 공원에서 어떤 여자의 발치에 쓰러진다. 행인들이 그를 구한다. 시작 부분의 방에 소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혼자다. 벽 위에 해골 모양의 나비가 있다. 여자는 외출하고 물이 빠진 해변 위에서 다른 남자를 되찾는다. 그들의 발치에는 상자와 반외투가 있고, 그들은 그것들을 발로 밀어낸다.

 

여름철: 여자와 어떤 세 번째 남자가 가슴까지 모래에 묻혀있다. 눈먼 그들은 태양에 그을리고 곤충들에 둘러싸인다.

 

15분짜리 이 작품은 오늘날 예술적인 자유를 위해 이전까지 실현된 가장 신랄한 선언들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원래의 전복적인 풍자 부분을 손대지 않은 채 보존하고 있다. 이 영화를 이미 보았거나 다시 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면도날로 감독 자신이 밴 안구는 가장 참기 어려운 영화 이미지들 중의 하나로 남는다. 1934년 대중적인 상영 때 이 영화를 옹호하러왔던 부뉴엘은 자신의 영화가 범죄와 강간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방자들에게 반박했다.

이 영화에 대한 수많은 상징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해석들을 통틀어 비판하면서 앙드레 브르통은 중요한 것은 그가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말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에로티즘으로 가공되고, 고전적 재현의 제한과 시공간의 지표, 그리고 전통적 서술과 도덕의 관습에서 해방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욕망의 힘을 통해서만 남자는 여자로 변하고, 옷을 입은 여자는 갑자기 완전한 나체가 된다. 두 마리의 죽은 당나귀는 두 명의 신부가 묶인 두 개의 줄에 걸려있는 두 대의 그랜드 피아노에 고정되어있고, 아파트 문이 황량한 해변 위로 열린다.... 끊임없이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무한한 심연 위에 관객의 상상세계를 열어주면서, 서사는 짐짓 이미지들의 연상을 통해 진행된다. 본질적으로 형식적인 서사의 일관성은 모티브, 대상, 인물들의 반복에 있다. 이런 것들은 바로 이야기를 쓰지만 전적으로 새롭고 순전히 영화적인 방식에 있다.

 

시나리오는 자동기술법과 멋진 시체(cadavre exquis)’놀이라는 초현실주자들의 문학적 기교를 차용한 절차에 따라 달리와 부뉴엘이 1주일 만에 썼다. 직접적이고 투명한 몽타주는 다음과 같은 연상의 놀이들을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과정을 반영한다. 개미로 우글거리는 구멍 난 손/여자의 겨드랑이/성게 등등. 원으로 모여든 군중들은 나중에 무수한 개미와 마찬가지로 시작부분의 베인 눈과 그것을 예고하는 달의 형태를 상기시킨다. 거장 부뉴엘의 솜씨로 우리는 갑자기 불쾌함에서 경탄으로, 에로틱한 불안에서 즐거움을 주는 놀라움으로 솟아오른다.

 

안달루시아 개는 두 사람간의 두서없는 대화에서 우연히 생겨났다. 루이스 부뉴엘은 1928년 크리스마스 때 살바도르 달리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 까다께스(Cadaquès)에서 며칠간 머물렀다. 마드리드에서 학생시절 우정을 나누었던 두 사람은 당시로는 무명이었다. 부뉴엘은 이 에피소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달리가 말한다. 그날 밤 내 손에 개미들이 우글거리는 꿈을 꾸었어. 내가 말한다. 그래! 난 누군가의 눈을 베는 꿈을 꾸었어. <안달루시아 개>의 아이디어가 생겨났다. 시나리오는 바캉스 때 6일간 썼다. 그 방식은 이러했다. “예를 들면, 여자가 자신을 공격하려는 남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테니스 라켓을 잡는다. 이 남자는 뭔가를 찾으면서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나는 달리와 함께 말한다). 그가 뭘 보나? -날아가는 개구리. 별로! -코냑 병. 별로! -그러면 두 개의 줄을 본다. 좋아, 그런데 줄 뒤에는 뭐가 있지? -괴짜가 줄을 끌다가 넘어진다. 왜냐하면 그가 매우 무거운 뭔가를 끌기 때문이지. -, 넘어지는 거 좋지. -줄 위에는 마른 커다란 두 개의 호박이 있어. -다른 것은? -성모마리아회 신학생 둘. -그 다음에는? -대포. -별론데, 사치스런 의자가 필요하지. -아니, 그랜드 피아노. -아주 좋아, 피아노 위에 당나귀 한 마리... 아니, 썩은 당나귀 두 마리. -굉장하군!”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비합리적인 이미지들을 솟아나게 했다.”

 

두 시나리오 작가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이 연쇄적인 꿈의 몽타주는 영화에 초현실주의의 문을 연다. “달리와 나는 안달루시아 개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일종의 자동기술법을 실천했다. 우리는 무소속 초현실주의자였다.” 부뉴엘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빠리로 다시 떠났다. 19293월에 15일 동안 촬영했던 곳은 빠리였으나 바닷가의 시퀀스에는 르 아브르였다.

부뉴엘은 이 시기에 초현실주의자들을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뱅자맹 뻬레(Benjamin Péret)의 텍스트와 선동은 그에게 많은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초현실주의 그룹이 규칙적으로 불러일으켰던 스캔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영화와 관련하여 그는 만 레이의 <바다 별>을 탐탁찮게 생각했으나 제르맨 뒬락의 <조가비와 목사>는 좋아했다. 후자는 초현실주의자들이 상당한 야유를 퍼부었던 영화였다.

 

부뉴엘과 브르통 그룹의 만남은 19296월 말경에 그를 만 레이에게 소개했던 페르낭 레제의 중재로 이루어졌다. 만 레이는 자신의 영화 <데 성의 미스터리Le Mystère du château de Dé>에 대한 보조 프로그램을 찾고 있었다. 66일 이후에 이미 위르쉴린 스튜디오에 보내졌던 <안달루시아 개>는 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사람들이 이 작품의 주제를 초현실주의와 관련하여 말했을 때, 이것은 명시적인 허가가 없으면 초현실주의자라는 말을 부여하지 않으려했던 브르통과 그의 친구들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들이 영화의 상영을 받아들이고 부뉴엘이 그들에게 이 영화를 소개했던 것은 상호간의 불신의 분위기 속에서였다. 상영동안 감독은 스크린 뒤에서 디스크를 이용해 파소 도블레(템포가 빠른 2박자 댄스곡)와 바그너의 트리스탄의 발췌곡을 교대로 틀어주고 있었다(당시는 여전히 무성영화 시대였다). 부뉴엘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초현실주의자들이 불평을 한다면 던지려고 주머니에 조약돌을 넣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부뉴엘은 즉각 그룹의 공식적인 영화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영향을 넘어섰다. 이것은 1929101일부터 스튜디오 28에서 8개월 동안 상연되었다. 그 기간 동안 영화는 소실되기도 하고 무산되었으며, 경찰에 30(버전에 따라 40번이나 50) 고발되기도 했다. 스캔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았지만, 성공은 전혀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부뉴엘과 달리는 19291029일 미라도르(Mirador) 잡지에서 다음과 같은 매우 놀라운 항의를 실었다.

 

“<안달루시아 개>는 빠리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어떤 다른 대중적인 성공처럼 우리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달루시아 개>에 박수를 보낸 대중이 아방가르드의 잡지와 폭로로 인해 멍청해진 대중이라고 생각한다. 아방가르드는 속물근성으로 인해 새롭고 괴상해 보이는 모든 것에 박수를 보낸다. 대중은 이 영화의 근본정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총체적인 폭력과 잔혹성으로 대중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히 앙드레 브르통이 제2차 초현실주의 선언(1930)에서 주장했던 것과 동일한 정신 상태이다. “나는 초현실주의의 심오하고 진정한 은폐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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