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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상나라 정벌

작성자witpo|작성시간26.06.07|조회수24 목록 댓글 0

 

중국의 역사를 보면 항상 중심부에 본래는 어떤 민족인지 모르지만 한화漢化가 된 민족이 있고 북방 쪽의 거친 유목민족이 침공을 하다가 접촉을 하여 중국의 문명을 약간 흡수하여 개화된 민족이 되었다고 할 때, 그 용맹성을 간직한다면 나중에 중심부를 침략하여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다는 패턴이 계속이 된다.

단순히 강인함만 간직한다면 중국 본토를 장악할수 없고, 혹 침략에 성공하더라도 잠시에 그치고 말지만, 좀 더 한화가 적절하게 진행이 될 때 장수 왕조가 되는 것이다.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원래는 서융 계통 )도 그랬고 삼국시대를 통일한 서진西晉을 끝장을 낸 흉노족의 유연劉淵도 비슷하며, 오호16국시대의 마감시킨 남북조의 북위北魏, 그리고 통일한 수당隋唐( 북위나 수당은 개화된 선비족이나 투르크 족), 을 멸망시킨 원, 그리고 만주족( 여진족 중에 개화된 건주 여진 )의 청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란 명칭은 상구商丘( 현재도 그 지명이 존재하며 하남성 동쪽 끝이다 )란 지명 왔는데 상은 장사를 뜻한다. 장사꾼은 늘 돌아다닌다. 그리고 장사를 하려면 그저 상술만 있어서는 안된다. 물건을 지킬 힘이 있어야 하고 여러 다른 곳의 정보를 알아야 한다. 이란 이름은 상나라가 나중에 멸망하자 대부분 천대를 받았고 해서 다른 직업을 가지지 못하여 상업으로 먹고 살았기 때문에 상의 상업이란 뜻으로 변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장사를 뜻했는지는 확실하게는 모른다.

그러니 상족은 유목민같이 돌아다녔던 민족임에는 분명하다.

유명한 유목민족인 스키타이도 나중에 상업을 하는 민족으로 변신을 하였고 장사의 대명사인 소그드 족도 원래 유목민이었다.

이러니 상족도 개화된 유목민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상족이 동이족이라면 동이족도 여러 갈래의 부족이 있을 것인데 그중에 문명의 혜택을 조금 받았고 이것에 대해 이해가 높은 종족이었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상의 갑골문에 의하면 상업뿐만 아니라 길들인 소를 방목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때의 소는 물소 종류이다. 더불어 당시에 존재했던 코끼리도 부린 것으로 생각이 된다.

 

어쨌든 원래는 간적이 유용씨란 부족에 속했는데 그의 아들인 설은 장성하여 유용씨에서 떨어져 나와 상족을 건립했었다. 설에서 시작된 상족은 14대를 내려오는데 나중에 하를 멸하는 성탕까지 무려 8차례나 이주했다고 되어 있다. 심지어는 배를 타고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이끄는 우두머리 중에 한 명이 소가 끄는 수레도 발명했다고 하니 물건을 싣고 상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이라 볼 수 있는 정도로 규모의 확대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업을 하려면 필요한 것이 기호, 즉 문자이다. 상업과 무역을 하려면 장부를 기재하고 멀리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기에 당연히 문자의 개발이 필수적이었으니, 하 왕조를 멸하기 전에 이미 문자 발명에 대한 기초가 닦여 있을 것이다.

 

이어서 상족은 조상신에 가까운 제를 숭배했지만, 숭배 대상이 하나 더 있는데 탄생 설화를 보듯이 새이다. 즉 하 왕조가 물에 있는 뱀의 변신인 용을 숭배했지만, 상 왕조는 새를 숭배하게 된다.

내가 가설을 한번 하자면 뱀이 용으로 변했듯이 새가 봉황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witpo

 

상 왕조의 성은 자씨이며 사기<은본기>에서는 상나라의 개국 군주인 탕왕이 제곡 고신씨의 아들인 설()13세손으로 되어 있다. 제순 유우씨가 상족의 수장인 설()을 봉할 때 함께 내린 성이라고 한다. 나중에 나오는 주 왕조 시조도 제곡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다.

심지어 훨씬 후의 흉노족도 하 왕조 순유의 후손으로 나온다. 이것은 항상 사마천의 사기가 그렇듯 모든 민족은 오직 중국인의 후손이라고 적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당연히 믿기 힘들다.

 

사진은 상나라와 주나라의 영역을 추측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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