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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상나라 정벌

작성자witpo|작성시간26.06.14|조회수45 목록 댓글 0

 

어쨌든 상나라는 하나라를 대신하게 되는데 여러 연구 결과는 보통 왕조 교체 시에 일어나는 격렬한 전쟁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또 상족의 순수한 단일 군대가 동원이 되어 제압한 것도 아니고 일종의 승계 비슷한 과정을 거쳤고, 그리고 상족 단일 민족이 아니라 일종의 부족연맹인 다국적군인 것 같다고 이 책은 추측을 한다.

상의 초기에는 거의 얼리터우 문화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상 나라는 문자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세련된 청동기 무기 때문인지 나아가 상업으로 떠돌이 생활에 정보력이 좋아서 그런지 초기에 대단한 확장을 보여준다. 자료에 의하면 순식간에 장강 근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 왕조에 비해 종교적인 변혁을 보인 것이다. 그것은 확실한 문자의 발견으로 제정일치祭政一致로 향한 증거를 많이 남긴다. 그로 인하여 상 왕조는 초반기에도 뼈에다 점사占辭를 남긴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신 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엄청 나오기 시작한다. 인간을 제물로 단순히 받친 것만이 아니고 산채로 생매장도 하였고 아니면 목이나 팔다리를 제거하고 묻기도 하였으며 심지어는 요리하여 먹은 증거도 있다. 이것은 필설로 담기가 힘드니 앞으로 자세한 것은 거론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하 왕조에서도 인신공양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다지 보편적이지 아니하였고 나라의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방식도 단조로웠다.

그러나 상 왕조에 들어서서는 점점 그 빈도수도 늘어나다가 개국 후 100년 뒤에는 엄청 숫자도 많아지고 방식도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소와 돼지 개, 물고기, 사슴, 토끼와 볍씨 등의 식량을 혼합해서 바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두개골을 가공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 귀한 청동기도 같이 묻기 시작한다.

이것은 상 왕조의 국가 종교가 인신 공양 제사가 정해진 형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함께 당시 기후는 황화 근처가 아열대에서 온대로 넘어가기 시작할 무렵이라 농사의 경우, 하 왕조 시대의 벼농사 위주에서 좁쌀 위주로 변하기 시작하고 곡삭 알갱이의 출토 순으로 보년 그다음이 밀, 그리고 이어 벼, 기장 순이었다. 말하자면 논 위주에서 밭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기후가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상 왕조 성립후 약 100년 후에 사기나 죽서기원에 의하면 변란이 많았다고 한다. 도읍지도 초창기에 박에서 오, 이어서 상그리고 형으로 자주 천도를 하였다. 이들의 기록으로 나타난 수도들은 현재 추측만 할 수 있고 현재의 어느 곳이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리고 자세하게는 알 수 없지만, 상 왕조의 초반부는 아직 상족의 거주지를 옮기는 유목적인 전통이 남아서 그런지 상당 기간이 안정적이지 아니고 고정적인 국가로서 형태가 아니며 불안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인신 공양의 행위는 갈수록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도살 방식도 잔인해졌으며 더불어 하 왕조보다 청동기 제작 기술은 늘어나고 세련되어졌다.

 

witpo

 

갑골문

 

갑골 문자(甲骨文字)는 기원전 1200년 즈음에 나타난 한자의 직계 조상인 문자이다. 거북의 배껍질()이나 동물의 뼈()에 새겨졌기에 갑골문(甲骨文)이라고 부른다. 갑골에 군사적인 정벌이나 자연재해, 제례를 지내는 방식과 날짜를 조상 신인 제()에게 아뢰고( 제사를 지내는 것임 )그 결과를 갑골, 특히 거북 배 껍질에 기록하였다.

 

복사가 새겨진 갑골은 구성이 좌우대칭인데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점을 친다. 예를 들어 비가 올지 안 올지 점친다고 한다면, 좌측에는 '모 일에 누가 묻습니다. 비가 오겠습니까?'라는 점을 치고, 우측에는 '모 일에 누가 묻습니다. 비가 오지 않겠습니까?'라는 점을 친다. 그리고 점의 결과가 맞은 쪽에 결과를 기록했다. 딱지에다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고 열을 가하여 균열을 낸 모습을 보고 그 결과를 판단하였다.

이것을 판단하는 점술사를 정인貞人이라 부르는데 그들이 기록하고 길흉을 판단하였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주체도 왕이고 모든 결과는 왕이 결정하였다. 왕만이 조상 신인 제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치는 용도는 앞에서 말한 비가 오느냐 마느냐, 그리고 왕비가 아들을 낳을 것인지, 딸을 낳을 것인지, 주변의 그들이 생각하는 야만 민족, 즉 강, 인방人方, 주방周方 등을 정벌하는 문제 등 국가의 중요 대사가 주였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강족은 주로 서쪽의 야만족이고 방은 같은 주변 민족으로 방대하지만 주로 동북 쪽, 즉 하북성 방면인데 특히 한국의 학자들은 인방일 경우 고조선 계통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숫자가 5천 개에 달하는 갑골문 중에 해독이 가능한 것은 1천 자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머지는 한번만 쓰고 말든지, 아니면 고유명사 등이 대부분이어서 해독이 거의 가능하다고 한다. 또 갑골문 이후에 주나라 시기에는 갑골문 뒤를 이어 금문金文이라는 정식 한자 이전의 중간 단계의 글자가 있었기에 더욱 해독이 용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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