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우리글로 써야 결이 살아난다. 우리글이 바로 한글이다. 오늘은 한글날. 한글이 널리 쓰이기까지 세종임금만 힘을 쓰셨던 것은 아니다. 둘째 따님 정의 공주가 힘을 보탰다. 아울러 영화 ‘나랏말싸미’로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신미 스님도 큰 힘을 보탰다고 한다. 더불어 한글이 이어올 수 있도록 길을 닦는 사람 가운데 세조임금을 빼놓을 수 없다.
세조는 대군 시절,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3년이 지난 1446년 세종 명에 따라, 어머니 소헌왕후 명복을 비는 마음에서 부처님 일대기를 담은 [석보상절]을 우리말을 살려 한글로 썼다. 수양대군은 이 책에서 “삼계에 높은 부처님이 중생을 널리 흔들어 이끄시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공과 덕이 사람들과 하늘들이 내내 기리지 못하는 바이다.”라고 하면서 “이제 여러 경전에서 가려내어 따로 한 책을 만들어 이름 붙여 말하되 [석보상절]이라 하고, 벌써 차례를 헤아려 만든 바에 기대어 세존이 이루어 내신 뜻을 그려 이루고, 또 정음으로서 한문에 따라 풀어 새기니, 사람마다 쉽게 부처님과 부처님 가르침 그리고 승가에 나아가 의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석보상절]을 보며 울림이 컸던 세종은 소헌왕후를 기리며 찬불가를 지었다. 이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임금이 된 세조는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모아 [월인석보]를 펴냈다. [월인석보] 첫머리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담아 백성들이 쉽게 한글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또 1460년에 관리 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을 넣도록 하고, 성균관 과목에도 훈민정음을 넣도록 해 훈민정음을 읽고 쓰는 사람을 길러냈다. 세조는 1461년 ‘간경도감’을 세운다. 간경도감에서는 불경을 주로 펴냈는데, 대부분이 훈민정음으로 쓴 언해본들이다. 세조는 1461년 누에고치를 치는 [잠서]를 한글로 풀어내도록 해 여느 농부들이 양잠 생산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뿐. 그 뒤로는 임금이고 관료고 훈민정음, 한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 정음, 바른 소리가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여성들 힘이 컸다. 규방 여성들이 한글을 즐겨 쓰면서 ‘암글’이라고 이름이 붙은 정음은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한글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살림살이를 제대로 헤아려 “너를 살릴 때 비로소 내가 살 수 있다”는 얼결을 가지고 정음을 이어온 여성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런데 조선 말,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훈민정음, 한글에 숨결을 불어넣어 살려낸 이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를 말아먹은 어수룩한 임금으로 널리 알려진 고종임금이 그 사람이다.
세종 25년(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나서 450년이 지난 1894년(고종 31) 11월 21일, 한글이 우리나라 공식 글씨가 된다. 고종은 앞으로 내려지는 법률과 칙령은 모두 국문, 나랏말을 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하거나 또는 국한문을 섞어 써야한다고 했다. 공문서는 한글로 적바림하고 때에 따라 한문 번역을 덧붙여 한글과 한자를 섞어 쓰라고 한 것이다. 이어 우리나라 최초 근대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범 14조를 한글, 한문, 한글과 한문을 섞어 적바림한 세 가지로 발표했다. 나랏글로 공문서를 작성한다는 원칙을 보인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500년 조선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글이 공식 문서에 쓰이게 된 것이다. 특히 고종은 칙령에서 1순위가 나랏글이고 한문 번역본과 국한문체는 그 다음임을 또렷이 밝혔다. 이 칙령으로 한글은 옹근 ‘우리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바탕이 깔린다.
이 뜻을 이은 이가 서재필이다. 서재필은 한글로만 쓰인 [독립신문]을 펴내면서 주시경을 독립신문 교보원(편집, 교열 기자)으로 뽑는다. [독립신문]을 만들면서 나랏글 표기법이 없어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주시경은 국어 문법과 한글 표기법 연구에 힘썼다. 바로 이 주시경 선생이 바로 우리 나랏글에 한글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아울러 [대한국어문법](1906), [국어문전음학](1908), [국문연구](1909), [고등국어문전](1909), [국어문법](1910), [소리갈](1913), [말의 소리](1914)와 같은 여러 문법서를 펴내 한글 이론 체계를 세운다.
내가 한글로 우리말결을 살려 쓸 수 있게 된 밑절미에는 이 분들이 뜻을 내고 한글을 빚고 이어 주신 어진 품이 고스란하다. 이밖에도 어려운 불교용어를 결 고운 우리 말결로 풀어주며 일깨워주신 법정 스님과 우리말 뿌리를 하나하나 찾아 짚어주신 윤구병 선생님, [우리말은 서럽다]를 펴낸 김수업 선생님과 [우리말 동시사전]을 비롯해 우리말결이 담긴 책을 아주 많이 펴낸 최종규 선생 같은 분이 길을 닦아준 덕분이다. 그 덕분에 길을 얻는 나는 이 빚을 어찌 갚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엊그제 만나고 온 강원도 동해에 있는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뜻을 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개천절, 하늘을 연 날 이야기를 하면서 뿌리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 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는 얘기를 했다. 이날 ‘우리말과 한글’이 어떻게 다른지는 얘기하고 우리말결을 살려 쓸 때 좋은 점을 나눴다. 그러나 한글이 빚어져 어떤 흐름 속에서 숨결을 이어왔는지 알려줄 시간이 모자랐다. 그 모자람을 메워주려는 뜻에서 한글날 아침에 앞뒤 없이 써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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