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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강론말씀]7월31일 '두려운 그날이 오면' -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작성자김안나(시화바오로)|작성시간08.07.31|조회수27 목록 댓글 0


☆ 2008년 7월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두려운 그날이 오면' -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 독서 : 예레 18,1-6 또는 1코린 10,31-11, 1 
† 복음 : 마태 13,47-53 또는 루카 14,25-33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마태 13,47-­53)  

 
 
† 2008년 7월31일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독서와 복음   
 
† 예레미야서 18,1-6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1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내리신 말씀이다. 
2 “일어나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가거라. 거기에서 너에게 내 말을 들려주겠다.” 
3 그래서 내가 옹기장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옹기장이가 물레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 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5 그때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6 “이스라엘 집안아,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너희에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냐? 
  이스라엘 집안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에 있다.”



† 마태오 13,47-53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 묵상

종말은 끝판입니다. 한 단락이 끝나고 새판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져 
버릴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의인이겠습니까?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부는 그물에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결정은 어부가 합니다. 종말의 결정권은 
주님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좋은 고기는 싱싱한 고기입니다. 어부에게 만족감을 주는 고기입니다.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이가 주님께도 기쁨을 드립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가 주님께도 사랑받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이가 마지막 날에 의인이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은 점검의 날입니다. 사랑과 기쁨을 점검받는 날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는지, 
얼마나 기쁘게 살았는지 점검받는 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종말을 통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마무리하실 것입니다. 세상에 가득 찬 당신의 뜻을 매듭짓고 새로운 세상을 여실 것입니다.

마무리를 위협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종말의 본질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예!” 하고 대답해야 합니다. 종말이 완성임을 고백하는 행동입니다. 

- 매일미사 -

하늘나라는 바다에 그물을 쳐서 온갖 것을 끌러 올리는 것에 비길 수 있다.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 버린다. 
(마태오 13,47-53)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a net thrown into the sea, which collects fish of every kind.
When it is full they haul it ashore and sit down to put what is good into buckets. 
What is bad they throw away.
 
  
 
◈ 두려운 그날이 오면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세상 종말에 관한 요한묵시록의 초현실적인 묘사를 떠올리는 
섬뜩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강렬하고도 실감나는 경고의 말씀은 어쩐지 좀 낯선 느낌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는다고 미사 때마다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그 심판의 
모습을 두고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드물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하기야 성경의 묘사보다 더 끔찍한 
참극을 이 지상에서 보고 겪은 인간들이니 ‘불구덩이’ 이야기의 충격이 반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의인’의 대열에 끼어들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 종말은 더할 수 없이 
두려운 시나리오입니다. 들을 때마다 식은땀을 흘리게 만드는 모차르트 레퀴엠의 가사처럼 그 
‘진노의 날’에 온 세대가 바수어지고, ‘티끌로부터 부활한 죄인들이’ 영원한 처벌을 받는다니 
말입니다. 모든 것이 기록된 책을 펼쳐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실 주님의 면전에 서면, 자비를 
베푸시라는 애원 말고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같은 동네 분으로 공사장에서 떨어져 전신마비로 오래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찾아뵙곤 했습니다. 어느 날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래도 
며칠 못 사시겠다는 어머니 이야기에 겁이 덜컥 났습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돌아가시는 거 무서워요?” 할아버지는 겨우 눈을 뜨고 “무서워.” 하셨습니다. “걱정 마세요. 착하게 
사셨으니 하느님 곁으로 가실 거예요.” 할아버지가 고개를 가로저으시자 어머니가 다시 물었습니다. 
“쌓은 공덕이 없는 것 같아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평생 가난하고 병들어 살았으니 그걸 하느님께 바치기만 해도 다 용서받으실 겁니다.”

어머니의 그 이야기를 저는 내내 잊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공로로 드릴 것이 있다고, 가난과 
병고로도 자비를 구할 수 있다고 한 그 말씀이 얼마나 지혜롭게 여겨졌는지요. 당장 오늘부터 심판의 
날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지만 가난과 병고, 누명의 억울함과 작은 희생이라도 내세워 
천사의 손을 피할 수 있으려나, 위로를 얻어 봅니다. 기록된 책에 남아 있을 제 악행이 아무래도 다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여상훈(도서출판 시유시) -

 

◈ 붕어와 뽀뽀하는 사람, 잉어와 춤을 추는 사람

7월 31일 목요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마태오 복음 13,47-53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붕어와 뽀뽀하는 사람, 잉어와 춤을 추는 사람> 

오늘 복음은 낚시꾼들에게 있어 훨씬 설득력 있고 이해가 빨리 가는 복음구절이군요. 
낚시를 좋아하시는 한 원로 신부님께서 언젠가 ‘사제의 휴식과 취미’란 주제로 말씀하신 대담 
글이 기억납니다. 대담자가 “지금까지 낚시해오면서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하고 여쭸더니 신부님 하시는 말씀은 이랬습니다. “대어를 낚아 올렸을 때, 라고 대답할 줄 알았지? 
천만에! 바로 옆에 앉은 낚시꾼이 대어를 낚았다가 놓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지.” 

저도 ‘한 낚시’ 하는 사람이다 보니 낚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습니다. 
한 번은 낚시터로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는데,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머릿속에는 이미 깊고 푸른 바다며, 갯바위며, 고기들이 우글거리는 포인트며, 우럭이나 
광어가 끌려 올 때의 그 짜릿한 손맛하며....등등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정신없이 밟게 되었습니다. 너무 속도를 낸 것 같아 
‘이래서는 안 되지’하는 순간, 어느새 경찰차가 따라붙더니 갓길로 붙으라고 했습니다. 차창을 
내리니 경찰관께서 정중하게 묻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빨리 달리십니까? 규정 속도에 ○○킬로 초과인데, 이 정도면 
면허 정지 되겠습니다.” 
차마 “낚시하러 갑니다!”라고 대답하기가 뭣했던 저는, 또 면허정지라는 말에 화들짝 놀란 저는 
본의 아니게 ‘엄청난’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위중한 환자가 저를 기다리고 있어서요.” 
낚시터로 가는 내내 엄청 많이 반성했습니다. 거짓말한 것에 대해서, 양심적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기다리지도 않는 임종환자 핑계를 댄데 대해서, 또 사목하러갈 때 도 낚시하러 
갈 때처럼 기쁜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민물에서나 바다에서나 낚시꾼들이 유일하게 노리는 것은 ‘대어(大魚)’, 혹은 ‘대물(大物)’입니다. 
‘대상어(對象魚)’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대어를 낚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낚시를 드리우기가 무섭게 대어가 잡히기보다는 
기다리지 않았던 잡어가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먹지도 못하고 재수도 없는 복어새끼, 손가락만한 
놀래미 새끼, 월남붕어, 피라미 등이 잡히면 낚시꾼들은 재수 없어 합니다. 그물망에 넣어두지 않고 
살려주거나 풀밭에 던져버리지요. 

낚시꾼들은 작은 물고기 백 마리보다 대어 한 마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무엇보다도 
대어가 끌려올 때의 그 짜릿한 손맛은 낚시꾼들에게 있어 천국체험입니다. 

대어를 낚아 올린 낚시꾼은 마치도 자신이 해산한 아이를 바라보듯이 흐뭇한 얼굴로 대어를 
바라봅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잉어를 끌어안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습니다. 붕어와 뽀뽀를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뿌듯한 심정으로 잡은 대어를 그물망에 넣습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들어 올려 바라봅니다. 진정 기뻐합니다. 세상 끝 날에 하느님께서 하실 역할은 바로 그런 
낚시꾼의 역할일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를 뜨기도 뭣하고, 매운탕꺼리를 하기도 뭣한 별 도움 안 되는 잡어들은 ‘재수 없다’며 멀리 
멀리 집어던지듯이, 한 세상 살아오면서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 그러면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 존재의 가치가 없었던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가려내어 영원히 
가슴 치며 통곡할 괴로운 장소로 보내실 것입니다. 

반면에 한 평생 쌓아온 덕과 선행으로 통통히 살이 오른 대어 같은 사람들은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시며 ‘잘 왔다’며 쓰다듬어 주실 것입니다. ‘기다렸다’며 행복해하실 것입니다. 그 대어들은 
하느님 당신 도성에서 성인들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상선벌악, 선한 사람에게는 상급(천국)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지옥)을 내린다는 교리, 
어찌 보면 시대에 맞지 않는 고루한 교리라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지만, 불변의 진리이자,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오늘 비록 힘겨워도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급을 내다보며 다시 한 번 힘차게 일어서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이웃사랑의 실천과 작은 선행의 실천으로 대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1491~1556)

◈ 만학

성 이냐시오의 희망은 군인이었으나 전쟁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후 군인으로 살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30대 중반에 학교로 돌아가서 43살에 졸업했다. 그래서 
그는 군인의 수호 성인인 동시에 만학도들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젊어서 진학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나 공부를 마치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학교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다. 

만학도들은 뒤늦게 배우는 만큼 학교 수업도 더 진지하게 듣는다. 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대학에 다닐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쉰 살이 다 되어서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다. 주위에서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제가 어떻게 교사가 될 수 있죠?” 성 이냐시오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 자기 
나이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어린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고 그래서 훗날 큰 수도회인 예수회를 
세운 것처럼, 당신에게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만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학교에 들어간다면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가? 무엇인가를 배우기에 너무 늦은 때는 없다. 

- 생활성서[작은 거인들]중에서 - 

 

◈ [평신도] 하느님이 쳐놓은 그물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아름답지만 때로는 예고도 없이 불어닥친 거친 비바람 때문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거대한 바다 같은 인생 여정을 거쳐 우리는 중년이 되어 만났다. 
어떤 이는 중후해졌고, 어떤 이는 머리가 벗겨져 어릴 때의 얼굴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각자 살아온 과정도 다르고 현재 머물러 있는 곳도 달랐다. 

우리가 다닌 학교는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여서, 동창생은 겨우 사십여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6년이라는 긴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체험을 함께 나눈, 순수했던 기억을 공유했기 때문에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들 나름대로 자기가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를 하느님의 뜻으로 해석하고 
감사하며,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분량만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다닌 
학교는 미션스쿨이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등학교 교육을 통해 쳐놓은 하느님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만남의 기쁨도 기쁨이지만 우리는 그 그물의 힘과 신비로움에 대해 오래 
이야기했다. 

갈릴래아 호수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있다고 한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부정해서 못 먹는 
고기도 있다. 일단 그물은 먹을 수 있든 없든 걸리는 고기는 모두 잡는다. 나누는 일은 그분의 
몫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느님이 쳐놓은 그물에 내가 걸려들었듯이 
나 역시 오늘, 세상을 향해 그물을 던져올려야 할 일이다. 

- 박혜원(경남 거창고등학교) - 

 

◈ [수도회] 무엇을 꺼낼까   
 
가끔 텔레비전에서 개신교의 예배 장면을 보게 됩니다. “구원받으셨습니까?” 하는 목사님의 
질문에 “구원받았습니다” 하고 외치는 신도들의 대답이 인상적입니다. 동일한 질문을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실제로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 더 
독촉하니 “글쎄요”가 전부였습니다. 사실 어렸을 적부터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도 바로
 ‘지옥’이나 ‘연옥’으로 연결된 ‘죄의식’입니다.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 연옥불로 고통을 받고나서야 천국에 오를 
수 있다니, 판공성사 때마다 흔히들 고백하는 대로 ‘사는 게 죄’인 마당에야 누가 선뜻 
구원받았다고 응답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은 26절부터 50절까지 이어진 제자교육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의 
제자들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제자(13,52)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 심판은 분명히 
있게 될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지옥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기쁨을 강조하십니다. 

말썽을 피우고는 깜깜해질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고 으슥한 곳에 숨어 있던 꼬맹이 때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큰일도 아니었는데, 날 찾아 헤매시는 어머니의 
안타까움은 헤아리지 못하고 오로지 혼날 일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곳간에서 죄와 두려움의 옛것이 아니라, 은총과 기쁨의 새것을 꺼내 
보아야겠습니다.

- 예수고난회 서현승 신부 - 
 
  
 
◈ [수도회] 하느님의 그물

아침, 저녁의 서늘한 바람, 높고 푸른 하늘이 가을처럼 느껴집니다. 
여름 안에 가을이 있는 것처럼, 삶 안에 죽음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이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갑니다. 
욕심이나 환상(幻想)의 치유에 
‘하느님 묵상’ ‘죽음 묵상’처럼 좋은 처방도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의 그물,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 앞에, 죽음 앞에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실 죽음 있어 
삶이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하느님 주신 귀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한번 뿐이 없는 선물 인생,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죽음에 대한 자각이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니다. 
매일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게 합니다. 
탐욕에서 벗어나 하늘을 떠가는 흰 구름처럼 초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 
옛 사막 수도자들의 이구동성의 지혜로운 충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하느님의 그물, 죽음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쳐놓은 그물과 같다 합니다. 
세상 종말에 하느님은 바다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듯, 
당신의 그물을 걷어 올려 의인들 가운데 
악한 자들은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의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음을 봅니다.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예레미야를 통한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의 손 안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율사처럼 지혜로운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좋은 분별의 지혜를 갖춘 집 주인과 같이 처신하는 겁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느님이 옹기장이라면 우리는 진흙입니다. 
묵묵히 하느님 뜻에 순종하면서 
주님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조각되는 우리들입니다. 

얼마 전에 써놓은 ‘영원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글을 소개하면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영원을 사는 사람들 

언제나 
거기 그 자리 
오랜 세월 
거친 파도에 
깎이고 닦이고 파인 
신비로운 모습 
바위 같은 사람들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 물살 
사람 물살 
일 물살 
사건 물살에 
아무리 깎이고 닦이고 파여도 
떠내려가지 않고 

언제나 
거기 그 자리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비한 모습 
바위 같은 사람들 

움직임 중에도 
움직이지 않는 중심에 
깊이 뿌리내려 
지금 여기서 
영원을 사는 
바위 같은 사람들 

흐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세월일 뿐! 

온갖 흐름의 물살들로 
당신의 형상대로 
평생 
우리를 조각하시는 임이시다. 아멘 

- 베네딕토회 이수철 신부 - 

   

◈ [수도회] 양식은 충만하여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어제 복음에 이어서 오늘도 하늘 나라에 대한 교육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늘 
나라를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고 하셨다. 하늘 나라가 그물과 
같다니?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라고 물으셨듯이 
이 비유의 뜻을 다 깨달았는가? 이 비유를 다 깨달아야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가 
되고,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이 처음에 제자들을 부르실 때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하늘 나라란 고기를 잡는 그물이다. 무슨 고기를 잡는 그물인가?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넓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서 사람들을 구해주는 그물이다. 깊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건져내어 살려내는 그물이다. 죽음의 바다에서 생명의 
바다에로 건져내는 그물이다. 

"배를 져어가자 희망의 나라로!" 라는 노래가 있듯이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바다에로 건져내는 
그물이다. 고통 중에 신음하고 있는 이들,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이들, 마음이 허전해서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여기 저기 방황하며 떠돌고 있는 이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들, 
과거의 깊은 상처를 안고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억눌려 있는 이들, 사랑에 목마른 이들 
등을 건져내는 그물이다. 

그 그물 안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죄인도 있고 의인도 있다. 예수님이 치시는 
그물에는 마치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 5,45)라고 하셨듯이 이것 저것을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고기를"다 끌어 올리는 그물이다. 

왜냐하면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9-40)라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것이 당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오늘도 그물을 쳐서 온갖 
종류의 고기들을 모아들이신다. 

예수님이 그물을 쳐서 모아들인 고기들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모으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리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들은 사람 낚는 어부들이다. 
즉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하기 위해 불러 주셨고 그 사명을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좋은 것들이고 무엇이 나쁜 것들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식별의 능력이 없으면 좋은 것들을 나쁜 것이라 하고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나쁜 것들을 좋은 것이라 하여 모아들이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만이 할 수 있다. 

"하늘 나라 교육을 받은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비슷하다."라고 말씀하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서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럼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낸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너울에 가리워져서 우둔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옛 계약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 너울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비로서 벗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율법을 읽을 때마다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너울로 가리워져 
있습니다. 이 너울은 모세의 경우처럼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 갈 때에 비로서 벗겨 지게 되는 
것입니다."(코후 3,14-16) 

새것은 신약이요, 옛것은 구약이다. 구약은 신약을 통해서 비로서 너울이 벗겨 진다. 그러나 
때로는 신약인 새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옛것인 구약을 들어 설명해주어야 알아들을 수가 있다. 

예수님도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라고 말씀하셨듯이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약의 빛을 
받아야 하고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빛을 받아야 한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여 완성시켜 준다. 따라서 하늘 나라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란 구약과 
신약을 올바로 배워서 신약을 설명하는데 필요하다면 구약을 꺼내고 구약을 보충하는데 신약이 
필요하면 신약을 꺼내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리스인이란 무엇보다도 구약과 신약을 모두 공부한 사람들로서 자기 곳간에 언제나 
말씀으로 충만해있고 그래서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저런 사람을 만나면 저렇게 설명해줄 수 
있을만큼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이 그물을 쳐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 올려 오면 앉아서 나쁜 것은 밖으로 내던져 버리게 하고 좋은 것은 
모아서 더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가장 큰 취약점은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당에는 다니지만 하늘나라에 대한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들은 많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왔다가 떠나거나 냉담을 하게 된다. 왜 그런가? 그 사람에게 알맞게 즉 
사람에 따라서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늘 나라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가 부족한 것이 오늘 우리 교회의 취약점이라고 생각된다. 

교회는 예수님이 그물을 쳐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 올려오면 그들을 올바르게 하늘 나라 
교육을 시켜야 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교회는 점점 하늘 나라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가득찰 것이며 언제 어떤 신자라도 처음에 
교회에 오는 사람을 만나서 새것고 꺼내주고 옛것도 꺼내 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교회는 얼만 풍요로울까? 늘 사람들로 들끌을 것이고 양식은 충만하여 누구나 먹고 먹어도 늘 
넘칠 것이다. 

- 성바오로회 유광수 신부 - 

  
 
◈ [서울] 가려질 운명의 시간은 분명히 온다   
 
하루는 냉담을 하고 있는 한 신자로부터 냉담하게 된 이유가 주변의 다른 신자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성당에는 좋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면서 
성당에 나오는지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기를 실망시킨 그 사람으로 인해 냉담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사람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그가 참으로 안타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그 많은 열심한 신자들과 성실하게 말없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하필 그렇지 못한 사람 몇을 보고 전체를 평가하여 쉽게 실망을 하고, 심지어 하느님을 멀리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선한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사람도 함께 공존하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선하게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이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 
우리의 불완전한 사회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에도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13,47-48)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인과 악인이 구분될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세상 심판에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시는데 선한 사람은 하늘 나라로 가고 악한 
사람은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이 세상의 모습과 교회에서 가끔씩 보여지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에 실망을 
하기도 하고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부족한 인간들끼리 서로 감싸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마음이 더욱 필요한 것이지요. 
논어에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인물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라도 좋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롭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는 뜻하지 않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 어려움이 단지 무의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성숙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알고 노력한다면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눈물겨운 시련을 겪고 더욱 깊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대학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앞날이 온통 무지개 빛이었던 ‘이지선‘이라는 자매는 2000년 어느 날 
교통사고로 온몸에 끔찍한 중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책을 냈는데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온몸에 화상의 흔적이 남았지만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는 믿음, 그 끔찍한 사고에서 목숨을 건져주신 하느님께서 자신을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시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느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 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느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 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이레출판사, 본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 속에서도 또 많은 시련 속에서도 좋은 것을 볼 줄 알고, 그 어려움이 
나를 성숙시키고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만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이기양 신부 -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장 25-33절) 

◈ [서울] 진정한 신앙인의 길

예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또한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를 미워하고 내 목숨까지도 미워하라고 하시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 주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적극적인 가르침입니다. 

신앙행위는 자신의 자유 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신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으며,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물론 십자가의 삶은 인간적인 
판단이나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세상 속에서 
고통과 수난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당장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결국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 허영업 신부 -


 
 
 
♬ 풀꽃의 노래 - 이해인 시, 이수진 곡. 성 바오로 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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