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dan Campbell and Gregg Evans
July 2, 2025 | Updated 10:04 pm GMT+9
2022년 5월에 발행된 기존 기사를 수정 및 업데이트한 기사입니다.
덜 자란 잔디 위에 서서 휘날리는 바람을 고요하게 마주보는 소년이 있다.
배경은 누가 봐도 1980년대다. 덥수룩하게 길러진 뒷머리는 흐트러진 갈기처럼 나부끼고, 허리까지 끌어올린 흰색 아디다스 반바지, 그리고 사진 속 모두가 신고 있는 구식 축구화까지.
지오바니 반 브롱크호스트의 발끝은 항상 마법과도 같았지만, 리버풀이 그를 아르네 슬롯의 코칭 스태프로 영입한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그의 뛰어난 축구 두뇌였다. 리버풀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기반으로 더 큰 성공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의외의 선임이다. 50세의 반 브롱크호스트는 페예노르트, 레인저스, 베식타스 감독을 역임하며 오롯이 자신의 감독 커리어에 집중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가 다시 감독직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리버풀이 축구라는 종목을 평생 연구해온 지도자를 영입했다는 데 확신을 가져도 좋다.
그가 처음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어머니가 그를 로테르담 자택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지역 유소년 클럽 링커 마스 오버 로테르담(Linker Maas Oever Rotterdam, 로테르담을 관통하는 왼쪽 강둑이라는 뜻, 약칭 LMO)에 데려갔을 때였다. 이후 그에게 축구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팀은 로테르담의 조용한 지역에 위치해 있었지만, 여덟 살 소년의 얼굴에 맺힌 기쁨은 이후 그의 커리어 중 많은 순간들에서 반복되었다.
빼빼 말랐던 다리는 점점 굵어져 월드컵 준결승에서 40야드짜리 중거리 슛을 골문 상단에 꽂아 넣었고, 푸른색과 흰색의 LMO 유니폼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의 상징적인 오렌지색 유니폼으로 바뀌었다. 그는 오렌지 유니폼을 입고 무려 106경기에 출전했다. 이는 네덜란드 대표팀 역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LMO는 그들의 옛 유망주에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반 브롱크호스트는 페예노르트, 레인저스, 아스날, 바르셀로나 등 정상급 클럽을 거친 후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지만, 그의 고향 클럽은 그를 언제나 품고 있었다.
2023년 The Athletic이 LMO를 방문했을 때, 클럽 구내식당 싱크대 위 벽면에는 두 장의 큼지막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나는 LMO에 있던 유소년 시절 그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우루과이를 꺾고 2010년 월드컵 결승 진출을 확정짓는 골을 넣고 그가 환호하는 장면이다.
그 극적인 대비는 바로 옆 라커룸을 사용하는 유소년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반 브롱크호스트는 LMO에서 단 한 시즌만 뛰고 페예노르트로 이적했음에도 여전히 클럽의 귀감으로 여겨지고 있다.
선수 은퇴 이후 그의 삶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흥미로운 장을 써내려가고 있다. 2017년에는 페예노르트를 이끌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2022년에는 레인저스를 유로파 리그 결승까지 진출시키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2024년 베식타스에서의 5개월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3년간 무려 10명의 감독이 교체되는 혼란 속에서 그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는 이후 다른 감독직 제의를 신중하게 고민했고, 그 끝에 모든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욘 헤이팅아가 아약스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떠난 뒤 그 후임을 찾던 리버풀의 제안은 딱 맞는 퍼즐처럼 느껴졌다.
스포팅 디렉터 리처드 휴즈는 코칭 스태프진에 강력한 보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감독 경험이 풍부한 반 브롱크호스트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슬롯과의 면담은 곧바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전술 스타일과 야망의 측면에서 금세 서로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두 사람 모두 페예노르트 감독 출신으로 축구계에서 이미 몇 차례 마주친 인연이 있었지만,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이번 영입은 어디까지나 반 브롱크호스트가 지닌 코칭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프리미어 리그 복귀는 항상 그의 소망 중 하나였으며, 현재 그는 리버풀의 성공에 기여하면서 본인의 트로피 컬렉션에 뭔가를 더하겠다는 각오로 가득 차 있다.
그가 3대에 걸쳐 물려받은 말루쿠(Moluccan)계 혈통은 그의 정체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그의 성격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말루쿠 제도는 인도네시아 동부에 위치한 군도로, 약 2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네덜란드에는 약 7만 명의 말루쿠계가 살고 있다. 그의 국적인 네덜란드와 그의 혈통간의 인연은 네덜란드가 향신료 독점을 시도하던 식민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말루쿠 제도는 향신료 제도(Spice Islands)로도 불렸다. 그러나 이후 관련 산업이 붕괴된 뒤, 말루쿠는 다른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말루쿠인들의 뛰어난 전투력이었다.
반 브롱크호스트는 1994년 페예노르트 1군 무대에 데뷔했으며, 그 전 시즌에는 RKC 발베이크로 임대되었었다. 그는 자신에게 축구의 기본적인 전술과 방향성을 처음으로 심어준 유소년 코치 마웁 마르턴스를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는다.
당시 페예노르트는 황금기와는 거리가 있었고, 그는 4시즌 후인 1998년에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당시 레인저스의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였다. 그리고 그의 수석코치였던 베르트 반 링언은 네덜란드 청소년 대표팀에서 반 브롱크호스트가 14살이던 시절부터 그를 지도해온 인물이었다.
반 링언은 The Athletic과의 202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선수들에게 본보기였죠. 재능 있고, 협조적이며, 훌륭한 성품을 지녔고, 배우려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지오와 함께라면 문제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그는 빠르게 팀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고, 건강한 가정 환경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클라렌스 세도르프도 마찬가지였고요. 문제 있는 에이전트도 없었습니다. 아버지들께서 그 일을 도와주셨으니까요.”
아드보카트는 엄격한 지도자로 유명했지만, 반 브롱크호스트는 그런 지도 아래에서 중요한 원칙들을 배웠고, 코치로 활동 중인 현재까지도 그것들을 활용하고 있다.
반 링언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항상 다음 상황을 예측할 줄 알았습니다. 팀 전체가 그로 인해 더 똑똑해졌고, 거친 경기에서는 거친 방식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공을 소유하며 기회를 보는 방식으로, 전략적으로 움직였어요. 그는 언제나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고 있었죠. 충동적이지 않고 균형 잡혀 있었습니다. 그건 재능입니다. 성장 배경이 한몫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시절 반 브롱크호스트는 아스날에서 아르센 벵거로부터, 바르셀로나에서는 프랑크 레이카르트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최고의 감독들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레이카르트와 성격, 특히 큰 경기를 대하는 자세에서 닮았다고 말한 적 있다. 이후 그는 페예노르트로 복귀해 3시즌을 보낸 뒤, 로널드 쿠만의 수석코치가 되었다. 이후 쿠만의 후임 프레드 뤼턴이 팀의 우승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못하자, 반 브롱크호스트가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이때 그는 과거에 맺은 신뢰 관계를 이용한 인사를 단행했다.
얀 바우터르스는 반 브롱크호스트가 아스날로 이적한 직후인 2001년에 레인저스의 수석코치로 부임한 인물이었지만, 이후 유로 2004에서 아드보카트의 수석코치로서 대표팀에 합류해 함께한 인연이 있었다.
반 브롱크호스트는 바우터르스에게 로테르담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고, 아드보카트도 일주일에 한 번씩 팀을 찾아와 함께 논의를 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브롱크호스트는 부임 초기부터 큰 압박에 직면했다. 7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부진한 흐름에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당시에 대해 바우터르스는 이렇게 말한다. “결과는 안 좋았지만 득점 기회를 놓쳐서 결과를 못내는 경우가 많았기에 우린 현실 감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같은 상대를 다음에 다시 만나면 우리가 이기곤 했죠. 심지어 그가 데리고 있던 선수들은 리그 최고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센터백 두 명의 빌드업은 괜찮았지만 수비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죠. 지오는 각 선수의 장점에 맞게 전술을 구성했습니다.”
“그는 폭 넓은 전술 스타일을 구사합니다. 단순히 네덜란드식 4-3-3만 쓰는 감독이 아니죠. 3-5-2와 5-3-2도 잘 알고 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압박과 전방 침투가 당연하다고 여겨지지만, 지오는 그저 무작정 달리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빌드업이 안 되는 팀이라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더 다이렉트한 방식도 필요한 법입니다.”
그의 이런 단단한 의지는 2016년 KNVB컵 우승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브래드 존스, 스티븐 베르하위스, 니콜라이 예르겐센의 영입은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이끈 반등의 불씨가 되었다.
당시 그는 몇몇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며 팀을 운영했지만, 시즌 막판 일정은 그의 용기를 다른 방식으로 시험했다. 시즌 4경기를 남기고 아약스와의 선두 경쟁이 치열하던 상황에서 그는 베테랑 디르크 카윗을 3경기 연속 스쿼드에서 제외시켰고, 마지막 우승 결정전에서야 그를 다시 선발로 내세웠다. 결과는 카윗의 해트트릭이었다. 그리고 우승이었다.
바우터르스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건 지오나 디르크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페예노르트에 무엇이 최선이냐의 문제였죠.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애쓰는 척을 하면 될 일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오는 자연스럽게 방법을 찾아냈어요. 그는 늘 조금 여유 있어 보이지만, 상황이 안 풀리면 리더가 됩니다. 단순히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거든요.”
바우터르스는 반 브롱크호스트의 가장 인상적인 측면 중 하나가 바로 훈련과 분석에서의 적극성이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경기를 다시 보고, 모든 훈련을 복기하며, 특히 금요일에 진행하는 11대11 훈련까지 꼼꼼히 체크해, 경기 전 게임 플랜이 얼마나 잘 실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감독이다.
그의 다음 감독직은 광저우 R&F였다. 그러나 팀을 옮기기 이전, 그는 6개월의 시간을 따로 떼어 시티 풋볼 그룹(이하 CFG)에 합류해 그들의 운영 방식을 배우고 축구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 데 투자했다. CFG는 맨체스터 시티를 포함한 여러 클럽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CFG의 풋볼 디렉터 치키 베히리스타인과 인연이 있었다. 2004년 바르셀로나로 그를 영입한 인물이 바로 베히리스타인이었다. 뉴욕 시티에서 당시 단장을 맡고있던 클라우디오 레이나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레이나는 그에게 CFG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안식년을 가져보라는 제안을 했다.
그는 CFG의 코칭 서포트 총괄인 세리 보울리와 짝을 이뤘다. 보울리는 그룹 산하의 모든 1군 코치 채용과 철학 공유를 담당하는 인물이다.
현재 미국 여자 축구 리그의 노스 캐롤라이나 커리지에서 스포팅 디렉터 겸 수석 축구관으로 일하고 있는 보울리는 The Athletic에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는 배우기 위해 온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시간이었죠. 우리 입장에서는 CFG 내에 어떤 자리가 생길 경우, 그를 후보가 될 수 있는 인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보통 보울리는 외부 코치들과 1~2주 정도만 함께 일하지만, 반 브롱크호스트는 무려 6개월을 함께했다. 그는 그렇게 CFG의 방법론을 익혔다. 그는 과르디올라의 훈련을 관찰하고, 에티하드에서 챔피언스 리그 경기가 끝난 뒤에는 직접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보울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축구계에서 방법론이라는 단어가 종종 쓰이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게 철학을 말하는 경우가 많죠. 학문에서처럼, 방법론은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하든, 그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과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핵심인 것이죠.”
“우리가 나눈 가장 중요한 대화 중 하나는 다양성의 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감독들은 늘 같은 스태프들을 데리고 다니지만, 퍼거슨 경은 그들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는 명장이었죠. 자신과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물론 본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부분도 분명 공유되어야 하지만요. 그리고 반 브롱크호스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앉아서 영상을 보면 그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합니다. ‘전직 선수니까 뭐 당연히 그래야지’라고들 하지만, 전직 선수들 중에서도 그런걸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그의 겸손함과 이타심 또한 그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그는 매일,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죠.”
보울리는 이후 레인저스에서도 반 브롱크호스트와 함께했다. 그곳에서 그는 2년간 팀을 이끌며 1972년 이후 처음으로 레인저스의 유럽 대항전 트로피에 도전했지만, 유로파 리그 결승에서 아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승부차기 끝에 고배를 마셨다.
페예노르트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는 비디오 분석과 전술 복기에 집중했으며 세부 사항과 훈련의 엄격함을 고수했다. 구단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석의 비중도 커졌고, 상대팀 분석보다는 자신의 팀 스타일을 복기하고 개선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뒀다.
그러나 글래스고 라이벌 셀틱과의 리그 경쟁에서 뒤처지고, 이후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악의 조별리그 성적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되면서 그는 레인저스를 떠나게 되었다. 레인저스는 리버풀, 나폴리, 아약스를 상대로 6전 전패, 골득실 -20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레인저스는 이후에도 반등하지 못했다. 그리고 베식타스에서의 짧은 임기까지 더했을 때, 반 브롱크호스트 또한 그의 이름 옆에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두고 있다.
리버풀에서의 성공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이 될 수도 있고, 미래의 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헤이팅아의 사례처럼, 프리미어 리그 빅클럽의 코칭 스태프 일원으로서 경험을 쌓는 것은 유럽 빅클럽 감독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감독 슬롯과 수석코치 시프케 헐쇼프를 돕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그가 새로 잡은 기회는 오랜 세월 쌓아온 그의 경험과 전문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의 이 역할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퇴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버풀 역시 다시 정상에 도전하는 여정에 있어 그와 함께 하게 된 것을 기대하고 있다.
(Top photo: Marcel van Dorst / EYE4images/NurPhoto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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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John Aldridge 작성시간 25.07.03 번역 감사합니다. 반브롱호스트가 좋은 감독들 밑에서 굉장히 영리한 플레이했다는건 알고 있었는데..
레인저스와 페예노르트에서 우승 토로피를 들었던 감독 출신이군요. 그 이후에는 감독으로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나본데
그래도 슬롯하고 같이 네덜란드 스타일에 축구를 하기에 도움이 많이 될거 같습니다.
같은 네덜란드 레전드이고 언어도 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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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범고래 작성시간 25.07.03 언어야 뭐,, 네덜인들 영어 보통 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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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야옹냐옹야옹냐옹 작성시간 25.07.03 변방리그 감독에서 빅클럽 코치로 오는게 없던일은 아니지만
수코로 힐쇼프가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그 아래 일반 코치로 오는건 좀 의외긴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감독으로 봤었을때 레인저스나 베식타스에서 그렇게 전술적으로 뛰어나다거나
임팩트가 있다 하는 생각은 잘 안들었어서 헤이팅아처럼 부분부분 포인트 주는쪽에 집중시키는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
작성자제라드만있다면 작성시간 25.07.03 오래있을분같지는 않지만 무튼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