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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플레이어 트리뷴] 디보크 오리기의 이야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축구여, 감사합니다.”

작성자표창도적|작성시간26.06.09|조회수583 목록 댓글 13

(역주: 종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는 오리기의 이야기의 특성상 ‘God‘를 ‘하나님’으로 번역했습니다.

안필드코리아 클럽소식 게시판은 원문을 제외한 번역자의 사견을 바탕으로 한 특정 종교나 정치적인 메시지가 담긴 글을 제한합니다.)


제 가족, 친구들, 그리고 저를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사람들은 축구선수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그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선수들만이 진짜로 아는 그 침묵 말입니다. 큰 경기가 끝난 뒤 호텔 방 문을 여는 순간 찾아오는, 완전히 죽은 듯한 정적 말입니다.

제가 절대 잊지 못할 침묵이 하나 있습니다.

2014년 6월 22일이었습니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벨기에 대 러시아 경기였습니다. 우리는 16강 진출을 위해 결과가 필요했고, 경기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조금 더 이전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제가 대표팀 명단에 포함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19살이었고, 당시 1군 대표팀과 단 한 번도 훈련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정말 저는 축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습니다.

대표팀 발탁 전화를 받았을 때, 저는 어머니와 함께 가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 있었습니다. 릴에서 좋은 시즌을 보낸 것을 기념해 어머니께 특별한 선물을 사드린 직후였습니다.

그때 벨기에 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크 빌모츠 감독이 제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를 국가대표팀에 발탁하려고 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

저와 어머니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심으로요.

우리는 급히 라디오를 켰고, 선수 명단이 하나씩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벨기에 황금세대의 전성기였습니다.

뎀벨레, 주장 콤파니, 아자르, 케빈, 티보 쿠르투아….

그리고 이어 들려온 이름. 오리기였습니다.

라디오에서 제 이름이 흘러나오는 순간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너무 벅찼고,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리우에서 러시아와 경기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경기는 0-0이었고 종료까지 약 3분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기억납니다. 제가 깊숙이 드리블해 들어가 공을 잡았고, 에덴에게 패스했습니다. 에덴은 왼쪽에서 플레이를 마무리한 뒤 다시 제게 공을 내줬고, 저는 그 공을 밀어 넣었습니다. 88분이었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세요. 처음으로 당신을 챙겨줬던 로멜루를 대신해 경기장에 들어갑니다.

당신은 마라카낭에 서 있습니다. 그곳은 아버지의 꿈의 경기장이었습니다. 더 큰 유럽 리그에서 뛰어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꿈이었습니다.

믿기 힘들 만큼 대단한 일을 해내며, 제가 당신의 큰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아버지였습니다.

펠레를 가장 좋아했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마라카낭은 펠레의 경기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펠레의 경기장에서 골을 넣게 됩니다.

저는 그저 그 유산을 이어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말 순수한 행복이었습니다. 말 그대로요. 분명 하나님이 함께하신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순간을 이렇게 부릅니다. ‘하나님의 순간’이라고요.

벨기에 국왕과 왕비도 경기장에 와 있었습니다. 경기 후 모두 함께 축하하고 있었죠. 저는 의전을 깨고 국왕께 셀카를 요청했는데, 국왕은 흔쾌히 받아주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만나 꼭 안아드렸고, 어머니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웃겼던 건, 다른 선수들이 다가와 자기 팀으로 오라고 영입 제안을 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올래?!” 같은 식이었죠.

하하. 모든 게 정말 미친 듯이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고, 저는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게 ‘침묵’입니다.

경기가 끝나면 음악이 울려 퍼집니다. 리우에서는 당연히 삼바였죠.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응원가, 기자회견, 언론, 기쁨에 미쳐 소리치는 수천 명의 사람들까지.

엄청난 소음이 쏟아집니다. 마라카낭, 보두앵 국립경기장, 안필드를 동시에 흔들 만큼의 소음 말입니다.

그 모든 소리가 경기장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축구 열기로 섞여버립니다. 경기장을 걸어나올 때면 피는 뜨겁게 끓고,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뛰게 합니다. 귀는 계속 울리고요.

그리고 호텔 방으로 돌아가면, 모든 게 완전히 조용해집니다.

거의 평온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 문 밖에서는 온 세상이 축제를 벌이고 있지만, 그 작은 방 안에는 오직 당신과 당신의 생각만 존재합니다.

사람은 그 침묵 속에서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커리어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순간에도, 세상이 마침내 조용해지고 제가 혼자 그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나님은 제게 제 삶의 목적을 속삭여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벨기에는 완전히 들끓었습니다. 저는 온라인으로 벨기에 신문들을 전부 사봤는데, 모든 1면에 제 얼굴이 실려 있었습니다.

고향 집에는 촬영팀이 와 있었고, 제 여동생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인 마빈 빌럼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모습도 봤습니다.

나라 전체가 저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미용실에서는 저처럼 머리에 노란 라인을 넣어주는 무료 쿠폰까지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정말 비현실적이었습니다.

저는 벨기에 역사상 최연소 월드컵 득점자가 됐고, 월드컵 역사 전체로 봐도 최연소 득점자 10명 안에 들게 됐습니다.

또한 케냐 혈통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선수가 됐는데, 그 기록은 제게 정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벨기에의 영웅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영화도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할리우드, 연락 주세요!!

이건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디보크 오리기 이야기’ 같은 스토리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믿기 힘든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제가 상상했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발밑에 공을 달고 살아왔습니다. 공은 제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밤에 잠들 때도 공은 늘 제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공을 꼭 안고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매치 오브 더 데이’에서 제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축구는 제 삶의 전부였습니다.

“디보크,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흥, 그런 걸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었을까요?

어릴 때 프로 선수를 꿈꾸다 보면 참 신기합니다. 사람은 최고의 순간들만 상상하게 됩니다. 모든 걸 꿈꾸고, 머릿속으로 이미 이야기를 다 써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제대로 상상하지 못합니다.

꿈속에서 당신은 늙지 않습니다. 그 이후의 시간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그저 시간 속에 멈춘 채 경기장 위 영광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혹은 월드컵 출전 같은 순간들 속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사랑하는 이 축구라는 스포츠 안에서 이뤄낸 모든 것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 그저 고개를 흔들게 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벨기에와 케냐에서 자란 작은 소년이 자신의 모든 꿈을 이뤘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축구여, 감사합니다.

월드컵 이후 저는 리버풀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정말 비현실적인 기분이었습니다.

훈련 시설을 처음 방문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구단은 제가 15살이었을 때부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모아 보여줬습니다. 그들은 제 플레이 스타일을 알고 있었고, 저라는 선수 자체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나는 여기 있어야 한다”라고요.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브렌던 로저스는 정말 저를 믿어줬습니다. 그는 제게 메시지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게는 다니엘 스터리지도 있고, 라힘 스털링도 있다. 그리고 너를 다음 세대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시키고 싶다.”

릴은 저를 곧바로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1년 더 임대 형식으로 남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1년은 쉽지 않았습니다.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당시 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방식이 건강한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에 저는 제 감정을 안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갖기 위해 상담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진짜 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저는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점점 제 안으로 숨어들어갔습니다.

정신적으로 제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제 창의성과 경기장에서 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막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감각을 다시 찾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깊이 제 안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릴은 제가 성장한 곳이었습니다. 제게는 두 번째 집 같은 곳이었죠. 그런 곳에서 마지막 시즌을 힘들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버지께 다시 제 수준을 끌어올릴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좋아, 결정력 훈련을 하러 가자”라고 하셨고, 우리는 함께 훈련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주 뒤, 저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그 순간은 그해 제가 숨을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늘 기억합니다. 마치 할머니와 관련된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았고, 또 어린 시절처럼 아버지와 다시 함께 훈련했던 시간이 연결돼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잠시 제 아버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릴 때 제가 알고 있었던 건 단 하나였습니다. “아빠는 우승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1999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입니다.

아버지 이름은 마이클이지만, 모두가 마이크라고 불렀습니다.

아버지는 1990년대 벨기에의 헹크와 케냐 국가대표팀에서 뛰었습니다.

저는 세 살이었습니다. 그 나이에는 기억이 제대로 남기 어렵죠. 하지만 저는 경기장에 있었던 것과 그 감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는 어머니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어머니 친구 한 분도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헹크가 리그에서 우승하려면 승점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두 분이 아주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물론 그 나이에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분위기 자체가 정말 짜릿했습니다.

그리고 우승 이후 아버지는 마치 전설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제가 좀 더 자란 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갑자기 다가와 “마이크!!”라고 외치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아버지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학교에서 축구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나도 그 재능을 갖고 있구나”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축구를 할 때마다 사람들이 말하곤 했습니다. “쟤가 마이크 오리기 아들이야.”

저는 축구를 잘 아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느꼈습니다.

아버지는 축구를 이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에게 엄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리기’라는 이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U-11 시절부터 늘 벨기에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다른 또래 아이들이 “쟤가 누구 아들이다”라고 알고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후자의 경우 아이들은 반드시 당신을 시험하려 듭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로 그 압박감을 느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강한 압박과 긴장감 속에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저는 결국 아버지의 그림자를 짐처럼 바라보는 대신, 그것을 제 친구처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제 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 디보크 오리기 아버님이시군요.”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꿈이었습니다. 정말로요. 그것은 아버지가 가장 바라던 일이었고, 결국 현실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의 이름이 마라카낭에서 울려 퍼졌고,

안필드에서는 전설이 됐습니다.

“You’ll Never Walk Alone.” 저에게 그것은 단순한 문구가 아닙니다. 정말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리고 안필드 전체가 하나 되어 그 노래를 함께 부를 때면…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안필드라는 축구의 성당 안에서는 모든 경기가 전율 그 자체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모든 방향으로 끌어올립니다.

도시의 분위기, 노동자 계층 문화, 스카우스 억양까지. 그 모든 것이 리버풀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인간적이고, 더 진짜 같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팬들이야말로 그 영혼이었습니다.

처음 리버풀에 왔을 때 저는 외곽 지역인 폼비에 살았지만, 이후에는 시내 중심가로 이사했습니다.

팬들은 예전에 헹크에서 제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제 이름을 불러주곤 했습니다. 수미상관의 느낌이었습니다.

팬들은 저를 볼 때마다 특유의 억양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디보크! 딱 하나만 해줘. 우리한테 프리미어리그 우승만 안겨주면 넌 여기서 전설이 될 거야!!”

골을 넣고 다음 날 커피를 마시러 나가면 정말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그 한가운데 있었고, 그 뜨거운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항구 근처를 자전거로 달리거나 산책하곤 했습니다. 단골 커피 가게도 하나 있었습니다. 리버풀은 제게 집이 됐습니다.

저는 곧바로 마마두 사코와 콜로 투레와 가까워졌습니다. 팀 동료들은 저를 정말 따뜻하게 받아줬습니다.

하지만 첫 한 달은 제가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훈련 강도는 제가 익숙했던 것보다 다섯 배, 여섯 배는 더 강했습니다.

저는 콜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 내 몸이 이걸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프랑스 축구는 템포 자체가 달랐습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프랑스 축구는 조금 더 느리고 기술적인 음악 같았습니다. 반면 프리미어리그는 헤비메탈이나 트랩 랩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몸에는 실제로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더 빠르게 생각해야 했고, 훈련은 훨씬 강렬했습니다. 모든 것이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적응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경기도 많이 뛰지 못했고, 그건 정말 답답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뒤, 릴에서 힘든 시즌을 보냈고, 마침내 리버풀에 왔지만 또다시 제 리듬을 찾지 못하며 고전하고 있었습니다.

클롭 감독이 오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프리미어리그가 헤비메탈이나 트랩 음악이라면, 클롭 감독의 축구는 그보다 두 배는 더 강렬합니다.

그 압박 방식은 세상에서 가장 강렬한 축구였습니다.

첫 훈련이 기억납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감독 팀에서 뛰려면 초인간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의 스타일은 정말 클롭 감독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축구를 바라보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었죠.

클롭 감독은 잘못된 것이 있으면 정말 크게 소리치며 이야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누구보다 따뜻하게 다가와 가장 큰 포옹을 해주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두 가지 모습이 함께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는 세상 최고의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감독으로서는 단연 최고였고요.

당시 그의 축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과르디올라의 축구도 있었지만, 그건 티키타카라는 또 다른 방향이었죠. 클롭 감독의 축구는 그냥 강도를 끝까지 끌어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클롭 감독은 확고한 방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 길로 갈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토트넘과의 첫 경기에서 감독님이 저를 기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저는 계속 뛰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요.

한동안은 정말 좋았습니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뒤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며 몇 킬로 정도 근육을 늘렸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 저는 커리어 최고의 시기 중 하나를 보냈습니다.

2016년 유로파리그 8강 도르트문트전에서 골을 넣었고, 믿기 힘든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해 후반에는 5경기 연속 5골을 넣기도 했습니다.

저는 팀 안에 있었고 꾸준히 경기에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월 말 에버튼전에서 발목을 다쳤습니다.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습니다.

상대의 태클이 들어왔습니다.

하필 유로 대회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로멜루와 경쟁해야 했겠지만, 당시 분위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유로에서 제 역할이 기대되고 있었죠.

그런데 한순간에 발목 부상이 찾아왔습니다.

인대가 심하게 손상됐습니다.

유로에 못 갈 수도 있었고, 설령 가더라도 우리가 결국 진출했던 유로파리그 결승 여정에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유로에는 갔지만 몸 상태는 100%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더 이상 선발 명단에 들지 못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챔피언스리그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경기 하나만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그 ‘침묵’ 속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은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크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재활 중이던 어느 날, 사촌형 아놀드가 제 집에 찾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설교를 하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그 믿음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줬고, 그 덕분에 저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했던 말 중 특히 크게 와닿았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더라도,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완벽해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억압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이 제 눈을 뜨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제 신앙의 여정이 진짜로 시작됐습니다.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저는 스포츠 목사인 조지를 소개받았습니다.

신앙과 삶의 목적에 대해 제가 가진 질문들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된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비시즌 동안에도 저는 계속해서 그 영적인 여정을 이어갔고, 그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든 에이전시의 브라이언 리라는 멘토도 만나게 됐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사람을 만나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축구선수로서 제 삶 속에 신앙을 더 깊게 녹여낼 수 있도록 도와줄 사람 말입니다.

새 시즌이 시작됐을 때도 저는 리버풀에서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임대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볼프스부르크로 향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축구적인 측면에서 보면 제 커리어에서 가장 어려운 시즌이었습니다. 우리는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볼프스부르크는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였습니다.

아름다운 도시였고 사람들도 좋았지만, 조금은 고립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베를린 같은 도시는 아니었죠.

하지만 제게는 바로 그런 환경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제 신앙과 제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더 깊게 배워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명을 품고 리버풀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저는 한 번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 없는 내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볼프스부르크에서 돌아왔을 때, 저는 원래 리버풀을 떠날 예정이었습니다.

울버햄튼이 €30m의 제안을 했고, 떠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팀 전력에서 밀려난 상태였고, 전혀 경기에 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를 두고 기도했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제 안에서 리버풀에 남으라고 말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제 믿음이 저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제가 리버풀에 있기를 바라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분명 여기서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저는 리버풀에 남았고, 이후 6개월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말했듯 저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명단에서 제외된 날이면 강도 높은 5km 러닝 훈련을 했습니다.

훈련 중 11대11 연습경기에도 저는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이드라인에서 그저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감독님이 저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감독님은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지금처럼 계속 훈련해라. 계속 나아가.”

사실 저는 아무도 모르게 더 많은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만의 작은 비밀 같았습니다.

팀 훈련은 오후에 있었고, 저는 아침마다 시내의 작은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같이 슈팅 훈련만 반복했습니다. 오직 마무리 훈련만요.

해가 뜰 무렵이면 공들을 차에 싣고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파파라치에게 찍히지 않기를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 작은 시설에는 인조잔디 구장이 여섯 개 있었습니다.

가끔은 여섯 개 모두를 빌릴 수도 있었지만, 보통은 아니었습니다.

한쪽 코너에는 작은 골대 두 개를 두고, 정면에는 큰 골대를 세워놨습니다.

모든 것은 정확성에 관한 훈련이었습니다. 한 장면을 상상하고, 마무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그걸 한 시간 동안 반복했습니다.

그 훈련을 했던 시기는 10월이었고, 저는 당시 1군 전력에도 포함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 반복 훈련은 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 훈련은 단순히 침착함을 넘어선 새로운 종류의 평정심을 제게 줬습니다.

마치 완벽한 집중 상태 같았습니다.

저는 비로소 제 재능을 완전히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왼발 마무리도 오른발만큼 좋아졌습니다.

발등 안쪽으로. 마무리.

발등 바깥쪽으로. 마무리.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무대는 안필드에서 열린 2019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바르셀로나전이었습니다.

완전한 혼돈이었습니다.

리버풀은 1차전에서 0-3으로 뒤진 상태였습니다.

부상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클롭 감독은 저를 투입했습니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그 이후는 역사였습니다. 우리의 역사였죠.

그해가 끝날 무렵, 저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골 중 하나를 넣은 선수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그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벨기에에서 축구공을 꼭 안고 잠들던 여섯 살 소년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우상들처럼 되고 싶다고 기도하던 그 아이에게요.

“너는 결국 해냈어. 챔피언스리그도 우승했고, 프리미어리그도 우승했어!! 야, 네 골 장면이 ‘매치 오브 더 데이’에 나오고 있다고!!”

“그러니까 걱정 말고 푹 자. 결국 모든 건 잘 될 거야.”

지나온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을 오직 감사함만으로, 아무 후회 없이 되돌아볼 수 있을 때, 그때가 바로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마 제가 은퇴 결심을 가장 먼저 털어놓은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건 지난 2월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지금 네 마음 상태는 어떠냐?”

아마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문제를 두고 기도했다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아주 개인적인 문제다. 그 결정을 언제 내려야 하는지는 오직 너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거야.”

저는 세계 최고의 무대들과 거의 모든 주요 대회를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구 안에서 저는 스스로 충만함을 느낍니다. 제 여정이 완성됐다고 느껴질 만큼요.

골을 넣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 순간들, 제가 ‘하나님의 순간들’이라고 부르는 기억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고, 평생 마음속에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다가올 다음 이야기가 정말 기대됩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고, 지금까지 축구를 사랑해왔던 것과 같은 열정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삶의 영역들도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는 패션입니다. 저는 패션을 하나의 예술이자 기술로 진지하게 탐구하고 싶습니다.

이미 패션의 역사와 산업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최고 수준에서 그것을 배우고 싶고,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에게 직접 배울 기회도 얻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제 파트너이자 공동 소유주인 마빈 빌럼 오포리와 함께 만들고 있는 축구 에이전시 DLF를 통해 사업적인 영역도 계속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다음 세대 축구선수들을 위해서든, 더 넓게는 자선 활동을 통해서든, 누군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찾고 싶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으로서라도 말입니다.

축구 안에서 저는 언제나 스스로를 다음 단계로 밀어붙일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될 새로운 인생의 챕터에서도 저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에 진심으로 열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리 시작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요.

— 디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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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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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리의리버풀 | 작성시간 26.06.09 진짜 부상만 아니였다면 더 잘 컸을 텐데...
  • 작성자호나우두 | 작성시간 26.06.09 우리팀에서는 레전드
  • 작성자No.10 루간지 | 작성시간 26.06.10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남다른 노력의 결과로 기적형 공격수도 가능했던 것이라 느껴집니다 ㅎㅎㅎ
  • 작성자나르시스 | 작성시간 26.06.10 장문의 번역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에 쭉 다 읽었습니다.
    상상하고, 마무리한다. 그때의 감동이 밀려오네요. 앞으로의 오리기 행보에 행운만이 가득하길!!
  • 작성자애늙은이眞 | 작성시간 26.06.10 기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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