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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티스

작성자Vistar|작성시간10.02.27|조회수592 목록 댓글 0

색채의 절묘한 조화를 추구한 마티스 (Henri Matisse1869~1954) 
 
전기 야수파라고 불려지는 마티스는 순수 색조의 난폭한 터치로 신인상파의 점묘기법을 시도한다.

 
작품에서 장식성을 배제한 마티스는 비서구적인 예술 형식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1912년부터 1913년 겨울까지 모로코 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모로코에서 마티스는 화가로서 강렬한 태양과 원색의 꽃들, 낯선 이국의 빛깔과 문화에 감동했다. 
 
이후 마티스의 작품에는 비유럽적인 요소(원시미술)들이 상당부분 등장하게 되고 노년에 접어들어 관절염으로 인해 손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기법으로 제작된 색종이 그림을 그리게 된다. 

 

71세에 내장 장애로 수술을 거듭하면서 거동을 못하게 된 후 8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색종이 그림은 계속되었다. 마티스의 색종이 그림은 작품 세계의 완결이라고 표현될 만큼 평면적이고 자유로운 색채가 강조되었다. 

 

호사 정적 쾌락 1904-5 캔버스 유채 41×32cm

 

생-트로페 체류시기(1904)에는 폴 시냑과 작업하며 신인상파의 점묘기법을 시도한다. 바로 그것이 "호사 정적 쾌락" 이다. 이 작품을 이끄는 세가지 기본주제, 즉 고대, 가족, 풍경이 느린 이동 촬영 장면처럼 펼쳐지는 구성 안에서 결합하고 있다. "이것은 순수한 무지개 빛깔로 그려진 그림" 이라고 마티스는 나중에 썼다. 

 

녹색의 선 (마티스부인의 초상)1905 캔버스 유채 41×32cm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비평가는 물론이고 부인까지도 불쾌함을 느꼈던 작품이며, 마티스는 심리적인 주관으로 색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이 마티스에게 ‘부인을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라고 묻자 그는 ‘나는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림을 그렸을'뿐이라고 말했다.

 

댄스 1910 캔버스 유채 258×390cm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마티스의 작품 속에서 색채는 춤을 춘다. 마치 무한한 생명을 갈구하는 듯 힘찬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 이 그림은 모스크바에 있는 저택의 계단을 장식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활기 있는 생명감이 넘치는 대작이다

 

피아노 레슨 1916 캔버스 유채 245×212cm

 

조용한 평면 위에 직선과 장식적인 무늬 모양의 곡선으로 구성된 온화한 그림이다. 전체를 지배하는 기하학적인 구도, 실내로 비쳐 들어오는 정원의 반사광인 듯한 초록색의 은은한 분위기가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달팽이 1952 절지(切紙)그림 286×287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병마로 쇠약해진 노년의 마티스. 하지만 그는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기법으로 자신의 예술에 활기를 더했다. 그 새로운 기법이 바로 종이를 오려 붙이는 기법이었다. 종이 오려 붙이기 기법이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해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채색된 종이로 형태를 만들어서 붙이는 기법을 말한다

 

자화상 1906년 코펜하겐 왕립 미술관 소장   

 

1906년 봄에서 가을에 걸쳐 약 반년 동안 고리울에 체재하였다. 종종 '비극의 가면'이라 불리는 이 자화상은 이 때의 작품으로, 여름철 더울 때 제작된 것으 로 보인다. 뱃사람이 잘 입는 가로 무늬 티 셔츠를 입은 간편한 복장이다. 매우 조각적인 입체감에 유념하였으나, 물론 아카데믹한 명암의 표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엷은 다색과 녹색에 의해서 입체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얼굴의 녹색은 톤을 바꾸어 수염이나 배경에 다시 나타나고, 사인의 올리브색에 연결된다. 생략적으로 대범하게 그려진 두 눈은 똑바로 정면을 향하여 응시하고 있어, 강한 인상을 주 는데, 이것은 어딘지 모르게 흑인 조각을 연상케 한다. 마티스는 흑인 예술의 발견자라고 지목 되는 몇 사람 중의 하나로 시기적으로도 걸맞는다.

 

천변의 아가씨들 1916~17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

 

목욕하는 아가씨들의 주제 그림은 191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음악」과 「댄스」와 거의 같은 사이즈의 그림인데, 맨 왼쪽 여인은 양팔을 들어 손으 목 뒤로 돌리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어느 것이나 단순화되어 엄격한 형태 감각을 보여 주고 있으며, 눈, 코 등의 세부는 일체 생 략되어 있다. 오른쪽 끝 부분의 청회색이 왼쪽 여인의 발로 연결되고, 강의 검은색이 오른쪽 여인의 얼굴 근처에 다시 나타나는 구성으로 긴 화면을 좌우에서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고 있 다. 네 여인은 아무 맥락도 없이 서 있는 것 같고, 화면 중앙 하단에서 한 마리의 뱀이 고개를 쳐들어 여인들의 주의를 끄는 듯 배치하고 있다.

 

흰깃털의 모자 1917년 미니애폴리스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소장

 

이 작품이 제작된 것은 제 1차 대전이 끝난 다음해이다. 우선 그의 화면이 비약적으로 밝아지고 빛이 넘쳐 흐른다. 1916년 말 처음으로 니스를 찾은 이후 그는 매해 겨울 니스에서 지내면서, 점점 지중해의 자연에 빠져들어 가는데, 대전 종결 (1918년 겨울)이라는 소망스런 상황은 니스의 밝고 투명한 햇빛과 더불어 마티스의 관능에 현 저한 해방적 효과를 준 것이 분명하다.  

 

이 그림에서 모델 앙트와네트가 쓰고 있는 모자는, 마티스 자신이 밀짚모자에 깃털과 리본 을 핀으로 매달아 만든 것으로, 이 모자를 중심으로 가벼운 선의 아라베스크가 그림 전체를 행복감이 넘쳐 흐르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고 있다.

 

흰두인의 포오즈 1923년 뉴욕 도날드 S. 스트라렘 부처 소장


마티스가 그리는 오달리스크는 항상 동양적이며, 모르 식이거나 인디아 식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들라크르와나 앵그르도 오달리스크를 그렸는데, 이는 18세기 말 유럽에 생긴 에그조틱한 중 동 동경의 한 현상이다. 모델은 양손을 머리 위에 올려, 힌두 조각의 여신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살색에는 약간의 명암차가 있어, 가슴이나 복부, 종아리 등의 양감이 암시되어 있으며, 목걸 이의 두 색이 이루는 리듬은 의자의 청색 바탕에 백과 흑이 만드는 무늬에 의하여 더욱 돋보 이게 한다. 허리에 두른 백색 바탕 속의 녹색은 더욱 어두운 톤으로 화병의 흑색과 어울리고, 또 오른 쪽 위 창을 가리는 가리개에도 어렴풋이 반영한다. 이 그림은 동양적이며 도식화된 작품이다. 

 

음악 1939년 버팔로 올브라이트 녹스 아트 갤러리 소장


댄스와 짝을 이루는 작품. 댄스가 약동적인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정적이다. 왼쪽 인물이 높은 음자리표, 나머지 네 사람은 오선지 위의 음표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된다. 형태는 물론 색채 또한 인물의 빨강, 배경의 파랑, 녹색 식으로 철저히 단순화되어 있는 만큼 화면상에서도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인물 배치도 면밀하게 계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마티스의 특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작품이다.

 

루마니아식 블라우스 1940년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부인상 작품 중에서 정점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대단히 단순한 색채이다. 얼른 보기에 적, 백, 청의 세 가지 색만이 눈에 띄지만, 여기에는 적어도 열 가지 정도의 색채가 있다. 블라우스의 가슴의 빨강은, 배경의 빨강과는 달리 카아민, 스커어트의 청색 속에는 녹색이 포함되며 그것이 손에 비친다. 노란색, 오렌지색, 머리는 짙은 회색, 베르트의 핑크, 그리고 윤 곽선이나 무늬의 검정, 일너 많은 색들을 포함하면서도 이 그림은 단순 명쾌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통일된 평면적 장식성을 지니고 있다. 구도에 있어서도 비스듬한 자태의 선은, 위로 치켜 올린 오른쪽의 둥근 어깨의 선과 반듯하 게 선 얼굴에 의하여 더욱 중량감과 안정감을 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슴과 팔 부분 의 무늬는 극히 단순하면서도 화려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마티스는 이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실로 15점의 습작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구도나 색채 효과 등을 캔버스에 그려 보면서 궁리에 자신이 섰을 때 본격적인 타블로에 착수하여 주저함 없이 쓱쓱 그려 치우 는 것이다.

 

붉은조화


1907년에서 8년에 걸쳐 마티스는 여러 가지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이 <빨간 조화>란 작품에서 포브의 스타일에 최종적인 고별을 했다. 그것은 3 차원의 실내 공간을 표현한 것임에도, 화면의 거리감은 부정되고 벽고 탁자도 실내의 바닥도, 모두 동일의 평면 위에 놓여 있다. 탁자 위에만 있어야 할 식탁보의 무늬가 그대로 벽지의 무늬로 연속되고, 색채도 음영이나 명암은 거부한 채 색종이를 발라 놓은 듯 단순한 평면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일은 19세기적인 미학으로 보면 하나의 혼란으로 보이겠지만, 평면적인 이론에서 말한다면 훌륭하게 통일된 명쾌한 화면이라고 할 수 있다.

 

室內, 금붕어 어항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부터 마티스의 화면에는, 검정이나 짙은 회색의 무채색이 도입되고 있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적적한 배색에서 화면을 보다 품위있게, 때로는 고전적으로 이끌어감을 느낄 수 있고, 특히 이 작품에 있어서는 당시의 화단으로부터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진 입체파의 영향도 엿볼 수 있다. 즉, 실내의 구도를 보면 원근법적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벽이나 창문, 테이블 등의 시점을 약간 어긋나게 함으로써 화면의 분위기를 이상하게 부유성(浮遊性)을 강조한 듯하다. 

 

녹색 눈의 젊은 여인

 

1908경 이후의 마티스 작품은 필요없는 세부 묘사를 완전히 벗어나서 볼륨이나 명암의 표현에 마음을 쓰지 않는 단순한 수단에 의한 표현에 정진한다. 화려한 것, 호화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할 때, 마티스는 멈출 줄을 모르는 관능(官能)의 기쁨에 빠진다. 그것이 틀림없는 하모니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지극히 관능적이고, 동시에 조금의 틈도 없는 구성이 마티스라는 화가의 특성을 이루게 된다. 이 작품도 그러한 그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얼굴과 그 배경을 형성하고 있는 위쪽 화면과 목 아래의 화면이 양분되고, 또 아래쪽은 오른쪽과 왼쪽을 나누어 호방한 색으로 처리하고 있다. 

 

벽무늬 속의 장식적인 인물

 

이 작품은 니이스에서 지중해적인 밝은 광선과 색에 도취하여 그린, '평안과 우아의 예술'을 위한 그의 작풍(作風)을 이루는 그림이다. 여인의 몸매는 직각이 서로 교차하는 직선을 중심으로, 견고하고 힘찬 형태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화면은, 그가 좋아하는 장식적 요소를 가득 채워 호화스럽고 사치한 조용함이 있는 기념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 놓았다. 이 작품에 있어 그는 확실히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힘과 장대(壯大)함의 세계에 새로운 창이 활짝 열린 것처럼 눈부신 광경을 이룬다. 바닥에 놓인 카페트의 비스듬히 그어진 직선의 연속은, 벽에 장식된 꽃무늬와 아라베스크의 선과 충돌되는 듯하지만, 그 대조가 한층 마티스가 노리는 장식적 효과를 더해 주고, 더욱 힘있는 화면 효과를 이루게 하고 있다.

 

왕의 슬픔

 

마티스의 만년의 작업 중에 그의 색채적 천재성을 자유 분방한 감각과 함께 발휘하게 하여 준 것이 <색종이 그림> 시리즈다. 그는 이전부터 유화 제작의 준비 단계에서 포름이나 색을 연구하기 위하여 색종이를 잘라 붙여 보는 일을 해왔으나, 1941년에 큰 병을 앓으면서 침대 위에서 붓 대신 가위를 들고 많은 걸작을 남기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재즈> 시리즈의 서커스의 정경을 나타낸 20점의 잘라 붙인 색종이 그림을 만들었는데 작품은 그 작업의 절정을 이루는 기념비적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어떤 의미로는 유화보다 순수하게 울려 퍼지는 색과 형태의 교환(交歡)을 느끼게 하는 이런 방식이 마티스의 이념에 더욱 밀접하게 잘 맞았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농후한 설화를 아라베스크적 색과 형의 드라마로 꾸민 실로 감탄할 걸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집트풍의 커튼이 있는 실내  

 

음악 

 

나부1. 

 

나부2.     

 

오달리스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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