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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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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영남|작성시간26.06.11|조회수16 목록 댓글 0

국립공원지정

 

967명 사망한 마사다 케블카로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

 

"형제들이여 새벽이 오면 우리는 저들의 포로가 될 것이다. 지금은 자유로우나 부끄럽지 않게 죽을 기회가 온 것이다."

 

남자들은 아내와 자녀를 죽이고 10명씩 조를 정한뒤 가족들 곁에 누웠다.

조장들은 돌아다니며 남자들을 죽이고,

최후의 한사람은 전원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식량창고 한쪽을 남기고 불을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서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숨어있던 다섯명의 어린이와 두명의 어른 때문이었다.

 

맛사다가 지금은 이스라엘 궁립공원으로 중학생만 되면 기어이 가야할 장소다

 

처음 대제사장 요나단이 만든 이 마사다를

헤롯대왕(BC 37- 31)이  약 450m 높이의 바위 절벽에 지어진 천혜의 요새를 견고하게 건축했다 5m가 넘는 높은 성벽과 37개의 망루까지 있고 진입로가 오직 뱀처럼 꼬인 정면 길밖에 없는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이런 지형 특성상 공격 불가능한 마사다는 철벽을 자랑했고 로마군의 마사다 공략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당시 헤롯궁전 헤롯 목욕탕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놀라웠다.

목욕탕 바닥에 잔잔한 색갈 타이루며 수도물을 끌어다 사용 한거며 뜨신물은 불을 때 데워서 사용했우며 입이 쩍 벌어져 다물지 못했다.

 

돌벽으로 만든 방들,

수 천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 저장소

공중 목욕탕 천여명 가까운 사람이피신해 있었다.

 

기원전 63년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아오던 유대인들은 서기 66년부터 70년 사이에 독립전쟁을 벌였느나 로마군은 무려 3년 넘게 마사다에 틀어박혀 주변 마을이나 도시를 공격했다.  70년 로마 장군 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되면서 마사다는 마지막 결사 항전 지로

 

로마군은 제10군단 장병 9천 명과 유대 노예, 노역인으로 이루어진 6천 명을 포함한 총 1만 5천 명을 동원하여 마사다 점령에 나섰다. 로마군은 우선 마사다 주변 지역에 8개 요새를 건설하고 벽을 지어 포위망을 형성했으며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정면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점령하고 보니 싸울 것도 없었다.

이스라엘은 

 

73년 완전 함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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