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가서 출산한 딸 수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일날이면 교회 가는 것이 큰 문제였다. 목사 사위가 사역한다는 교회는 아침 8시도 안되면 출발하고 저녁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참참이 미역국을 끓여 먹이면서 먼 곳까지 갈 수가 없어 옆집 유학생을 따라 가까운 한국교회로 갔다.
예배는 11:45분에 시작한다 하였는데 10:30분에 도착했다. 한 시간 여유가 있어 미국 교인들이 예배드린 모습을 보려고 교회로 갔는데 숫자를 세어보니 80명 정도 출석했다. 재적수는 200명이라는데 의자는 400명 정도 앉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성도들이 예배가 거의 끝나 갈 무렵 개인들이 손을 들어 무선 마이크로 화기애애하게 청중을 웃겨가면서 이야기 하는 프로가 있었다. 다른 미국 교회 갔을 때는 ‘구역보고를 하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말한 것을 보니 구역보고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국에서 알고있던 영어 단어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무슨 말들을 하는지 감을 잡을 수 가 없어 예배가 끝나자마자 한국인을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그 여 집사 말이 “여기 온지 35년 되었는데 주로 애경사 이야기와 기도 부탁, 간증을 하면서 즐기는 시간이라”고 한다. 구역장을 통해 하는 것보다 본인들이 직접 이야기를 하니 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보였다.
오전11:30분 되니 미국성도들의 모든 예배가 끝나고 한국인 성도들이 예배드릴 차례가 되었다. 안내 맡으신 분이 기다리고 섰다가 주보며 헌금 봉투며 성경책들을 진열하고 안내를 한다.
이 교회로 한 달에 120만원 월세를 낸다고 한다. 미국 UMC에 속해있다고 하는 한국 감리교회는 개척한지 14년 된 교회로 제적 인원 35명인데 그날은 30명이 출석했다. 교역자는 당회장목사, 주일학교담당, 학생부담당, 청년부와 새소망가정인 신혼 부부담당 그래 목사가 4분 그것도 3명은 박사과정에 있는 유학생 목사다. 4명의 목사 가족을 빼면 외부 신자는 몇 명 안 되었다. 400명 앉을 곳에 나까지 30명 성도가 앉았는데 교회가 여기저기가 텅텅 비었다.
한국교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서마다 담당 교역자를 두는 것이 내가 가본 교회 특색이었다. 물론 유학파들 때문에 학교 부근에 있는 교회는 유학온 목사들이 가까운 교회로 몰리는 경향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은 보통 그 부서가 수가 많아져야 교역자를 모시는데 미국은 숫자를 떠나서 전문교역자 부터 두고 그 전문목사가 사람들을 점점 늘려 나가는 방법을 따르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고 철저하게 망줄처럼 연결해 한사람이라도 찾아내면 교육을 시켜 자기교회에 정착하게 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쓴다고 한다.
미국 와서 보니 한국 사람들이 다닌 교회는 거의 미국사람들의 교회에 세를 주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오전 11시 예배를 드리려면 세가 제일 비싸고 오후에 드리면 세가 훨씬 싸다. 세는 교회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 100여만 원부터 한 달에 4-500만원씩 월세로 주는 교회도 있다한다.
미국에서는 교회 하나 건축하려면 차 50대 이상을 주차 할 공간이 확보 되어야 건축 허가가 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한국의 대형 교회들은 아예 땅을 사서 미국에다 교회를 건축해준 교회도 있지만 거의는 다른 교회를 빌려서 개척을 시작 한다.
그러나 한국과는 또 다르게 새로 개척한 교회는 일어나기가 아주 힘들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한국사람으로 넘쳐나지만 개척하여 부흥되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미국에서는 한국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 온다거나, 사업차 온다거나, 공부하러 유학온 사람들이기에 LA가 아닌이상 한국사람들 자체가 그리 많지않아 교회가 부흥되기는 여간 힘들다고 한다.
아틀렌타로 유학 와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을 위해 버클리로 온 유학생 가족, 목사님사모님 한분은 저를 늘 수영을 데리고 다녔다.
그분 말은 아틀렌타는 우리교민이 5만 명 사는데 ‘한국 교회만 200개 이상이 있다’고 한다. 이민 온 사람들은 먼 이국에 와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혼자서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교회를 안 다녔어도 이민 오자마자 교회를 찾는단다.
대부분 큰 교회로 찾아가면 인적 자원부터 풍부하고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기 때문에 큰 교회는 교회를 한없이 넓혀가고 적은 교회는 운영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이 안 들어와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운영비도 없는 목회자 가족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푸른 꿈을 안고 미국을 왔지만 당장 식사를 해결 못해 돈을 벌지 않으면 살아 갈 수가 없기에 생각보다 힘든생활이 미국 생활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목사님 한분은 트럭한대로 물자를 싣고 다니면서 페인트를 칠하거나 집 보수공공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사모님들 가운데는 출산 후 산모를 돕는다거나 각종 돈벌이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각하는 화려함보다 이민생뢀 먹고 살기위한 고생은 타국애서 상상을 초월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