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본 연구의 목적은 5.18 광주민주항쟁 사상의 연원 분석을 위하여 정도전의 성리학적 義思想과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이 5.18 민주항쟁에 미친 영향과 그 현대적 의의를 조명함에 있다. 분석의 주요 내용은 정도전 의사상과 5.18 혁명정신 연원 분석으로 정도전과 김재규 사상의 비교 분석을 통한 현대적 시사점과 활용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꺼져가는 고려조정 역성 혁명, 불교의 폐단 종식자 삼봉 정도전과 유신 18년 장기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하여 유신을 終熄시킨 김재규 양인의 足跡과 비견할 만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이들 兩人의 조선 창업의 주역 삼봉 정도전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의 현대적 의의를 비교 분석하고 한국적 선비정신 원류와 비교, 주요 교육문화적 시사점과 현대적 계승점을 찾아 제시한다. 정도전의 義사상 형성과 거의소청, 역성혁명 실천 사례 및 김재규의 10.26과 義擧 등에 대하여 그들의 출생지, 청년기, 정치적 상황, 혁명사상 및 결과 등을 비교 조명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혁명정신과 정체성, 仁義 선비와 의리정신의 현대적 시사점과 계승과제 탐색, 혁명가 정도전과 김재규의 혁명관과 5.18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원류를 비교, 분석하여 한국의 문민(정부) 사회운동에 끼친 영향 요인을 천착하고, 삼봉의 융합사상 및 김재규 등의 사회적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국문주제어 : 혁명, 삼봉, 김재규, 10.26, 5.18, 사회적 활용
본 연구 목적은 정도전(고려 불교 폐해 극복)과 김재규(유신독재 청산)의 혁명정신을 비교하여, 그들이 추구한 가치와 목표 및 현시대적 활용방안을 정도전의 성리학(주자학)과 혁명정신(觀, 思想)의 정치, 행정철학적 배경, 내용, 결과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 5.18 민주항쟁 등의 현대적 의의를 조명함해 보고자 한다. 이에 근거하여 不義를 지지하는 이는 누구이며, 제거하는 자는 누구인가, 불의의 제거가 국가 사회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 보장수단을 찾아 제도화 시켜보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주요 분석의 대상과 내용은 6대변수의 출생, 청년, 상황, 신분, 사상, 결과, 8기질 측면의 기질, 비판, 열정, 결단력, 조직화, 비전, 정체성, 복권 및 3특성으로서의 시대적 차이, 목표의 차이, 사상적 기반 등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분석의 주요 내용은鄭道傳과 金在奎 義思想을 中心으로 하며, 주요 영향요인은 不義에 抵抗(拒否)하는 정신으로 “義란 天下에 大道를 행함”으로 정의하여 접근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연구(이종수, 2001∼2025) 및 전문학술지(2025 전주교대, “特輯”(5.18) ; 김광희, 2021 ; 김태헌, 2007 ; 정주신, 2007, 2017 ; 박명진, 1982 ; 조정관, 2009 ; 임혁백, 2012 ; 조갑제, 2019, 문영심, 2013) 등과 일간지 활용 및 김재규 관련 법원 판결문, 『옥중수양록』 등을 참조, 최근의 법원 재심 결정(2025.2)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연구(이종수, 2016∼2024)및 전문학술지, 일간지 활용 및 김재규 관련 법원 판결문,『옥중수양록』등과 최근 출판물을 참조하였으며, 필자의 연구는 연구재단 정도전 연구(2017〜2024) 등을 참조 기존 연구 한계점 보완 측면에서 필자의 직관력과 상상력, 영감 등을 동원하여 첨언하였다.
연구의 범위는 2인의 사상과 혁명 실천적 내용과 현대적 의의 등을, 청년기 활동,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 2인의 혁명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한국적 ‘義 革命’ 정신원류와 비교, 주요 정치, 사회문화적 시사점과 현대적 계승점을 찾고, 지역적 범주는 전라도(광주,전라 포함)를 대상화하였다.
Ⅰ. 들어가는 글
본 연구 목적은 정도전(고려 불교 폐해 극복)과 김재규(유신독재 청산)의 혁명정신을 비교하여, 그들이 추구한 가치와 목표 및 현시대적 활용방안을 정도전의 성리학(주자학)과 혁명정신(觀, 思想)의 정치, 행정철학적 배경, 내용, 결과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 5.18 민주항쟁등의 현대적 의의를 조명함해 보고자 한다. 이에 근거하여不義를 지지하는 이는 누구이며, 제거하는 자는 누구인가, 불의의 제거가 국가 사회에 어떻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 보장수단을 찾아 제도화 시켜보고자 하는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주요 분석의 대상과 내용은 6대변수의 출생, 청년, 상황, 신분, 사상, 결과, 8기질 측면의 기질, 비판, 열정, 결단력, 조직화, 비전, 정체성, 복권 및 3특성으로서의 시대적 차이, 목표의 차이, 사상적 기반 등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분석의 주요 내용은鄭道傳과 金在奎 義思想을 中心으로 하며, 주요 영향요인은 不義에 抵抗(拒否)하는 정신으로 “義란 天下에 大道를 행함”으로 정의하여 접근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연구(이종수, 2001∼2025) 및 전문학술지(2025 전주교대, “特輯”(5.18) ; 김광희, 2021 ; 김태헌, 2007 ; 정주신, 2007, 2017 ; 박명진, 1982 ; 조정관, 2009 ; 임혁백, 2012 ; 조갑제, 2019, 문영심, 2013) 등과 일간지 활용 및 김재규 관련 법원 판결문, 『옥중수양록』 등을 참조, 최근의 법원 재심 결정(2025.2)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연구(이종수, 2016∼2024)및 전문학술지, 일간지 활용 및 김재규 관련 법원 판결문,『옥중수양록』등과 최근 출판물을 참조하였으며, 필자의 연구는 연구재단 정도전 연구(2017〜2024) 등을 참조 기존 연구 한계점 보완 측면에서 필자의 직관력과 상상력, 영감 등을 동원하여 첨언하였다.
연구의 범위는 2인의 사상과 혁명 실천적 내용과 현대적 의의 등을, 청년기 활동,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 2인의 혁명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한국적 ‘義 革命’ 정신원류와 비교, 주요 정치, 사회문화적 시사점과 현대적 계승점을 찾고, 지역적 범주는 전라도(광주,전라 포함)를 대상화하였다.
Ⅱ. 5.18 민주항쟁의 이론적 접근
제1절 義와 민주항쟁
1. 호남항쟁의 의의
첫째, 義와 선비정신의 고향이라 불리는湖南의 義를 추적하면 먼저 道學은 도통의식에 근거하여 사서(四書)의 경전체계를 새롭게 구성하여 제시한다. 도학의 가치관을 정립시키는 신념으로서 ‘의리론(義理論)’을 볼 수 있다. 의리론은 어떤 의미에서 도학정신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리학의 철학적 근거를 설정하기 이전에 도학의 의리론적 신념에 의해서 모든 사회적 가치기준이 성립한다.
송대 유학인 道學에서는 경이직내(敬以直內), 의이방외(義以方外)가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밝혔다. 맹자(孟子)는 보편성으로서의 인(仁)과 의(義)를 말하였다. 즉 사람은 보편성으로서의 인의지심(仁義之心)이 있으며 표리(表理)된 것을 인의지기(仁義之氣)로 본다. 그래서 정자(程子)는 인은 체(體)요, 의는 용(用)이라고 했다. 중용(中庸)은 “의라는 것은 마땅함”을, 맹자는 “義라는 것은 인간의 바른 길”임을, 『근사록』에서는 “義라는 것은 천리(天理)의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仁은 體요(仁義之心), 義는 用이다(仁義之氣).
둘째, 호남의 선비정신과 관련義란 어려운 이들을 위해 특정 사회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총대’메고 투쟁에 나서는 투사 정신으로, 선비가 구국의 일념으로 창의(倡義)하자, 마을 사람들이 뒤따라 일어났다. 조선 사회의 특징이 여기에 있었다. 선비와 농민이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비가 농민들의 신망을 잃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셋째, 의(義)와 이(利) 구분점을 예시하면 정치적인 교훈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점은 保守는 100% 자기(집단) 이익중심으로, 進步는 최소한 백성의 이익을 지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서 보수는 친일, 친미, 권문세가 등 등으로 항상 유리한 쪽에 서서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진보는 그나마 일말의 균형 마인드가 있어 自盡 등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등으로 거취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이종수, 2025.9: 109).
2. 부마항쟁과 5.18
(1) 부마항쟁
첫째, 부마항쟁(1979.10.16)의 의의는 4.19, 5.18, 그리고 87년 6월항쟁을 잇는 민주화 운동사에서 부마항쟁은 지역적 특이성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가진 가치의 일반성을 증명한 점에 있다.부마 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5 공화국이 권위주의적 성격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는 민주화를 약속하는 과도기적 성격의 정권임을 내세우게 했다. 둘째, 5·18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학생 운동의 강력한 투쟁성을 촉진했다. 셋째, 5·18 민주화 운동과 함께 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에 민중 조직화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제시했다. 넷째 유신 체제의 선전 프레임을 깨뜨리고 민주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는 민주화 프레임을 제시했다.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되던 10·16 부마항쟁은 그 40 주년인 2019년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그리고 16일에는 정부 주관으로 경남 창원시에서 '부마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첫 공식 기념식이 열렸다. 5일 동안의 부마민주항쟁은 1960년의 4·19혁명, 1980년의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10민주항쟁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둘째, 부마항쟁의 결과 전국에 저항이 확산되고 그걸 통해 박정희 체제를 정면으로 극복할 계기를 열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10·26으로 그 가능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은 아닐까. 실제로 부마항쟁 종료 후 대구로 시위가 북상할 조짐이 나타났지만, 10·26을 계기로 분위기는 바뀌었다.
(2) 5.18 광주민주화 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광역시(당시 광주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시민들이 벌인 민주화 운동을 말한다. 1980년 5월 17일, 5.17 쿠데타로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된다. 40년 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함성이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곧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찾아 준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그것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1950년 6·25전쟁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정치적 비극이었으며,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은 1970년대 지식인 중심의 반독재민주화운동에서 1980년대 민중운동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5.18민주항쟁 결과 서울지방검찰청·국방부 검찰부의 1995년 7월 18일 발표에 의하면 그때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93명인데 이 중 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 166명이다. 부상은 852명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1980년 5월 이후 전개된 민주화운동과 인권 및 평화 운동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 이후 시민들의 민주화 의식이 크게 높아졌고, 마침내 이 열흘간의 항쟁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견고한 군사독재 체제가 무너지면서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 표 1 > 참조).
< 표 1 > 5.18의 현대적 시사점
| 시사점 | 현대적 의의 | 사회적 활용 |
| 민주주의 가치의 소중함 | 시민참여 가치 | 헌법, 정치, 교육 |
| 국가폭력 | 권력남용 견제 | 제도적 견제 |
| 시민참여, 연대 | 민주주의 원동력 | 시민운동, 집회 |
| 인권 | 민주주의 핵심가치 | 제도개선 |
| 지역민주화 | 지방자치, 분권확대 | 균형발전 |
| 계승 | 가치 전승 | 교육, 기념사업 |
정리하면, 민주가치 확산, 국가폭력 경계 및 참여와 연대의 필요성, 인권보장, 자치와 분권, 세대가치 전승 필요성을 등의 내용으로 요약된다.
5.18과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와 장기독재 항거, 의의로는 유신붕과와 민주화 도화선이 된다. 5.18의 경우 신군부 쿠데타와 계엄확대에 따라 민주주의 수호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시민참여, 인권존중 및 분권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국가지정 공식명칭이며, 「광주민주항쟁」은 사건의 역동성과 저항의 성격을 강조하는 의미다. 본 고는 유사 동의어로 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밑거름이됨과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재 된다(2011.5).
광주민주항쟁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김대중 등 민주인사체포가 발단이 된다. 이날 오전 전남대 정문에서 계엄군이 폭력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제압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다.
광주민주항쟁의 現代的 示唆点으로 한국인의 仁義 정신의 실천이었다.5.18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1997년 5월 18일),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2011.5.25.). 그 의미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 국제적 영향력, 보편적 가치라는 점이다.
(3) 부마와 5.18 민주항쟁의 상호 관계
부마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한국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사건으로서 유신체제 붕괴와 신군부 등장, 시민저항의 흐름을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호남의 義사상은 부마항쟁의 ‘저항’을 호남을 배경으로 불의의 세력에 맨몸으로 저항한 호남백성의 함성 이라고 하겠으며, 이는 부마의 ‘백성저항’을 확대시켜 불의에 저항한 백성‘항거’란 점에서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중정부장 김재규는 부마 현장을 생생히 살피고, 박정희에게 보고한다. 부마항쟁과 김재규 관련, 불의의 저항정신의 맥이 찾아진다. 부연하면 배경 관련 부마항쟁은 유신체제와 장기독재 항거, 의의로는 유신붕과와 민주화 도화선이 된다. 5.18의 경우 신군부 쿠데타와 계엄확대에 따라 민주주의 수호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시민참여, 인권존중 및 분권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 표 2 > 부마와 5.18 연결고리
| 구분 | 부마항쟁 | 5.18 항쟁 |
| 시기 | 1979.10 | 1980.5 |
| 공통점 | 유신과 군부권력 저항 | 신군부 폭압 저항 |
| 진압 | 공수부대 | 공수부대, 무력진압 |
| 영향 | 박정희 독재, 유신 붕괴 | 전두환 집권, 6월항쟁 토대 |
3. 삼봉 義와 김재규 10.26 義擧 定義
삼봉의 革命사상과 김재규의 ‘義擧’정신은「5.18 광주민주화운동」에 ‘不義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본 硏究者의 시각이다.
필자는 삼봉의 궁핍과 不義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大義 실천을, 김재규는 부마항쟁 우려, 독재에 대한 피로감, 義의 實踐 "그분이 대통령을 쏜 후 당황해 우왕좌왕한 사실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내란목적 의사가 없었다는 단적인 증거라 본다“ 필자의 기본시각은 5.18은선비의 義 사상의 구현과 현실 삶의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전라도 지역민중의 자발적 봉기(이종수, 2018.12 : 519-521 ; 이종수, 2020: 394)라는 관점, 삼봉의 치인사상(이종수, 2020) 참조하였다.
본 고는 “兩人의 혁명사상(정신)이란 삼봉의 9년간의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교류와 고려 戶長 정침의 義 정신 및 김재규의 7년 동안의 고뇌와 방황의 결과, 民草를 위한 殺身成仁의 大義 實踐行爲(한국인 부마, 광주항쟁의 仁義 정신의 실천과 계승으로) 3.15의거, 4.19정신 계승, 유신독재 항거, 국민주권 회복과 헌정질서 회복의 맥락의 민중의 자발적 봉기 의인의 저항정신”으로 잠정 정의한다.
제2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첫째, 삼봉의 혁명사상과 수기치인 측면은 이종수.(2019.2), 「「朝鮮經國典」 융합민본사상의 주민자치 시사점」은 『經國大典』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주요 내용 중 현대 지방자치의 활용가능성을 분석하였으며, 이종수.(2018.12). 「정도전 『朝鮮經國典』 법치사상 분석」은 삼봉의 융합적 법치사상과 현대적 시사점을 분석, 삼봉의 수기관(이종수, 2017), 삼봉의 치인관(이종수, 2020), 삼봉의 대간제도(이종수, 2020.12), 삼봉의 총재제도(2021.2), 공직일탈과 자기통제(이종수, 2021.2) 등을 공직자의 공무 자세와 연관하여 분석하였다.
둘째, 김재규 연구 관련 전문학술지(김광희, 2021 ; 정주신, 2007, 2017 ; 박명진, 1982 ; 조정관, 2009 ; 임혁백, 2012 ; 조갑제, 2019, 문영심, 2013)를 참조하였다. 10.26 측면과 관련해서는 몇 편 정도로 정주신.(2007). 10ㆍ26 사건의 배경 분석과 임혁백(2012)의 박정희에 대한 정치학적 평가 리더십, 근대화, 유신, 그리고 몰락을 분석한다.
먼저 정주신의 연구는 10ㆍ26 사건 의 정치적 배경으로서 1979년 말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체제내부의 갈등, 그로 인해 박정희의 사망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관점을 유인요인과 촉발요인으로 구별하여 분석한다(정주신, 2007).
오창현(2001), 10. 26사건의 원인분석?은 유신체제의 한계 및 그 해소대안이 ‘독재자처단’을 통한 체제붕괴 기도였다. 최근의 자료는 안동일(2017), 김재홍(2024), 강신옥(2020), 10.26재평가와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2021), 서울 고법 재심(2025.2.19.) 결정 등을 참조하였다.
셋째, 사회적 활용 측면으로는 이종수 외(2017.12). 「삼봉 정도전 수기관의 현대적 시사점」,이종수.(2016.12). 「삼봉 정도전의 포폄관 분석」,이종수.(2019.12).「영상 이원원음악관의 인성함양 효과」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대간제도(이종수, 2020.12), 삼봉의 冢宰제도(2021.2) 등에서 우리의 의 삼봉과 김재규 사상의 비교 분석 등이다.
넷째, 차별성, 독창성 측면은 4차산업혁명시대 우리나라 ‘사회혁명 실천사례’를 삼봉과 김재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현대적인 창의, 감성 마인드를 함양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함에 있다(이종수, 2019 : 140).
이상의 내용을< 표 3 >에 정리한다.
< 표 3 > 선행연구 분석
| 구 분 |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 ||
| 연구목적 | 연구방법 | 주요 연구내용 | |
| 삼봉의 역성혁명 | 이종수 외(2015),三峰과 포은의 행정사상 | 질적 접근 | 정도전과 정몽주의 혁명과 의리정신 분석 |
| 이종수(2017.12),三峰의 수기관 분석 | 〃 | 삼봉의 수기관 특성과 시사점 | |
| 이종수(2018),三峰『朝鮮經國典』의 개헌 시사점 | 〃 | 정도전 법치사상의 개헌 시사점 | |
| 이종수(2014)三峰의 과전법 | 〃 | 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 |
| 이종수(2016.12),三峰의 포폄관 | 〃 | 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 |
| 이종수(2018.12),『朝鮮經國典』법치사상 | 사료 분석 | 삼봉의 법치사상 분석 | |
| 이종수(2023),朝鮮經國典의 주민자치시사점 | 질적 접근 | 삼봉의融合的사상과 현대주민자치 시사점 | |
| 이종수(2023), 삼봉의 宰相제도 | 사료분석 | 議政府(三相) 제도 실태분석 | |
| 이종수(2024), 삼봉의 仁君제도 | 사료분석 | 仁君과 經筵관계 | |
| 김재규 10.26 義擧(革命) | 정주신(2007), 10.26사건의 배경분석 | 질적 접근 | 10.26의 유인요인과 촉발요인 |
| 김광희(2021), 인간 김재규와 10.26 | 중도 관점 | 찬반을 융합한 비판적, 주관적 접근 | |
| 오창헌(2001), 10.26원인 분석 | 질적 접근 | 10.26의 원인은 유신독재, 독재청산 | |
| 정주신(2017),유신체제와 박정희의 집권욕 | 〃 | 긴급조치와 부마항쟁 | |
| 박명진(1982), L'Humnaite보도,미제국주의 개입 | 사설 분석 | 프랑스 신문사설 분석 | |
| 조정관(2009),한국민주화와 부마항쟁 | 질적 접근 | 부마항쟁과 유신의 붕괴 | |
| 임혁백(2012), 10.26의 정치학적 분석 | 〃 | 박정희 리더십,유신,몰락 | |
| 조갑제(2019),부마와10.26 | 현장 취재 | 김재규와10.26 | |
| 김삼웅(2020), 김재규 평전 | 질적 접근 | 평전 | |
| 김재홍(2024), 10.26 비공개 재판자료 | 재판 자료 | 통합증언 | |
| 강신옥(2020), 10.26 법정 공방 | 〃 | 법정공방 자료 분석 | |
| 김태곤(2017), 김재규 혁명 | 질적 접근 | 김재규 혁명 내용 분석 | |
| 조성기(2023), 1980.5.24 | 〃 | 김재규 교수형 집행 | |
| 안동일(2017), 김재규 변호 내용 | 〃 | 김재규 국선변호 사료 | |
| 10.26 재평가와 김재규장군명예회복추진위원회(2021) | 〃 | 명예 회복 | |
| 연구의 차별성 | 三峰과 김재규의 義擧(革命) 실천사상 비교 분석 | 질적,비교 사례 분석 | 조선 개국기 三峰혁명사상과 유신 하(下) 김재규 10.26의 의거(혁명)사상 시사점 |
2. 비교 분석의 틀
분석의 기준은 ‘革命(擧事)’를 통하여 ‘독재정치 돌파’를 감행한 저항기질, 비판적 사고, 열정, 결단력, 조직화, 비전, 정치적 활동 및 사회적 복권 등에 둔다.
삼봉의 개혁의 중심과 기존철학은 민본사상(이종수, 2014∼2020), 義 사상이며, 김재규는 10월 유신 장기집권 피로감에 따라 ‘혁명(거사)’를 통하여 ‘독재정치 돌파’를 감행한 내용의 예시적 비교 관점은 저항기질, 비판적 사고, 열정, 결단력, 조직화, 비전, 정치적 활동 및 사회적 복권 등을6대 변수와 8기질 및 3 특성을 참조하여 분석한다.
Ⅲ. 5.18 광주민주항쟁 영향요인 분석
1. 2인의 특성 분석
(1) 출생지
먼저 양인에 대한 6대 변수 측면의 내용을 비교 조명한다. 정도전은 영주(1342∼1398, 당 57세)생이다. 조선 창업의 주역 삼봉 정도전의 성리학(주자학)과 혁명정신(觀, 思想)의 정치, 행정철학적 배경, 내용, 결과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 등을 양인의 출생지, 청년기, 정치적 상황, 혁명사상 및 결과 등을 비교 조명한다.
김재규는 경북 선산(1926∼1980, 당 54세) (박정희, 구미)등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미 금오산(金烏山) 사람으로 동향이지만 같은 고향사람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는 구미 사람이고, 김재규는 이웃 선산(善山) 사람이다.
삼봉은 시련의 9년을 거친 “계획적 거사 도모”를, 김재규는 ‘유신의 부정적 평가’와 ‘부마 의거’에 토대하여 우발적으로 결행한 ‘소극적 거사’라고 판단된다.김재규는 처음, 同鄕의 박통에게 녹을 먹다가, 점점 荒淫이 깊어지고, 백성(民草)이 도탄에 빠짐을 중시, 마침내 ‘義擧 決行’을 하게 된다.
(2) 청년기 성장배경
고려말 주자학과 육예 나주, 김포 등 유배, 삼봉의 주자학과 토지공유제 등과 김재규는 교사와 군인 생활, 당시 김재규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선산 가문 전통이 작용했으리라 추정된다. 김재규의 성리학과 일본 무사도 정신 재조명 등이다.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9년 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의미가 된다.
삼봉은 분권적 견제와 균형론을 강조한 집권론자, 선비, 유자의 지배를 정당화 한다. 성리학의 육예적 접근과 수기적 활용. 삼봉은 유배 9년 공안 ‘민본 체득’ 이태조에 기대어 조선 창업 기획, 실천, 토대 구축, 역성혁명의 단초를 제공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도전).
김재규는 1939년 3월 선산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의 길이 막혔다. 15세 소년 김재규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중야무선전신학교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선전신학교의 과목도 적성에 맞지 않았다. 2년여 만에 귀국 1941년 4월 5년제의 안동농림중학교에 입학하였다. 4학년으로 진학할 때 일본군의 특별간부후보생으로 선발되었다. 일제는 1943년 3월 1일 징병제를 공포하고 10월 20일 학병제를 실시했다. 대학ㆍ전문학교ㆍ고등학교 재학생 중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에게 징용영장을 발부하고, 중추원에서는 학도병에 지원하지 않는 학생은 강제로 휴학시켜 징용하기로 결정했다.
(3) 정치적 상황
삼봉과 불교 관계는 ‘심기리편’에 나타난다. 심과 기는 리에 복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장과정의 정치적 배경을 보면 삼봉은 려말 불교부패와 민생 파탄, 원명교체기에, 김재규는 유신장기 집권과 정부 정당성 훼손 등의 시대를 살았다.
< 표 4 > 고려말 불교와 정도전
| 요인 | 여말 불교 특성 | 삼봉의 대응 |
| 사회적 역할 | 권문세족과 결탁 경제적 불평등 심화 | 불교를 국가 害惡으로 규정 |
| 사상적 특징 | 윤회, 내세중심, 인과설 | 현실적 도덕사회, 질서 중시 |
| 정치적 영향 | 왕권과 권력유지 수단 | 성리학 기반의 신왕조철학 정당화 |
| 저술 관계 | 불교경전, 사찰중심 | 『佛氏雜辨』, 『심기리편』 |
김재규와 유신말기 상황을 보면 그는 유신 장기 집권과 정부 정당성 훼손을 지켜 보면서,독재 차단 혁명 결행, 국가주도 경제정책 비판, 정치적 억압구조, 인권침해,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이 의거를 결행하게 된 배경으로 보여진다. 그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무등일보, 2021.8.3.).
(4) 신분
삼봉은 문인, 정치인, 이성계 참모였다. 삼봉은 신진사대부의 주자였으며, 혈통 논란의 와중에 기존 신분제 타파에 의지가 강했다.
김재규는 3성 장성, 군인출신의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다. 고위 관료 출신으로 권력 서열 투쟁에 서게 되어 유신 독재에 대한 반감이 일게 된다. 추종자, 부역자들 대부분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불의 등 보고도 묵인하는 경우나 대부분이나 김재규처럼 대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을 번린 예는 드물다. 조준, 하륜, 권근 등은 재빠르게 路線을 변경하여 부귀 영화를 누린다.
(5) 양인의 혁명사상
삼봉은 민본사상의동양 정치사상의 뿌리는 요순(堯舜)이다. 그 정치철학을 정립한 공자와 맹자 사상의 핵심이 민본정치사상이다. 여말 선초에 정치의 요체를 몸소 깨달은 이가 삼봉 정도전이다.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9년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의미가 된다.
김재규는 "내 혁명이 원인 돼 국기 흔들릴까 걱정이다.” “최후 진술의 기회를 주어 감사합니다. 목이 잠겨서 말이 안나오나 끝까지 말하겠습니다. 금번 본인은 내란죄로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습니다. 합법적인 민주당 정권은 5.16 군사혁명에 의하여 밀려났습니다.”
“10.26 혁명은 이 나라 건국 이념이요, 국시인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6.25를 통하여 수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바쳐 지켜온 것입니다. 이 혁명이 어찌하여 내란죄로 심판받느냐. 자유민주주의는 3천 7백만 우리 국민이 갈구하고 있는 게 사실인 것입니다. 또한 10.26 혁명은 순수한 것입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흔히 김재규장군의 10ㆍ26거사를 고대 로마시대 공화정을 회복시키고자 은인이며 직속 상관인 카이사르를 살해한 부르투수에 비견된다. "나는 카이사르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로마를 더 사랑한다"는 부르투스의 행위는 바로 김재규의 심경처럼 국민은 김재규장군의 대의(大義)를 위하여 소의(小義)를 버려야했던 고민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6)결과
결과 측면을 정리하면, 양인 모두 타율적으로 생을 마감. 삼봉은 斬首로, 김재규는 絞首刑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방원의 ‘선방’과 삼봉의 처형, 그리고 전두환의 김재규 처형 신속성 등이 한 특성이 된다. 삼봉에게는 ‘친족간 이간질죄’를 쒸우고, 김재규에게는 ‘내란죄’ 등을 적용한다. 政敵은 신속하게 죄를 ‘날조’하여 제거한 저변이 읽힌다.
삼봉은 태종에 의해 참형을 당하고, 622년 매장되었다가 고종 대 복권된다. 김재규는 1980.5.24.일 교수형에 처해진다. 사형집행일 당일, 아침을 거르고, 냉수마찰 후 새옷을 입고 無言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 54세 였다. 10.26 이후약 7∼8개월 만에 死刑이 집행된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이듬해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1월 3일 국장으로 거행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광주에서 ‘피의 학살’이 이뤄지던 1980.5.24.일, 김재규와 부하들도 처형된다(오마이뉴스, 2020.4.16.)
비교 분석의 내용을 < 표 5 >에 약술한다.
< 표 5 > 비교 분석표
| 구분 | 三峯 鄭道傳 | 水理 金在奎 |
| 출생지 | 영주(1342∼1398, 당 57세) 유배 9년 | - 경북 선산(1926∼1980, 당 54세졸) 독재자 처단 고뇌 7년 |
| 청년기 | 주자학과 육예 나주, 김포 등 유배 나주에서 고려 호장 정침의 義 思想 접근 | 1930년대 안동농고 재학, 교사와 군인 생활, 김재규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선산전통. ‘不義에 머리를 숙이지 말라’(家訓) 우직 성품 ; 박정희에게 “가까운 이가 元首 弑害” 직언(김광희 : 413) |
| 정치사회적 상황 | 려말 불교부패와 민생 파탄, 원명교체기 | - 유신 장기 집권과 정부 정당성 훼손 독재 차단 혁명 결행 국가주도경제정책 비판, 정치적 억압구조, 인권침해,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 |
| 신분 | 문인, 정치인, 이성계 참모 | 3성 장성출신의 중앙정보부장 |
| 혁명사상 | - 민본사상 - 동양 정치사상 뿌리 : 요순(堯舜). - 정치철학은 공자와 맹자 사상의 핵심이 仁義, 浩然之氣 - 젊은 시절 9년 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仁義, 浩然之氣)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 | - 민주주의자, ‘민주 민권 자유 평등’과 ‘자유민주주의’ : ‘비리법권천’ 10. 26 민주회복 국민혁명 만세! “한마디 확실히 말할 것은, 나는 결코 대통령이 되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김재규는 박정희 암살이 ‘혁명’이었음. 10월 유신, “이게 무슨 헌법이냐, 혼자서 평생 해먹겠다는 거지” -유신 7년간 3차례 암살 계획과 고뇌 : 2회의 실패, 그리고 10.26거사(김삼웅 2020) 대안 제시없이 막연한 ‘제거’ 독실한 불교신자(무등일보, 2021.8.3.). 복합심리적 인간 |
| 결과 | 儒敎의 유용성과 활용 유배, 배불, 역성혁명 주창과 실현 재상중심, 분권주의 권력견제, 이성계, 조준 등과 주자학 기반의 조선 역성혁명 달성,『朝鮮經國典』과 『經濟文鑑』등으로 법치사상 근거 제시, 과전법 등 토지개혁, 서울도성과 경복궁, 향교 등 교화장치 제도화 宗親謀害罪 및 “無君之心”(『太宗實錄』22권, 태종 11년 8월 18일 정미) - 宗親謀害罪로 참수(戊寅定社, 1398) 伸冤(『고종실록』고종 2년 9월 19일) | “10.26은 확고한 민주주의 신념에 바탕한 민주회복거사”(무등일보, 2021.8.3.) - 2025.2.19., 고법에서 殺人罪 적용 再審 결정 “忠誠이 銃聲으로”거대한 ‘부마민주화’ 영향! 1979.10.18. 자정 비상계엄 선포(유신 7년) 군법회의, 사형 집행 -絞首刑(1980.5.24.), 45년 간 매장됨. - 義理 투철 ; 일본 무사도 존중 |
| 필자의 견해 | 궁핍과 不義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大義 실천 삼봉 부정평가 : 정치적 현실감각 부족, 권력독점, 불교 배척 | 부마항쟁 우려, 독재에 대한 피로감, 義의 實踐 "그가 대통령을 쏜 후 당황해 우왕좌왕한 사실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내란목적 의사가 없었다는 단적인 증거라 본다" |
2. 특징별 주요 사항
(1) 저항기질 측면
삼봉과 김재규 兩人은 ‘反骨氣質’의 소유자라는 점이 확인된다, 不義에 저항함으로, 혁명과 반골 관계’는 혁명은 기존의 질서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시도라면, 반골은 기존 체제나 권위에 대한 반항이나 저항의 방법으로 자신의 행위를 나타냄이다.
혁명은 사회적 불만의 집합으로(프랑스 혁명), 그 이념적 토대는 새로운 사회적 지표가 된다. 또한 혁명은 비판적 사고 촉진, 불평등 개선, 혁신과 창의 배태에서 시작된다. 민주적 참여 증대 및 사회적 연대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抵抗은 행위 자체로 김재규에서 찾을 수 있다. 반골은 굽히지 않는 기질과 태도를, 혁명은 구조적 전복 등으로 삼봉에서 찾아진다.
2인의 ‘反骨’기질 여부를 찾아 보면, 反骨은 틀에 박히지 않고, 독립적이며, 반항적인 경향을 내포한다. 예컨대 다빈치나 스티브 잡스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의 특성은 創意와 好奇心 充滿人 들이었다.
반골행위가 대규모 지역혁명으로 발전된 예는 미국의 독립전쟁, 프랑스 대혁명 등 등과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반란 사례들을 예시할 수 있다.
혁명과 반골관계는 상호 영향력을 주고 받는다. 혁명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며, 문화적 변화를 지향한다. 혁명, 반골, 저항의 유사점은 기본질서의 거부란 점에 모아지며, 동시에 부당함에 대한 인식,변화 의지 및 위험 감수 등의 특성을 함축한다.
혁명투쟁의 사회적 영향으로는 사회변화 촉진, 정치적 각성, 갈등 조장, 혁신과 창의성 접근, 사회적 불안정 및 연대와 협력 현상 등이었다.
(2) 비판적 사고
삼봉의 나주 유배는 刻苦의 시련기였다. 거기에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조선 건국철학 ? 정립을 위한 ‘斥佛’의 논리를 심화시킨다. 삼봉은 정침의 ‘義’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다진다(문철영 : 403).
維新, 부마, 차지철 갈등과 김재규 관계다.고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옥중 수양록』에서 10·26사건을'7년 여의 준비 끝에 이뤄낸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옥중수양록에 따르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행위를 '유신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擧事’라고 의미를 부여한다.김재규 1970년대 유신독재기, ‘義擧’를 단행했다. 26년 현재 고법의 재심이 진행 중이다.
(3) 열정
삼봉의 끝없는 탐구와 저술 『朝鮮經國典』과 『經濟文鑑(別集)』 은 국가 통치 조직, 기능과 백성, 관료, 군주 관계 형성 등의 주요 사상적 맥락을 건국 철학으로 제언한다. 그는 거문고를 즐겼다.
김재규의 불의 저항과 신원 측면은 ‘불의에 머리를 숙이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미군의 한국군 장교 차별 대우를 시정해달라고 요구했다가 미군 장교가 권총을 들이대자 가슴을 열고 쏠 테면 쏴보라고 항의하니 징계위에 회부했다더라. 오빠가 자발적으로 옷 벗고 나왔다.
「옥중수양록」에 따르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행위를 '유신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擧事’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4) 결단력
오창현(2001)은 김재규의 행위와 동기를 분석하고, 결론은 김재규의 ‘계획적인 擧事’요 그 원인은 유신체제의 한계 및 그 해소대안이 ‘독재자처단’을 통한 체제붕괴 기도였다고 보았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라는 大義를 위해 대통령에 대한 義理라는 小義를 버리기로했다”(경향, 2024.6.5.).비공개「김재규 최후진술」이다. ;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10·26 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보장되었습니다.”
김재규는 ‘박정희’에 ‘賦役’하다 ‘擧事’인 총구로 ‘獨裁’를 종식한다. 김재규는 7년 동안 유신독재에 식상, 백성을 위한 ‘거사’를 도모한 것이다.
(5) 조직화
삼봉의 『朝鮮經國典』과 『經濟文鑑(別集)』 은 국가 통치 조직, 기능과 백성, 관료, 군주 관계 형성 등의 주요 사상적 맥락을 건국 철학으로 제언한다.
정도전의 일 중독은 결과적으로 이방원의 쿠데타를 방치하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정도전은 이방원을 경계하지 않아 방원을 살려두어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한다. 그러나 그의 신권(臣權, 宰相制度), 사병혁파 및 세자책봉 문제는 태종과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들이었으며, 결과적으로 ‘戊寅定社’에서 제거된다.
(6) 비전
삼봉의 臣權國家의 사상적 출발점은 “東周를 만들자”와 그 제도화 내용을 『조선경국전』 에의 반영이다. 西周는 王權을, 東周는 臣權을 중시한 통치체제 였다.
김재규의 민주화 지향심은 계획없이 ‘독재의 질곡’을 깨고자 결행한 개인적 ‘의거실행’ 결과로 판단된다.
(7) 정치적 활동
삼봉의 토지개혁 등 정치, 행정적 활동과 갈등(과전법, 이종수, 2014) 등과 함경도 古土 회복을 위한 명과 여진 관계 등의 정치 행정활동을 적극 추진한다.
김재규는 정치활동은 전무하고, 직무에 충실했다고 보인다.
(8) 복권
삼봉은 대원군 대에 으르러 사회적 복권이 이루어졌다. 2025년 7월, 24일, 안동농고를 지나칠 무렵, 시내버스 기사, “여기가 안동농고아며, 김재규가 다닌 학교로 그를 복권시켜야 한다”고 강변했다. (2025.6, 고법 再審 결정)
이상의 주요 특성을 < 표 5 >에 요약한다.
< 표 5 > 양인의 혁명기질 비교
| 구분 | 혁명실천 변수 | ||
| 삼봉 | 김재규 | 비고 | |
| 저항기질 | ○ | △ | |
| 비판적 사고 | ○ | ○ | |
| 열정 | ○ | △ | |
| 결단력 | ○ | ○ | |
| 조직화 | ○ | × | 중정(부하) |
| 비전 | ○ | × | 민주화 |
| 정치적 활동 | ○ | × | |
| 사회적 복권 | ○(高宗) | 2025.6, 고법 재심개시 | 논의 중(25.9) |
참고 : 이종수(2025.8.16.) ; 김광희(2021)
3. 3특성 비교
(1) 시대적 차이
양인의 3가지 특성을 시대, 목표, 사상 측면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면, 정도전은 조선 초기의 정치적 변혁을 이끌었고, 김재규는 현대의 독재 저항을 상징한다.삼봉은 여말의 혼란과 불교의 폐해척결을 백성을 위하여(民本), 그리고 김재규는 장기 유신독재에 ‘신물’난 백성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한 大義(民本), 살신성인의 의거를 결행, 육신을 버렸으며, 5.18의 신군부 저항 민주화 운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대하여 왜 광주에서 5.18이 발발했는가를 이론과 실제를 중심으로 접근하며, 그 씨앗은 20대 전남대 대학생들의 저항 등이었다.
(2) 목표의 차이
정도전은 새로운 불교국가였던 고려를 전복시키고, 성리학 이념의 국가 체제를 세우고자 했던 반면, 김재규는 기존 체제에 대한 승복(初期)과 저항(後期)을 통해 민주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10·26 해석과 관련 "당시 부마사태 현장을 둘러보고 온 사람 입장에서 '이러다 진짜 군부대 투입해서 100만 명 죽이려 들 수도 있겠다' 걱정한 것이다. 그 다음엔 당연히 '박정희 하나만 없어지면 100만 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았겠나"(한국일보, 2025.2.28.).
"지금 윤 대통령을 보면 국회를 제압한 뒤 뭐를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에 반해 김재규는 그런 게 없었다. 아직도 '박정희 제거 뒤 육군본부가 아니라 중정으로 갔어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거꾸로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 내란을 계획한 게 아니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3) 사상적 기반
정도전은 유교적 가치에 기반한 정치 개혁, 성리학의 예악사상에 기반한 유교국가 창업을 단행했으나,
김재규는 특정한 정치 사사억 기반에 의존했다기 보다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강조했다.
4. 평가(공통점과 차이점)
상기 2인의 공통점은 부패 권력에 대한 비판이란 점이다. 권문세가와 유신독재 세력 등이다. 동시에 백성중심의 정치 철학으로 삼봉의 민본사상과 김재규의 민주제 회복이라는 시대변혁의 결단력과 실천상, 구체제의 종결, 민본주의적 명분,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는 점이다.
< 표 6 > 兩人의 義擧 비교, 시사점
| 구 분 | 정도전 | 김재규 |
| 시대배경 | 려말 혼란기 | 유신 장기 독재 |
| 목표 | 창업 설계 | 독재 종식, 민주주의 회복 |
| 방법 | 제도 설계, 사상 정립 | 무력 의거(저격) |
| 결과 | 조선건국 틀 제공 | 유신붕괴, 민주화 촉발 |
| 한계 | 권력투쟁으로 피살 | 신군부 집권, 민주화 지연 |
(1) 이념
삼봉 성리학은 민본주의혁명의 方式으로 삼봉은 제도와 이념의 설계를, 제도 설계자로서의 혁명가라면, 김재규의 자유민주주의, 인권존중론자 였다.
삼봉은 배불을 토대로 한다. 김재규는 1972년 유신 이후 7년 동안 백성의 고초(긴급조치, 부마사태 등)에서 더 큰 희생방지를 위해 “내가 죽을 수 있는 명분을 발견”(최후진술문)하고, “不義에 저항한 大義의 실천행위”라고 하겠다.
< 표 7 > 兩人 사상의 차이점
| 구분 | 삼봉 | 김재규 |
| 이념 | 성리학, 민본주의 | 자유민주주의, 인권 |
| 정치철학 | 臣權, 재상중심제 | 국민주권, 반독재 민주주의 |
| 실천 | 『朝鮮經國典』, 『經濟文鑑』 | 10.26 처단 |
| 성격 | 체제 창조형 | 체제 顚覆(유신 종식) |
| 목표 | 유교 이상국가 | 자유와 정의 회복 |
(2) 정치철학
삼봉의 정치 철학은 臣權, 재상중심제를 제시하고, 제도화로 연결시켰다(이종수, 2023). 김재규는 국민주권, 반독재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비공개「김재규 최후진술」이다.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10·26 혁명은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집권욕이나 사리사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오로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혁명의 결과 자유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되었고, 보장되었습니다.”
(3) 실천성
삼봉은 여말의 혼란과 불교의 폐해척결을 백성을 위하여(民本), 그리고 김재규는 장기 유신독재에 ‘신물’난 백성에게 ‘자유’를 선물하기 위한 大義(民本), 살신성인의 의거를 결행, 육신을 버렸으며, 그 씨앗은 20대 전남대 대학생들의 저항 등이었다.
(4) 혁명 성격
삼봉은 체제 창조형이다. 삼봉은 신국가 창업가, 김재규는 기존체제의 전복가라는 차이점을 보인다. 삼봉은“의(義)를 위해 죽어야 할 땐 죽어야 한다”고 확신한 선비였다(조항덕: 28).
김재규, 체제 顚覆(유신 종식)으로서의 10.26 처단단독거사(암살)를, 철학적 기반으로는 삼봉의 경우 성리학을, 김재규는 현실적 모순의 제거 및 행동가로서의 혁명가였다.
(5) 목표
삼봉의 유교 이상국가의 근거는 ‘주례’와 동주의 신권 체제다. 그 체제가 조선 500년 작동의 원동력 으로 작용했다.
김재규의 자유와 정의 회복 마인드 측면이다.“나의 죽음을 가족들은 축복하라”고 유언한다.추도할 人은 박정희가 아니라 김재규다. 쿠데타와 유신으로 민주발전의 싹을 자르고 종신집권을 향해 매진하던 박정희의 무모한 '도전'은 다행히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좌절되었다.
김재규의 10·26 동기를 몇 가지로 구분하면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회복, 둘째는 부마항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봐 희생을 막자는 게 목적이었다. 세 번째는 북한에 의한 공산화를 막고, 네 번째가 주한 미군 철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한 대미 관계 회복, 다섯 번째가 이승만 12년, 박정희 18년 30년간 독재국가라는 이미지 척결이다(김재규, 『옥중수양록』).
김재규는 자신의 義擧를 革命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김재규의 擧事를 內亂이라고 하기에는 일반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점이 많다.
Ⅳ. 5.18 광주민주항쟁의 현대적 시사점
제1절 분석 변수 시사점
변수 측면
첫째, 개인 6변수 측면 관련 삼봉과 김재규의 혁명정신과 義의 실천의 유사, 상이점, 효과와 계승점 분석, 내용적 측면의 의와 선비정신, 혁명가 삼봉 정도전의 정침의 義의 연계성과 김재규의 義 정신과 실천적 개혁사상을 양인의 출생지, 유년, 청년기 교육과 사상, 결과적 측면을 비교분석하고, 몇가지 시사점과 사회적 활용방안,기대효과 측면의 몇 가지 제도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제언한다.
연구 결과 삼봉의 革命사상과 김재규의 ‘義擧’정신은「5.18 광주민주화운동」에 ‘不義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본 硏究者의 結論이다. 삼봉의 정침의 ‘義論’과 김재규 부친의 ‘불의에 머리를 숙이지 말라’(家訓)을 근거로 제시한다.삼봉은 天降大任과 未成在久를 성취한 人으로, 공동체 善을 이룬 귀감이 되는 자랑스런 한국인의 정신적 지표였다(이종수, 2023).
둘째, 8기질 관련혁명을 이끄는 혁명가들의 특징은 저항, 결단력, 비전을 가진다는 점으로 혁명가 기질은 혁명적 사고와 행동으로 사회와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는 의지와 결단력을 보유한다. 그들은 기존의 체제 저항과 도전을 통하여 변화를 추구하며, 그런 혁명의 중요성은 사회부조리 개선과 체제 비판에 대한 영감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 있다.
셋째, 필자의 견해를 융합하여 결과를 제시한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꺼져가는 고려, 불교의 폐단 종식자 삼봉 정도전과 유신 18년 장기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하여 ‘유신’을 終熄시킨 김재규만큼 과단성있는 인물도 찾기 어렵다고 생각되어 양인에 대한 ‘貶毁도, 美化도 아닌’ 기존 자료 중심으로 중립적 관점(김광희, 2021)에서 기술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중심으로 先人(兩人)의 ‘美化, 貶下’를 넘어 만백성에 기여한 功勞를 분석하고자 하였다(중앙, 2020.2.4).이종수 연구를 통해 정도전과 김재규의 혁명정신을 비교함으로써, 한국 역사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인물의 혁명정신은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나타났지만, 모두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표 8 > 변수별 특성
| 구분 | 삼봉 | 김재규 | |
| 6 변수 | 출생 | 경북 영주 | 경북 선산 |
| 청년기 | 과거, 8년 ?유배 | 일정기 고교 | |
| 시대 상황 | 여말 혼란기 | 3공 유신독재 시대 | |
| 신분 | 문인, 책사, 사상가 | 교사, 3성 장군, 중정부장 | |
| 사상 | 성리학 | 신학문 | |
| 결과 | 태종의 참수 | 교수형 | |
| 8 기질 | 기질 | 반골 | 반골 |
| 비판 시각 | 척불사상 | 유신체제 비판 | |
| 열정 | 이론에 기반한 실천가 | 불의 저항 | |
| 결단력 | 의리에 기반 | 의리에 기반 | |
| 조직화 | 기획, 실천(조선 창업 철학) | 7년간 숙고 | |
| 비전 | 東周 지향 | × | |
| 정치 활동 | 정치, 정책 활동 | × | |
| 복권 | 대원군 | 복권 재심 중 | |
| 3 특성 | 시대적 | 조선초기 국가 기획 | 유신독재 |
| 목표 | 국가체제 구상, 실천 | 독재 저항 | |
| 사상 | 성리학 기반 | 민주주의 | |
2. 분석 종합
필자의 견해는 삼봉, 궁핍과 不義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大義 실천을, 김재규는 부마항쟁 우려, 독재에 대한 피로감, 義의 實踐으로서“그 분이 대통령을 쏜 후 당황해 우왕좌왕한 사실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내란목적 의사가 없었다는 단적인 증거라 본다.”
정도전의 혁명의지는 유배와 피난 그리고 칩거 등 9년의 낭인 생활, 정도전에게 더 없는 현장 체험 , 자연에 순응하면서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단련되면서 사상적 토대를 구축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최근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과 약력이 육군 부대 시설과 내부 홈페이지에 올라올 예정이다. 국방부는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JTBC] 입력 2019.05.02.) 2020년 5월, 독재자 박정희를 저격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과 약력이 육군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김재규 전 부장의 이름과 사진은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지휘관 명단에도 40년만이다. 그는 육군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뉴스프리존, 2020.5.25.).
제2절 정책 제언
삼봉
8가지 관점에 따라 분석한 양인 혁명투쟁 사회적 영향으로는 사회변화 촉진, 정치적 각성, 갈등 조장, 혁신과 창의성 접근, 사회적 불안정 및 연대와 협력 현상 등으로 나타난다.
活用的 측면은, 소명의식과 공공가치 우선, 시스템설계와 민주적 정당성 중시 등이다. 삼봉사상은 지방자치, 법치주의, 공공성강화에 유의적이라고 평가되며, 김재규는 민주주의 수호와 권력감시 측면에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示唆点을 찾아 보면, 권력집중의 위험성, 권부에 대한 제도적 견제 필요성 환기를, 행동방식의 차이로 삼봉은 제도적 접근을, 김재규의 경우 폭력에 의한 의거라는 점이며, 이상의 교훈을 정리하면, 제도적 장치와 시민참여에 의한 권력견제 필요성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2. 김재규 ‘10.26 義擧’
維新 獨裁 終熄 義擧의 시사점이다.김재규의 ‘義擧’와 ‘독재’에 대한 경계와 저항정신의 재조명으로, “특히 20, 30대의 뜨거운 반응은 우리 사회 ‘정의로움’의 결핍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중앙일보).
법원이 '10·26' 김재규 사형 45년 만에 재심사유가 "폭행·가혹행위 있었다"였다(법률신문, 2025.2.19.) 김재규의 군사 재판(1980)과 고법의 재심(2025.2) 민간인 군법수사·재판, 범행동기 왜곡 ; 신군부 주도 ‘쪽지 재판’ 위법성 살필 듯하다(한겨레 2025.2.19.)
“새롭게 들어선 신군부가 정권탈취 의도에서 김재규에게 內亂 프레임을 씌우고 사건을 왜곡했다” 김장군은 박정희 ‘維新獨裁’를 종식시켰다.결국 '제4심'의 주도는 하늘의 대행자인 의로운 사람들의 몫이다. 따라서 김재규장군의 '재심'과 '복권'은 민주시대를 사는 깨어 있는 사람들의 '빚 갚음'이며 '역사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김재규변호인의 항소이유(재심청구) 3가지는 “비상계엄의 위헌성(위법)과 군사재판의 위법성, 김재규는 민간인으로 군사재판 처벌대상이 아니며, 내란죄 적용의 국헌문란 목적이 없었다”고 예시했다.
김재규 재판은 維新의 배경하에서, 본인은 自由民主主義 이념하에서 擧事한다.김재규장군 교수형 집행으로 40년이 지난 올 5월 26일 유족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청구의 가장 큰 이유는 공판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JTBC가 취득한 김재규장군의 육성 녹음테이프만 살펴도 공판조서의 허위는 그대로 드러난다.
법률적으로 김재규 부장의 재심 가능성은 국민 저항권을 대신 행사한 거로 해서 무죄 주장 재심 신청은 가능하다. 만일 현재 재판을 다시 한다면 최소한 내란 목적 살인이 단순 살인으로 변경될 가능성은 충분하다(2025년 6월 고법 재심결정).
이상의 논거에 근거하여 김재규 재평가 분야를 < 표 9 >에 요약한다.
< 표 9 > 김재규 의거 핵심적 재평가 분야
| 쟁점 | 기존 평가 | 재평가 내용 |
| 행위의 성격 | 내란목적 살인 | 유신독재 항거 |
| 재판의 정당성 | 군사재판, 신군부 개입 | 절차적 정의 무시 고문 인정 |
| 역사적 위치 | 반역자 | 民主‘義擧’者 |
| 재심의 의미 | 개인 명예회복 | 현대사 재정의 민주주의 회복상징 |
자료 : 필자가 재구성함(Chat GPT 참조).
민변은 김 전 부장의 재평가가 필요하다,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부득이한 살인이었다는 동기를 밝혀야 한다, 사법부 치욕을 씻어야 한다, 변호인의 접견권이나 김 전 부장의 변호인 조력권 등이 침해됐다, 박 전 대통령을 살해한 동기가 왜곡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內亂罪로 有罪를 받았고 정승화 당시 육국참모총장은 無罪를 받았다는 등의 재심 청구 취지를 밝혔다(뉴시스, 2020.5.26.).
전두환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 노태우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 황영시 징역 8년, 정호용 징역 7년 등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 주동자 15명에게 모두 유죄를 선고했다.
3. 제언
삼봉은 ‘9년 유배’(이종수, 2018 : 534)를 통하여, 김재규는 ‘유신’ 7년 專斷을 목격하며, “이건 아니다”라는 「革命 意志」(反骨)를 키워나간다. 兩人의 苦惱, 彷徨, 주저, 權力抛棄, 배신자 낙인(烙印), 그러나 民草의 고통을 마주하며, ‘혁명투사’(약자를 위해 强者들과의 戰士되길 自處) 길을 決行한다.
示唆点을 찾아 보면, 권력집중의 위험성, 권부에 대한 제도적 견제 필요성 환기를, 행동방식의 차이로 삼봉은 제도적 접근을, 김재규의 경우 폭력에 의한 의거라는 점이며, 이상의 교훈을 정리하면, 제도적 장치와 시민참여에 의한 권력견제 필요성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삼봉사상은 지방자치, 법치주의, 공공성강화에 유의적이라고 평가되며, 김재규는 민주주의 수호와 권력감시 측면에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헌법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민주혁명. 둘째, 국민저항권사상의 발로. 셋째, 다수 국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정당방위. 넷째, 민족사의 전통인 不義에 맞서는 의거. 다섯째, 살신성인 정신. 마지막으로 역사정의의 구현이다. 사육신으로부터 발원하여 의병, 안중근의거, 의열투쟁,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면면한 역사정의의 측면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당(민주당 등) 주도의 ‘제10차 개헌’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연합뉴스, 2026.5.8.). 재적 2/3(191명)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둘째, 삼봉, 김재규의 「K-義革命論」 측면이다. 삼봉과 김재규의 「K-義革命論」의 세계전파와 민주제도 시사점 발굴이다.
이종수(2018) 「정도전과 김재규의 혁명정신을 비교 분석」 내용은 두 인물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혁명정신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목표를 가졌다고 평가함(AI, 뤼튼, 2025.2.21.).
김재규는 『옥중 수양록』 노트 갈피에 불경의 한 구절을 흰색 종이에 적어 끼워놓았다.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은 대승불교 최고의 경전인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로 무엇을 행한다는 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애(無礙), 無爲의 정신 상태를 뜻한다.
셋째, 선비(義정신)으로서의 兩人의 “不義에 대한 저항”정신의 재조명이다. “兩人의 혁명사상(정신)이란 삼봉의 9년간의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교류와 고려 戶長 정침의 義 정신 및 김재규의 7년 동안의 고뇌와 방황의 결과, 民草를 위한 殺身成仁의 大義 實踐行爲(한국인 부마, 광주항쟁의 仁義 정신의 실천과 계승으로) 3.15의거, 4.19정신 계승, 유신독재 항거, 국민주권 회복과 헌정질서 회복의 맥락의 민중의 자발적 봉기 의인의 저항정신”으로 잠정 정의하였다.
혁명아 삼봉은 “포단(蒲團)깔고 앉아 정좌”했다. 정좌는 ‘고요하게 앉음’이다. 삼봉은 ‘심즉리(心氣理)’에서 호연지기란 의리를 실천하는 정기라고 하였다. 삼봉의 정좌는 끝없이 일어나는 사욕(私慾)을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정신 붙잡기’였다는 점이다(이종수, 2020.12 : 99).
Ⅴ. 나가는 글
본 연구는 정도전의 성리학(주자학)과 혁명정신(觀, 思想)의 정치, 행정철학적 배경, 내용, 결과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 5.18 민주항쟁의 영향 요인과 현대적 의의를 조명하였다. 그 접근 내용은 정도전 義사상과 5.18 혁명정신 연원 분석으로정도전과 김재규 사상의 비교 분석을 통한 현대적 시사
점과 활용방안을 탐색, 제언하였다.
필자의 기본시각은 5.18은선비의 義 사상의 구현과 현실 삶의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 전라도 지역민중의 자발적 봉기라는 관점에서 삼봉의 9년간의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교류와 義 정신 및 김재규의 7년 동안의 고뇌와 방황의 결과 民草를 위한 殺身成仁의 大義 實踐行爲”로정의하였다.
삼봉과 김재규는 백성의 질곡(桎梏)을 ‘解放’시켰다는 점에서 고려 朝廷(社稷)과 10.26 김재규 ‘의거’는 도대체 어떤 觀點에서 是是非非를 가려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고민하였으나, 영향요인은 不義에 抵抗(拒否)하는 정신으로 “義란 天下에 大道를 행함”으로 정의했다. 연구 결과 삼봉의 革命사상과 김재규의 ‘義擧’정신은「5.18 광주민주화운동」에 ‘不義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본 硏究者의 結論이다.
본 연구의 독창성 측면은 4차산업혁명시대 우리나라 ‘사회혁명 실천사례’를 삼봉과 김재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현대적인 창의, 감성 마인드를 함양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하였다는 점이다. 한계점으로는 사료, 가치 양면성, 연구결과물 불충분 등의 한계점을 추후 새로운 사실을 추가하여 보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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