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 죄송합니다. 시마무라입니다만 마쓰모도씨 계시
지요?"
지극히 공손한 말투였다.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만. 잠깐 기다리시면 깨워 보겠
습니다."
현관을 향해 나오던 여인은 문을 열어놓은 채 다시 안으
로 들어갔다.
하루야마도 어느 샌가 대문 앞에 와 서 있었다.
2, 3분쯤 지났을까 말까 했을 때 이번에는 걸걸한 기침소
리와 함께 잠옷차림의 남자가 나왔다. 마쓰모도였다. 흔히
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이미 모든 걸 예상하고 있었던 듯
그는 서두르지 않는 태도로 다가와 턱밑까지 오는 나지막
한 대문을 열었다.
"시마무라군 어, 자넨 또 들어와."
"한밤에 찾아온 걸 용서하게."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앞서는 마쓰모도의 뒤를 따라
좁은 현관으로 들어섰다.
가운데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있는 방이 이
집의 응접실이었다. 마루와 응접실 할 것 없이 촉수가 낮
은 전등을 쓰고 있었다. 세 사람은 정삼각형 모양을 이루
고 앉았다.
낡은 다다미 여덟 장이 깔린 8조 방안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다. 흔히 불단으로 쓰이거나 족자 따위를 걸어두는 도
꼬노마라는 붙박이 벽에 퇴색할 대로 퇴색한 족자 하나가
뎅그라니 걸려 있을 뿐이었다. 족자는 난초를 그린 한국
묵화였다.
"결정은 내려졌나?"
마쓰모도가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뗐다.
검고 마른 얼굴에 길고 깊은 주름살들이 온통 자리잡고
있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면 하루야마와 비슷한 나이 또래
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으음."
사마무라가 신음처럼 짧게 대답했다. 하루야마는 마쓰모
도의 반백이 다 된 부스스한 머리를 그저 멀거니 바라만
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순간 마쓰모도의 움푹 들어간
눈빛이 긴장되면서 시마무라의 차가운 눈을 똑바로 쳐다보
았다.
"어떻게?"
묻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때까지도 꼼짝 않
고 앉아만 있던 하루야마가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윗옷
속주머니에서 흰 천으로 싼 얄팍한 물건을 꺼낸 그는 두
손으로 바치듯 마쓰모도에게 내밀었다. 마쓰모도는 잠시
바라만 볼 뿐 얼른 받아들지 못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하루야마의 두 손과 그 흰 보자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그가 두 손을 내밀어 물건을 받아들었다. 머
리는 숙여져 있었다. 꿇어앉은 무릎 앞 바닥에 물건을 놓
은 뒤 접힌 부분에 손을 대려고 하는 순간 밖에서 조용히
기척이 났다.
"차를 가져왔습니다."
마쓰모도는 멈칫하더니 흰 보자기에 싼 것을 감추듯 한쪽
으로 밀어놓았다. 이어 살그머니 미끄러지듯 여닫이문이
열렸다. 문 밖엔 어느 틈엔가 기모노로 갈아입은 중년 여
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찻잔을 얹은 쟁반부터 방
안으로 밀어넣은 여인은 일어서 안으로 들어온 다음 다시
꿇어앉아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밤길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은 어둑하고 단조로운 방안
과는 걸맞지 않을 만큼 밝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하루야마
와 시마무라가 자리를 고쳐앉으며 여인에게 목례를 했다.
각 사람 앞에 동그랗게 말린 손수건과 함께 찻잔이 놓여졌
다.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다. 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따르는
여인의 손이 희고 부드러워 보였다. 잔마다에 차를 다 따
를 동안 입을 열거나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세 사람의 눈은 여인의 조용한 손놀림을 쫓고 있었지
만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찻잔을 모두 채운 여인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반절을 하고는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물이 흐르듯 고요하면서도 익숙
하고 아름다운 몸짓이었다.
마쓰모도는 찻잔을 옆으로 밀어놓고 옆으로 감추었던 흰
보자기를 아까처럼 무릎 앞으로 가져다 놓은 다음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손 끝으로 조심스레 접힌 부분을 폈
다. 손 끝이 마치 의수처럼 차고 딱딱해보였다.
흰 봉투가 있었다. 봉합되지 않은 흰 봉투를 열고 안에
든 종이를 꺼내폈다. 세 사람의 눈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한 장의 종이로 집중되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는 마쓰모도
는 마치 숨마저 멈춘 듯했다. 두 손으로 펴든 종이를 그는
한참 동안이나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참만에야
그것을 무릎 앞에 내려폈다. 거기에는 굵은 붓글씨가 한
자 쓰여져 있었다.
결 (潔 : 깨끗할 결)
글씨는 눈이 시리도록 흰 백지 위에서 마치 살아 있는 것
처럽 크고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옆모서리에는 '미원
조'라는 조직의 이름이 작은 크기로 쓰여 있고 상형문자
와도같은 붉은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말은 물론 행동과 시간마저 멈춰 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그 한 자의 글씨가 지닌 뜻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다는 사실
을 세 사람 모두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깨끗이 죽음으로
써 결백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돌이킬수 없는 판
결문이었으며 그 자체가 집행문이었다. 그것은 아무도 거
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만일 이 절대적 명령을 거부한다
면 조직은 단호하게 또 다른 글씨 한 자를 내릴 것이다.
그것은소 (掃 : 지운다는 뜻)였다.
'결' 자가 상대의 품위를 지켜주는 조직의 아량이자 일종
의 예우라고 한다면 '소' 자는 참담한 말살을 의미하는 것
이었다. 스스로 죽느냐 죽임을 당하느냐의 차이일 뿐 죽는
다는 결론은 마찬가지였지만 조직에 속한 사람들에게 있어
서는 엄청나게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됐군!"
마쓰모도의 말투는 차분했지만 그 음색은 마치 깊은 땅
속을 헤집고나오는 듯 메마르고 음습했다.
"일부러 와 줘서 고맙군. 가서 가지하라 회장님께 감
사의 뜻을 전해주게."
"스미꼬와 겐지는 우리가 맡을 것입니다."
시마무라가 무릎 위에 놓인 주먹을 불끈 쥐면서 말했다.
"고맙네. 부탁하네."
마쓰모도의 말은 그것뿐이었다. 잠시 숨막힐 듯한 고요가
훵뎅그렁하게 빈 듯한 방안을 짓눌렀다. 한참만에야 그는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밖을 향해 크지 않게 말했다.
"스미꼬 술."
마치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듯
"네에" 하는 스미꼬의 대답소리가 곧장 들려왔다.
"물론 여유는 없겠지 스미꼬와도 얘기가 끝났으니까
각오하고 있을걸세 하루야마 자네가 알아서 돌봐 주게
나 다행히 겐지는 아직 어리고 나와는 달리 사람
들을 잘 따르는 천성이 있으니."
입 안 가득 질긴 것을 씹듯이 힘들여 한 마디씩 말하는
마쓰모도를 하루야마는 아까와 다름없이 넋 나간 표정으로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야마."
"으응?"
그때 집안 어디에선가 '뎅' 하고 울리는 시계 치는 소리
가 들렸다. 새벽 1시였다.
"오늘 밤 다시 한번 와 주겠나?"
"으응."
"저것들을 위해 오늘 하루가 필요해 회장님께 그렇게
양해를 구해주게."
그때 스미꼬가 아까와같이 네모난 쟁반에 술병과 술잔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안색이 창백한 것 말고는 아무런 표정
도 읽을 수 없었다.
마쓰모도는 스미꼬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대로 두고 나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녀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물러간
뒤 마쓰모도는 도자기로 된 세개의 작은 잔에 술을 가득가
득 따랐다.
"작별의 잔으로는 너무 작군! 자네들의 건투를 비네."
마쓰모도가 먼저 잔을 들어 눈 높이로 올렸다. 하루야마
와 시마무라도 잔을 들어 올리긴 했지만 고개까지 들지는
않았다.
다음날 오후 3시경, 우메다에 있는 회장 가지하라의 사무
실 전화벨이 요동을 쳤다. 막 배달된 석간을 펴들었던 가
지하라가 사환이 건네 주는 수화기를 받았다. 잠시 듣고
있던 그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했구먼!"
그의 대답은 그것뿐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맞은
편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는 청년에게
"가자"
하고 내뱉듯이 명령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검은 신사복으로 정장한 남
자들이 소네자끼의 마쓰모도 집으로 모여들었다. 대문에는
상가임을 알리는 종이로 된 크고 둥근 초롱이 매달렸다.
현관까지의 좁은 공간과 대문 밖에서는 이웃 사람인 듯한
가정주부들이 두셋씩 모여 자못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마쓰모도의 시신은 응접실의 붙박이 장식대 앞에 흰 천으
로 덮인 채뉘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스미꼬가 시신 곁
에 차려 놓은 작은 불단을 향해 돌아앉아 있고 그녀를 마
주보듯 양쪽으로 하루야마와 시마무라가 단정히 꿇어앉아
있었다.
중학생인 아들 겐지는 시신의 머리 쪽에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었다.
가지하라가 그의 부하들과 함께 들어섰을 때 스미꼬는 기
척을 듣고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띠를 드리운 제법 큼직한 조화를 함께 온 두 사람이
불단옆에 조심스레 갖다 놓았다. 방안에 자욱이 들어찬 향
불 냄새 탓인지 수십 송이로 꾸며진 흰 국화의 향기는 맡
을 수가 없었다.
가지하라가 스미꼬의 한 발 등 뒤에 꿇어앉았다.
"미안합니다. 사나이다운 마쓰모도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굵고 낮은 그의 목소리가 침통함을 담고 있었다. 스미꼬
는 그대로 굳어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 마쓰모도의 세 식구는 오오사까성을 돌아
보고 한큐 백화점 식당가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집으로
돌아온 마쓰모도는 목욕을 했다. 그리고 머리가 아프다면
서 자리를 펴게 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마쓰모도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이라
면서 하루야마가 찾아왔다. 하루야마가 방에 들어섰을 때
천정을 향해 반듯이 누운 마쓰모도의 얼굴빛은 엷은 청동
빛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게도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란 스미꼬가 달
려들어 마쓰모도의 머리와 가슴을 한꺼번에 껴안았다. 울
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울부짖음 때문이었는
지 감겨 있던 마쓰모도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이미 초점
을 잃은 눈을 멀건히 뜬 채 그는 알아듣기 힘들 만큼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루야마, 부탁해 스미꼬 겐지 겐지 스
미꼬."
그리고 잠시 후, 하루야마는 멀건히 허공을 향해 뜬 채
숨진 마쓰모도의 눈을 떨리는 손으로 감겨 주었다. 그리고
는,
"어떻게 해, 여보."
넋두리를 되뇌이며 탈진해 가는 스미꼬를 안아 옆방으로
옮겼다.
1시간이 채 못되어 시마무라와 또 다른 사람이 까운을 입
은 의사와 함께 달려왔으나 의사는 곧 돌아가 버렸다. 해
질 무렵 그 의사는 자신의 진료실 책상에서 세 사람의 건
장한 사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진단서를 썼다. 사인
은 [심장마비]였다.
그날 밤, 조직원들은 5-6 명씩 조를 정해 빈소를 지켰다.
이튿날 아침 치러진 장례식은 누가 보더라도 격식을 갖춘
것이었다. 검은 예복 차림의 중년 남자 30여명이 관 주위
를 둘러싸고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풍채좋은 승려가 짙게
독경을 했다. 이윽고 검은색 장의차에 실려 마쓰모도는 화
장터로 갔다.
마쓰모도의 건장했던 육체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올 때
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하루야마와 시마무라,
하리모도, 그리고 또 한 명조직원 등 네 명과 검은 상복
차림의 스미꼬를 둘러싼 그 또래 여인 십여 명이었다.
유골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작은 도자기에 담는 일 등 모
든 과정을 하루야마가 주도했고 시마무라가 쫓아다니며 거
들었다. 스미꼬 이외는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
나 벌겋게 타오르는 불화덕 속으로 들어갔던 마쓰모도가
몇 줌의 뼈가 되어 나왔을 땐 하루야마도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등신아, 죽기는 와."
가슴을 에이는 듯 절절한 하루야마의 울부짖음의 말뜻을
그러나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야마, 그는 한국의 경상도 어느 산골 출신이었
다. 해방되기 직전인 1944년 가을, 그는 '보국대'라는 이
름으로 강제 징용되어 오끼나와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 군
부로 배속되었다. 강인한 체구를 가졌던 그의 나이는 그때
스물셋. 진주만 공격으로 시작된 서전을 승리로 장식
한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동남 아시아와 태평양, 중국 대
륙과 버마, 타이에 이르기까지 전장을 넓혀 나갔다. 그러
나 너무도 방대하게 형성된 전선 때문에 개전 후 2년이 넘
어서자 일본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세계 제일의 무적함대라고 자랑하던 연합함대가 놀라운
속도로 재건된 미국의 태평양 함대와의 해전에서 어이없이
무너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일본 국민의 열렬한 신망을 한 몸에 모으고 있던 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꾸가 미드웨이 해상에서 어이없이 전사한
후 일본 국민과 군대의 사기는 썰물에 휩쓸리듯 빠져나가
버리고 연합함대도 궤멸 직전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
다. 일본 안에서는 군수품이 바닥났고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공장마저 밤낮을 가리지 않는 미공군의 폭격으로 제
대로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의 권력은 군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몇몇 문
관 출신 각료들이 종전을 위한 강화를 주장하고는 있었으
나 군부는 달랐다. 그들은 '본토 결전 1억 국민 총옥쇄'라
는 방침을 굳히고 있었다.
인도지나 사변이 일어난 30년대 말부터 시작된 식민지 한
반도에 대한징용은 겉으로는 자원을 표방했으나 사실은 무
차별적인 강제동원이었다.
1943년,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본은 매달 수만
명씩의 조선인 청장년들을 사냥하듯 낚아채 태평양 연안
곳곳의 전선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일본군부는 징용한 조
선인들을 본토 결전에 대비, 태평양에서 북으로 물밀 듯
올라오는 미군의 진격을 오끼나와 일대에서 격파한다는 전
술적 목적에 따라 오끼나와 서쪽에 있는 게라마 열도로 보
냈다. 창씨 개명 때 고향의 지명을 따 일본 성씨로 하루야
마가 된 그 역시 그곳으로 보내졌다. 명목이야 전초방어진
지를 구축한다는 것이었지만 대포 한 대도 갖추지 못한 작
은 섬에서 1개 중대쯤 되는 일본군 수비대를 위해 땅굴을
파거나 통나무를 대포처럼 위장하여 해안포대 모양을 만드
는 일 등 막일이 전부였다.
하루야마가 역시 한국인 군부인 이복기, 즉 마쓰모도를
만난것은 게라마 열도에 속한 작은 섬 자마미에서였다. 땅
파는 일을 하지 않을 때면 한국인 군부들은 원시림에 가까
운 숲속으로 보내졌다. 식량보급이 끊어진 지 오랜 지라
숲속에서 먹을 만한 식물을 채취하고 동물을 잡아다 먹어
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먹을 만한 열매들
이 더러 있었으나 나중에는 풀잎과 나무뿌리 따위가 고작
이었다. 동물이라야 뱀과 들쥐, 비만 오면 무수히 기어나
오는 달팽이가 고작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50여명의 한국인 군부들 틈에 끼여 산 속
을 헤메던 하루야마가 불거져 나온 나무뿌리에 채여 넘어
지면서 다리를 다쳤을 때 숙소인 바닷가 동굴까지 업고 온
것이 바로 마쓰모도였다. 전라남도 장성군 출신이라는 이
과묵한 청년의 나이는 우연히도 하루야마와 동갑이었으나
생일은 마쓰모도가 앞섰다.
당시 오끼나와 각지로 보내진 한국인은 1만 2천여 명이었
는데 그 중 5백여 명이 최전선인 게라마 열도의 여러 섬으
로 수십 명씩 나뉘어 파견되었다.
자마미 섬에 있던 백여 명의 한국인 군부들 틈에서 두 사
람은 곧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1944년 10월 10일, 오끼나와 본토와 게라마 열도에 대한
미공군의 대대적인 폭격이 시작되었다. 미군 상륙이 임박
해지자 일본군은 스스로 배를 가르거나 수류탄을 터뜨려
산화하는 자결을 감행했다. 지나친 긴장과 전율속에서 몇
달을 지내는 동안 군인이나 군부 할 것 없이 모두가 죽음
과 삶에 대한 감각마저 잃어버렸다.
1945년 3월 말까지 자마미 섬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
는 확실하지 않았다. 4월 1일 미군이 게라마 열도에 상륙
함과 함께 두 사람은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오끼나와가
평정된 후 두 사람은 그곳에 있는 이시가끼 수용소로 옮겨
졌다가 종전을 맞았다. 1946년 1월, 두 사람은 송환선을
타고 오오사까로 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귀국을 뒤로 미룬
채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부두에서 미군수물자 하역작업을 마친 어느 날 밤, 부둣
가 포장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과 또 다른 패거리 사이
에 싸움이 붙었다. 이유는 별 것아니었다. 피투성이 싸움
끝에 둘은 상대했던 다섯을 때려눕혔다. 고통스런 삶에 대
한 분풀이라도 하듯 미친 듯 날뛰는 두 사람을 웬만해서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늘씬하게 두들겨 맞은 다
섯 놈이 달아난 뒤 한 잔씩을 더 마신 두 사람이 노동자합
숙소로 돌아가려고 포장술집을 나섰을 때 10여명의 장정들
이 어둠 속에서 길을 막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몽둥
이나 쇠파이프 따위를 든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 싸움에
서 맞고 달아난 놈들과 한 패임이 분명했다.
"새끼들, 달아날 생각은 버려."
"당장 그 자리에 꿇어앉아."
"가루로 만들어 줄 테다."
그들은 제각기 으르렁거리듯 한 마디씩 내뱉었다.
전후 혼란기에는 일본 전역, 가는 곳마다 이런 폭력배들
이 득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