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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관련 기념물

미포병학교 유학장교단 앨범

작성자fdc|작성시간25.11.08|조회수25 목록 댓글 0

지금은 초급장교나 고급장교의 병과교육이 해당 병과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야외 훈련장이 비좁긴 하지만 기동훈련 부터 실사격까지 가능하다.

일반인이 생각할 때 무식한 군인들일 것 같지만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처럼 연구인력이 필요하고 특히 이학과 공학 그리고 체육학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한 교수인력이 필요하며 사관학교 보다 더 발전된 교육과정이 있어야 임관한 장교들의 보수교육을 담보할 수 있다.

6.25동란 급하게 투입된 초급장교들은 예비역들도 있었지만 폐교된 육군사관학교, 육군보병학교등의 생도를 모아 종합학교를 만들어 교육 후 임관을 시켰고 현지 임관된 이들 또한 많은 희생을 치루며 북한군을 막아냈고 후에는 중국에서 투입된 군대와 싸운다.

신병을 양성하는데도 몇 달이 걸리는 현실에서 사관학교나 보병학교 교육 후 추가로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함에도 당시 사정은 좋지 않았으며 폐교된 병과학교를 광주에 다시 모이게 하여 보수교육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미국에 장교단을 보낸다.

전쟁전에는 일본에 주둔한 미군들에게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전문적이고 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했던 시기 미국정부의 도움으로 일본을 거쳐 미국의 본토에 장기간 교육을 하기에 이른다.

대표적인 곳이 미보병학교(포트베닝), 미포병학교( 포트실)인데 전체적으로 숫자가 적은 포병장교들이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숫자는 상대적으로 많았고 휴전 이후에도 계속되며 국군을 증강할 때 사단포병대나 군단포병 특히 사단장 바로 아래에 포병사령관이라는 명칭을 써서 보병연대장보다 서열을 높이고 보병의 고급장교들중 우수한 이들을 포병으로 전과 교육을 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 준장이었고 이후 장성급장교가 계속 나온다.

아무튼 전시에도 계속 보내고 이후 휴전후에도 장교단을 보내는데 이들중에는 훗날 5.16군사정변에 개입하여 정권을 잡고 실세가 된 군인들도 있었다.



당시 미국을 다녀온 기록물이나 자료는 가끔 인터넷으로 소개가 되는데 자세하지는 않지만 시대를 알 수 있다.

요즘 고인이 된 분들의 유품에서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이것을 모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단기 4286년이니 1953년 휴전이 되기전 우리군의 포병장교들이 일본을 거쳐 미국 오클라호마로 가서 교육을 받는데 중위부터 중령까지 고루 있으나 대위가 가장 많고 중위도 적지 않고 교육중에 휴전이 되고 7월28일 교육이 종료되는데 양력을 쓰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사진을 보면 대위계급장을 달고 있는데 소령이라고 하고 중위인데 대위라고 하는 것을 보면 교육중에 진급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포병대대급의 지휘부를 구성하는데 촛점을 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우리군으로 보면 고군반과정(대위급 장교가 포대장이나 참모)을 이수하기 위해 건너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진을 보면 초군반(소위급)과정에서 다루는 것 그리고 제병협동훈련에 대한 것도 심도있게 하지 않았나? 추측한다.




당시 미국에서 나눠준 교재를 본적이 있는데 미군장교의 것과 동일한 것도 있지만 한글로 쓴 번역물이 있는 것을 보면 미군측과의 협조가 잘되어 있었던 것 같다.

앨범 사진의 빛깔은 약간 변했지만 보관상태가 좋고 한글 활자가 아닌 손으로 쓴 글씨로 되어 있고 오클라호마에서 떨어진 달라스의 군출판소에서 인쇄가 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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