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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No24 그리스도의 화목제물(260607)

작성자lks8284|작성시간26.06.07|조회수25 목록 댓글 0

260607주일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3:23-25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셨다.

그 은혜는 우리에게 매우 귀중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은혜는 속죄라는 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속죄해주신 것이다.

단지 속죄라는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를 이루시기 위해서는 또한 하나님의 공의도 하나도 범하지 않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게 너무 큰 희생을 치르게 했다.

[대전환]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 말씀도 대전환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똑같지 않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나을 수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사회적 기능도 다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측면에서는 모든 자가 똑같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에서 한참 빗나갔다는 면에서 똑같다.

또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인격적 수준에서 한참 부족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하나님의 명예가 존중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대단히 패악한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죄인으로서 다 똑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하여 인간은 가장 나중된 자다. 인간은 하나님의 체면을 깎아내릴 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가 원하시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 엄청난 특권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런 특권을 주시며 기대하신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살았다.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모습 자체가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모든 자가 죄인인데, 오직 믿는 자라면 구원을 받는다.

그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오직 믿음이라는 조건 때문에 구원받는다.

그 외에 어떤 인간의 조건도 여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다 죄 아래 있는 자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라면 모두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두 동등하게 의롭게 여김을 받고,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마찬가지다.

대역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이 시점을 통해 우주는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접어든다.

이 때 인간들은 하나님에게 의롭다함을 받는 새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의롭다하신다.

[의롭다하심을 선언하심]

의롭다하심은 하나님의 공식선포다.

다시 말하면 죄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충족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는 기능은 없지만,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판별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선포는 이 사람은 죄인이 아니다. 더 이상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이다.

의롭다함은 법적 선언이다.

전적으로 법정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대단히 공식적인 처리다.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으면, 이 사람은 새로운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본래 죄인이 아닌, 죄가 없는 자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의롭다고 선포하실 때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하나님의 표준)가 그 사람에게 전가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그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다.

이 때,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죄인으로서 억업하는 것들에게서 풀려난다.

약점 때문에 항상 억압받고, 괴롭힘을 당했는데, 거기서 풀려난다.

정죄 뿐 아니라, 지옥에 갈 자로서 더 많은 악의 도구로 이용만 당하고 괴로움만 당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된다.

의롭다함이 선고되는 순간 구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의롭다하시면, 진짜 이 사람의 성질 자체가 의로워 진 것은 아니다.

오늘 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방금 전과 똑같이 악한 자다.

그러므로, 선포 자체가 사람의 성질 자체를 바꾸지 않는다.

그대로 그 사람인데, 다만 법적으로 무죄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의롭다하신 것은 불법이 아니라,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다.

이것은 뒤에서 숨어서 불법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값없이 공개적으로 그 사람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의롭다하시고, 혜택을 주시는데, 그 혜택은 선물이다.

값없이 주신 것이다.

이 사람이 진짜 정말 의롭다고 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어느 구석에 선한 것이 있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정말 받을 자격이 없는데 거저 주신 것이다.

어떤 공로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어떤 점을 특별히 좋게 보는 것도 아니다.

거저 은혜로 주신 것이다.

본문에는 값없이라는 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은혜로 주셨다고 했다.

'은혜로, 값없이'라는 말은 같은 말 반복이다.

은혜라는 말은 고대 헬라에서는 한 사람이 당장 죽음에 처할 위기에 처했을 때, 살려주는 수준의 것이다.

그 정도의 수준에서 쓰여지는 말이므로, 잘 쓰여지는 말이 아니다.

유대 문화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 은혜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은혜라는 말로 자기 겸손과 받은 것에 대한 감사를 나타낸다.

이것은 상징이지, 진짜 은혜가 아니다.

서로 주고 받은 수준의 것은 은혜가 아니다.

정말 죽을 정도 되는 것에서 살려주는 것이 은혜다.

그러나, 은혜라는 말을 충분히 쓰기 바란다.

선함, 긍휼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것을 자주 쓰는 것은 오히려 좋은 것이다.

[속량하여 구출하심]

속량은 어떤 값을 치르므로, 누구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속량이라는 개념을 계속 쓰고 있었다.

우리는 구속이라는 단어로 속량이라는 개념을 썼다.

한글개역성경에는 구속으로 나와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속량으로 나온다.

오늘날 단어의 이해로는 구속이라는 말은 체포라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구속이라는 말보다 속량이라는 말이 좋다.

그러나, 사실 다 맞는 말이어서 다 써도 된다.

속량은 노예의 값을 치르고, 그를 사는 것이다.

노예에 대한 개념은 중요한 개념이다.

돈을 내고 사서 그냥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내 것이 된 것을 사랑해주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위의 구절의 속량은 더러운 자에게 사서, 새로운 주인에게 속하여 그분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벧전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사서 당신의 것으로 만들어주었으니, 너는 하나님의 소유다. 하나님에게 영광돌리라.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이 사람을 정죄했는데, 주님이 십자가에 오르셔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값을 치르고, 사서 그냥 풀어준 것이 아니라, 자녀 삼아주셔서, 그 사람의 신분이 명확히 되었다.

그래서,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은혜의 선물은 엄청 비싼 값을 치른 것이다.

하나님에게 가장 귀한 아들을 십자가에서 고난받게 하고, 하나님 자신에게서 버림받아 처절히 죽어야 하는 희생을 겪어야 했다.

이것은 앞으로도 영원토록 다시 있을 수 없는 단 한번의 희생이다.

그 은혜를 발생시키기 위해 허락하신 단 한번의 사건이다.

이 은혜의 결과로 신자는 주 예수를 믿을 때, 자신이 치러야 할 엄청난 형벌의 값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자기가 치러야 할 죄과가 다 없어졌다.

그는 예수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심]

하나님께서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뭇사람 위에 높이 세웠다는 표현이라기 보다, 비참하게 죽는 자로 세우셨다.

'세우다' 공개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속량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공개적으로 온 세계가 볼 수 있도록 하셨다.

그가 바로 온 세상을 구하는 속죄를 위한 희생임을 다 알도록 하신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능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으므로, 할 수 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제물로 하여 죄인인 인간을 구원받게 하셨다.

[화목제물이란?]

화목제물은 자비, 호의, 화해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달랜다는 뜻이다.

일반종교에서 인간이 어떤 신에게 제물을 바쳐서, 그 신을 달래는 것이다.

신이 화를 내서 재앙을 내리지 않도록 제물을 드려, 신의 분노를 누그려뜨리는 것이다.

그런 개념을 갖는 단어를 쓴 것이다.

하나님께 화목제물을 드리는 것도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다.

신의 진노를 누그려뜨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신약성경에서는 신을 달래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신의 진노를 누그려뜨리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의 공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다.

인간이 공의를 만족시키려면 형벌로 죽어야 한다.

대책이 없다.

인간을 구하려면, 인간에게 죄책이 없어야 한다.

죄가 버젓이 있는데, 죄가 없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하면, 불법적인 법정이 된다.

죄가 있는 자를 절대 죄가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더욱이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은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나님이 나서서 행하시므로, 자신의 공의를 친히 충족시키신다.

인간을 형벌에서 구하는 방법은 인간에게서 나올 수 없고,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했다.

하나님은 심판자이신데, 형벌을 내리셔야 할 분이 형벌을 받으셔야 한다.

그가 자진하여 그렇게 하셨다.

성육신하여 오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다.

딤전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셨다.

하나님의 공의, 기소를 다 받아서, 자신 안에 삼키시고, 해결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눈감아주지 않았다.

있는 죄를 임의로 무죄처리 하지 않으셨다.

공의를 어기지 않으셨다.

그 형벌을 자신이 받으므로, 죄의 댓가를 자신이 치르시고, 우리에게는 살 길을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형벌이 남아있지 않다.

믿는 자의 구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믿는 자의 구원은 이렇게 값없이, 거저, 은혜로 하나님에 의하여 얻어졌다.

이렇게 죄에 대한 값은 다 치렀고, 하나님의 공의는 온전히 이루어졌다.

하나님의 공의가 다 성취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해소되었다.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예수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놓으신 것이다.

신적 피로 지불된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완불되었다.

벧전1:18-19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피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말이다.

고대의 지성인들이 상징적으로 간결하면서, 아름답게 표현한 말이다.

그가 피흘리셨다는 말은 그가 자신을 내어주어 죽음을 당하셨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으신 분은 아멘하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내놓으신 화목제물이다.

하나님의 화목제물을 통해 은혜 받은 분은 아멘하라.

예수께서 피흘리신 것은 내 죄를 속죄하여, 구원하시는 것이다.

제물로 바쳐진 분은 나의 죄를 속죄하고, 나를 지옥에서 건져줄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 효력이 그대로 가도록 하신 것이다.

[공의의 진노를 만족시킨 화목제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속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해소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은 속죄를 하시되,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고,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하신 것이다.

화목제물로 번역해서 쓰는 오리지널은 힐라스테리온이다.(ἱλαστήριον)

이것은 지성소 안의 법궤가 있는 속죄소, 시은좌를 말한다.

시은좌는 구약의 제사의 특징을 잘 설명한다.

대제사장은 속죄일에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데, 짐승의 피를 뿌려 자신의 죄와 백성의 죄를 위해 속죄했다.

이 제사는 속죄에 핵심이 있다.

하지만, 이 제사 행위가 실제로 그들의 죄를 씻지는 못했다.

단 하나의 죄도 값을 지불하지 못했다.

공의는 충족되지 않았다.

구약제사는 앞으로 오게 될 참된 제사를 기대하고, 암시하고, 바라보며 한 것 뿐이다.

그래서, 완전한 해결은 미완으로 남겼다.

언젠가 해결될 우주적 제사에 짐을 떠 넘긴 것이다.

이것이 구약제사의 한계다.

미래를 당겨서 속죄는 얻어냈지만, 진노는 막아내지 못했다.

언젠가 터질 진노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을 하지 못했다.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는 제사]

화목제물의 성격은 첫째 속죄의 제물이다.

둘째는 진노를 달래는 것이다.

화목제물은 완벽한 속죄를 이루는 것이지만, 자신이 형벌을 받아 진노를 해소시키므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시켜, 진노의 요구가 충족되는 것이다.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속죄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막 용서하신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단지 속죄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그분이 고통받으셨다.

주님의 속죄는 영원토록 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하나도 더럽히지 않는 가장 위대하고, 큰 속죄를 친히 이루셨다.

여러분과 나를 위해, 미래를 꿈꾸게 하기 위해, 은혜로, 거저, 값없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어주셨다.

그는 고난받고, 우리에게는 평안과 행복과 의를 주셨다.

기독교인이라고 함부로 죄 없다고 으시대지 말자.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순간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의로워지는 것이다.

이제부터 선한 일로 자기 백성이 되도록 그가 사주신 것이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속죄의 큰 역사를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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