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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모신글]Re: 도금봉_“내 죽음을 절대 세상에 알리지 마라.”

작성자약수터|작성시간26.06.10|조회수0 목록 댓글 0

도금봉_“내 죽음을 절대 세상에 알리지 마라.”

 

“내 죽음을 절대 세상에 알리지 마라.” 500편의 영화를 씹어 삼킨 절대적 팜므파탈…

수도원 요양원에서 완전히 증발해버린 도금봉의 마지막 복수

 

2009년 9월 첫째 주.

서울 광진구의 한 천주교 복지시설 안.

세상의 모든 소음과 단절된 듯한 고요한 요양원에서, 79세의 한 노파가 홀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통곡하는 연예계 동료들도 없었다.

카메라 셔터를 미친 듯이 눌러대는 기자들도 없었다.

그녀가 남긴 유언은 단 한마디였다.

너무나 차갑고, 너무나 단호했다.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절대 세상에 알리지 마라.”

가족들은 그 거스를 수 없는 유언에 따라 빈소조차 차리지 않았다.

그리고 극도로 조용히 그녀의 시신을 화장했다.

그녀가 재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 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대한민국 사회는 뒤늦게 발칵 뒤집혔다.

이름 없는 노파처럼 떠난 그 여자가, 바로 1950~60년대 한국 충무로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던 절대적 섹스 심벌.

‘한국의 마릴린 먼로’, 도금봉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대중의 시선 한가운데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여배우.

그녀는 왜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은밀한 방식으로 스스로 막을 내려버린 것일까.

지금의 팬덤 세대와 넷플릭스를 보며 자란 사람들에게 도금봉이라는 이름은 그저 낯선 글자 몇 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수적인 유교적 질서가 사회의 목을 꽉 조이고 있던 1950년대 한국에서,

그녀의 등장은 거의 시각적 테러에 가까웠다.

그것은 혁명이었다.

1957년 영화 《황진이》로 데뷔한 그녀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암묵적인 규칙을 단숨에 박살냈다.

그 시절 스크린에는 눈물 흘리는 청순한 비련의 여주인공, 혹은 모든 것을 참고 희생하는 어머니상만 존재했다.

하지만 도금봉은 달랐다.

그녀는 담배를 물고, 오토바이를 타고, 남자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가지고 노는 진짜 악녀이자 팜므파탈이었다.

스크린 속 그녀의 눈빛에는 독이 배어 있었다.

몸은 숨이 막힐 만큼 관능적이었다.

당시 대중은 겉으로는 손가락질했다.

“풍기문란하다.” “너무 노골적이다.” 하지만 뒤로는 미친 듯이 극장 앞에 줄을 섰다.

그녀는 무려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장녹수, 요부 배정자, 수많은 여귀와 독한 여자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도금봉은 남자들의 욕망과 여자들의 질투를 동시에 먹고 자라난,

충무로가 직접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도 가장 위험한 괴물이었다.

그러나 이 업계의 자본주의와 대중 심리는 언제나 이중적이고 잔인하다.

세상은 스크린 위에서 그녀의 젊음과 육체를 탐욕스럽게 소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얼굴에 주름이 새겨지기 시작하자 태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때 업계 최고 출연료를 받던,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던 여왕.

그녀는 19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보통의 여배우였다면 그쯤에서 먹고살기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자상한 노모 역할로 전환하거나, 방송국 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금봉은 뼛속부터 길들여지기를 거부한 맹수였다.

그녀는 꼬리를 흔들며 스크린에 매달리지 않았다.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고, 삼청동에 복어집을 차려 스스로 생계를 꾸렸다.

훗날 장사가 실패하고 가난해졌을 때조차, 그녀는 단 한 번도 연예계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언론이 냄새를 맡고 찾아와

“왕년의 톱스타, 병들고 가난한 노년” 같은 싸구려 동정 기사를 쓰려 할 때마다, 그녀는 문을 굳게 잠갔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파산과 가난이 창피해서 숨어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오만하고 천박한 해석이다.

그녀의 마지막 은둔, 그리고 “내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마라”

는 유언은 가난에 짓눌린 실패자의 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 자신의 육체와 이미지를 소비해온 위선적인 세상과 피 냄새 나는 언론을 향해 들어 올린,

가장 통쾌하고 완벽한 마지막 손가락질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론이 얼마나 역겨운 식욕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은 그녀의 늙고 병든 모습, 죽음 직전의 초라함마저 마지막 클릭 장사로 짜내려 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울 때는 몸과 얼굴을 벗겨가며 소비하고,

죽고 나면 영정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한 시대의 별이 졌다” 는 뻔한 추모문을 공장처럼 찍어내는 세상.

그 역겨운 쇼비즈니스의 제단 앞에서, 도금봉은 가장 단호한 반격을 선택했다.

내 죽음만큼은 너희가 제물로 가져가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엔딩 크레딧을 대중이나 기자의 손에 넘기지 않았다.

스스로의 손으로 필름을 깔끔하게 끊어버렸다.

그녀가 떠난 뒤 며칠이 지나서야 세상은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가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어떤 소란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우리는 도금봉의 삶을 단순히 “말년이 쓸쓸했던 왕년의 섹시 스타” 라는 납작한 문장으로 줄여서는 안 된다.

그녀는 가장 보수적이던 시대에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형상화한 선구자였다.

그리고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타인의 시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낸 진짜 여왕이었다.

부디 그곳에서는 세속의 싸구려 평가도, 

타인의 잔인한 잣대도 없기를.

그토록 원했던 완전한 자유 속에서, 계속 마음껏 오만하고, 마음껏 아름답기를.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길들여지지 않았던 우리의 영원한 악녀.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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