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짜빈동을 아느냐!
짜빈동 전투의 대승 소식을 듣고 헬기를 타고 급히 날아온 미 제3해병사단 사령관 웰트 중장은
전장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청룡 11중대장 정경진 대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중대 단위 전투에서는 처음 보는 경이적인 전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Do not engage the Koreans unless you are 100% sure of victory.
If you encounter them, retreat and avoid contact.
"They use Taekwondo, a deadly martial art, to kill enemies with bare hands."
(한국군과 교전할 때는 승리를 100% 확신할 수 있을 때가 아니면 교전하지 말라.
만약 그들을 만나게 되면 접촉을 피하고 후퇴하라.
그들은 맨손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무술, 태권도를 사용한다.)”
-뉴욕타임즈/ 노획된 베트콩 문서 중에서
청룡 해병들은 악으로, 깡으로, 그리고 해병혼으로 서로를 굳게 믿으며 인화단결의 힘을 하나로 모았다.
294 대 2,400이라는 절망적인 수적 열세 속에서도 그들은 끝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294명의 해병이 하나되어 이룩한 이 전과는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양만춘의 안시성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그리고 이순신의 명량대첩을 잇는, 기적이라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승리였다.
해마다 2월 15일이 되면, 1967년 2월 15일 짜빈동에서 탄생한 신화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 장본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으며,
이름 모를 영웅들이 하나로 굳게 결속해 이루어낸 이 소중한 승리가
오래도록 가슴 깊이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M1소총을 든 청룡해병 눈에 초점을 잃을 정도로 처절한 전투가 있었음을 알 수 가있다.
뉴욕타임즈 대서특필되며 "신화를 남긴 해병대" 라 칭송되었다 .
월맹 정규군에 완벽한 위장 청룡해병과 같은 똑같은 복장으로 기습 야습으로
무려 10배가 넘는 월남 정규군을 맞아 고(故) 해간 33기 김세창 중위 관측장교
서울대 출신 모든 좌표를 외워서 칠흙같은 어둠속에서도 핀셋 포격으로 섬멸했으며,
모든 공로는 백병전으로 혼신의 전력으로 싸운 해병보병들에게 돌렸다.
이후 미국 콴타나모 기지 미 해병학교 포병전술 교본으로 실려있다.
위대한 승리뒤엔 해병대 보병들을 돕는 조력자가 있었다.
이후 호치민은 짜빈동이라는 치욕스런 전투를 감추기 위하여 지명조차도 바꾸어 버렸다고 전해진다.
일부 베트남 마을에는 해병대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고 전하여진다.
당시 미국은 한국해병대 약 1개 여단급 참전을 요구하여 급하게 징집하느라 일부전과자도 징집하여
특수교육대 수료후 전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들이 바로 제 22대 사령관을 역임한
전도봉 장군의 저서 "그러나 해병대는 영원하다" 나온 월남 캡부대로 행실이 불량하고
미국장교를 희롱하며 약 1개 대대급으로 교도소 별을 많이 단 순으로 계급이 정해져
골치아픈 부대로 청룡부대의 수치로 전도봉 중위의 평정으로 수괴는 수류탄 자폭으로 마무리 되었고,
영현장교로 귀환했다고 기술되어있다.
전도봉 소위는 월남전 13개월동안 단 한명의 소대원도 잃지 않은
해병대 월남전의 영웅으로 금희환향 했으나 해병대는 비운의 해체식을 맞고
해군의 일개 상륙부대로 유령군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해병대는 월남전 직후 박통의 명령으로 해병대는 해체되었다.
1973.10.10 해병대 해체식 비운의 토사구팽 되어 명분은 국가예산 부족이라는 허구한 구실로 자신이 쿠데타로 잡은 권력을 또 다시 다른 세력에 위협을 느껴 그리했고 , 유신헌법 단행으로 독재로 이어졌다.
박통 자신을 일으킨 군대를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트리고
후에 궁정동 안가에서 총탄으로 독재자는 쓰러져갔고
또 다른 전두환 신군부가 8년간 서슬퍼런 공포정치를 낳는 결과를 초례했다.
아이러니 한것은 박통의 손자가 해병으로 입대를 하여
또다른 정치적 경험을 쌓고 보수진영의 명맥을 이어갈지는 두고봐야 할것입니다.
2026년 해병대는 준 사군체제로 환원되는 법적절차를 밣고 있으며
전작권회수와 맞물려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 이기도 하다.
세계정세에 맞는 국가전략 기동부대로 국민의 군대로
풍전등화 조국앞에 첫 승전보 울려주던 무적해병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도 번영과 세계 6위의 국방력을 가질수가 있었으며
공산화 저지를 위한 필사적인 국군으로 거듭날것이다.
빨간 명찰...
태극기에 쌓인 전우의 시신...
가슴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