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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되는좋은글]육사 하나회 수장 故전두환 생애

작성자약수터|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육사 하나회 수장 故전두환 생애

 

그는 한국 재벌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색을 잃을 정도로 두려워한 악몽이자, 총칼로 권력을 쟁취한 철혈 대통령이다. 그는 피로 물든 길을 통해 권좌에 올랐고, "초당 6타(一秒六棍)"라는 말은 한국 현대사에 가장 소름 끼치는 각주가 되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에 학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한국 경제를 정점으로 이끈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독재자, 전두환이다.

1931년, 전두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대로 배운 학력도 없었던 그에게 유일한 출구는 군인이었다. 1952년 한국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이곳에서 노태우 등 심복들을 만나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하며, 훗날 권력 장악을 위한 결정적인 인맥의 씨앗을 뿌렸다.

1961년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을 때, 전두환은 기민하게 기회를 포착해 육사 생도들을 이끌고 지지군에 섰다. 이를 계기로 박정희의 눈에 들어 군 내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 국군 보안사령관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당하며 한국은 권력의 공백 상태에 빠졌다. 군권을 쥐고 있던 전두환은 목숨을 건 도박으로 한국 역사를 다시 썼다. 그해 12월 12일, 그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단 하루 만에 육군본부와 대통령실을 장악하고, 군부 원로들에게서 최고 군권을 강탈했다.

그를 대통령 자리에 확실히 앉혔으면서도 천추의 욕을 먹게 한 사건은 바로 세계를 경악시킨 광주 사태였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대규모 민주화 항쟁을 벌이자 전두환은 특수부대, 탱크, 헬기를 투입해 무력 진압을 명령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약속하며, 목숨 걸고 진압하면 전원 승진은 물론 연봉 수준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거액의 포상에 눈이 먼 병사들은 경찰봉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타격을 가했다. 이들은 '초당 6타’라는 끔찍한 기록을 세웠다. 10일간 이어진 이 진압으로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다. 이 피의 진압으로 전두환은 집권의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제거했고, 같은 해 8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집권 후 전두환은 한국 재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되었다.

박정희 시대에 야성적으로 성장한 삼성, 현대 같은 재벌 거두들도 전두환 앞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얌전해졌다. 그는 전담 기구를 만들어 재벌의 탈세와 뇌물 비리를 샅샅이 뒤졌다.

'순자창(順者昌), 역자망(逆者亡)'( 말 잘듣는자는 번성하고 , 불순응하는자는 망한다 )이라는 말이 실감 나게, 잘 듣는 재벌은 정부의 저리 대출과 정책 지원을 받았지만, 불복하는 재벌은 대출을 끊고 어음을 묵결(결제 거부) 처리해 몇 주 사이에 10위권 대기업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는 일해재단을 설립해 재벌들에게 '성금’을 강요했다.

삼성, 현대는 각각 15억 원의 '보호비’를 내야 했다. 심지어 "재벌이 살아있는 것은 국가의 은혜"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가 집권한 8년 동안, 으름장을 놀던 한국 재벌들은 그가 필요할 때마다 돈을 뽑아 쓰는 현금 인출기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철혈 독재로 권력을 쥐었던 저학력 대통령이, 한국 경제를 기적처럼 비약시켰다는 것은 아이러니였다. 그가 인수했을 때 한국은 GDP 성장률이 -3.7%로 곤두박질치고 물가 상승률은 29%에 달해 경제가 붕괴 직전이었다. 그는 경제학자들을 기용해 개혁을 추진, 물가를 한 자릿수로 낮추고 실업률을 2.5%까지 끌어내렸다. 집권 8년간 한국 GDP는 연평균 9% 이상 성장했고, 외환 보유고는 3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로 급증했다.

또한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 유치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를 추진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급상승시켰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신흥 공업국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권력의 물살은 언젠가 빠지기 마련이다. 1987년 한국 대규모 민주화 운동의 압박 속에 전두환은 권력을 내놓았고, 그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 검찰로부터 내란죄, 수뢰죄로 기소되었고, 당시 그에게 당했던 재벌들이 줄지어 나와 증언했다. 당시 뜯어낸 '성금’은 모두 뇌물의 증거가 되었다.

1996년 전두환은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205억 원의 추징금이 부과되었다. 1997년 특사로 석방되었으나, 2021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한국 정부는 그를 위한 국장(國葬)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의 삶은 공 과 과가 극명히 갈리며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다. 어떤 이는 그를 피를 본 독재자라 욕하고, 어떤 이는 재벌이 기를 펴지 못하고 경제가 고속 성장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는 피와 폭력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철권으로 재벌이라는 맹수를 길들였다. 하지만, 그가 강권을 잃는 순간, 자본은 더 강력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오늘날까지도 전두환이라는 이름은 한국 현대사에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다.

퍼온글

특전사 헌병 중사출신의 증언에 따르면 "화려한 휴가작전"은 최고보안으로 당시 참여했던 군인들은 입을 막기위하여 모든 군인들에게 빨간팬으로 함구각서를 쓰게 했다는 증언도 직접 들었다.

그는 화약냄새를 따라 우크라이나

프랑스 용병으로 참전하여 대인지뢰를 밣아서 오른쪽 다리가 절단했고 모든 과오는 깊이 반성하는듯 끊었던 담배 한가피를 달라하며 깊게 들이 마신후 참회의 소회를 경기 파주에서 종로까지 벤티를 타고 오는내내 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종로 모처로 이동중 모든 업보가 자신에게 있음을 참회의 말을 이어갔다. 그는 화려한 휴가작전 참여한 특전사 헌병출신 중사 부사관 출신이라 말했다.

모든 대한민국

의 모든비리는 軍에서 시작 됐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만큼 썩어빠진 쿠데타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軍에 존재는 국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며 국가의 존망을 책임지는 조국수호의 호국충성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을 지켜야 마땅할 것이다.

조국수호에 봉사 와 헌신을 다한 명예로운 참 군인은

반드시 국가 와 국민은 존경과 예우로써 대우를 하는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겠는가.. .?!

재벌 :노블레스 오블리제 귀족이면 그에 따른 의무는 반드시 지어야 하고 그로인한 국민들에 존경을 받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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