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행동경제학적 통계를 바탕으로 부의 재정의를 내린 빌 퍼킨스는 그의 저서 《다이 위드 제로(Die with Zero)》에서 충격적인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데이터를 제시했다.
은퇴 직전 50만 달러(약 6~7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졌던 고령층을 추적 조사했더니, 이들이 은퇴 후 20년이 지나거나 사망할 때까지 소진한 자산은 중앙값 기준으로 고작 11.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해 평생 모은 돈의 88% 이상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자산 규모가 20만 달러 미만인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그룹조차 은퇴 후 18년 동안 자기 자산의 4분의 1(25%)밖에 쓰지 못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손실 회피 경향(Loss Aversion)’과 ‘돈을 쓰는 고통(Pain of Paying)’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의 고통을 2배 이상 강하게 느낀다.
자산을 모을 때는 통장 숫자가 늘어나는 재미에 중독되지만, 은퇴 후 소득이 끊긴 상태에서 자산을 헐어 쓰는 것은 내 살점을 베어내는 것과 같은 심리적 고통을 수반한다.
원금을 깨는 순간 '노후 파산'이라는 파국이 올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결국 자산에서 나오는 쥐꼬리만 한 이자나 배당, 연금 범위 내에서만 생활을 맞추다 보니 정작 평생 모은 '자산의 본체'는 손도 대지 못한 채 상속 재산으로 넘어가게 된다.
결국 많은 재산은 자신을 위해 못쓰고 상속세 납부, 그리고 자녀를 위해 모은 것이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