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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모신글]참입선도(參入禪道)

작성자약수터|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참입선도(參入禪道)

 

"선(善)의 생활은 전체의 생활이다." 
"선(善)은 선(禪)에서 유래한다."善(선)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理治(이치)를 思惟修(사유수)한다.
생각을 고요히하여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고요한 경지에 드는 일이다.  
현재 미래에 걸쳐 자기와 타인을 純益(순익)케 하는 일이다.
이따금 진실한 선(善)과 마주치게 되면, 나는 마음속으로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슈바이쳐 박사님, 테레사 수녀님, 간디, 소크라테스, 등등

대한국인 유일한 박사님, 장기려 박사님, 김수환 추기경님, 이태석 신부님,등 등 그들을 높이 존경한다.  
기쁨은 인간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푼 위대한 善人(선인)들 이시다.
선(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苦)와낙(樂)은 그들에게는 전적인 가치를 잃는다.  

역사상의 수 많은 순교자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선(善)과 악(惡)에 있어 창조자가 되려고 생각한다면, 일체의 모던 가치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긍정에는 부정의 파괴가 그 조건인 까닭이다. 
최고의 선(善)은 창조적인 선(善)이다.
더러움이 없는 진실한 삶이다. 
선(善)을 행(行)하는데는 考慮(고려)가 필요치 않는다. 
좋은 일을 하면 타인이 칭찬할 것이다.
이 말은 僞善(위선)이다. 
 
선(善)이란 人格(인격)의 실현이며 이것을 진지하게 안에서 보면 요구의 만족,

의식의 통일로서 自他(자타)를 잊고 主客(주객)이 混然一體(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는 보리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 씨는 죽어야 한다.

폭력적 민족 구원보다 선(善)의 생활화 비폭력 평화주의로 민족을 이끌었다.

민초 백성이 죽고 다쳐서는 의미 없음을 이야기했다.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확고히 살아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순익(純益)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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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三毒)

 

탐욕(貪慾) · 진에(瞋恚) · 우치(愚癡)를 의미한다. 줄여서 탐(貪) · 진(瞋) · 치(癡)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 번뇌(煩惱)가 중생(衆生)을 해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毒藥)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탐욕(貪慾)은 탐애(貪愛)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욕심(欲心)을 내어 집착하는 것,

자기의 뜻에 맞는 일에 집착(執着)하는 것, 정도(程度)를 넘어서서 욕심(欲心)을 부리는 것,

명성(名聲)과 이익(利益)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5욕(五慾)이라고 하여

식욕(食慾) · 색욕(色慾) · 재욕(財慾) · 명예욕(名譽慾) · 수면욕(睡眠慾)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自體)탐욕(貪慾)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를 지나칠 때 탐욕(貪慾)이라고 한다.

한편, 여자가 가지는 욕망(欲望)으로는

색욕(色慾) · 형모욕(形貌慾) · 위의욕(威儀慾) · 자태욕(姿態慾) · 언어욕(言語慾) · 세활욕(細滑慾) 등

6욕(六慾)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진에(瞋恚)는 분노(憤怒)하는 것으로서, 산 목숨에 대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에(瞋恚) 속에는 분노(憤怒)뿐만 아니라 시기(時期)와 질투(嫉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 진에(瞋恚)는 수행(遂行)을 하는 데 가장 큰 허물이 되는 것이며, 다스리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치(愚癡) 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으로서,

이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愚癡) 때문에 모든 번뇌가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삼독(三毒)은 모두 ‘나[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我)’ 스스로에 미혹한 것이 우치(愚癡)이고,

그 우치(愚癡)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貪慾)을 일으키고,  

‘나(我)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瞋恚)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독(三毒)은 중생을 생사의 윤회 속으로 빠뜨리는 근원이 되고,

중생의 고통을 만드는 원인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삼독(三毒)을 제거하면 곧 고(苦)를 떠나서 열반(涅槃)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할 수 있다고 한다.

삼독(三毒)을 없애기 위한 수행(遂行)으로는

바른 견해(正見) · 바른 생각(正思惟) · 바른 말(正語) · 바른 행동(正業) ·

바른 생활(正命) · 바른 노력(正精進) · 바른 인식(正念) · 바른 정신(正定)의 팔정도(八正道)와

계(戒) · 정(定) · 혜(慧)의 삼학(三學)을 들고 있다.

즉, 계(戒)로써 탐욕(貪慾)을 다스리고, 정(定)으로써 진에(瞋恚)를 다스리며,

혜(慧)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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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貪慾) · 진에(瞋恚) · 우치(愚癡)를 의미(意味)한다. 줄여서 탐(貪) · 진(瞋) · 치(癡)라고도 하며, 이 세 가지[三] 번뇌(煩惱)가 중생(衆生)을 해(害)롭게 하는 것이 마치 독약(毒藥)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탐욕(貪慾)은 탐애(貪愛)라고도 하며 자기가 원(願)하는 것에 욕심(欲心)을 내어 집착(執著)하는 것, 자기의 뜻[意]에 맞는 일[事]에 집착(執著)하는 것, 정도(正道)를 넘어서서 욕심(欲心)을 부리는 것, 명성(名聲)과 이익(利益)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등이 모두 이에 해당(該當)한다. 일반적(一般的)으로 불교(佛敎)에서는 5욕(五慾)이라고 하여 식욕(食慾) · 색욕(色慾) · 재욕(財慾) · 명예욕(名譽慾) · 수면욕(睡眠慾)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구하는 것 자체(自體)가 탐욕(貪慾)이 아니라 그것이 정도(正道)를 지차칠[過] 때 탐욕(貪慾)이라고 한다.

한편, 여자(女子)가 가지는 욕망(欲望)으로는 색욕(色慾) · 형모욕(形貌慾) · 위의욕(威儀慾) · 자태욕(姿態慾) · 언어욕(言語慾) · 세활욕(細滑慾) 등 6욕(六慾)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진에(瞋恚)는 분노(憤怒)하는 것으로서, 산 목숨[生類]에 대(對)하여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에(瞋恚) 속에는 분노(憤怒)뿐만 아니라 시기(猜忌)와 질투(嫉妬)까지 모두 포함(包含)되어 있다.

이 진에(瞋恚)는 수행(修行)을 하는 데 가장 큰 허물[過失]이 되는 것이며, 다스리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우치(愚癡)는 현상(現象)이나 사물(事物)의 도리(道理)를 이해(理解)할 수 없는 어두운 마음[心]으로서,

이로 인(因)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判斷)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치(愚癡) 때문에 모든 번뇌(煩惱)가 일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삼독(三毒)은 모두 ‘나[我]’에서 비롯[始]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我)’ 스스로[自]에 미혹(迷惑)한 것이 우치(愚癡)이고,

그 우치(愚癡) 때문에 이 세상(世上)을 살아가면서 ‘나’에게 맞으면 탐욕(貪慾)을 일으키고,

‘나(Identity/我)’에게 맞지 않으면 진에(瞋恚)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삼독(三毒)은 중생(衆生)을 생사(生死)의 윤회(輪迴) 속으로 빠뜨리는 근원(根源)이 되고,

중생(衆生)의 고통(痛苦)을 만드는 원인(原因)으로 해석(解釋)되고 있다.

따라서 삼독(三毒)을 제거(除去)하면 곧 고(苦)를 떠나서 열반(涅槃)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할 수 있다고 한다.

삼독(三毒)을 없애기 위한 수행(修行)으로는

바른 견해(正見) · 바른 생각(正思惟) · 바른 말(正語) · 바른 행동(正業) ·

바른 생활(正命) · 바른 노력(正精進) · 바른 인식(正念) · 바른 정신(正定)의 팔정도(八正道)와

계(戒) · 정(定) · 혜(慧)의 삼학(三學)을 들고 있다.

즉, 계(戒)로써 탐욕(貪慾)을 다스리고, 정(定)으로써 진에(瞋恚)를 다스리며,

혜(慧)로써 어리석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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