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 간의 침묵 // 엄상익변호사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판사를 무심하게 대했다. 어떻게 보면 무시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는 단체의 돈을 횡령했다고 기소됐다. 판사와 검사는 그를 뻔뻔한 파렴치범으로 봤다. 그가 회장인 단체의 회원들이 진정서를 냈다. 엄벌해 달라고. 그가 소설가 협회 회장이었던 정을병씨였다. 단 한 사람의 회원도 감옥에 있는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가 변호사인 내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내면 깊이 들어가려고 노력해 왔어요. 세상사에 대해 무심한 상태가 되려고 했죠. 지금의 이 상황에도 무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게 흐르는 강물같이 지나갑니다. 섭리인데 분노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양손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가느다란 팔목이 보였다.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침묵을 지키면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남의 평가나 판단에 연연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이번에 감옥에 와서 조금 깨달음의 진전이 있는 것 같아요.”
억울함을 삼킨 침묵이었다. 그의 침묵은 깊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내란죄로 재판을 받았다. 공개된 법정에서였다. 나는 그 방청기를 썼다. 출판이 거절됐다. 연일 신문에 보도되는 사건이라 팔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출판사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은 오후 3시가 되면 마감 때문에 법정을 모두 빠져나가요. 들어도 법률적인 사안은 놓치는 게 많아요.”
나는 그들과 다른 걸 봤다.
“내가 쓰는 글을 사람들이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십 년 쯤 흐른 후 몇몇 정치학자들의 자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만 읽어도 좋으니까 책을 만들어주세요. 내가 목격한 역사적 진실을 남겨놓고 싶습니다. 출판비는 내가 부담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피고인 각하’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 측의 분노가 대단했다. 노태우 대통령 측의 분노가 더 심했다. 그 가족에게 재판에 대한 자문을 해 줬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가족을 소개한 친구와도 멀어졌다. 어떤 말을 해도 변명이 될 게 틀림없었다. 침묵했다. 오해가 사실로 굳어진 채 끝이 났다.
아들과도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일찍 유학을 보냈다.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나는 옆에 없었다. 경찰관에게 억울하게 얻어맞았을 때도 나는 함께 있지 않았다. 말했어야 할 순간에 말하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아빠도 아팠다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해도 가서 닿지 않았다. 부두에서 배가 떠나가듯 아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지금도 더러 아들을 보면 서로 침묵한다. 부자간의 물같은 정도 얼어버리면 도끼로 깨도 안 깨진다. 침묵이 어색하고 힘들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선 노인이다. 침묵의 밑바닥에 두려움이 깔려있다. 화해하지 못하고 끝낼 것 같은.
황혼 무렵이면 침묵이 고인 해변에 앉아 있다. 시편 23편을 필사하는 순간 마음속에 침묵이 스며든다. 그 침묵의 공간에서 두려움을 하늘에 올려 보내고 있다.
깊은 하늘 저쪽에서 30분간의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